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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보름달과 같은 사람이 되길 未圓常恨就圓遲 보름달이 아닐 땐 항상 둥글어짐이 더딤을 한스러워하고, 圓後如何易就虧 보름달이 된 뒤엔 어째서 쉬이 기울어지려는가? 三十夜中圓一夜 30일 밤중에 보름달은 하룻밤이니, 百年心事摠如斯 인생 백년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다네.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소개된 이 시를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배우며 제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신은 이 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리고 과연 송익필은 이 시를 통해 무얼 말하고자 했겠는가? 보름달을 기대했다가 순식간에 이지러지는 현상을 보면서 ‘욕심의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욕심엔 명예, 지위, 돈과 같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보름달과 세잎 클로버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나오는 송익필의 「달을 바라보며望月」라는 시는 임용시험에도 두 번이나 출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시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시다. 시 자체만 읽어봐선 보름달이 되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하루 사이에 조금씩 이지러지며 얇아지는 모습에 대한 한탄이 들어 있다. 달은 늘 떠 있어 구름이 끼지 않는 한 언제든 볼 수 있기에 달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달 중에서도 보름달은 우리에게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크고 밝은 달이기에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뜬 날만 늑대로 변해 자신 안에 숨겨진 파괴본능을 맘껏 드러내기도 하니 말이다. 나 또한 달 중에서 보름달을 좋아했다. 그래서 평상시엔 달을 보며 어떤 감상도 남기지 않다가 보름달..
100. 인생에 대해 읊은 송익필 龜峯宋翼弼, 雖出卑微, 天品甚高, 亦能文章. 其「望月」詩曰: ‘未圓常恨就圓遲, 圓後如何易就虧.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事摠如斯.’ 語甚精到. 又「客中」詩曰: ‘食披叢竹宿依霞, 行計蕭然只一簑. 山近鷄龍秋氣早, 江連白馬夕陽多. 路通南北君恩足, 身歷艱危學力加. 子在秦城兄塞外, 夢中歸去亦無家.’ 旅泊之態, 見於言外. 해석 龜峯宋翼弼, 雖出卑微, 귀봉 송익필은 비록 출신이 비천하고 미비했지만, 天品甚高, 亦能文章. 천성적인 자질은 매우 높았고 또한 문장을 잘 지었다. 其「望月」詩曰: ‘未圓常恨就圓遲, 圓後如何易就虧.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事摠如斯.’ 「달을 바라보며[望月]」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未圓常恨就圓遲 보름달이 아닐 땐 항상 둥글어짐이 더딤을 한스러워하고, 圓後如何易就虧 ..
성리학의 주제를 담아낸 권필의 시 雨後濃雲重復重 비 갠 뒤 짙은 구름 뭉게뭉게 捲簾晴曉看奇容 발 걷으니 갠 새벽의 기이한 풍경이 이네. 須臾日出無踪跡 잠깐 사이에 해가 나와 종적조차 없어져 始見東南兩三峯 비로소 동남의 두세 봉우리 보이네【삼각산의 비 갠 구름[右三角晴雲]】.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권필의 「호정팔경(湖亭八景)」 중 ‘삼각청운(三角晴雲)’이라는 시다. 이 시는 그냥 읽으면 너무도 일상을 잘 담아낸 시처럼 보인다. 비 갠 아침에 안개가 자욱이 껴 있고 구름도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다. 그러니 늘 보이던 삼각산의 경치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해가 뜨고 나니 구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환하게 삼각산의 경치가 보인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一區耕鑿水雲中 물가 구름 속의 한 구역에 밭 갈고 우물 파느라, 萬事無心白髮翁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 睡起數聲山鳥語 두어마디 산새소리에 잠을 깨서는 杖藜徐步繞花叢 명아주 지팡이로 천천히 걸으며 수풀 맴돈다네.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우계 성혼의 시는 저절로 「격양가(擊壤歌)」가 생각나며 달관한 사람의 면모가 가득 보인다. 세상을 달관한다는 게 무관심해진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절대정신 같은 것일 거다. 그러니 겉에서 보면 만사에 무심한 노인 같지만, 그는 자연의 흐름을 온몸에 받아들여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제와는 달리 오늘 새로 피어난 수풀의 이름 모를..
시와 작가와의 관계 『소화시평』 권상 99번에선 ‘문장을 지음으로 도를 깨쳤다[因文悟道]’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선시대의 문장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성리학이 송나라 시대에 발흥한 이후로 문장은 도를 싣는 도구여야 했다. 그래서 ‘글은 도를 실어야 한다[文以載道]’는 논의와 덧붙여 ‘도가 근본이고 글은 말단이다[道本文末]’와 같은 문학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글을 통해 도를 전해주고, 그 글을 읽으면서 도를 깨쳐야 한다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선시대의 문장론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전혀 어색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이란 어찌 되었든 저자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게 마련..
99. 우계와 석주의 도를 깨친 시 文章理學, 造其閫域, 則一體也, 世人不知, 便做看兩件物, 非也. 以唐言之, 昌黎因文悟道. 『恥齋集』云: “佔畢齋, 因文悟道.” 『石潭遺史』云: “退溪亦因文悟道.” 余觀成牛溪「贈僧」詩曰: ‘一區耕鑿水雲中, 萬事無心白髮翁. 睡起數聲山鳥語, 杖藜徐步繞花叢.’ 極有詞人體格. 權石洲「湖亭」詩曰: ‘雨後濃雲重復重, 捲簾晴曉看奇容. 須臾日出無踪跡, 始見東南兩三峯.’ 極似悟道者之語. 해석 文章理學, 造其閫域, 則一體也, 문장과 이학은 지극한 경지에 나아가면 하나의 체계다. 世人不知, 便做看兩件物, 세상은 알지 못하고 곧 두 가지의 사건이나 물건으로 간주하는데 非也. 그건 잘못된 것이다. 以唐言之, 昌黎因文悟道. 당나라로 예를 들자면 말하자면 한창려는 문장으로 도를 깨쳤다고 한다. 『..
정철의 자기 인식과 자유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민순은 아니고 곧 미치광이로 半世風塵醉得名 반백년 풍진 맞으며 취하여 명성을 얻었다네. 欲向新知道姓字 새로이 알게 된 이를 향해 성과 자를 말하려 하니, 靑山獻笑白鷗輕 청산은 비웃고 흰 기러기 무시하네. 『소화시평』 권상 98번에 소개된 「주중사객(舟中謝客)」라는 시는 정철의 후손이 문집에 그때의 상황을 기록해둔 덕에 왜 이런 시가 나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사죄하게 됐는지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그 당시에 유명하면서도 명망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 데에 대해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은 못 됩니다.’라고 사죄하며 시를 지은 것이다. 여기까지야 뭐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됐지만, 3구와 4구에선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
송강 정철과 팰컨 헤비 『소화시평』 권상 98번의 주인공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ㆍ「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한문학계에서보다 국문학계에서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자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처참하게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철에 대해 알게 된 건 권필과 이안눌이란 제자 때문이었다. 둘 다 정철이 죽은 이후에 그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이안눌은 달이 뜬 밤, 용산에서 기녀가 「사미인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오직 우리 선생을 알아주는 이는 기녀뿐이로구나.’라는 깊은 탄식을 시에 담았다. 권필은 낙엽지고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무덤가를 지난다. 그때 스승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두 명의 제자를 통해 회상되..
98. 정철의 얽매이지 않은 시와 속되지 않은 시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豪逸不羈. 「題樂民樓」詩曰: ‘白岳連天起, 成川入海遙. 年年芳草路, 人渡夕陽橋.’ 世稱絶唱. 然余意不俗則似矣, 絶唱則未也. 해석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송강 정철은 일찍이 배에서 한 선비를 만났는데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선비가 정철이 행촌 민순(閔純)인지 의심했고, 또한 우계 성혼인지 의심했다.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송강이 써서 한 절구(「배에서 손님에게 사죄하며[舟中謝客]」)를 주었으니 다음과 같다.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
고경명의 백마강 시에 은근히 드러난 정서 病起因人作遠遊 벗 때문에 병석에서 일어나 먼 여행을 떠났더니, 東風吹夢送歸舟 봄바람 꿈결에 불어 돌아가는 배를 전송하네. 山川鬱鬱前朝恨 산천은 짙푸르니 전 왕조의 한인 듯, 城郭蕭蕭半月愁 성곽은 쓸쓸하니 반달도 시름겨워하는 듯. 當日落花餘翠壁 그 날 당시의 낙화는 푸른 석벽에 남아 있고, 至今巢燕繞紅樓 지금도 둥지의 제비는 붉은 누각을 맴도네. 傍人莫問溫家事 벗이여 온조왕 옛 일은 묻지 마시라. 弔古傷春易白頭 옛날을 조문하고 봄을 애달파하면 쉬 백발이 될 테니. 『소화시평』 권상 97번에 두 번째로 나온 시는 고경명의 시다. 1~2구까진 자신이 어떻게 백마강까지 오게 됐는지를 표현했다. 병으로 시달리던 때 친구의 방문으로 백마강 답사가 실현되었고 마치 꿈처럼 어느..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정사룡과 고경명은 시를 통해 백제 멸망의 스산함을 간직한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며 그 대표작으론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 있다. 나 또한 단재학교에 신입교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3명의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났었다. 첫째 날엔 정림사지와 부여박물관을 돌아보며 백제의 역사를 곱씹었고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둘째 날엔 부소산성과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백제의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사룡의 시나 고경명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슴 절절한 아픔은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 너무 머나먼, 그래서 ..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백마강을 둘러보며 백제의 멸망을 바라본 두 학자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강서시파의 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강서시파의 면모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호소지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중국에서 최대한 다듬은 시구를 구사했던 송시(宋詩)의 계열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위시한 강서파의 조선 버전이다. 지금은 ‘버전’과 같은 영어식의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 당시엔 조선을 나타내는 ‘해동(海東)’이란 말을 덧붙여 ‘해동강서시파’라고 불렸다. 해동강서시파의 멤버를 보자면 거두인 눌재 박상이 있는데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서 여실히 보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
97. 백제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시 湖陰「白馬江」詩: ‘別酒澆胸未散愁, 野橋分路到江頭. 城池坐失溫王險, 圖籍曾聞漢將收. 花萎尙傳崖口缺, 龍亡猶認釣痕留. 寒潮强學靈胥怒, 亂送驚濤殷柁樓.’ 霽峰詩: ‘病起因人作遠遊, 東風吹夢送歸舟. 山川鬱鬱前朝恨, 城郭蕭蕭半月愁. 當日落花餘翠壁, 至今巢燕繞紅樓. 傍人莫問溫家事, 弔古傷春易白頭.’ 湖陰詩雖極雄豪, 未若霽峰之淸新高邁. 雖以劉夢得「金陵懷古」方之, 霽峰不必多讓. 해석 湖陰「白馬江」詩: ‘別酒澆胸未散愁, 野橋分路到江頭. 城池坐失溫王險, 圖籍曾聞漢將收. 花萎尙傳崖口缺, 龍亡猶認釣痕留. 寒潮强學靈胥怒, 亂送驚濤殷柁樓.’ 호음 정사룡의 「백마강에서[白馬江] / 밤에 백마강을 건너며[夜渡白馬江]」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別酒澆胸未散愁 이별주를 가슴에 부어도 근심은 사라지지..
이달과 고경명의 인연 『소화시평』 권상 96번에서 완전히 해석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양경우의 맨 마지막 말이 끝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그것이다. 여기에서의 원문은 ‘익견기장자야(益見其長者也)’이다. 난 별로 생각하지 않고 ‘고경명 어르신이 이달을 자기의 오른편에 두었으니, 고경명 어른이야말로 이달의 장점을 본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달을 살뜰히 챙기는 고경명 어르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녹아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형술 교수님은 그렇게 봐선 안 된다고 말해줬다. 益見其長者也 더욱 그 장점을 본 사람이다. 더욱 그가 어른 됨을 볼 수 있다 ‘장점을 봤다’라고 하면 ‘그저 좋은 점을 인정해줬다’는 얘기가 될 테지만, ‘고..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소화시평』 권상 96번은 홍만종이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양경우의 문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책이 귀하던 그 시절에 홍만종은 여러 사람의 문집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그런 문집들을 읽다가 자신이 언제가 활용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발췌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양경우의 문집과 이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열나게 베끼고 있는 홍만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나게 베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단연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도중 한 곳에 들어갔고 그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내용이 너무도 재기발랄하여 저녁에 정진사와 함께 찾아 반을 나누어 베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글이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엄청..
96. 이달과 고경명, 그리고 당풍 高霽峯敬命, 壬辰爲義兵將, 梁慶遇掌書記, 軍務之暇, 語及論詩. 霽峯稱道蓀谷詩格曰: “世罕其儔.” 梁曰: “蓀谷詩, 出於晩唐, 一篇一句可詠, 豈若閤下濃麗富盛乎?” 霽峯曰: “豈可易言其優劣乎! 如七言律·排律等作, 則吾不讓李, 至於短律若絶句, 決不可及. 昔守瑞山郡時, 邀李於東閣, 留連累朔, 與之唱和. 每賦絶句, 不敢以宋人體參錯於其間, 倉卒學唐, 半眞半假, 誠可愧也.” 梁逢人每言: “文人相輕, 自古而然. 霽峯之於蓀谷, 推許至此, 置之己右, 益見其長者也.” 余觀霽峯「漁舟圖」絶句: ‘蘆洲風颭雪滿空, 沽酒歸來係短篷. 橫笛數聲江月白, 宿禽飛起渚烟中.’ 其聲韻格律, 極逼唐家, 豈可謂半假乎? 公盖自謙也. 해석 高霽峯敬命, 壬辰爲義兵將, 제봉 고경명은 임진년에 의병장이 되었고 梁慶遇掌書記..
95. 이이의 시 天使黃·王之來也, 栗谷爲遠接使. 崔簡易宰成川, 欲試公, 會諸妓曰: “若有能瞞此老者, 厚賞之.” 有一美娥, 請往, 卽命送公. 公晝則命侍左右, 夜必命還其寓, 如是者月餘. 妓遂辭歸, 公乃贈一絕曰: ‘旅館誰憐客枕寒, 枉敎雲雨下巫山. 今宵虛負陽臺夢, 只恐明朝作別難.’ 以鐵石心肝, 爲此淸新婉麗之語, 與宋廣平「梅花賦」, 千載相符. 해석 天使黃·王之來也, 栗谷爲遠接使. 명나라 사신 황홍헌(黃洪憲)과 왕경민(王敬民)이 왔을 적에 율곡이 원접사가 되었다. 崔簡易宰成川, 欲試公, 會諸妓曰: “若有能瞞此老者, 厚賞之.” 최간이가 성천부사(成川府使)로 부임해 있어 율곡을 시험해보고자 해서 뭇 기녀를 모아 “만약 이 노인을 홀릴 만한 이라면 후하게 상을 내리겠다.”라고 말했다. 有一美娥, 請往, 卽命送公. 어떤..
경험을 해야 더 맛깔나는 한시들 ‘책 너머의 지식과 학교 너머의 공부’라는 것이 무언지는 『소화시평』 권상 94번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홍만종도 책을 통해서 시를 익혔던 사람이라 시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겠지’라고 갸우뚱하며 넘어갔나 보다. 굳이 홍만종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처럼 지식을 책을 통해서만 쌓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경험은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수없이 배웠던 여러 과목들은 분명히 경험이 무르익어 생성된 것임에도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배제된 ‘앙꼬 없는 찐빵’으로써의 지식만을 무작정 암기하고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면 배울수록 삶은 배움과 철저하게 괴리되어 갔던 것이다. 뭔가를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선 적용도 ..
책 너머의 지식, 학교 너머의 배움 한참 임용을 준비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단재학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6년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갖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건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전혀 생소한 인연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밖에 길이 있다’라던지, ‘교실이란 공간 밖에 배움이 있다’라던지 하는 말들을 해왔던 것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얘기는 텍스트에 사로잡혀서도, 공간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지식은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다른 건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며, 잠을 잘 때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
94. 경험해보고서야 시의 가치를 알게 되다 姜醉竹克誠「湖亭」詩曰: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但聞柔櫓聲, 不見舟行處.’ 余初咀嚼不識其味. 嘗寓江亭, 一日早起開窓, 大霧漫空. 朝日韜輝, 不識行舟, 但聞戞軋之聲, 始覺其說景逼眞. 石洲「曉行」詩: ‘雁鳴江月細, 曉行蘆葦間. 悠揚據鞍夢, 忽復到家山.’ 余奇其韻語, 未得其趣. 嘗向春川, 宿靑坪坡, 曉發時, 値九月念後. 沿江一路, 盡是蘆葦, 曉月如眉, 獨鴈呌群. 信馬垂鞭, 且行且睡, 始覺其模寫如畵. 兩公詩價, 對景益高. 해석 姜醉竹克誠「湖亭」詩曰: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但聞柔櫓聲, 不見舟行處.’ 취죽 강극성의 「호숫가 정자에서[湖亭] / 강가 정자에서 아침에 일어나[湖堂朝起]」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강의 해 늦도록 솟질 않고 아득히 십..
93. 양사언의 시 楊蓬萊士彥「國島」詩: ‘金屋樓臺拂紫烟, 濯龍雲路下群仙.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脫去塵臼. 해석 楊蓬萊士彥「國島」詩: ‘金屋樓臺拂紫烟, 濯龍雲路下群仙.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彥)의 「국도(國島)」【함경도 안변(安邊)에 있는 섬 이름으로 안변에서 동북쪽 60리쯤 되는 곳에 있다. 양사언이 1577년 무렵 안변부사로 재직하였을 때 지은 시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金屋樓臺拂紫烟 황금 지붕 누대는 붉은 연기 떨구고 濯龍雲路下群仙 탁룡【탁룡(濯龍): 후한(後漢) 황가(皇家)의 원림(園林) 이름으로, 보통 궁중을 뜻한다.】의 구름 길로 뭇 신선들 내려오네. 靑山亦厭人間世 푸른 산도 또한 인간 세상을 싫어해서 飛入滄溟萬里天 날아 푸른 바다의 만리..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소화시평』 권상 92에서 이안눌은 권벽과 권필 부자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를 놓고 비교를 한다. 우선 비교를 하려면 같은 느낌으로 쓰여진 시를 선별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고 시적 재능도 완전히 달랐으니, 다른 작품을 놓고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눌은 ‘중국 사신을 전별하는 시’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쓴 사신 전별시를 골랐고 그걸 통해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一曲驪駒正咽聲 한 곡조의 이별곡은 바로 오열하는 소리 朔雲晴雪滿前程 변방의 구름과 쌓인 눈이 앞길에 가득하구나. 不知後會期何地 훗날 기약 어디일지 알지 못하니, 只是相思隔此生 그저 그리움만 지닌 채 이 생은 떨어져 있으리. 梅發京華春信早 매화 피어 서울에..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 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
92. 동악이 평가한 습재와 석주의 시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二人俱有贈華使詩,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京華春信早, 氷消江浙暮潮平. 歸心自切君親戀, 肯顧東人惜別情.’ 石洲詩: ‘江頭細柳綠烟絲, 暫住蘭橈折一枝. 別語在心徒脈脈, 離盃到手故遲遲. 死前只是相思日, 送後那堪獨去時. 莫道音容便長隔, 百年還有夢中期.’ 習齋詩沈重, 石洲詩浮弱, 可於此兩詩論定.”云. 해석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습재 권벽과 석주 권필 문장의 우열에 대해 동악 이안눌에게 물으니, 이안눌이 대답했다. “二人俱有贈華使詩, “두 사람이 모두 중국 사신에게 준 시가 있는데,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
91. 권벽의 시 權習齋, 諱擘, 余祖母外王考也. 爲文長於詩, 淸深典雅, 自成一家. 松溪權應仁嘗語梁松川應鼎曰: “閤下得見習齋所作歟?” 曰: “未慣.” 曰: “人問詞壇立幟者, 僕必以習齋爲對.” 松川曰: “唯唯!” 北海藤季達, 從韓詔使到我國. 時習齋爲遠接使從事官, 相得甚懽, 習齋贈之以詩曰: ‘有山皆着屐, 無水不流觴.’ 藤撫掌嘆賞曰: “僕行天下多矣, 未嘗見如此詩人.” 해석 權習齋, 諱擘, 余祖母外王考也. 권습재의 휘는 벽(擘)으로 우리 할머니의 외조부이다. 爲文長於詩, 淸深典雅, 自成一家. 문장을 지음에 시에 장점이 있어 맑고 심오하며 법칙 있고 우아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松溪權應仁嘗語梁松川應鼎曰: “閤下得見習齋所作歟?” 曰: “未慣.” 송계(松溪) 권응인(權應仁)이 일찍이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우리 고유어로 쓴 시는 아름답다 『소화시평』 권상 90번을 보면 문화사대주의에 쪄들었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엔 상식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긴 지금이라 해서 무작정 ‘한글전용’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곳이든 지나가다 보면 영어로 된 간판이나,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의 이름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지어지고 버젓이 써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한문이 국제사회의 언어로 맹위를 떨쳤다면 지금은 영어가 그 지위를 이어받은 모양새고, 이 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논조들이 지금도 영어로 대체되어 횡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권 당시엔 영어공용화 논쟁까지 불붙으며 어륀지 파문까지 일었겠는가. 그건 단순히 파문 문제로 끝난 게 아..
90. 우리나라 고유어로 시를 쓰라 世謂: “中國地名皆文字, 入詩便佳. 如‘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氣蒸雲夢澤, 波撼岳陽樓.’等句, 只加數字而能生色. 我東方皆以方言成地名, 不合於詩.”云. 余以爲不然, 李容齋「天磨錄」詩: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蘇齋「漢江」詩云: ‘春深楮子島, 月出濟川亭.’ 詩豈不佳? 惟在鑪錘之妙而已. 해석 世謂: “中國地名皆文字, 入詩便佳. 세상에선 말한다. “중국의 지명은 모두 문자이기 때문에 시에 삽입하면 더욱 아름답다. 如‘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두보(杜甫)의 「나그네[遊子]」의 다음 구절이나 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봄풀 바깥에서 구강이 흐르고, 저물녘 돛대 앞에 삼협(三峽)이 놓여 있네. ‘氣蒸雲夢澤, 波撼岳陽樓.’等句, 맹호연(孟浩然)의 「동정호에 다다라[臨洞庭]」의 ..
도문대작을 어떻게 해석할까? 夢賚元將水月隣 몽뢰는 원래 수월정을 거느리고 인접하여 兩翁分占一江春 두 노인이 한 강의 봄을 나누어 차지했다네. 東家樂作西家聽 동쪽 정자에서 음악을 지으면 서쪽 정자에서 들으니, 絶勝屠門大嚼人 상상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구나.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두 번째 소개된 시의 4구(絶勝屠門大嚼人)가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았다. 1~3구까지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두 정자가 바로 옆에 있고 한 군데서 음악을 연주하면 바로 옆 정자까지 음악이 퍼지고, 함께 봄날의 경치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아주 평화로운 기색이 넘실거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도문대작인(屠門大嚼人)’이라는 걸까?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말은 허균의 작품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게 전거가 있는 단어..
사제(賜祭)를 드리며 조정을 찬양한 정유길의 시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처음에 소개된 시가 바로 이런 유형의 시다. 조정에 아부하기 위해 자신의 나태함을 나타낸다던지, 아예 조정이 없는 모습을 표현한다던지하는 두 가지 방식 외에 정유길의 이번 시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聖朝枯骨亦沾恩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 香火年年降塞門 향불 해마다 변방에 내리네. 祭罷上壇風雨定 제사 마친 제단에 오르니 바람과 비는 멎고 白雲如海滿前村 흰 구름은 바다처럼 앞마을에 가득 찼구나. 그건 1구에서부터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聖朝枯骨亦沾恩]’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구절만 읽어도 이 시가 지향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
조정에 한시로 아부하는 방식 관료로서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의 시는 여러 편을 봤었다. 권상 34번에 나오는 곽예는 시에서는 하릴없이 공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한 관리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가로이 근무하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이며 조정의 정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동양 사회에 이런 식의 태평성대에 대한 찬양이 생긴 것은 태평성세의 전범으로 삼는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鑿井而飮 耕田而食 우물을 파마시며 밭 갈아 먹으니, 帝力何有於我哉 임금의 정치가 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 시는 얼핏 보면 무정부상태를 칭송하..
89. 정유길의 충성심과 호기로운 기상 鄭相國, 諱惟吉, 號林塘, 余外高祖也. 文章富麗, 尤長於詩, 不事彫刻, 而自有風味. 「賜祭棘城」詩: ‘聖朝枯骨亦沾恩, 香火年年降塞門. 祭罷上壇風雨定, 白雲如海滿前村.’ 公江亭在漢津, 名夢賚, 與礪城尉水月亭接隣, 臥聞都尉亭歌管大作, 遂吟一絶: ‘夢賚元將水月隣, 兩翁分占一江春. 東家樂作西家聽, 絶勝屠門大嚼人.’ 其氣像可見. 해석 鄭相國, 諱惟吉, 號林塘, 정상국(1515~1588)의 휘는 유길이고 호는 임당으로, 余外高祖也. 나의 외고조부다. 文章富麗, 尤長於詩, 문장이 풍부하고 곱지만 더욱 시에 장점이 있어 不事彫刻, 而自有風味. 수식하려 애쓰지 않아도 절로 풍미가 있다. 「賜祭棘城」詩: ‘聖朝枯骨亦沾恩, 香火年年降塞門. 祭罷上壇風雨定, 白雲如海滿前村.’ 「극성에서 ..
퇴계 선생의 선비화 시가 불편한 사람들 앞선 후기에서 ‘공부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라고 했듯이 『소화시평』 권상 88번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퇴계의 시에서 스님의 말을 어느 부분까지 볼 것인지도 명확해진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고 가야 할 게 있다. 영주 부석사의 어느 암자 처마 아래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건 예로부터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기 위해 꽂아둔 석장이 어느새 뿌리가 내리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다. 바로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흘러오는 얘기이고 그런 기이한 이야기에 감동한 퇴계는 시까지 지으며 뒷받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퇴계야말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유학자 ..
신이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소화시평』 권상 88번의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땐 신이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종교계열의 이야기엔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으론, 일상적인 이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천지창조 이야기랄지,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랄지, 단군의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종교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무작정 수긍해야 한다거나, ‘어디서 그런 뻥카를’이란 생각으로 거부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읽고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엔 융이 말했던 ‘집단..
부석사 운에 차운하다(절은 영천 봉황산에 있다) 차부석사운 사재영천봉황산(次浮石寺韻 寺在榮川鳳凰山) 구봉령(具鳳齡) 紛生幻說破空門 正學千秋樹本根 一聯詩句留題處 肯向妖叢更視恩 先生詩云: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曺溪水, 不借乾坤雨露恩.” 寺有化僧言“植陰簷之下! 見日則枯.”云. 先生詩, 只斥其妄誕之實, 而人或不察故云. 『栢潭集』 해석 紛生幻說破空門 분연히 생긴 황당한 말은 공문을 깨뜨리고, 正學千秋樹本根 정학의 본 뿌리를 긴 세월동안 세우려 해서네. 一聯詩句留題處 한 연의 시구가 남은 곳에서 肯向妖叢更視恩 기꺼이 요망한 나무를 향해 다시 은혜를 보였구나. 先生詩云: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曺溪水, 不借乾坤雨露恩.” 퇴계 선생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擢玉森森倚寺門 옥처..
선비화는 부처의 은혜가 담겨 있다 부석사선비화(浮石寺仙飛花) 신좌모(申佐模) 傳, 義相大師住錫于浮石寺. 一日歸西笁, 植杖于寺之門內. 語“此杖生花葉, 可知吾法身不滅.” 果托根生花葉, 寺僧樹屛于門, 以防剪伐. 後有道伯截去原根, 今有旁根叢生, 年年開花. 退溪先生有詩揭門楣, 詩曰: “攢玉亭亭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曹溪水, 不借乾坤雨露恩.” 謹次其韻. 卓錫西歸一閉門 法身无滅證靈根 年年花葉長開落 不藉沾濡報佛恩 해석 傳, 義相大師住錫于浮石寺. 전하기로는 의상대사가 부석사 머물렀는데, 一日歸西笁, 植杖于寺之門內. 하루는 서축으로 돌아갈 때 절의 문 안에 석장을 꽂았다. 語“此杖生花葉, 그러면서 대사는 말했다. “이 지팡이에서 꽃과 잎이 피면 可知吾法身不滅.” 나의 법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88. 부석사의 선비화 榮川浮石寺, 卽新羅太師義相所刱也, 簷下有一樹, 莫知其名, 居僧相傳, 以爲太師柱杖. 始師入定之時, 植其杖於窓外, 遂閉戶坐化. 後杖忽生柯葉, 開花甚繁, 至今千有餘歲愈盛. 昔夸父擲杖, 化成鄧林, 與此頗相類. 而此樹在於簷宇之下, 不借雨露之濡, 而能亭亭獨立, 榮耀長春, 比諸鄧林尤異. 退溪先生有詩曰: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曹溪水, 不借乾坤雨露恩.’ 해석 榮川浮石寺, 卽新羅太師義相所刱也. 영천 부석사는 곧 신라 태사 의상이 창건한 곳이다. 簷下有一樹, 莫知其名. 처마 아래에 한 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알진 못한다. 居僧相傳, 以爲太師柱杖. 기거하던 스님이 서로 전하며 ‘태사의 지팡이’라고 말했다. 始師入定之時, 처음에 태사가 수행하기 위해 방안에 들어갔을 때에 植其杖於窓外, ..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솔바람 빗장 건 채 듣고 눈 속 매화는 화로 낀 채 보다보니,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각별하지만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지.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깨닫고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이전엔 괴안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네. 나야 사단칠정 논쟁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정관념적으로 이황 선생에 대해 되게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웬만하면 퇴계의 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소화시평』 권상 87번에 이황의 시가 실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를 보고나선 깜짝 놀랐다. 매우 인..
사단칠정론과 고정관념 『소화시평』 권상 87번의 주인공은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을 장식한 이황 선생이다. 이황하면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했다는 사실만이 깊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논쟁들이 그렇지만 그 당시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논리를 더 예리하게 다듬게 되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데없는 것에 힘쓴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비전향 장기수가 사상전환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그 생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세상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유전적으로 우린 조선 사람들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철학적으론 전혀 ..
87. 이황의 기상이 담긴 시 退溪先生, 非徒理學之爲東方所宗, 文章亦卓越諸子. 「次友人」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又關西錄一聯云: ‘絶域病攻天拂亂, 荒城雷聞鬼驚忙.’ 於此可見氣像. 해석 退溪先生, 非徒理學之爲東方所宗, 퇴계선생은 성리학으로 동방의 종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文章亦卓越諸子. 문장으로도 또한 여러 작가보다 탁월했다. 「次友人」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친구가 시를 보내 화답을 구하기에 차운하다次友人寄詩求和韻」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
86. 주세붕의 부석사 시 余曾遊榮川浮石寺, 登聚遠樓, 樓出半空, 俯臨洞壑, 飛鳥皆視其背. 周愼齋世鵬, 有題一律: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樓居雲雨上, 鐘動斗午間. 斫木分河逈, 開巖鍾玉閑. 非關眈佛宿, 蕭灑劫忘還.’ 他人所題, 莫能及此. 해석 余曾遊榮川浮石寺, 登聚遠樓, 樓出半空, 俯臨洞壑, 飛鳥皆視其背. 내가 일찍이 영천(榮川)의 부석사(浮石寺)에 유람할 때 취원루(聚遠樓)에 오르니 누각은 반쯤 허공에 튀어나와 골짜기를 굽어보면 나는 새가 모두 그 등을 보였다. 周愼齋世鵬, 有題一律: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樓居雲雨上, 鐘動斗午間. 斫木分河逈, 開巖鍾玉閑. 非關眈佛宿, 蕭灑劫忘還.’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의 한 율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부석사는 천년 사찰로 학가산에..
시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하나, 손님의 간담은 예로부터 서늘했었다지.但覺巖崖峻 誰知宇宙寬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누가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원숭이 끝없이 울어대면서 험한 여울 탄 나를 전송해주네. 『 忍齋先生文集』 卷之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 85번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시 한편의 내용 중 결구의 내용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홍섬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이 이야기는 신흠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실려 있던 글을..
시참론과 결과론적인 얘기의 불편함 한시를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참(詩讖,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예언서마냥 훗날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권상 85번에서처럼 마지막 구에서 작자의 생에 대한 의지를 봤고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경우나, 유몽인 ‘잘린 지렁이[斷蚓]’, ‘추운 파리[寒蠅]’라는 시어를 썼더니 단명하게 됐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홍명구란 사람이 ‘화락천지홍(花落天地紅)’라는 시를 짓자 할머니가 보고 “‘花發天地紅’이라 했으면 복록을 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요절할 거 같다.”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42세에 죽었다는 하권49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85. 홍섬, 시에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다 洪忍齋暹, 嘗賦月課「灩澦堆」詩: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但覺巖崖峻, 寧知宇宙寬. 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 詞極淸峻豪放. 忍齋少爲安老所陷, 逮獄被竄. 安老敗, 遂登顯. 當受刑時, 人皆危之, 蘇陽谷獨不憂曰: “曩見其課製灩澦堆詩, 末句有歷險始顯之意, 是以知其不死.” 해석 洪忍齋暹, 嘗賦月課「灩澦堆」詩: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但覺巖崖峻, 寧知宇宙寬. 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 인재 홍섬(1504~1585)이 월과(月課)로 지은 「염여퇴에서[灩澦堆]」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84. 정렴의 시 鄭北窓磏「山居夜坐」詩曰: ‘文章驚世徒爲累, 富貴薰天亦謾勞. 何似山窓岑寂夜, 焚香默坐聽松濤.’ 其人異也, 詩亦如其人. 해석 鄭北窓磏「山居夜坐」詩曰: ‘文章驚世徒爲累, 富貴薰天亦謾勞. 何似山窓岑寂夜, 焚香默坐聽松濤.’ 북창(北窓) 정렴(鄭磏)의 「산거야좌(山居夜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文章驚世徒爲累 문장이 세상을 놀래켰지만 다만 누만 되었고 富貴薰天亦謾勞 부귀로 하늘을 태웠지만 또한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하네. 何似山窓岑寂夜 산집 창의 적막한 밤에 焚香默坐聽松濤 향을 사르고 묵묵히 앉아 소나무 바람 소리 듣는 것만 하랴? 其人異也, 詩亦如其人. 그 사람이 기이하니 시 또한 그 사람 같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83.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정지상~유몽인)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意境入神,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造語俊健,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李白雲「夏日」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寫景精妙,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淸駃豪敞,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突兀壯奇,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해석보기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宏偉壯健, 如磨天巨斧, 闢開蜀山. 金佔畢「神勒寺」詩: ‘..
83-4.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李體素「永保亭」詩: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豪縱雄爽, 如蒲稍駃騠, 不受覊馽. 權石洲「北關」詩: ‘磨天嶺北山長雪, 豆滿江南草不春.’ 淸切嘹亮, 如戍樓悲笳, 響徹胡天. 許端甫「南平道中」詩: ‘春晩岸桃飄蔌蔌, 雨晴沙鴨語咬咬.’ 淸新婉麗, 如西子新粧, 倚門呈笑. 李東岳「鏡城」詩: ‘邊城缺月懸愁外, 故國殘花落夢中.’ 淸淑纖妙, 如淸水芙蓉, 天然去飾. 柳於于「加平山中」詩: ‘斑爛烏虺蟠道側, 傲兀黃熊坐樹巓.’ 奇怪幽險, 如飛天夜叉, 攫食虎豹. 해석 李體素「永保亭」詩: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체소 이춘영(李春英)의 「영보정(永保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月從今夜十分滿 달은 오늘밤부터 가득 찰 것이고, 湖納晩潮千頃寬 호수에 만조 들어와 천 이랑이나 넓어지리..
83-3.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鄭湖陰「後臺夜坐」詩: ‘山木俱鳴風乍起, 江聲忽厲月孤懸.’ 凌厲振掉, 如秦師過周, 免冑超乘. 盧蘇齋「卽事」詩: ‘秋風乍起燕如客, 晩雨暴過蟬若狂.’ 橫逸老健, 如馬援钁鑠, 據鞍顧眄. 黃芝川「詠海」詩: ‘兩儀高下輪輿轉, 太極鴻濛汞鼎開.’ 奇傑雄渾, 如夸父追日, 烏獲扛鼎. 崔東皐「朝天」詩: ‘終南渭水如相見, 武德開元得再攀.’ 高雅典重, 如啇彛周鼎, 儼列東序. 車五山「明川」詩: ‘風外怒聲聞渤海, 雪中愁色見陰山.’ 汪洋憤猛, 如潮捲百川, 雷掀萬竅. 해석 鄭湖陰「後臺夜坐」詩: ‘山木俱鳴風乍起, 江聲忽厲月孤懸.’ 호음 정사룡의 「밤에 후대에 앉아[後臺夜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山木俱鳴風乍起 산과 나무가 함께 울리니, 바람이 홀연히 일어나고, 江聲忽慮月孤懸 강물 소리는 문득 사나..
83-2.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宏偉壯健, 如磨天巨斧, 闢開蜀山. 金佔畢「神勒寺」詩: ‘上房鍾動驪龍舞, 萬竅風生鐵鳳翔.’ 嚴重洪亮, 如勻天廣樂, 軣輵寥廓. 李忘軒「望海寺」詩: ‘蝙鳴側塔千年突, 龜負殘碑太古書.’ 幽遐奇古, 如埋酆神劒, 沈水禹鼎. 朴訥齋「琴臺」詩: ‘彈琴人去鶴邊月, 吹笛客來松下風.’ 高古爽朗, 如左挹浮丘, 右拍洪厓. 朴挹翠「永保亭」詩: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篷.’ 神奇恍惚, 如彩蜃吹霧, 架出樓閣. 해석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포은 정몽주의 「명나라 도읍지에서[皇都]」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山河帶礪徐丞相 산하의 대려를 맹세한 승상 서달. 天地經綸李太師 천지를 경륜한 태사 이선장. 宏偉壯健, 웅장하..
83-1.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意境入神,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造語俊健,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李白雲「夏日」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寫景精妙,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淸駃豪敞,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突兀壯奇,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해석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우리 동방의 시는 위로 고려 때로부터 아래로 조선에 이르기까지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
82. 신령이 도운 시 詩之所謂有神助者, ‘池塘生春草’, 千古膾炙. 盖出語天然, 自得造化之妙, 議論安敢到也? 後世文人, 往往自云有神助者. 宋楊徽之‘新霜染楓葉, 明月借蘆花’之句, 雖自稱神助, 而謂之警聯則可矣, 豈可謂之神助耶? 我東卞春亭季良‘虛白連天江郡曉, 暗黃浮地柳堤春.’ 鄭湖陰‘雨氣壓霞山忽暝, 川華受月夜猶明.’ 兩公亦皆矜神助. 春亭詩寫景雖新, 未見其神處, 湖陰詩極有淸虛之氣, 雖謂之神助, 亦非過許. ▲ 개심사 산신각의 탱화 해석 詩之所謂有神助者, ‘池塘生春草’, 千古膾炙. 시에서 소위 신령이 도와줬다는 것은 ‘못에 봄 풀 나고[池塘生春草]’인데 천고토록 회자되었다. 盖出語天然, 自得造化之妙, 議論安敢到也? 대개 말을 자연스레 내어 절로 조화의 오묘함을 터득했으니 의론한 것이라면 어찌 감히 이르겠는가? 後世..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쿠리 안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 어둠에 막 잠기자 골자기는 텅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별은 흔들리면서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病葉微零自起風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시를 읊조린 침대값은 함께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내일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소화시평』 권상 81번에 소개된 시는 ‘곽(郭)’ 한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다면 이해가 쉽더라. 그래서 1구에선 이곳이 성곽으로 빙 둘러 있는 분지지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봐도, 두 번 봐도 모르니 조급해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상 73번 박상 시를 할 때 해동강서시파의 특징을 제대로 음미해봤었다. 여러 책을 참고하거나 ‘한국한시약사(韓國漢詩略史)’를 보다 보면 16세기에 이르러 15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강서시파의 시풍을 본받아 박은ㆍ이행ㆍ박상ㆍ정사룡ㆍ노수신ㆍ황정욱이 강서시를 수학했고, 박은ㆍ이행ㆍ정사룡을 해동강서시파라 부르게 됐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들의 시풍에 대해 흔히 ‘기괴(奇怪), 난삽(難澁)’이라 평하고는 한다는 말이 덧붙여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는 머리를 온통 쥐어 짜네 늘상 습관적으로 써 오던 관습을 집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전고를 쓴다던지, 기존에 쓰던 전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쓴다던지, 문장을 비틀어버린다던지 했던 것이다. 그..
81. 정사룡의 시를 통해 공부를 깨닫다 陽谷曰: “國朝以來, 代有作者, 各擅名家, 而未免偏方氣習之累, 不趍於流麗, 則或失於組織. 鄭湖陰士龍, 奇古峭拔, 一洗萎累之氣, 可與唐之長吉·義山竝較才力.”云. 湖陰「夜坐卽事」詩曰: ‘擁山爲郭似盤中, 暝色初沈洞壑空. 峰頂星搖爭缺月, 樹巓禽動竄深叢. 晴灘遠聽飜疑雨, 病葉微零自起風. 此夜共分吟榻料, 明朝珂馬軟塵紅.’ 眞所謂高秋獨眺, 晩霽孤吹. 해석 陽谷曰: “國朝以來, 양곡 소세양(蘇世讓)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로 代有作者, 各擅名家, 시대마다 작가들이 있어 각각 이름 난 작가로 떨쳤지만 而未免偏方氣習之累. 치우친 지방의 기운과 습속의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不趍於流麗, 則或失於組織. 그래서 유려한 데로 치닫지 않으면 간혹 조직하는 데서 잃었다..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落葉鳴廊夜雨懸 낙엽소리 울던 곁채에 밤비가 걸렸는데 佛燈明滅客無眠 불상의 등불 깜빡여 손님은 잠이 없네. 仙山一躡傷遲暮 신선의 산 한번 밟으니 나이 들음이 속상하네. 烏帽欺人二十年 오사모로 사람을 20년이나 속였구나.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유영길의 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영길은 직접 복천사에 가서 낙엽소리가 울리던 곁채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등불은 바람에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고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이곳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선..
신광한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나온 신광한이 지은 금강산 시는 『우리 한시를 읽다』의 12번 챕터에서 읽었었다. 거기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금강산을 면모를 엿보는데 매우 긴요했다. 최근에 남북엔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더욱 평양의 냉면이랄지, 평양의 부벽루랄지, 금강산, 백두산 같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으레 남아 있는 명승지에 대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치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두 발로 밟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감을 키워주는 데에 선조들이 써 놓은 한시가 아주 긴요하게 작용한다. 위의 시는 두 편 모두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삶에 치..
80.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申企齋送人金剛詩曰: ‘一萬峯巒又二千, 海雲開盡玉嬋姸. 少因多病今傷老, 孤負名山此百年.’ 柳月篷「福泉寺」詩曰: ‘落葉鳴廊夜雨懸, 佛燈明滅客無眠. 仙山一躡傷遲暮, 烏帽欺人二十年.’ 申詩傷其衰病, 柳詩歎其纏縛, 擺脫塵累, 致身名區, 若是之難乎! 兩詩格韻皆淸切, 而柳詩起語尤警. 해석 申企齋送人金剛詩曰: ‘一萬峯巒又二千, 海雲開盡玉嬋姸. 少因多病今傷老, 孤負名山此百年.’ 신기재가 금강산으로 사람을 전송하며 지은 시(「종질 원량 신잠이 영동군에 부임할 때 헤어지며 주다[贈別堂姪元亮潛之任嶺東郡]」)는 다음과 같다. 一萬峯巒又二千 일만 봉우리에 또 이천 봉우리. 海雲開盡玉嬋姸 바다구름 개자 옥 같은 봉우리들 선연해. 少因多病今傷老 어려선 병이 많았고 지금은 늙음을 슬퍼하니 孤..
79. 신광한의 옥원역 申企齋·鄭湖陰, 一時齊名, 兩家氣格不同, 申詩淸亮, 鄭詩雄奇. 企齋「沃原驛」詩曰: ‘暇日鳴螺過海山, 驛亭寥落水雲間. 桃花欲謝春無賴, 燕子初來客未還. 身遠尙堪瞻北極, 路迷空復憶長安. 更憐杜宇啼明月, 囱外誰栽竹萬竿.’ 企齋於詩各體俱備, 湖陰獨善七律, 湖似不及企. 而湖嘗曰: “申公各體, 豈能敵吾一律哉!” 해석 申企齋·鄭湖陰, 一時齊名, 兩家氣格不同, 申詩淸亮, 鄭詩雄奇. 신기재와 정호음의 한 때에 명성을 나란히 했지만 두 시인의 기격이 같지 않으니 신광한의 시는 맑고 밝으며 정사룡의 시는 웅혼하고 기이하다. 企齋「沃原驛」詩曰: ‘暇日鳴螺過海山, 驛亭寥落水雲間. 桃花欲謝春無賴, 燕子初來客未還. 身遠尙堪瞻北極, 路迷空復憶長安. 更憐杜宇啼明月, 囱外誰栽竹萬竿.’ 기재(企齋)의 「옥원역(沃原驛..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소화시평』 권상 78번에서 한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우 한 글자에 무에 그리 심상이 달라지겠냐고 영화 ‘신세계’에서의 이정재 말투처럼 “거 번, 광한형 이거 한 글자 가지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뇨?”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바뀐 글자를 놓고 시를 보니, 거기다가 교수님의 설명까지 들으니 한 글자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시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한 글자가 바뀜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살짝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뜻은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검토해보며 고친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바꾼다고 무에 달라질 게 있냐고 할 테지만, 한시의 경우는 매우 한정된 분량(5언 절구는 20자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에 담아야 하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단어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 한 단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된다. 거기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78. 한 글자에 시가 달라진다 古人詩不厭改, 唐任飜「題台州寺」云: ‘前峯月照一江水, 僧在翠微開竹房.’ 旣去, 有人改一字爲半字. 飜行數十里, 乃得半字, 亟回欲易之, 見所改字, 歎曰: “台州有人.” 我東申企齋光漢, 宿淸溪寺, 題詩云: ‘急水喧溪石, 輕香濕澗花.’ 行至半途, 忽得暗字, 復還, 改急爲暗. 盖一不如半字之奇, 急不如暗字之妙, 可見古人於詩不容易下字. 해석 古人詩不厭改. 옛사람은 시에서 고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唐任飜「題台州寺」云: ‘前峯月照一江水, 僧在翠微開竹房.’ 당나라 임번이 지은 「태주사에서 짓다[題台州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前峯月照一江水 앞 봉우리에 뜬 달이 온 강물을 비추니 僧在翠微開竹房 스님은 산허리에 죽방을 열었네. 旣去, 有人改一字爲半字. 임번이 이미 떠나자 어떤 사람이 ‘일..
77. 압록강을 읊은 화찰과 소세양 詔使華察「鴨綠江」詩: ‘春江三月送浮槎, 日落潮平兩岸沙. 天地本來分異域, 風塵此去愧皇華. 波飜鴨綠初經雨, 柳帶鵝黃未着花. 四海車書今一統, 東溟文物自商家.’ 遠接使陽谷蘇世讓次曰: ‘溶溶晴浪泊靈槎, 騎從如雲簇晩沙. 始識天公分物色, 故敎仙客管春華. 烟含濯濯江邊柳, 雨浥離離岸上花. 一脉斯文情誼在, 車書同屬帝王家.’ 詔使歎賞. 해석 詔使華察「鴨綠江」詩: ‘春江三月送浮槎, 日落潮平兩岸沙. 天地本來分異域, 風塵此去愧皇華. 波飜鴨綠初經雨, 柳帶鵝黃未着花. 四海車書今一統, 東溟文物自商家.’ 조사(詔使) 화찰(華察)의 「압록강(鴨綠江)」 시는 다음과 같다. 春江三月送浮槎 봄 강 3월에 뗏목 띄워 전송했는데 日落潮平兩岸沙 해 지고 조수가 두 언덕 모래톱에서 평평해졌네. 天地本來分異域 천지는..
76. 김안로의 시 金頤叔安老, 能文章, 其一聯: ‘巢鶴立晴麤意氣, 火山回碧頓精神.’ 鄭東溟嘗稱畫工手段. 해석 金頤叔安老, 能文章, 其一聯: ‘巢鶴立晴麤意氣, 火山回碧頓精神.’ 이숙(頤叔) 김안로(金安老)는 문장을 잘 지었는데 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巢鶴立晴麤意氣 소학산(巢鶴山)이 막 개자 의기가 거칠어졌지만 火山回碧頓精神 화산이 다시 푸르러지자 정신이 상쾌해졌네. 鄭東溟嘗稱畫工手段. 정동명이 일찍이 화공의 솜씨라 칭찬했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소나무에 자신의 절망감을 이입하다 枝柯摧折葉鬖髿 가지 꺾였고 잎사귀는 헝클어져 斤斧餘身欲臥沙 도끼에 잘린 남은 몸통은 모래에 누우려 하네. 望絶棟樑嗟已矣 희망 끊긴 동량은 이제 그만이로구나! 枒楂堪作海仙槎 뗏목으로 바다의 신선이 탈 배를 만들련다. 『소화시평』 권상 75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소나무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에선 감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곁에 있는 다른 소나무를 보니 그 소나무는 가지도 꺾였고 잎사귀도 아무렇게 헝클어져 있으며 몸통은 도끼에 잘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고 많은 소나무들 중에 그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이렇게 시까지 쓰여지게 된 이유는 뻔하다.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아니 바로 쓰러질 듯 위태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유배지로 가는 절망 속에 희망을 읊은 김정 어쨌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3개월 동안 묵고 묵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것들은 묵혀두면 더 진한 맛을 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보면 막힐 때가 자주 있다. 일이 밀려 있으니 빨리 써재끼고 싶지만 한 번 막히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그러니 맘은 더욱 급해지고 그만큼 부담은 더욱 가중되며, 그럴수록 더욱 글은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멈추고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어떻게든 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이상 그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과 결합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으로 발효될 테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들이 용솟음쳐 오르며 콸콸콸 쏟아져 나와 한 편으..
3개월 만에 재개된 소화시평, 그리고 김정과 소나무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1학기에 순서를 배정할 때 내가 맡은 작품이라 이미 7월 16일에 모두 정리해서 해석해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1학기 소화시평 수업은 바로 이 작품 앞에서 끝이 났고 무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발효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2학기 수업이 과연 언제 시작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소화시평 수업은 ‘한시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다. 10년 전에 열나게 공부할 때 한시란 미로처럼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었다.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해석이 된다 해도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확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많은 작품을 ..
75. 소나무에 감정을 이입한 김정 金冲庵淨, 文章精深灝噩, 先輩稱謂文追西漢, 詩學盛唐. 坐黨禍, 杖流濟州, 尋賜死. 其至南海也, 「詠路傍松」曰: ‘海風吹去悲聲遠, 山月高來瘦影疎. 賴有直根泉下到, 雪霜標格未全除.’ 又曰: ‘枝柯摧折葉鬖髿, 斤斧餘身欲臥沙. 望絶棟樑嗟已矣, 枒楂堪作海仙槎.’ 格韻淸遠, 用意甚切, 盖以自況, 而竟不保命, 棟梁之用旣已矣, 仙槎之願亦絶焉, 悲夫! 해석 金冲庵淨, 文章精深灝噩, 충암 김정은 문장이 정밀하고 심오하며 문장의 기상이 활달하고 넓어, 先輩稱謂‘文追西漢, 詩學盛唐.’ 선배들이 “문장은 서한을 따랐고, 시는 성당을 배웠다.”라고 칭찬했다. 坐黨禍, 杖流濟州, 그러나 기묘사화에 연좌되어【김정金淨(1486~1520): 자는 원충(元沖), 호는 충암(冲庵)ㆍ고봉(孤峰). 1514..
74. 조광조의 절명시 靜庵先生, 坐己卯黨禍, 杖配綾城. 累囚中有詩一絕曰: ‘誰憐身似傷弓鳥, 自笑心同失馬翁. 猿鶴正嗔吾不返, 豈知難出覆盆中.’ 詞極凄切, 尋賜死, 吟一句日: ‘愛君如愛父, 天日照丹衷.’ 遂飮鴆卒, 士林傳誦, 莫不流涕. 해석 靜庵先生, 坐己卯黨禍, 杖配綾城. 정암(靜庵) 조광조 선생이 기묘사화에 연좌되어 곤장을 맞고 능성(綾城)에 유배되었다. 累囚中有詩一絕曰: ‘誰憐身似傷弓鳥, 自笑心同失馬翁. 猿鶴正嗔吾不返, 豈知難出覆盆中.’ 옥에 갇힌 후에 시 한 절구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誰憐身似傷弓鳥 신세가 화살에 다친 새 같은데 누가 가련히 여길까? 自笑心同失馬翁 마음이 말 잃은 노인 같아 스스로 웃기네. 猿鶴正嗔吾不返 원숭이와 학은 바로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꾸짖지만 豈知難出覆盆中 덮어진 동..
한유의 글을 시로 담아낸 박상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선 박상이 나오는데 당풍을 연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강서시파라는 설명도 덧붙여줬는데, 그렇다면 당풍 내에 강서시파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건지, 당풍과 강서시파는 전혀 다른 것인지 헛갈리긴 하다. 『한국한시사』라는 책을 읽고 정리한 한시 약사에선 송풍에서 당풍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 강서시파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변화되는 과정 속에 전혀 다른 게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강서시의 특징은 ‘난삽하고 기괴’하다고 알려주셨고, 약사에선 기교에 힘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충: 이 시를 처음 배웠을 때가 18년 8월이었고 다시 정리하는 지금은 19년 2월이다. 그새 6개월 정도가 지났고 지금은 1월에 진도를 쭉쭉..
73. 강서시파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난 박상의 작품 朴訥齋祥「南海神堂」詩曰: ‘蕙肴椒醑穆將愉, 神衛煌煌駕赤虯. 香火粲薰三宿裏, 月星明槪五更頭. 捎殘颶母天空闊, 鎖斷支祈海妥流. 禾黍有秋從可卜, 慶雲時起祝融陬.’ 老健奇偉. 又「嶺南樓」一聯.: ‘漁艇載分籠渚月, 官羊踏破羃坡烟.’ 則極淸緻. 「法聖浦」一聯.: ‘龍宮灑出鮫人錦, 蜃市跳回姹女車.’ 則極渺溟. 許筠嘗云: “少見芝川, 其持論甚倨, 談古今文藝少所許與, 如容齋而目爲太腴, 李達而指爲模擬, 湖陰·蘇齋稍合作家, 惟取訥齋以爲不可及”云. 해석 朴訥齋祥「南海神堂」詩曰: ‘蕙肴椒醑穆將愉, 神衛煌煌駕赤虯. 香火粲薰三宿裏, 月星明槪五更頭. 捎殘颶母天空闊, 鎖斷支祈海妥流. 禾黍有秋從可卜, 慶雲時起祝融陬.’ 눌재 박상의 「남해의 신당에서[南海神堂]」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
72. 이희보의 시 李希輔能文章, 號安分堂. 燕山嘗喪愛姬, 悼甚, 使諸臣挽之. 希輔製進一絕, 燕山覽之慟哀, 優其賞賚, 因此驟進大官. 後時議薄之, 終爲轗軻. 其「春日偶吟」詩曰: ‘錦繡千林鳥亦歌, 天工猶自喜繁華. 門前枯木無枝葉, 春力無由着一花.’ 其自傷之懷可見, 而詩亦絕佳. 해석 李希輔能文章, 號安分堂. 이희보(李希輔)는 문장을 잘 지었고 호(號)는 안분당(安分堂)이다. 燕山嘗喪愛姬, 悼甚, 使諸臣挽之. 연산군이 일찍이 총애한 계집을 잃고 슬퍼함이 극심하자 여러 신하들에게 만시(挽詩)를 짓도록 했다. 希輔製進一絕, 燕山覽之慟哀, 優其賞賚, 因此驟進大官. 이희보가 한 절구를 지어 올리니 연산군이 그 시를 보고 애통해하며 상을 내림을 넉넉히 하여 이 때문에 높은 관직에 올랐다. 後時議薄之, 終爲轗軻. 훗날에 시..
봄이 감을 아쉬워한 이행의 시와 두보의 악양루시 衰年奔走病如期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春興無多不到詩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睡起忽驚花事晩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一番微雨落薔薇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소화시평』 권상 7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1구가 원인이 되어야 2구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1구를 해석할 때 병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병이 들었기에 2구의 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면 입맛도 떨어지고, 좋은 경치도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기 위해서다. 낙화시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비애가 담길 수..
반전이 담긴 멋진 시를 쓴 이행 순서대로 진행되기에 권상 57번 이후의 시들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걸 맡은 학생들이 업로드를 하지 않아 과연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긴 했다. 하긴 그래도 예전에도 아이들 시험 기간 때면 교수님이 그냥 진행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오늘은 예비 TO까지 나왔고, 22명을 뽑는데 무려 전북에서 6명이나 뽑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나야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올해 될 리는 없고 내년에나 바라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런데 이번에 한참이나 순서가 뒤로 처져 있지만, 동원이가 ‘71번’ 준비한 것을 올렸었다. 너무나 멀기에 보지도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번엔 순서를 아예 바꿔서 이 시부터 하자고 하시며 진행하셨다. 세상에나 ..
71. 이행의 넉넉하고 봄을 아쉬워하는 시들 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 其「次韻」詩曰: ‘多難纍然一病夫, 人間隨地盡窮途. 靑山在眼誅茅晩, 明月傷心把筆孤. 短夢無端看蟻穴, 浮生不定似檣烏. 祗今贏得衰遲趣, 聽取兒童捋白鬚.’ 又「題直舍」詩曰: ‘衰年奔走病如期, 春興無多不到詩. 睡起忽驚花事晩, 一番微雨落薔薇.’ 皆溫裕典則, 詞家上乘. 해석 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용재 이행이 시를 지은 것이 화평하고 온순하며 원숙하고 넉넉하여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 신적인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허균은 ‘나라의 선비 중 제일[國士第一]’이라 말했다. 其「次韻」詩曰: ‘多難纍然一病夫, 人間隨地盡窮途. 靑山在眼誅茅晩, 明月傷心把筆孤. 短夢無端看蟻穴, 浮生不定似檣烏. 祗今贏得衰遲趣, 聽取兒童捋白鬚.’ 「..
70. 남곤의 신광사 止亭南袞, 文章甚佳, 東方所罕, 神光寺題詠六絕, 皆絕唱, 今錄其三首. ‘千重簿領抽身出, 十笏僧房借榻眠. 六月炎塵飛不到, 上方知有別般天.’ ‘金書殿額普光明, 二百年來結搆精. 試問開山大檀越, 碧空無際鳥飛輕.’ ‘庭前栢樹儼成行, 朝暮蕭森影轉廊. 欲問西來祖師意, 北山靈籟送凄涼.’ 許筠選入『詩刪』, 而評之曰: “雖其人可怒可唾, 而詩自好.” 余嘗見而笑之曰: “太宗祭魏武, 正所以自狀.” 해석 止亭南袞, 文章甚佳, 東方所罕, 神光寺題詠六絕, 皆絕唱, 今錄其三首. 지정(止亭) 남곤(南袞)은 문장이 매우 아리따워 우리나라에 드문 정도인데 신광사(神光寺)【황해도 해주 북숭산(北嵩山)에 있었던 거찰이다. 1342년 원나라 황제가 태감(太監) 송골아(松骨兒)로 하여금 장인 37명을 이끌고 고려인과 함께 이..
영보정 시를 읽었더니 그곳에 가고 싶어지다 『소화시평』 권상69번을 개발새발 해석했을 땐 잘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영후정자(營後亭子)」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어디까지나 정자를 묘사하며 지은 시였는데, 정자를 묘사한 방식도 탁월해서 정말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地如拍拍將飛翼 땅이 푸드덕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 같고, 樓似搖搖不繫篷 누각은 흔들흔들 거려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다. 北望雲山欲何極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서 끝나려는가? 南來襟帶此爲雄 강물이 남으로 와 띠처럼 둘렀으니 이곳이 웅장해지네. 海氣作霧因成雨 바다 기운이 안개가 되었다가 인하여 비를 이루고 浪勢飜天自起風 파도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서 저절로 바..
69. 영보정에 오르면 삼라만상이 보인다 挹翠軒朴誾·容齋李荇, 俱以文章相善. 挹翠於燕山朝被禍死, 容齋裒集詩文, 印行于世. 其詩天才甚高, 不犯人工, 如憑虛捕罔象. 其「永保亭」詩曰: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篷. 北望雲山欲何極, 南來襟帶此爲雄. 海氣作霧因成雨, 浪勢飜天自起風. 暝裡如聞鳥相喚, 坐間渾覺境俱空.’ 容齋曰: “其詩出人意表, 自然成章, 不假雕飾, 千古希音.” 해석 挹翠軒朴誾·容齋李荇, 俱以文章相善. 읍취헌 박은과 용재 이행은 모두 문장으로 서로 친했다. 挹翠於燕山朝被禍死, 읍취헌이 연산군의 조정에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죽게 되자, 容齋裒集詩文, 印行于世. 용재는 시문을 모아 세상에 간행했다. 其詩天才甚高, 不犯人工, 박은의 시가 천성적인 재질로 매우 높고 인위적인 가공을 범하지 않았으니, 如憑虛..
68. 강혼과 김류 姜木溪渾「臨風樓」詩一聯: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金北渚瑬「客中」詩: ‘遙山帶雨池蛙亂, 高柳含風海燕斜.’ 北渚詩, 蓋源於木溪, 而豪縱終讓一頭. 해석 姜木溪渾「臨風樓」詩一聯: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목계(木溪) 강혼(姜渾)의 「임풍루(臨風樓)」라는 시의 한 연은 다음과 같다. 紫燕交飛風拂柳 붉은 제비가 함께 날고 바람에 버들 날리고 靑蛙亂叫雨昏山 청개구리 와글대고 비에 산은 어둑해 金北渚瑬「客中」詩: ‘遙山帶雨池蛙亂, 高柳含風海燕斜.’ 북저(北渚) 김류(金瑬)의 「객중(客中)」의 한 연은 다음과 같다. 遙山帶雨池蛙亂 먼 산은 빗기운을 띠어 연못의 개구리는 울어댔고 高柳含風海燕斜 높은 버들개지는 바람을 품어 바다의 제비가 비꼈죠. 北渚詩, 蓋源於木溪, 而豪縱終讓一頭..
67. 정광필의 시 文翼公鄭相國, 余外六代祖也. 平生所著, 散逸無遺, 謫金海詩一首外, 世莫得見, 故余摭拾以記之. 其「歸田」詩曰: ‘金章已謝路漫漫, 垂白歸來舊業殘. 沿澗石田纔數畝, 打頭茅屋只三間. 一村黎老皆新面, 兩岸靑山是故顔. 隣隣不知蒙譴重, 猶將濁酒慰玆還.’ 「冬夜」詩曰: ‘收拾柴薪用力窮, 烟消榾柮火通紅. 昏鴉棲定風初下, 旅雁聲高夜正中. 北闕夢回天穆穆, 東山跡滯雨濛濛. 一生狂走叨名位, 竟與邯鄲呂枕同.’ 屬意高古, 辭興婉愜, 每詠其詩, 想見其德. 해석 文翼公鄭相國, 余外六代祖也. 문익공(文翼公) 정광필(鄭光弼)은 우리 외가의 육대조이다. 平生所著, 散逸無遺, 謫金海詩一首外, 世莫得見, 故余摭拾以記之. 평생에 지은 것들은 흩어져 남질 않았고 김해(金海)에 유배 갔을 때【『송계만록』에는 「김해에 귀양가 배소..
66. 정희량의 시 鄭虛庵希良, 燕山朝逃禍爲緇, 浮遊山水間, 老不知所終. 嘗到一寺, 題詩壁間曰: ‘朝天學士五更寒, 鐵馬將軍夜出關. 山寺日高僧未起, 世間名利不如閒.’ 居僧傳之, 識者知基爲其虛庵作也. 以余觀之, 不但人高, 詩亦高矣. 해석 鄭虛庵希良, 燕山朝逃禍爲緇, 浮遊山水間, 老不知所終.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은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스님이 되어 산수 사이에 마구 다니며 늙어 죽은 까닭을 알진 못한다. 嘗到一寺, 題詩壁間曰: ‘朝天學士五更寒, 鐵馬將軍夜出關. 山寺日高僧未起, 世間名利不如閒.’ 일찍이 한 사찰에 가서 벽 사이에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朝天學士五更寒 사신 가는 학사는 오경에 추워하고 鐵馬將軍夜出關 철마 탄 장군은 밤에 관문 나서네. 山寺日高僧未起 산사엔 해가 높이 떠도 스님은 일어..
홍유손의 한시가 최치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유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소화시평』 권상65번에 나온 홍유손의 「제강석(題江石)」은 어렵지 않았던 시다. 그리고 최치원의 작품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그대로 드니, 더더욱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3~4구에 이르면 완벽하게 최치원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판박이다. 분명히 홍유손은 이 시를 지으며 최치원의 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을 것이고, 그만큼 최치원의 풍도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화를 읽으면서 작자의 평..
65. 무아지경에 들었지만 시비의 소리가 들린다? 洪篠叢裕孫「題江石」詩曰: ‘濯足淸江臥白沙, 心神岑寂入無何. 天敎風浪長喧耳, 不聞人間萬事多.’ 此詩蓋出於崔孤雲‘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而語意雖佳, 終有不及. 해석 洪篠叢裕孫「題江石」詩曰: ‘濯足淸江臥白沙, 心神岑寂入無何. 天敎風浪長喧耳, 不聞人間萬事多.’ 조총 홍유손은 「강 바위에 쓰다[題江石]」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此詩蓋出於崔孤雲‘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이 시는 대개 최치원의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
64. 장난기 가득한 시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奇服齋詩曰: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世難同.” 又曰: “紅紅白白紅非白, 色色空空色豈空.” 豈兩公喜用此等句語, 頗近戱劇. 李白雲「閒居」詩曰: “莫問纍纍兼若若, 不曾是是况非非.” 始知此老始刱此體. 해석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김동봉이 시를 썼으니 다음과 같다.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걸 옳다고 하고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 이것은 옳은 게 아니고 非非是是是非非 그른 걸 그르다 하고 옳은 걸 옳다고 하는 것, 이것이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이네.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또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同異異同同異異 같은 것이 다르고 다른 것이 같으니, ..
도를 깨달은 사람이 쓴 시엔 깊은 뜻이 담긴다 김시습하면 우리에겐 『금오신화』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특이한 그의 이력으로 또 한 번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신동(神童)이라는 내용의 삼각산 이야기와 함께 홍만종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실었고, 위에 언급한 이수광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잘 실어놨다. 그만큼 김시습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에게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얘기였고 그만큼 많이 알려진 얘기였다는 것이리라. 終日芒鞋信脚行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 가는 대로 다녀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이 건너 다하면 다시 한 산 푸르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이란 상상조차 없으니, 어찌 형체의 부림을 당하랴. 道本無名豈假成 도란 본디 무명이니 어찌 빌려서 이루겠는가?(도를 얻은 척 할 수 없다) 宿露未晞山鳥語 묵은 이슬..
63. 도를 깨친 김시습의 이야기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後佯狂爲髡, 居山中,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止遣興而已, 未嘗留意推敲. 然所造超越, 有非凡人所可及. 其「無題」詩: ‘終日芒鞋信脚行, 一山行盡一山靑. 心非有想奚形役, 道本無名豈假成. 宿露未晞山鳥語, 春風不盡野花明. 短笻歸去千峯靜, 翠壁亂烟生晩晴.’ 非悟道者, 寧有此語. 해석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동봉 김시습은 5살 때 기동(奇童)으로 이름이 났고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세종【영묘(英廟): 세종의 능호인 ‘영릉(英陵)’에서 따온 이름】이 불러 「삼각산」시로 시험하여, 크게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後佯狂爲髡, 居山中, 훗날 거짓 미친 척하여 터벅머리(스님)가 되어 산속에서 살며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시를 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