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 (1612)
건빵이랑 놀자
선임병의 상(像) 01년 12월 28일(금) 맑음 선임병과 후임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갈등을 겪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와는 달리 느슨한 시간 뒤에 서서히 입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 뒤에 입장이 바뀌는 것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입장적 행동에 대해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다. 군이란 계급 사회가 원래 그렇다라는 관념에 의해 군대의 입장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병은 지존의 하늘이요, 후임병은 비하의 땅이요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을 입장적 행동에 대한 오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적인 무의식 속의 괴리가 숨어져 있기 때문에 선후임병은 같은 존귀한 인간임에도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는 그런 양육강식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후임병일 때 무슨..
화이트 크리스마스 01년 12월 24일(월)~25일(화) 구름 껴있다가 폭설 어느덧 올해 마지막 대축제인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건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며 새해 또한 며칠 후에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오고 나니깐 내 군 생활도 일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함이 느껴진다. 과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르긴 흐르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후반야다. 그것도 B블록 말대기인 B5조이고 부사수는 안전조장에서 벗어나 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현호이다. 잘 근무설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김없이 11시 30분에 기상했다. 역시 매우 일상적인 평일이요, 그저 의식화된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맞이할 참이었다. 그러..
그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 01년 12월 17일(월) 눈 조금 내림 성경 첫 구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라는 글귀가 써 있음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자연이란 어감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연적으로 누군가와 상관없이 생성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출현 또한 누구의 입감이나 창조력이 없는 것쯤으로 생각할 게 분명하다. 과연 누군가의 의지에 의한 창조가 맞냐, 그렇지 않냐는 약간의 종교성과 비종교성 가운데 대립이요, 그저 불명확하게 끝날 형이상학적인 논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선 길게 논하지 않을 것이며 논쟁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여기서 일축하겠다. 하지만 이런 논쟁거리를 떠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어떠한 형상, 사물이든 그저 이루어진 건 없다는 사실이..
영하시대 개막과 다짐 01년 12월 14일(금) 무지 추움 어젠 영상의 날씨였다. 그래서 흐린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EENT일 땐, 눈 대신 비가 내린 것이다. 겨울에 비가 오다니, 얼마나 포근한 날씨인 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의 은근한 바람대로 합동근무 투입하려 할 땐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는 영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가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게 조금의 눈이 내린 밤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아침엔 그저 평이한 겨울의 날씨여서 별반 걱정이 없이 구보 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후였다. D조 근무 사수였기에 일찍 12시 5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완 달리 진짜로 침낭에서 나오기 싫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
첫 폭설에 바뀐 감정 01년 12월 1일(토) 폭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던 철원에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엔 11월 초순에 첫 눈이 왔다던데 여긴, 아니 올해는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작업이란 의미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군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니만치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신교대에 도착하던 날에 눈이 엄청 내리긴 했다). 그렇게 나름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던 눈이 지금 밖에 엄청 내리고 있다. 그것도 화려한 신고식이라도 하려는 듯 진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다. 싸리눈이었기에 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작은 눈들도 계속적으로 많이 내리다 보니 어느덧 보지 못하던 사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
연탄 갈이 01년 11월 5일(월) 어둡고 비내림 11월 1일(목)엔 비가 부슬부슬 온 터라 춥지도 않아서 근무를 서기에 정말 좋았다. 영상 8℃에서 그날의 근무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1월 2일의 근무는 무엇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11월 2일(금)은 후반야 근무였다. 전원투입 때도 왠지 어제완 다른 차디찬, 아니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지만 말이다. 전반야 말대기였던 민호가 “영하입니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있었던 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줬던 것이리라. 그 말에 이어 부소대장님은 모든 동계용품을 다 갖춰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춥단 말이던가!’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 입어보는 방상내피(깔깔이와 조끼), 방상외피(스컷파카)와 방하내피(깔깔이 바지), 방하외피(건빵바지)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01년 10월 29일(월) 구름 많이 낌 흔히 태양을 희망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기에 낮이 지나 밤이 오면 암흑천지(暗黑天地)라는 표현을 쓰며 암울(暗鬱)하다고 하는 걸 거다. 그런 연유에서 오늘 해가 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해가 뜬다는 말들이 생겨난 거고 그건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희망이 꺾여 절망스럽다 한들 언젠가는 그 희망 가득한 날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오르막길이 다하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登途盡始下途]’라는 말 말이다. 아주 간단하면서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르막길[登途]’과 ‘내리막길[下途]’이란 어떤 것일까? ‘오르막길’은 쉽게 말하면, 버거운 일, 삶의 편협적인 괴로움, 전혀 예측치 못했던 사고 등으로 육..
비 그리고 비 01년 10월 10일(수) 계속 비 엊그제 전광판에 ‘내일의 날씨, 전국적 비’라고 써 있는 걸 보면서, 난 굳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찬란한 태양빛이 내리쬐다가 저녁엔 달빛과 별빛들이 온 하늘을 새하얗게 수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다른 때와는 달리 그 예보가 불길한 전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왠지 불길함이나 여러 증조들이 보일 때는 그게 현실로 다가오든, 그렇지 않든 조심하라고 누가 그랬던가! 암튼 그건 현실이었고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어제 오후는 1소초 작업지원과 사격으로 인해 꽤나 바빴다. 바쁜 건 그래도 좋다. 하지만 사격하러 이동하는 사이에 비가 온 것이다. 조금씩 비는 그렇게 내..
철원의 가을 01년 9월 23일(일) 맑음 가을, 하늘이 드높은 천고마비의 계절. 모든 만물이 성숙의 절정에 이르는 계절. 그런 완숙미를 자랑하는 가을이 철원에도 오고 말았다. 그 추운, 매섭게 추운 겨울 뒤에 봄이 안 올 것만 같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녹색창연의 봄이 찾아왔듯이, 그 무덥고 짜증 나는 여름이 어느덧 흘러가고 가을이 오고야 말았다. 비록 이주일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대공 후방, 그러니까 우리 중대 뒤쪽으로 보이는 벌판에 녹색의 새싹들이 피어나는 걸 본 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진짜 눈으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이에 녹색 벌판이 황금물결 일렁이는 바다로 변해버린 것이다. 황금의 바다, 그건 작년 대학교 가는 길 벌판에 황금물결 일렁이는 것을 보고서 ‘자연은 어쨌든 이치..
일체유심조 01년 9월 16일(일) 매우 더움 오늘 교회에 가서 잠언 4장 20~23절 말씀으로 설교를 들었다. 내 아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라. 그것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내 말은 깨닫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여기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현대인의 성경 이 구절의 핵심은 ‘모든 관념적 생각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라는 거였다. 원효대사의 명언,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야기다. 해골 바가지에 담겨진 물(썩은 육수)과 바가지에 담겨진 물(이슬), 둘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숨어 있다. 썩은 육수는 감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슬은 감히 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 ..
천고마비의 계절에 01년 9월 27일(목) 맑음 하늘이 드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한마디로 자연이 가장 보기 좋게, 아름답게 변하고 모든 게 너무나 풍성한 계절이다. 그건 누가 뭐라 해도 가을의 이미지이자 가을의 모습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의 대자연의 변화는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누구의 노력 없이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무더위에 지쳤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고 이젠 대자연의 아미(雅美)를 느끼게 하는 가을이 온 것이다. 녹색으로 짙게 물들었던 들판이 어느덧 황금색으로 변하여 황금물결 일렁이는 좀 사치스러울 수도 있는 부미(富美)를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드높은 하늘에 새까맣게 물들인 철새들의 행렬은 자유롭고 싶은 우리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누런 벼와 같이..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01년 8월 4일(토) 매우 더움 저번 주 토요일부터 그렇게 무덥게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주말이면 늘 내렸던 비와는 달리 어두우리만치 아련한 추억을 던져줄 전주곡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태풍의 영향에 의한 비였으니 쉽게 그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주일 저녁, 전반야(前半夜)였다. 다행히도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근무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근무 시간 몇 분 전부터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들입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로 인해 우의를 입었음에도 전투복은 다 젖었고 전투화는 신은 게 더 불편할 정도로 물바다가 되어 버..
폭우와 태산 01년 7월 31일(화) 내일이면 그렇게 꿈에 그리던 일병이 된다. 모든 선임병들이 이병은 무지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바론, 그렇게 빨리 지나가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느리게 지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일병이 된다는 거, 사회현실이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군 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는 얘기일 테고,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는 확고해졌다는 얘기일 테니까 괜스레 기쁨이 밀려든다. 입대하고 나서, 아니 사실대로 자대에 오고 나서 ‘오르고 또 오르더라도 태산엔 못 오르리’라는 관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냉혹(冷酷)하리만치 매섭게 느껴지던 현실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그런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그저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
군대의 여름 01년 7월 23일(월) 많은 비가 온 후 갬 여름의 이미지라 하면 보통 덥고 습해서 짜증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일 것이다. 하긴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게 바로 여름의 진면목(眞面目)일 테니깐 그럴 만도 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아니다. 사실 지금은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매우 그립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적어도 군대에서의 여름 이미지는 녹색창연(綠色蒼然)한 대자연이 약동(躍動)하여 더위와의 사투(死鬪) 뿐 아니라, 녹색과의 사투까지 벌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녹색과의 사투, 이것이야말로 군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화두의 여름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녹색은 어쨌든 생명력을 뜻하는 상징일 것이다. 그 차디찬 겨울에, 오..
걱정스런 마음으로 소대에 복귀하다 01년 7월 11일(수) 꿈만 같던 그림 그리기 작업은 6월 25일(월)~7월 6일(금)까지 2주간 진행되었다. 그래서 7일(토)엔 소대에 복귀해서 낱발실셈을 실시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과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하기에 버럭 겁이 났다. 왜 이런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뒤따른 걸까? 그건 소대 사람들이나 소대 일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 자신의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자대에 와서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고참들이 많이 풀어주는 것이 있었기에 생활 자체도 편해졌을 뿐 아니라, 후임병들이 많아져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적어졌으며, 근무 여건도 매우 편해져 누구 ..
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01년 7월 2일(월) 어두움 요즘은 그 어느 때와 비교(比較)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幸福)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저저번주 토요일에 갑자기 소대장님 순찰조(巡察組)가 되므로 약간의 기쁨을 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순간(瞬間)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번 주 주일에 전원투입(全員投入)을 준비(準備)하고 있는데, 분대장님께서 갑자기 나보고 “내일부터 넌 그림 그리는 인원에 포함될 거니깐, 그렇게 알도록 해!”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난 그 말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건 바로 강정명(姜正明)씨 외의 인원이 그리고 있던 철책 정밀그림을 내일부턴 내가 그려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난 불현듯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K-3를 맡는가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빠지..
휴가 후에 달라진 것 01년 6월 31일(토) 어두움 백일휴가를 갔다가 소대에 도착하고 나서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가기 전에 분대장님께서 “칠월 초나 유월 말에 신병을 받을 거니깐. 그때까지 적응 잘 해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난 정말 그런 줄만 알고 휴가 복귀하였지만, 막상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 분대에 신병, 내 막내표를 떼게 해줄 아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 후임인 용준이는 부산에 사는 아이란다. 박형국 일병님하고 같은 곳에 사는 아이이니만치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들어온 용준이에게 참 잘해줬을 것이다. 19일에 홍민석씨가 나갔다. 나랑 싫으나 좋으나 같이 근무 서면서 애증을 모두 겪어온 사이이다. 사실 그분이 나갈 땐, 아쉬운 마음이 꽤 많이 들었다...
대공(對空)에 서서 01년 6월 8일(금) 더움 GOP 근무 중, 가장 기대되고 가장 가슴 벅차며 행복한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대공 근무를 설 때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간에 이러한 나의 기대치 및 만족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주간 특히 A조나 D조 근무를 서면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서서히 지는 장관을 두 눈으로 한없이 주시하고 있을 때면, 세상의 온갖 삼라만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은 뿌듯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 자연스럽고도 화사한 변화에 삶의 진한 감동과 삶을 살고픈 의욕이 들곤 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평강고원 끝자락에서부터 아이스고지의 끝자락을 시력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전부 넣으려고 보다 보면 나의 인식 능력이 얼마나 협소한지 통감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광..
‘전입 100일’을 축하하며 01년 6월 7일(목) 무덥다~ 물 줘~~ 2월과 3월의 철원 땅의 추위, 그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삶의 극단이었다. 분명 한 겨울의 추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될지 모르지만, 정말 추위 속에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군에 들어왔고 군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방벽에 잡초들이 돋아나서 방벽에 가만히 멈춰 있으면, 풀내음이 코끝을 살살 자극하는 계절이다. 그렇게 가지 않을 것 같던 매서운 추위는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이마에 주렁주렁 맺히는 땀방울들을 팔뚝으로 스치듯 닦아내야 하는 무더운 여름이 불쑥 찾아왔다. 개나리가 갑자기 하나, 둘씩 보이길래 ‘와! 철원에도 봄..
병이 주는 선물 01년 6월 4일(월)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병에 걸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확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게 되면 그 한 개인의 삶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바뀔 테지만, 그 주변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우선 나와 같이 그렇게 심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심하지 않은 병에 걸림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피로와 스트레스에 억눌렸을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주위 사람들의 평소엔 볼 수 없던 각별한 관심을 보게 됨으로 그들과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게 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푹 쉬었다. 금요일 저녁엔 비번이었고 토요일 저녁엔 감기로 인한 오한으로 야간 근무 한 시간 만에, 아니 두 시간 만에 대기라는 빈 시간..
일상이 파괴된다는 것 01년 6월 3일(일) 더움 일상성은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기 때문에 지루함과 짜증스러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행복은 그런 일상성이 깨진 다음에야 느껴지게 되니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번 한 주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한 번은 깨잘깨잘 내리는 비 때문에 근무 서는 일상성에 큰 타격을 가한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투입 전에 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입다 퍼부어대길래 우리의 근무에 대한 일상성(그저 맑은 날 밤공기를 가르며 근무 섰던 일상성)이 너무도 그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치게 되었으니 군장 검사 전에 그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날씨가 맑은 가운데 근무를 선다는 건, 늘 그렇게 근무를 서 왔기에 아주 지루한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지만 비..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01년 5월 20일(일) 따스함 주일이 되었다. 이렇게 어김없이 주일이 찾아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주일이 되면 사회에 있을 때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전인관계(全人關係)를 맺으며 나와 주님과의 영적 교류를 할 수 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군에 오고 나서 주일이 되노라면,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었고 교회 사람들을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훈련병 시절에 교회에 갔을 땐, 그저 형식적인 예배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며 먹을 것(초코파이냐 햄버거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나에 종교 선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자대에 와서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을 땐, 왠지 내 기본 관념들을 바로 잡아줄 기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힘들었던 ..
한 달을 보내고서 01년 5월 14일(월) 맑음 벌써 자대에 온 지도 한 달이 되었다. 퇴소식을 마치지마자 동기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이곳에 온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게 꼭 꿈인 마냥 빠른 시간이 흐른 것이다. 처음에 자대로 간다고 했을 땐, 혹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마냥 무섭게 느껴졌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였고 내가 생각했던 예전의 군대(구타와 불합리가 가득한)가 아니었기에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분대 고참들이 특별히 신경 써주는 부분이 많았기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좋은 것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GOP 근무를 서고 있는 1대대로 자대 결정이 나고 나서 GOP라는 압박감으로 인해 잠시..
이등병 행사의 날 01년 5월 13일(일) 따스함 어제부터 오늘까지 1박 2일간 이등병 행사를 하였다. 토요일 6시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우린 분주히 준비했다. 일개복에 일개화를 신고 더블백까지 꾸리고 있노라니, 마치 휴가라도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맘이 끝없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꾸린다는 것은 대대나 연대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에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곳 소대를 잠시나마 떠날 수 있다는 거니까) 왠지 설렜다. 시간이 좀 늦춰져서 EENT(End Evening Nautical Twilight) 전원 투입에 맞추어 우린 본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대 본부(우리 2소대는 다른 소대와 달리 중대와 붙어 있다)는 우리의 생활터전이기에 우리에겐..
때이다! 01년 5월 12일(토) 맑음 이번 한 주는 즐거운 한 주였다.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나던 때이다. 이젠 근무 서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게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껴지는 때이다. 고참들과 함께 오순도순 얘길 나누는 게 아주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때이다. 군대 짬밥이 너무 익숙해졌기에 밥 먹는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며, 특히 군대리아가 나올 때면 빵과 우유를 동시에 씹어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맛있게 먹게 되는 때이다. 전원 투입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그 평온함과 안락함에 눈을 스르르 감을 순간에, 십자가를 만지며 아주 간절히 기도하며 새로운 아침, 새벽을 맞이할 때이다. BMNT 투입 후에 동이 틀라치면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타고 전해오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이유 01년 5월 7일(월) 구름 낌, 오후 6시 25분에 씀 재밌다.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군생활 하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들이 분명 살아온 과정이나 가치관이 다름에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 그렇게 하므로 서로를 자세히 알아간다는 거, 그게 바로 행복한 것이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곳에서만은 그게 예외적인 발언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우리 소대만 해도 38명이나 있고 우리 분대엔 10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분대장님하곤 같이 근무 서기에 대할 기회가 많고 그 외의 분대원들도 다른 소대원들에 비해 친근감이 느껴진다. ..
3주 만의 종교활동과 깨달음 01년 5월 6일(일) 구름 낌 오후 4시 9분 자대에 온 지 3주 만에 교회에 갔다. 아주 일상에 찌들어서 그저 주일이기에 교회에 찾아갔던 나의 신앙심은, 무려 3주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단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역시 가끔씩은 일상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주곤 한다. 그렇게 교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렬해진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못해왔기 때문인지 대단한 기뻤고 그 순간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설교 말씀은 ‘가정 안의 행복은 물질적인 이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 격려 속에서 ..
적응기간에 생긴 두 가지 사건 01년 4월 29일(일) 7시 24분 지난주엔 대기기간이 풀려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전령(傳令)에서 근무자라는 직책의 변화와 대기기간과 대기기간 해체라는 상황의 변화는 날 심하게 흔들고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현실에 대해 저자세로 대응하는 게, 나의 대응 자세인데 이번에도 그러한 나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맘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새로운 현실, 상황에 대한 기대감과 그에 따른 행복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지난주를 맞이했던 것이다. 가만히 한 가지 자세로 서있어야만 한다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의지한 채,..
삶의 무게 01년 4월 26일(목), EENT-30 BMNT+30 태초에 지상낙원이라 할 만한, 에덴동산이 있었고 그곳엔 오로지 평화만 있었다고 성경(聖經)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평화의 극치를 누렸던 그곳은 인간의 허무한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오로지 결과물론 피와 땀을 흘려야만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노력과 고생만이 남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삶의 무게’인 것이다. 굳이 이런 따위의 신화적인 얘길 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을 것이기에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이런 ‘삶의 무게’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우린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그 사건을 막고 품음으로 그 사..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01년 4월 22일(일) 화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는 속담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이 말이 속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쉽게 납득될 말이다. 좋은 말을 해줬는데도, 거기다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해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원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두 가지 말실수를 하였다. 그 첫째는 강정명 병장님께서 옷을 꿰매고 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까지 바느질 하냐?”라고 물었을 때, 난 장난을 치고 싶어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참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강정명 병장님에겐 ‘다른 일을 다 하기 싫고, 오로지 바느질만 하겠습니다.’라는 ..
퇴소식 날에 01년 4월 13일(목) 차가운 바람이 분 맑은 날씨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퇴소식이 있는 날이다. 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임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과정이 끝난다는 사실은 정말로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퇴소식을 위해 어제 하루종일 연습해온 터이다. 도저히 군대의 이러한 행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딱딱 맞는 획일성이 군기의 상징이라 하지만 이와 같이 30분 정도의 행사를 위해 온 병력을 무려 하루 동안이나 반복연습을 시키는 일은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 없는 일이란 생각만 드니 말이다. 어제 너무 지겹도록 연습해왔기에 별문제 없이 해낼 거라 믿고 있었지만, 그러한 믿음을 믿어주지 않은 채 오늘도 한 시간 가까이 연습한다고 하더라.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비의 노래 01년 4월 11일 폭우 철원에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철원엔 눈만 내리는 줄 알았기에 비가 온다는 게, 왠지 평범한 일임에도 특별한 일인 양 느껴진다. 비가 오니깐, 정말 삶의 짐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무거워 봐야 일기에 의한 단순한 의욕 저하일 뿐일 텐데 말이다. 비가 오면 모든 활동은 제약된다. 적어도 비가 내리면 야외활동이 주를 이루는 군생활엔 치명적이란 얘기다. 민간인들이야 우산, 차 등을 이용해서 비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을 테고 거기에 덧붙여 뛰거나 대피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군인은 절대 뛸 수 없을 뿐더러, 불가피할 경우에는 우산은커녕 판초우의 만을 걸치고 비에 저항해야 한다. 두 손은 언제나 자유로워야 총기를 사용하거나 지뢰매설이 가능하니 우산을 써선 안 된..
두 가지 지켜야 할 것 01년 4월 11일(수) 비 오고 추움 군생활 한 달 만에 얼마나 느낀 게 많겠느냐만은, 그래도 훈련병 생활을 마칠 정도의 짬밥을 먹어가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기에 이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군기(軍氣)일 것이다.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선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그 첫째는 마음가짐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그렇게 자기를 움직여 가는 것이다. 늘 한 가지 관념을 지속해나간다는 건 지루함으로 인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적응과 그에 대한 더 큰 시련을 이겨 나가려는 다잡음의 되풀이 형식 사이에서, 더 큰 시련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절로 해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것이기에, 아..
야영이 남긴 희비 01년 4월 6~7일(금~토) 흐리다가 맑아짐 숙영지로 바로 이동했다. 완전 군장을 풀고 텐트를 칠 준비를 했다. 처음 치는 것인데도 의외로 깔끔한 성격 때문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텐트 치는 걸 도왔고 열심히 말뚝을 박았다. 우리 꺼 텐트는 의외로 튼튼하게 쳐져서 우리가 보기에도 상당히 훌륭했다. 우리가 이렇게 말끔하게 칠 수 있을 줄이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 났다.) 그렇게 텐트 안에 군장을 풀고 바닥을 깨끗이 깔았다. 저녁에 활동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그저 군복 차림으로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공기는 그다지 차갑지 않았기 때문에 잘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침낭에 번데기처럼 쭉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공기의 매서움은 완전히 밀폐된 군복 속의 ..
행복한 행군 01년 4월 6일(금) 흐리다가 맑아짐 신병 교육 5주차 막바지 훈련인, 행군과 숙영이 있던 날이다. 난 평소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행군에 대해 그다지 걱정스러워 하진 않았고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 군장을 꾸리고 나서 그걸 들쳐 매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거웠으며, 이걸 들고서 걸어야 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금요일, 오전 8시 30분에 출발 예정이다. 아침엔 너무나 먹고 싶었던, 저번 주엔 한 번도 안 나와서 아쉬웠던 군대리아가 나왔지 뭔가. 그래서 무지 기뻤다. 그걸 맛있게 먹고 완전군장을 짊어진 채 연병장에 집결했다. 약식화된 완전 군장임에도, 상상을 넘어서는 그 무게는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게 그렇게 ..
뻘짓의 군바리 정신 01년 4월 5일(목) 화창 어제 아침엔 구보까지 생략해가면서 사단장 사택(장교들 쉬는 곳이 아닐런지?) 옆에 자갈을 깔았고 아침 식사 후엔 교육까지 늦춰가면서 모래를 열심히 퍼다 날랐다. 그러나 교육 완료 후에 구보도 하지 않고 또다시 그곳에 모이라는 것이다.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또 그곳을 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지금까지의 일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상황의 당위성을 조금이라도 설명하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무작정 지금까지의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게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더욱이 그렇게 넓은 장소에서 돌맹이를 골라내어야 한다는 건, 흡사 밥통에서 밥알 세기와 같았다. 그렇게 짜증과 위안 속에서 일만을 하며 저녁을 맞이하였다. 오늘은 즐거운 식..
손병장에 느낀 순수함 01년 4월 4일(수) 새벽 2:20~4:20 사람다움을 인간미(人間美)라 하며, 기계다움을 기계미(機械美)라 한다. 즉, 그 본질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을 우린 아름다움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그대로의 그 아름다움을, 그 본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있다면 그건 진정한 아름다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반대를 생각해보자. 원래의 그 본질을 잊은 채, 그에 반하는 이른바 다른 성향을 쫓아가려 한다면 그건 추함을 넘어선 혐오일 뿐이다. 군대라는 이곳, 이곳은 인간미가 사라지고 오로지 기계추(機械醜)만이 넘치는 혐오스러운 곳이다. 오로지 상명하복의 기계적 삶의 방식의 기치 아래, 사람과 사람이 얽어지고 맺어지는 곳이다. 처음부터 그런 기계추의 혐오스러움을 느끼며 그곳에 적응하려..
고통스런 화생방 01년 4월 4일(수) 훈련병 훈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던 화생방 훈련을 오늘 하게 되었다. 화생방 후일담을 들어보면, ‘고통의 순간’ ‘차라리 행군을 두 번 하는 게 오히려 낫다’ 등의 소리가 있기에 정말로 그런지 너무나 궁금했다. 오전엔 그저 이론 공부만을 했고 바로 열 명씩 어둠의 밀실로 사라져 갔다. 그곳은 밀실일 뿐이었고 조교들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차례 차례로 들어간다. 이미 경험해 본 아이들은 한두 명씩 늘어만 간다. 거의 1분 정도만 화생방을 한다는 게 아쉽게만 느껴지고 그걸 이미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 또한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상태도 양호하다. 그런 현실에 대한 판단이었기에 화생방에 대해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즐..
수류탄 훈련과 한계 01년 4월 3일(화) 날씨는 좋으나 찬바람 불다 5주차 훈련 중, 가장 큰 기대를 거는 훈련 중 하나인, ‘수류탄 투척 교육’을 하는 날이다. 맘은 이미 싱숭생숭했다. 예전부터 수류탄의 살상력을 잘 알 뿐더러, 어제 점오시간에 그 세세한 위험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포심 때문에 설명을 듣는 내내 많이 떨렸다. 이러한 공포심이, 바로 인간의 한계로 인해 빚어진다. 인간의 한계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경우, 뜨거운 물에 대한 공포심 및 경각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하다보니 뜨거운 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며, 그 결과 뜨거움의 무서움을 여실히 깨닫고 그 다음부턴 그런 걸 만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사고에 의한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든, ..
소리엘 찬양에 위로받다 01년 4월 1일(일) 화창 드디어 군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물론 달수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2월 마지막 주에 입대했으니 6주째에 접어든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벌써 3주째 교회에 나가는 것이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주일이었다. 입대하기 전에 열심히 들었던 ‘주께 맡기는 자♬’라는 노래가 교회 스피커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곡을 들으니,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꼈고 행복과 함께 감사를 느꼈다. 주를 찬양하므로 주를 따르리라 주와 함께 가는 것자기를 부인하므로 삶을 드림으로 거듭난 모습주를 영접하므로 주께 맡기는 것 주께서 인도해자기의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 가리라 세상의 그 어떤 부와 명예도 주보다 귀할 수 없어이전에 나 몰랐던 주..
일상이 그리워지던 순간 01년 3월 30일(금) 구름 가득하나 맑고 따뜻함 집에 있을 때, 따스한 이불을 덮고 오락기 패드를 붙들고 오예스와 같은 초콜릿 파이류의 과자를 먹으며, 냉장고에 있는 단맛 나는 음료수로 목을 축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엔 왠지 모르게 오예스를 먹으며 그렇게 단맛으로 배겨 버린 목에 한 줄기 음료수를 냅다 들이키고 싶다. 지금은 그런 욕구가 강할 뿐이다. 이대로라면 백일휴가 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오예스 한 박스, 아니 세 박스를 사다 금세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고, 음료수 1.5리터를 사다가 꼴깍 들이킬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차 안에서 주위 사람들의 의식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억압된 아니 억제된 욕구만을 충족시킬 것이다...
햇살 찬가(讚歌) 01년 3월 30일(금) 이곳은 강원도 철원이다. 뉴스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곳은, 혹독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난 여름까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렇게 단정 짓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이곳에서 일년 이상을 살아온 기간병들의 말을 빌리자면 ‘겨울엔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가며, 여름엔 영상 30도~50도까지도 올라간’ 댄다. 난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3월 말임에도 기온이 영하를 밑돌며 눈이 우수수 내리는 이곳은 따스한 햇살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예 햇살이 안 뜨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날씨가 맑을 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덥기 때문이다. 그러하다가도 햇살이 구름 속으로 사라질라치면, 날씨는 급격히 반전되어 몹시 추워진다. 이곳은 유난히..
기록 사격에 합격한 기쁨 01년 3월 29일(목) 오늘은 기록 사격이 있는 날이다. 원랜 저번 주 목요일에 했어야 했지만, ‘산불’ 때문인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기록 사격을 하게 된 것이다. 저번 주에 꽤 성적이 좋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 만발의 조짐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곤 있었지만, 이번 주 들어 갑자기 나빠진 건강 상태와 오늘 들어 좀 스산해진 날씨 때문에 불길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막상 사격장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꽤 더웠을 뿐더러 햇살까지 따스하였기에 조금의 희망을 직감케 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도보로 상승했던 체온이 식어감에 따라 스산한 칼바람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따스한 햇살이 먹구름 저편으로 숨어 버릴라치면, 온몸이 소리 없이 상하좌우 반동의 몸놀림으로 대..
설사는 괴로워 01년 3월 29일(목)바람이 불다가 눈이 조금 옴 요근래 속이 별로 좋지 않음을 느꼈으며, 그에 따라 밥맛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오늘 나의 병이 설사인 걸 알았다. 어제 초번초를 총기점오의 연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마무리 짓고 긴장이 풀어진 순간에 화장실에서 오줌을 싸던 찰나에 엉덩이 쪽에서 방귀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뭔가 뜨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 딱 한 번 경험해봤던 그런 찝찝한 기분이, 지금 이 순간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난 불침번 보고를 마치고 오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건 기정사실이었다. 물끈한 게 팬티에 그득 묻어 있었기에, 그런 현실이 혐오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과연 내가 인간인가 하는 의..
땅바닥과 친해지다 01년 3월 28일(수) 쾌창한 날씨 아침에 일어나니 말번이었던 아이에게서 눈이 쌓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덩달아 체감 기온이 영하 5도라는 얘기를 한다. 그저 각개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오늘이 암담할 뿐이다. 어제 그렇게 추운 날씨 가운데서 훈련 받았던 아픔을, 오늘 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벗었던 내복을 다시 챙겨 입고 깔깔이를 입는 등, 중무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서서히 접어들어 오후가 됨에 따라 하늘은 점차 환하게 개고 있었다. 그날 햇빛을 충실히 받고 있던 지면은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에 따라 기분도 좋아졌지만, 좀 눅눅해진 땅에서 구를 걸 생각하니, 까마득하고 심란하기만 하더라. 그렇게 각개전투장으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어제..
밥 정량만 먹기와 주님의 개입(?) 01년 3월 27일 구름 낀 후 눈이 옴 3월 말에 눈이 온다. 전주라는 온화한 땅덩어리에서만 살아온 나에겐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듯이 저번 주에 유주승 조교가 “여긴 4월에도 눈이 오고, 그렇다고 여름엔 시원한 것도 아니고 ㅈㅃ지게 뜨거운, 이상한 동네다”라고 했을 때도, 난 그 말을 그저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걸 보니, 역시 경험만이 최고라는 실감이 난다. 오늘 날씨가 나의 몸 컨디션을 제대로 반영해 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사이렌 소릴 듣지 못할 정도로 잘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또한 구름은 별로 없이 맑았으며, 왠지 어제와는 다른 날씨가 오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속이 거북해..
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 01년 3월 25일(日) 미래의 자화상5년 후군을 전역했을 것이기에, 자신감과 함께 기고만장함을 가지고 있겠지. 1년 간 대학에 바로 갈 수 없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거다. 과연 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지? 걱정이지만 지금 그 걱정을 한다면, 단순한 기우(杞憂)라고나 할까?그저 복학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알바할 것이다. 적어도 군대는 갔다 왔으니, 조금이라도 확신 있고 생활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돈 꼭 벌어서 사회라는 현실도 체험해보고, 입학금도 마련할 거야.10년 후임용고시에 합격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겠지. 그걸 합격하여 장래희망을 이루고자 대학에 들어간 것일 테니깐 꼭 합격해야겠지. 그리고 결혼도 할 거다. 결혼이란 게 선택사항이든, 필수사항이든 간에 꼭 ..
날씨변화와 군대적응 01년 3월 26일(월) 크게 춥고 바람이 많이 붐 인생목표頭內에 獄若忍三個면 始幸福이라머릿속에 참을인[忍] 세 개를 넣어둔다면 비로소 행복이라네. 생활신조신(信)ㆍ망(望)ㆍ애(愛)信: 믿는다는 건 나와 너를 바라는 것이다[信者 望以我而汝]望: 바람이란 희망의 내실을 보지하는 것이다[望者 持於希之裏]愛: 사랑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즐기는 것이다[愛者 樂於人之行也] 가장 존경하는 인물/ 이유후광(後廣) 김대중: 소신이 강하다 / 인간미가 넘친다어머니: 책임 의식이 강하다 모처럼만에 북방의 매서움을 느꼈다. 토요일엔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하고 느낄 정도로 따사로움보단 오히려 뜨스함을 느끼며 ‘이제 연습하기 좋은 날씨는 다 지났구나’하고 느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오늘은 정반대의 생각을..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人間之限界(視於特攻隊) 01년 3월 25일(일) 오늘 ‘특공대’편을 보았다. 今日에 視於人間劇場之特攻隊하다 혹한의 겨울 훈련 중에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보다.惑寒之冬季之訓練中에 想人間之限界하다 인간의 한계는 없는가? 한계와 한계 없음의 차이는 무엇인가?與人間之限界乎아 何差限界和非限界아 그 차이는 체력에서 비롯된 한계가 아니요, 의식에서 비롯된 한계이다. 其之差는 非於體限이오 差於意限이라 만약 의식이 바르고 견고하다면 아무리 육체가 되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고若猶意之正而堅이오 深苦之肉이라도 可以克己오 의식이 바르지 못하고 얄팍하다면 몸이 편하고 즐거울지라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若猶意之不正而薄이면 安樂之體라도 不可以克己라 그렇기에, 하물며 핑계댈 생각을 가지지..
봄 경치(화창한 날에)春景(和暢日中) 01년 3월 23일(금) 오전 11시 52분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 중에 봄이 가장 좋다. 四節은 春與夏與秋與冬也라 其中에 最春貴乎니 봄엔 감정이 살아나고 즐길 만하기에 좋은 것이다. 봄이라는 것은 겨울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다. 貴於春은 感好而樂이다 春者는 乃來冬終이라 겨울 동안은 몸이 위축되고 마음은 치우치며 정신은 해이해진다. 冬內에 體爲縮이오 心進偏이오 精神爲弛라 이것은 찬 겨울바람 때문이다. 是以寒風之故也라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으나, 어느 때에 보니 이미 와 있다. 如不來春이나 看何時하니 旣猶來라 산은 푸르름으로 돌아갔고 풀은 푸른색을 되찾았으며 마음은 여유를 되찾았으니, 이것으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歸山綠하고 探草靑하며 復心..
유격과 참호전투 01년 3월 23일(금) 화창 원랜 오늘 기록 사격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인지 다음으로 연기되어 버렸다. 맞을 매는 후딱 맞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데, 그러지 못하니 맘이 아프다. 빨리 보고 노는 게 좋은데 이렇게 있으려니 죽겠다. 하루 종일 정신 교육이기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글쎄 종아리에 좀이 배기는 거 있지. 하도 활동적인 활동만 하다가 전혀 생각도 못했던 VTR 시청만 하려니 되게 힘들기만 했다. 3주차 교육도 이렇게 끝나 간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겁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 역시 언제나 늘 말하지만 지나가 버린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건가 보다. 어찌 이렇게 빠를 수 있지. 근데 앞으로 있을 일은 너무도 아마득히 느껴지니 말이다...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 01년 3월 20일(화) 맑음 살아서 돌아왔다. 오늘 살상용(殺傷用) 화기를 다루면서 많이 떨었다. 오전 내내 들었던 총기의 굉음이 그랬고 살상용이라는 용도가 그랬고, 내 총기에 대한 의심이 그랬고, 예전부터 들어왔던 총기의 안전사고 내용들이 그랬다. 쏘려는 그 순간까지 많이 떨었다. 하지만 막상 쏘고 나니, 허탈한 마음과 함께 다시 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흡사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타기 전엔 무수한 생각으로 고민하며 결국, 그 표를 샀다 하더라도 근심, 걱정의 눈초리로 자기가 타게 될 놀이기구를 보게 된다. 그와 같이 사격전에는 자기의 삶과 죽음이란 많은 고민을 하며 결국 사선(射線)에 이르러 대기조에 서있다 할지라도, 너무나 크고 선명..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 01년 3월 19일(월) 주일이었던 어제 처음으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생판 달리 안개 낀 새벽을 빌미로 어둑어둑한 하루가 계속 전개되었다. 그에 맞추어, 3주차의 주된 훈련은 K-2 소총 교육과 실전 사격 훈련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맞물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한 주에 대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현실은 사실일 뿐이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저 저번 주에 했던 K-2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기에, 힘들었다면 여전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가 가장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날씨의 저조증이 우리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으며, 자기의 의지가 전혀 관여할 ..
어이없는 벌에 대해 01년 3월 16일(金) 8시간 동안 사격예비훈련을 했던 날이다. 오전 훈련이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 無依託射擊) 훈련은 너무도 힘들었다. 다른 조들은 조금씩만 반복한 데 비해, 우리 1조는 거의 20분간을 훈련 받았기 때문에 힘들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 “250사로봤!”이란 구호와 함께 10초 안에 2보 전진 후, 엎드려 쏜 다음에 다시 무의탁 사격 자세로 돌아와야 하기에 힘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오후에도 이와 같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크나큰 심리적 암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오후엔 그렇게 빡시게 훈련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몸은 몹시나 무거웠다. 전투야상 상하의가 흙범벅이 ..
건강의 소중함 01년 3월 15일(목) 목감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작년 내내 감기라는 하찮은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감기라는 질병은 나와 무관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방심은 긴 허점이듯이, 감기란 질병은 그런 허점을 타고 일거에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목이 많이 아픈 상태이고 기침이 나올라치면 괴로운 상태이다. 건강에 대해서 확신하지 말라는 것, 그건 진리이자 사실이다. 아프기 전엔 건강에 대해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경험, 이전엔 무엇이든지, 귀중함 내지,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는 건 비극이고, 그로 말미암아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절망이다. 결국 나에게서 몸의 건강을 잃음으로 삶의 중요함을 느끼게 될 때에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거다. 지금 이 상태로의 건..
작은 감사 01년 3월 13일(화)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6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치를 받고 도착했던 지난 토요일(3일), 그날은 이미 입춘(立春)이 지났음에도 스산한 바람과 함께 하늘에선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3월은 봄이 약동하는 날씨인데 눈이 온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롭게 느껴졌다. 전주에선 이번 겨울 내내 겨우 두 번밖에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함박눈을 본 것이니 가슴 설레긴 하더라. 그러면서 ‘역시 여긴 철원이구나!’하는 앞날의 막막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 한 주를 지냈다. 우선 군대라는 특정집단에의 강요가 나를 강하게 억눌렀으며, 따스한 남쪽 나라에서 자라온 내가, 냉혹한 북방 기후에 맞서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나를 억압해 왔다. 그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난 적응하..
종교와 초코파이 01년 3월 11일(日) 화창한 날 입대 후,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이다. 어제 우리의 조교인 손병장님께서 “군에서 하는 게 어디 종교 활동이냐? 그저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었으며, 종교의 본질성이 훼손된 예였다. 예배를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드렸다. 찬양 시간일 때만 해도,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설교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눈뿐 아니라, 나의 눈까지도 썩은 동태마냥 게슴츠레해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연거푸 인사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늘 새벽에 2시간 불침번을 서고 30분을 빨래하고 목욕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현식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
행복(幸福)이란 것 01년 3월 9일(金) 맑음 인간의 행복, 그건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었으며, 주관적인 것이었다. 어제, 그렇게 추운 가운데, 난 삶의 비극을 느꼈지만, 오늘은 햇살이 따뜻하니 삶의 기쁨을 느꼈다. 차라리 오늘보단 어제가 더 여유 있었지만 왜 어젠 비극을 느꼈지만, 오늘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까? 날씨 하나 차이로 사람의 감정이 이와 같이 급변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이 느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은 결코 절대적이지 못하다. 부유한 사람[富者]라고 해서 기쁨만 있을 리 만무하고, 가난한 사람[賤者]이라 해서 슬픔만 있을 리 만무하다. 결코 그저 자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만이 희락(喜樂)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모두 노애(怒哀)를 느끼는 ..
군생활의 비감(悲感) 01년 3월 8일(木) 어제 좌담회 시간에 ‘이래도 저래도 2년 2개월이니, 잘 보내자’라는 전제를 서로에게 던져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 말이 사실임에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오로지 회의가 든다. 왜냐하면, 그건 내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과 추운 날씨 때문이다. 비관적인 생각은 육체적 적응으로 많이 익숙해졌다. 그렇긴 해도 정신적인 적응이 아직 안 되었기에 많이 힘이 드는 것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중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뼈속까지 파고드는 매서운 칼바람은 우리들의 의지를 약하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관을 부정적으로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다. ‘북방의 매서움이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기에, 계속 이런 곳에서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진시(眞詩)’ 후기 목차 1. 형술쌤이 초대한 한시의 세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다 한문과 마주 보고, 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형술쌤 한시의 세계로 들입다 초대하다 2. 건빵이 한시특강을 듣는 이유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건빵은 한시특강을 듣네 한시특강을 들으러 온 사람들 전공자가 들으니 더욱 유익한 한시 특강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나도 모르는 새에 한시의 세계로 빠져들다 당나라 시풍이 우세를 떨치며 개성이 사라진 한시들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복고파의 의의와 한계 복고파의 억눌림을 뚫고 분출한 생기발랄한 목소리 5. 천기를 문학에 담으려던 사람들 공안파를 비판한 김창협 공안파의 천기와 백악시단 천기는 다르다 6. 천기가 가득 ..
6. 천기가 가득 담긴 한시를 맛보다 한 시간 정도 만에 16세기 조선 문단의 시풍(詩風) 변화를 훑어봤다. 이게 바로 우리가 전문가에게 강의를 들어야 할 이유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주제의 내용을 알기 위해선 여러 자료를 뒤적이며 몇 달을 끙끙 앓을 정도로 공부해야지만 겨우 윤곽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두 시간 정도의 강의만으로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16세기 시단에선 당풍이 유행하며 천부적인 자질을 지녀야만 시를 지을 수 있다는 논리가 전개되었고 이런 논의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은 ‘문장은 전한 시대의 것을 따르고, 시는 성당 시대의 것을 따른다[文必秦漢, 詩必盛唐]’이란 구호를 외치며 성당(盛唐)의 시만을 읽고 본받으려 노력하면 충분히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천기를 문학에 담으려던 사람들 조선에 이렇게 생기발랄하게 시를 쓰고 문장을 쓰자는 논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공안파(公安派)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안파의 대표주자인 원굉도와 이지 같은 인물은 억눌려 있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래서 원굉도는 아예 “본성에 맡기고 발하면 오히려 사람의 희노애락과 기호정욕에 통할 수 있으니, 이것이 기쁠 만하다[任性而發, 尚能通於人之喜怒哀樂, 嗜好情欲, 是可喜也].”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했으며, 이지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곧 진짜 마음이다[夫童心者, 眞心也].”라는 말까지 했다. 유학에선 억눌러야 했던 기(氣), 리(理)에 방해만 된다고 보았던 기(氣)를 그들은 한없이 긍정하며 ‘심즉리(心卽理)【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와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당나라 시를 무작정 모방하는 풍조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복고파다. 복고파는 제대로 시를 지으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던 사람들이다. 복고파의 의의와 한계 이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은 “문장은 전한 시대의 것을 따르고, 시는 성당 시대의 것을 따른다[文必秦漢, 詩必盛唐]”라는 구호를 만들어 외쳤다. 이 말을 통해 전 시대와는 두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첫째는 시든 문장이든 천부적인 재능에 따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따라 잘 쓰고 못 쓰고가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좋은 시를 짓고 싶거든 명편들을 열심히 읽고 따라 써보며 노력한다면 그만한 시를 쓸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모범이 될..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나에게 만약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시 특강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한시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길 풀어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니 만큼, 알지 못하는 세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 이번 강의는 전주대에서 전주시민 대상으로 마련하여 진행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한시의 세계로 빠져들다 그런데 형술쌤은 훅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16세기부터 중국에서 유행한 복고파 시와 전후칠자(前後七子)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런 부분에서 도입부는 16년 1월에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됐..
2. 건빵이 한시특강을 듣는 이유 최근에 ‘킹덤’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거기서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 측에서는 어느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뭘 하든, 뭘 얼마만큼 죽이든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라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었다. ▲ 외국자본을 투자 받아 한국형 좀비 드라마를 만들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건빵은 한시특강을 듣네 거기엔 ‘우리가 이미 당신의 실력을 알고 모신 만큼 맘껏 기량을 펼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처럼 자신의 기량이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수 있는 용기’, ‘실패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나온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아예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실패를 많이 해보라. 그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말할 정도이니, 무작정 해보는 도전정신이 있다면 우린 크게..
1. 형술쌤이 초대한 한시의 세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다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한문 임용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단재학교에서 교사로서의 경험과 무수한 얘기들을 썼던 글쓰기가 한문공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교사 경험이나 글쓰기 경험은 학문을 하는 진정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태를 제대로 보려는 진지한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걸 그 누구의 말이 아닌 나의 말과 나만의 이해방식으로 흡수하는 것이니 말이다. ▲ 웰 컴 투 더 월드 오브 한시 ~ 그 매력에 빠져보실까요^^ 한문과 마주 보고, 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예전엔 무언가를 고민하기도 전에,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모든 게 나에게 닥쳐 있었다...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진시(眞詩) 목차 김형술(전주대 한문교육과) 1.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 ①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의 복고론 ② 명대 복고파 이론의 영향력 1) 17세기 조선의 정두경(鄭斗卿, 1597-1673) 2) 18세기 에도 문단의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 3) 명말청초 공안파(公安派)의 명대 복고파 비판 4) 조선후기 백악시단(白嶽詩壇)의 명대 복고파 비판 2. 백악시단이 주창한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3. 진시(眞詩)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4. 시(詩)의 실상 ①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② 민생의 핍진한 사생 ③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일상 ④ 情의 울림 上 / 下 인용 ..
9.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② ⑥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 권8 「우중만장여행(雨中挽長女行)」 不有田家雨 行人得久淹 농가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들 갈 사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겠나. 喜逢子孫醉 睡過卯時甘 딸아이 만나서 기뻐 취하고 묘시가 넘도록 달게 잤더니 川漾萍樓埭 風廻花撲簾 냇물 불어 개구리밥 보에까지 붙고 바람 불어 꽃잎은 주렴을 치는구나. 吾詩殊未就 莫謾整歸驂 내 시가 아직 안 되었다 자꾸만 타고 갈 말 챙기지 말렴. ⑦ 이하곤(李夏坤) 『두타초(頭陀草)』 책8 「사가(思家)」 風急天將黑 山寒路自斜 바람 거세고 날도 어둑해지려는데 산은 춥고 길은 자꾸만 오르막이라. 來時愁雪片 歸日對梅花 올 적엔 눈송이를 걱정했는데 돌아가면 매화를 마주하겠네. 臘盡還爲客 年衰漸戀家 섣달이 다 되도록..
8.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① ① 홍세태(洪世泰) 『유하집(柳下集)』 권2 「술애(述哀)」 1 自我罹窮阨 生趣若枯木 나는 궁액(窮阨)에 빠진 뒤로 생의 흥취는 말라 죽은 나무 같았지만 賴爾得開口 聊以慰心曲 그래도 네가 있어 입을 열었고 늘 서글픈 마음을 위로 받았다. 嗟汝今已矣 令我日幽獨 아! 네가 떠나간 지금 나의 하루하루는 더욱 고독해져 入室如有聞 出門如有矚 집에 들면 어디선가 네 목소리 들리는 듯 문 나서면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너를 찾게 된다. 觸物每抽思,如繭絲在腹 무엇을 마주해도 늘 뽑혀 나오는 네 생각 마치 뱃속 가득 채워진 고치실 같은데 哀彼一抔士 魂骨寄山足 서글퍼라! 저 한 줌의 흙으로 네 넋과 뼈를 산발치에 묻었구나. 平生不我遠 今夜與誰宿 평생에 나를 멀리 떠난 적 없었는데 오늘 ..
7. 시(詩)의 실상: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일상 ①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4 「십구일(十九日)」 荏苒芳華事 猶殘小圃春 고운 꽃 핀 봄날 풍경 사라지는데 작은 밭에 봄이 아직 남아있구나. 愁中紅日駐 睡起綠陰新 시름할 땐 붉은 태양 꼼짝 안더니 자고 나니 녹음이 싱그럽구나. 樊竹通雞逕 蔬花化蝶身 대밭엔 닭이 다녀 길이 생겼고 배추꽃엔 나비가 알을 붙였네. 靜看機出入 忘却我爲人 고요 속에 천기(天機)의 출입을 보다가 내 자신이 사람인 줄도 잊게 되었네. ②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 』 권7 「월야금운(月夜琴韻)」 夜冷霜生竹 樓虗月上琴 밤이 차서 서리가 대나무에 엉기고 누대는 비어 달만 거문고 위로 떠오르는데 泠然廣灘水 流入大餘音 차가운 광탄의 물 대여음(大餘音)으로 ..
6. 시(詩)의 실상: 민생의 핍진한 사생 ①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8의 「작천무량(鵲川無梁)」 我過淸州境 觀風一喟然 내가 청주의 경계를 지나며 풍속을 살펴보니 탄식만 나오네. 誰爲懶明府 民病涉寒川 누가 관가의 부름에 늑장피우랴? 백성은 병든 채로 찬 냇물을 건너네. 斫脛傷仁酷 乘輿用惠偏 정강이 깨졌으니 인을 해침이 가혹하고 수레를 타는 일도 그 혜택이 치우쳤구나. 行人能殿最 可畏豈非天 행인들도 행적을 평가할 줄 아니 어찌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② 권섭(權燮) 『옥소고(玉所稿)』 「시(詩) 1」의 「동면민가(東面民歌)」 (前略) (전략) 松脂杻骨杻皮令 송진 싸릿대 싸리껍질 채취 명령 白蠟五味山葡賦 밀랍 오미자 산포도 채취 부역 生鮮日次白土掘 하루걸러 생선 잡고 백토도 파야하는데 種種難酬..
5. 시(詩)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① 김창흡(金昌翕)의 「구룡연(九龍淵)」을 통해 본 특징 다음은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2의 「구룡연(九龍淵)」이란 연작시 몇 편을 보자. 2 二淵懸瓢似 瀑流喧吐呑 둘째 못은 달아 맨 바가지던가 멍멍하게 폭포 물을 삼켰다 뱉네. 誰知呀然小 逈洞搏桑根 누가 알랴? 우묵하게 고인 작은 물이 멀리 통해 부상의 뿌리에까지 맺힐 줄. 5 五淵急回軋 南岸側成釜 다섯째 못 급히 돌며 콸콸 대는데 남쪽 언덕 비스듬하여 솥이 되었네. 馳波迭後先 赴隘徘徊舞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달리다가 좁은 곳에선 빙빙 돌며 춤추는 듯. 6 六淵美如璧 清涵石紋粹 여섯째 못 아름답기 구슬 같은데 맑게 씻긴 바위 무늬 티도 없구나. 竦髮注眸深 高雲正..
4. 진시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의고파의 가짜 복고를 벗어나 고인의 정신을 자득하고, 관습화되고 형해화된 정과 경을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인은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민멸(泯滅)된 시도(詩道)를 진작해야 한다. 1)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의 “기욕(嗜慾)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嗜慾深者, 天機淺也].”라는 말이 있다. 2)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 「중용(中庸) 1」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솔개는 솔개의 성(性)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성(性)이 있어 그 날고 뜀에 천기(天機)가 절로 완전하니 곧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사께서 우선 이 한두 가지로 도(道)가 없는 곳이 없음을 밝히신 ..
3. 백악시단이 주창한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김창협(金昌協)은 『농암집(農巖集)』 권34 「잡지 외편(雜識 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는 우리 조선의 시가 선조(宣祖) 때보다 성한 때가 없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시도(詩道)가 쇠한 것이 실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선조 이전에는 시를 짓는 이들이 대체로 다 송(宋) 나라의 시를 배웠기 때문에 격조가 대부분 전아하지 못하였으며 음률도 간혹 조화롭지 못하였지만 요컨대 또한 질박하고 진실하며 중후하고 노련하면서도 힘이 있었기에 겉치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서 각자 일가(一家)의 언(言)을 이루었다.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而要亦..
2.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② 3) 명말청초 공안파(公安派)의 명대 복고파 비판 원굉도(袁宏道)는 『해탈집(解脫集)』 권4 「척독(尺牘)」의 「구장유(丘長孺)」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저 물(物)은 참되면 귀합니다. 참되면 내 얼굴이 그대의 얼굴과 같을 수 없으니 하물며 고인의 모습이겠습니까? 당(唐)에는 당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문선(文選)』의 체(體)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당(初唐)ㆍ성당(盛唐)ㆍ중당(中唐)ㆍ만당(晩唐)에는 각자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초당, 성당일 필요가 없습니다. …(중략)… 大抵物眞則貴, 貴則我面不能同君面, 而況古人之面貌乎? 唐自有詩也, 不必選體也; 初ㆍ盛ㆍ中ㆍ晚自有詩也, 不必初盛也; 李ㆍ杜ㆍ王ㆍ岑ㆍ錢ㆍ劉, 下迨元ㆍ白ㆍ盧ㆍ鄭, 各自有詩也. 不必李ㆍ杜也. (中略)..
1.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① ①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전칠자(前七子):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서정경(徐積卿), 변공(貢), 강해(康海), 왕구사(王九思), 왕정상(王廷相) / 후칠자(後七子): 이반룡(李擊龍), 왕세정(王世貞), 사진(謝秦), 종신(宗臣), 양유예(梁有譽), 서중행(徐中行), 오국륜(吳國倫)】의 복고론 이몽양(李夢陽, 1472-1529)은 홀로 전대의 위약(萎弱)함을 비판하고, “문장은 반드시 진한(秦漢)시대의 것이어야 하고, 시는 반드시 성당(盛唐)의 것이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이것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았다[夢陽獨護其萎, 倡言文必奏漢, 詩必盛唐, 非是者弗道. -『명사(明史)』 권286 「이몽양전(李夢陽傳)」]. 이반룡(李攀龍, 1514-1570)..
유방의 역사에 담은 인생 철학 『소화시평』 권하 92번에서 이원진은 한고조 유방을 주제로 해서 초한쟁패 초반기에 함곡관에 항우보다 먼저 들어갔음에도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지 않고 약법삼장을 선언하며 항우를 기다리던 순간을 배경으로 시를 쓰고 있다. 잠시 삼천포를 좀 빠지자면 소화시평을 공부하면서 유방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첫 발표였던 권상 39번에서도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다뤘었고 권상 47번도 발표를 맡았었는데 여기서도 전횡장군 이야기가 나오며 간접적으로 유방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뤘으니 말이다. 이렇게 유방의 이야기를 두 군데서 다루고 나니 초한쟁패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지더라. 이래서 발표를 준비하며 역사적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다방면으로 함께 공부하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
명성과 편견에 갇히지 않고 시를 봐야 하는 이유 길고 길었던 『소화시평』 선독(選讀)의 대망의 마지막 편이다. 작년 1학기부터 시작하여 지금에서야 끝장에 이른 것이다. 권상에선 55편의 시화를 읽었고 권하에선 48편의 시화를 읽었다. 물론 아직 64번과 66번 글을 빠뜨리고 오는 바람에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권의 마지막 편의 글을 정리하는 이 순간의 기분은 매우 좋다. 어쨌든 한문을 오랜만에 다시 공부하며 뭣도 모른 상태로 달려들었던 것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마무리 지어지게 됐으니 말이다. 물론 소화시평을 마친 소회는 64번과 66번 글까지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적어보기로 하고 여기선 마지막 글을 쓰는 느낌을 이렇게 간단히 남겨본다. 『소화시평』 권하 92번에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원..
피상적인 이해와 적극적인 이해의 차이 弊屣堯天下 淸風有許由 요임금의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맑은 풍도는 허유에게 남았지만 分中無棄物 獨挈自家牛 분에 맞으면 버리는 물건이 없어서 다만 자기 집 소를 끌고 갔다네. 『소화시평』 권하 91번을 얘기하기 전에 ‘소통과 이해’에 대해 길게 얘기한 이유는 윤정이 쓴 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정이 쓴 시를 그저 피상적으로, 시에서 보여지는 느낌으로만 평가할 경우 분명히 홍만종처럼 비판하는 게 당연하다. 우선 이 시의 1~2구에선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선양하려 하자 허유는 듣지 못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냇가에서 씻었다. 이런 태도에선 마치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요임금-허유’, ‘알렉산더-디오..
이해의 어려움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91번에서 우린 ‘이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든, 어떤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든 이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학교에서 주구장창 작품의 이해에 대해서 배웠는데 그게 뭐가 어렵나요?’라고 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 간을 작품의 이해나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워왔고 대학교나 대학원까지 들어가면 더 긴 시간을 할애하여 배우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배웠다면 당연히 ‘이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학교에서 배운 이해의 방법은 결코 제대로 된 이해의 방법이 아니다. 작품을 볼 때..
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서로의 거리 천 리나 머니 그리워하는 마음 언제나 그칠까?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나는 부질없이 떠도는 신세로 그대가 잘못 혹을 째버림을 가엾게 여기네.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푸르른 봄날은 시름 속에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저물도록 길게 흐르는 구나.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꿈에서나 도리어 손을 잡고서 함께 명월루에 올라보세.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세상일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니 이별시름 기어이 그치지 않네.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시 때문에 그대는 너무 야위었고 일 때문에 나는 혹이 났구려.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달밤에 그 누가 술자리 함께 하랴. 봄날에 홀로 배를 띄웠다네.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돌아올 날 멀지 않다는 걸 알겠으니, 필마로 강의 누각에서 ..
홍만종이 잘난 체를 하는 방법 『소화시평』 권하 90번은 김석주와 자신이 친한 관계였으며 김석주의 문장을 짓는 자질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에 관해선 자신을 칭찬했었다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그러면서 홍만종은 “아마도 사백은 사와 부에는 뛰어나지만 느지막이 시를 썼기 때문에 이런 지나친 허여함이 있었던 것이리라[蓋斯伯工於詞賦, 晩業於詩, 故有此過許].”라고 김석주가 자신을 칭찬한 이유를 대고 있다. 이런 구절에서 드러나는 심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이 시를 잘 짓는다는 것을 자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케스트를 통해 유명해진 말 중에 ‘깔때기’라는 말이 있다. 그건 어떤 주제의 말을 하던지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잘난 척할 수 있는 주제로 빨아..
새벽에 출발하며 쓴 시를 비교하다 『소화시평』 권하 87번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쓰인 시를 얘기하고서 그 두 시를 비교하며 평가하고 있다. 이런 비슷한 구절을 권상 101번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그땐 ‘뜻은 일치하지만 각각 운치가 있다[意則一串, 而各有風致].’라고 평가했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우선 두 시는 똑같은 상황에서 쓰인 시다. 어디를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막에 머물다가 새벽에 출발하며 그 소회를 적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두 시엔 어떤 느낌이 담겨 있는지 보기로 하자. 鷄聲來野店 鬼火渡溪橋 닭울음은 들판 주막에서 들려오고 도깨비불은 시내의 다리를 건너오네. 백곡의 시는 새벽에 출발하는 장면을 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출발하여 주막이 어렴풋이 멀어진 상황의 장면을 읊은 것이다. 그러니 아침을..
2분이란 시간에 왕소군과 의순공주를 담아내다 순발력 테스트식으로 2분 만의 시간 동안에 홍석기가 짓게 된 시가 바로 『소화시평』 권하 85번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라 가지 않는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전구(轉句)는 기구와 승구에서 전개한 시상을 완전히 뒤바꾸며 환기를 시키고 결구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결구의 내용을 강화하기에 위해 1~3구까지 감정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래서 한 구 한 구 읽을 때마다 깊은 울분과 회한이 짙게 느껴지며 결구에 이르고 보면 그 감정이 제대로 폭발되는 것이다. 千秋哀怨不堪聞 천추토록 애절한 원망 차마 듣질 못하겠는데, 落月蒼蒼萬壑雲 지는 달이 희끄무레한데다 온 골짜기엔 구름까지 꼈네. 莫向樽前彈一曲 술잔 앞을 향하여 한 곡..
한시로 순발력테스트를 하다 『소화시평』 권하 85번은 시가 지어진 배경을 담고 있다. 아무래도 이전의 시들은 이미 시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시가 지어진 배경을 얘기하지 못하고(예외적으로 시가 지어진 배경이 문집에 실린 경우엔 그 배경과 함께 시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저 인상 비평을 가할 수밖에 없는 반면, 비교적 최근의 시이고 더욱이 자기 형의 시이기에 이 시에 대해선 배경 설명과 함께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편을 읽고 있으면 그 당시에 왜 이런 시를 짓게 됐는지 상황을 이해하게 되며 홍만종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형은 천부적 자질이 민첩하여 붓을 잡고 시를 지을 적엔 샘물이 솟구치는 듯 큰 강물이 매달린 듯했다[天才敏捷. 操筆賦詩, 泉湧河懸].’는..
김득신의 귀정문적(龜亭聞笛)시가 좋은 이유 斷橋平楚夕陽低 끊어진 다리, 저편 평평한 들판에 석양이 내려앉고 政是前山宿鳥棲 앞 숲으론 잠 잘 새가 깃드네. 隔水何人三弄笛 건너편 강에서 어떤 사람이 「매화삼롱(梅花三弄)」 부는데, 梅花落盡故城西 매화는 고성 저편 모두 다 저버렸네. 『소화시평』 권하 84번의 두 번째 시는 읽고 있으면 그 상황이 절로 그려지는 시다. 1구에선 귀정에 올라 보인 광경을 서술하고 있다. 귀정이 어느 곳에 있는 정자인 줄은 모르겠지만 1구에 묘사된 정황을 통해 평평한 들판의 우뚝 솟은 곳에 있는 정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끊어진 다리가 보이고 그곳 근처엔 평평한 들판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석양이 질 때라 들판엔 석양빛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이 광경..
김득신이 지은 용산시 감상하기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서 있고 가을산에 하얀 비 내리더니,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저물녘 강에서 풍랑 일어나자 어부가 황급히 배를 돌리네. 위에서 쭉 얘기했다시피 김득신은 노둔했기 때문에 예리해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쓴 시는 어떨까? 그걸 『소화시평』 권하 84번에선 두 편이나 볼 수 있으니 이번 편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는 1구와 2구는 시적 화자가 놓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찬 구름 속에 서 있는 고목, 하얀 비가 내리는 가을산이라고 명사만을 쭉 나열하고 있다. 이건 마치 백광훈의 「홍경사(弘慶寺)」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이 배경을 통해 조금은 스산한, 그러면서도 왠지 외로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배경 속..
노둔함의 저력 『소화시평』 권하 84번의 주인공은 백곡 김득신이다. 김득신하면 「글을 읽은 횟수를 기록하다[讀數記]」란 글을 지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이 글에도 나타나다시피 진득하게, 어찌 보면 매우 바보처럼 앉아 하나의 글을 여러 번 읽는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를 표현할 때 ‘노둔하다[魯]’는 표현은 빠지질 않는다. 실제로 84번에도 ‘천부적 자질이 매우 노둔했다[才稟甚魯]’고 홍만종도 서술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홍만종은 노둔함이야말로 학자로서 최고의 자질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노둔하기 때문에 예리해졌다[由鈍而銳]’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황당해할 것이다. 노둔함과 예리함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소리..
이름 새기는 사람의 심리를 비판한 한시 鏟石題名姓 山僧笑不休 돌 깎아 성명을 써놨더니 산 스님이 웃음을 그치질 않네. 乾坤一泡幻 能得幾時留 천지도 하나의 물거품이거늘 얼마나 그 이름 남길 수 있겠소. 임유후의 두 번째 시도 전혀 어렵지 않다. 그건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사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게 어느 유적지에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는 기사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종족번식을 통해 자신의 증표를 남기려고도 하며, 그도 아니라면 의미 있는 것(문학작품,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품들)을 남기려고도 하고, 그도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남기려 하니 ..
사찰시의 특징을 깨버린 시 시를 볼 때 당시풍이라느니, 송시풍이라느니 하는 표현들을 쓴다. 그때 두 시풍을 확실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당시풍은 있는 사실을 핍진하게 그려내어 머리로도 그 상황이나 환경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는 반면, 송시풍은 성리학이 발달한 송나라답게 시에도 그저 환경이나 묘사하는 시를 쓰지 않고 철학적인 함의를 담은 시를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송시풍보단 당시풍을 더 좋은 시로 쳤다. 이런 정도로만 나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고 분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풍 내에서도 초당ㆍ성당ㆍ중당ㆍ만당으로 시풍을 나누며 성당풍의 시를 최고로 치는 상황에 이르고 보면 이건 마치 어려운 수학기호를 보듯 난해함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가 되고 만..
유교 속의 불교, 불교 속의 유교 방편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선악을 확연히 구분하여 한 개체 내에 이미 그런 속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던지, 능력 여부 또한 한 개체 내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본다던지, 조선은 유교의 나라로 불교는 아예 배척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편적인 사고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은 있을지언정, 실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우린 티비에 범죄자로 나오는 사람을 보며 우리와는 다른 ‘악이 화신’이라도 된 양 생각하며 모든 걸 까발리고 사회에서 완벽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여대며, 조선을 생각하면 모든 사회의 악이 가득 찬 시대로 그리며 그런 부조리한 사회가 ..
은자의 세 가지 유형과 고정관념을 넘어 偶入城中數月淹 우연히 성중에 들어와 몇 개월을 머물다가 忽驚秋色着山尖 가을빛이 산 정상에 들러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네. 行裝理去孤舟在 떠날 짐 꾸려서 가니 외로운 배 남아 있고, 急影侵來素髮添 빠른 세월이 쳐들어와 흰 머리가 불어났구나. 早謝朝班誰道勇 일찌감치 조정을 떠난 들 누가 용맹하다 말하겠으며 晩饞丘壑不稱廉 느지막이 은거지를 탐한 들 청렴하다 할 이 없구나. 且愁未免天公怪 또한 하느님이 괴이하게 여길까 걱정되니 欲向成都問姓嚴 성도를 향해 가서 엄준한테 물어보려네. 『소화시평』 권하 80번의 시는 내가 맡은 분량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게도 전혀 그러질 못했다. 완전히 시적화자가 처한 환경을 다르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시에서 간파해내지 ..
1년 동안 함께 한 스터디, 그리고 변화 『소화시평』 권하 80번은 오랜만에 발표하게 된 내용이다. 작년 4월 초에 소화시평 스터디에 합류하게 됐고, 운 좋게도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어 권상 39번을 발표하게 됐다. 여기서 ‘운 좋게’라고 표현한 이유는 반어법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오랜만에 임용공부를 하는지라 공부의 방향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고 밀려오던 불안감에 과거 낙방 때의 씁쓸함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발표를 계기로 한문공부의 맛을 오랜만에 맛볼 수 있었고 공부의 방향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권상 39번을 시작으로, 권상 47번, 권상 62번, 권상 75번, 권상 92번까지 총 다섯 편을 맡게 됐고 그걸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
역사를 한시에 담아내다 睥睨平臨薩水湄 성가퀴 살수가를 굽어보는데 高風獵獵動旌旗 높은 바람에 펄럭펄럭 정기가 나부끼네. 路通遼瀋三千里 길은 요동과 심양 삼천리로 통하고 城敵隋唐百萬師 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백만 군사를 대적했지 天地未曾忘戰伐 천지는 일찍이 전쟁을 잊은 적이 없으니 山河何必繫安危 산하에 하필 안위가 달렸으랴. 悽然欲下新亭淚 처연히 신정의 눈물 떨구려 하니 樓上胡笳莫謾吹 누각 위에서 호가 쓸데없이 불지 마라 . 『소화시평』 권하 79번에 나오는 이계의 시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긴 해도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얼핏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이해했던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새삼 느끼게 되는 건 어느 작품이든 좀 더 깊숙이 살펴보면, 내밀하게 궁리해보면, 알쏭달..
알아가는 즐거움, 알게 되는 기쁨 『소화시평』 권하 79번에서 나오는 이계(李烓)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작품집을 읽는다는 건 이런 부분에서 좋다. 늘 관심 갖던, 여러 사람에게 회자된 인물 외에 저자가 관심 갖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면 학생들은 누군가를 알아야만 할 때 “이 사람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런 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학창시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고자 해서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알아야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단 이유만으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한문학사 상의 인물을 대할 때도 똑같이 적..
계곡과 택당이 담지 못한 것을 담은 동명의 시 『소화시평』 권하 77번에서 ‘계곡ㆍ택당ㆍ동명 세 사람의 문학적 재능을 우열로 나누어볼 게 아니라 각자가 장점을 지니고 있다’라고 홍만종이 평가한 것에 대해서 저번 후기에서 그게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홍만종은 각자 시인들의 장점을 네 글자로 얘기한 다음에 그걸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어떤 느낌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계곡 장유의 문장에 대해선 ‘혼후류창(渾厚流鬯)’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거대하고 거침이 없으며, 확 트였다는 뉘앙스다. 스케일 자체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홍만종은 끝없는 호수에 바람이 불어봤자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했다. 택당 이식의 문장에 대해선 ‘정묘투철(精妙透徹)’하다고 평가했는..
문학의 우열을 나누는 것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77번에선 계곡과 택당, 동명 세 사람의 시풍에 대해 홍만종이 평가를 하고 있다. 우선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평가를 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한다. 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 또는 좋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우열을 가르고 경중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매우 쓸데없는 이야기[甚無謂也]’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문장엔 각각의 가치가 담겨 있다[凡文章之美, 各有定價]’라고 말한다. 그건 곧 자신의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함부로 재단하고 함부로 등급을 나누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 말 자체가 개인적인 비평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어떤 작품에 대해 개인적인 호불호를 얘기할 수 있으며..
동명의 웅장함이 가득 시 감상하기 統軍亭前江作池 통군정 앞의 강물은 연못이 되고 統軍亭上角聲悲 통군정 위로 나팔소리 비장하다. 使君五馬靑絲絡 부윤의 오마의 머리는 푸른 실로 장식했고 都督千夫赤羽旗 도독의 천 명 군사들 적우기 들었네. 塞垣兒童盡華語 변방성의 아이들은 중국어를 할 줄 알고 遼東山川非昔時 요동의 산천은 옛날이 아니로구나. 自是單于事田獵 그저 선우는 사냥을 일삼는 것뿐이니, 城頭夜火不須疑 성머리의 밤 횃불 의심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하 76번의 「휴용만이부윤등통군정(携龍灣李府尹登統軍亭)」이라는 시는 딱 읽는 순간에 절로 삼연이 했던 ‘매번 지을 적마다 이렇게 웅대한 말이로구나[每作此雄大語].’라는 평어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연은 비판적인 어조로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웅장한 말로만..
의주 통군정과 변새시의 종류 『소화시평』 권하 76번은 권하 75번에 이어 정두경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단순히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77번까지 네 편이나 정두경을 다루기 있기 때문에 홍만종이 정두경에게 얼마나 매료(魅了)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왜 홍만종이 후기 학자들은 비판 일색으로 정두경을 묘사한데 반해 홍만종만은 칭찬일색으로 정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왜 이렇게 경도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저번 후기에서 밝힌 그대로다. 그러니 여기선 그런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는 재론하지 않겠고 바로 그의 시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지금은 북한 땅에 있어 가볼 수 없는 곳, 의주. 지금은 중국과 접경지역이며 압록강이 펼쳐져 있..
정두경이 흰 갈매기를 사랑한 이유 白鷗在江海 泛泛無冬夏 백구가 강과 바다에 있어 떠다니며 겨울 여름이 없으니 羽族非不多 吾憐是鳥也 새의 족속들이 많지 않은 건 아니나, 나는 이 새를 사랑한다네. 年年不與雁南北 해마다 남과 북으로 오가는 기러기와 같이 하지 않고 日日常隨波上下 날마다 항상 파도 따라 오르락내리락. 寄語白鷗莫相疑 “백구야 말 붙여도 서로 의심하지 말자꾸나. 余亦海上忘機者 나 또한 바다 위에서 기심을 잃은 사람이니까.” 『소화시평』 권하 75번에서 갈매기를 노래한 시는 정두경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갈매기와 기러기를 비교하며 자신은 기러기보단 갈매기와 같은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쓰는 철새라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유불리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