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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우리 한시를 읽다 목차 이종묵(李鍾默)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정조 - 綱目講義 湘素雜記 - 推敲 이규보 - 驅詩魔文 이황 - 陶山十二曲跋 이종묵 - 16~17세기 한시사 연구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 정법사 - 詠孤石 고운 - 十二乘船渡海來 / 최치원 - 巫峽重峯之歲 최치원 - 秋夜雨中 이백 - 獨坐敬亭山 도연명 - 詠貧士 최치원 - 題伽倻山讀書堂 김종직 - 紅流洞 홍만종 – 소화시평 상권65 황정욱 - 送人赴遂安郡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김지장 - 送童子下山 정법사 - 詠孤石 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 박인범 - 徑州龍朔寺 정지상 - 開聖寺 八尺房 정지상 - 題邊山蘇來寺 최치원 - 登潤州慈和寺 김부식 - 觀瀾寺樓 惠文 - 普賢院 3. 시 속에 울려 ..
4. 김정희(金正喜)의 「도망(悼亡)」那將月姥訟冥司어찌 장차 월하노인에게 저승에서 말을 하여來世夫妻易地爲다음 생에서 나와 당신의 처지를 바꿔我死君生千里外내가 죽고 그대 천리 밖에 살아서使君知我此心悲그대에게 나의 이런 슬픈 마음 알게 하려나? 1) 제주에 1840년에 유배되었는데 2년 후에 부인이 숨을 거둠. 2) 김정희는 제주도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여러 번 불평하는 편지를 보냈고 젓갈이며 옷가지를 보내달라는 투정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3) 그후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가 왔고 날짜를 헤아려 보니 자신은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반찬 투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4) 혼인을 관장하는 신인 월하노인을 데리고 저승에 가서 하소연하여 내세에는 처지를 바꾸게 하겠다고 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함. ..
⑤ 참신함, 생각을 다듬어 개성을 발휘하다 1. 참신함1) 김택영(金澤榮)이 신위(申緯)의 시집에 써준 서문에서 “18세기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용휴와 이가환 부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의 시 세계를 포괄하여, 어떤 이는 기궤(奇詭)를 주로 하고 어떤 이는 첨신(尖新)을 주로 한다[或主奇詭, 或主尖新, 其一代升降之跡, 方之古則猶盛晩唐焉].”고 말함. 2) 기궤(奇詭)나 첨신(尖新)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참신한 느낌이 드는 시를 지었다는 뜻으로, 송시적인 창작 방법에 의하여 발생한 미감이라 할 수 있음. 3) 공안파(公安派)의 문학 이론을 수용한 결과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외국어로 시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 머리로 써야 하는 입장에서 잘 지을 수 있는 방편이라 할 수 있음. 4) ..
④ 우리나라에 오랜 시간 읊어진 수작들 1. 최치원(崔致遠)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狂噴(奔)疊石吼重巒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려워.常恐是非聲到耳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故敎流水盡籠山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1)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된 작품. 조선 시대에 롱수(籠水)라는 이름이 많았던 것은 바로 이 시구의 영향임. 2) 이 기발한 발상을 두고 나쁜 평가를 한 비평가도 있었지만, 굽이 굽이 도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로 세상의 시비소리를 차단했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한국 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임. 2. 이규보(李奎報)의 「산석영정중월(山夕詠井中月)」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산 속 스님이 달빛 탐내..
③ 조선적 당풍과 조선적 송풍 1. 조선적 당풍의 한계1) 16세기 후반부터 거의 대부분의 시인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당시(唐詩)와 비슷해 보이려는 것이었음. 2) 송풍(宋風)의 난삽함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는 있지만 우리 한시만의 특질을 보여주는 데는 이르지 못함. 2. 조선적 송풍(宋風)의 차이점1) 소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선의 풍물과 세태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것은 송풍으로 제작된 한시였다. 2) 고려말 이색(李穡)은 고려의 언어와 풍속을 수용하여 중국인들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시를 제작한 적이 있다. 3) 노수신(盧守愼) 역시 조선의 지명과 관명 등을 적극 시어로 끌어들여 중국 시와 다른 면모를 보임. 4) 조선적인 소재나 시어를 사용하여 특질을 구현한 것은 의미가 ..
② 조선적 당풍 1. 당풍과 송풍의 차이당풍송풍가슴으로 정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머리로 뜻을 따지게 하는 스타일그림을 지향하고 소리의 울림을 중시함인위적인 것이 중심에 있음감정이 자연스럽게 유로하는 것을 중시생각이나 감정을 구도에 의해 안배하고 한 글자라도 안배에 힘씀 신라 말~ 고려 초조선전기~~조선 중기만당풍(晩唐風)송풍(宋風) 강서시파(江西詩派) 당풍(唐風) 2. 조선후기 사단의 색다른 풍조1) 중국의 한시는 당대와 송대를 거치며 시가 나아갈 두 전형을 확립했고 그 후엔 자신의 시대에 맞게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2) 조선에선 당풍과 송풍을 조선의 풍토에 체화하는 방향으로 나감. 3) 조선 중기의 주도적인 스타일이던 당풍의 경우 창작방법과 미학에서는 당시의 전범을 따랐지만 소재나 정감 자체는 조선인의..
에필로그. 우리 한시의 특질 ① 조선의 풍물과 풍속을 담은 조선시 1. 한국 한시는 중국 한시를 닮으려 했다. 1) 중국 한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누추하다 비난을 퍼부음. 2) 어떤 이들은 시가 뛰어나다는 뜻으로 ‘압록강 동쪽의 구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음. 2.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다 1) 조선 후기에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김. 2) 박지원(朴趾源)은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 조선풍으로 불러야 될 것이라 함. 3. 정약용(丁若鏞)의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 기오(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其五)」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쓰는 것이다.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험운(險韻)하는 것에 굳이 구애될 게 없고 퇴고로 굳이 더딜 게 없다. 興到卽運..
④ 목민관(牧民官)에게 보여주고자 쓴 시 1. 목민관이 읽어야 할 시1) 민중의 참상을 시로 그려내 읽으면 소름이 끼친다. 2)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 자신이 지은 이러한 시들을 함께 실었다. 평민 남자들은 모두 군적에 편입되었고 정약용은 백성의 뼈를 깎는 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2. 이용휴(李用休)의 「송신사군지임연천(送申使君之任漣川)」嬰兒喃喃語 其母皆能知 어린아이의 재잘대는 소리 어미는 모두 알 수 있지. 至誠苟如此 荒政豈難爲지성(至誠)이 진실로 이와 같다면, 흉년의 정치가 어찌 어려울까? 村婦從兩犬 栲栳盛午饁 시골 아낙 두 마리 개 따라서 소쿠리에 점심밥 가득 담았네. 或恐蟲投羹 覆之以瓠葉혹시나 벌레가 국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호박잎으로 덮었다네. 1) 연천으로 사또로 가는 신..
③ 과도한 세금, 공납에 힘들어하는 백성들 1. 민중의 생활상을 고발하는 한시1) 고려 시대 이래 고통 받는 민중의 생활을 고발하는 것이 지속적인 관습임. 2) 조선 후기엔 이런 경향의 시가 더욱 양산되었는데 정약용(丁若鏞)의 「애절양(哀絶陽)」이 가장 단적인 예임. 3) 이 작품은 1803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임. 당시 노씨 성을 가진 농부의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들고 마을의 이장은 소를 빼앗아 가자 그 백성은 스스로 양물을 잘라 버림. 2. 이하곤(李夏坤)의 「주분원이십여일 무료중효두자미기주가체 잡용이어 희성잡구(住分院二十餘日 無聊中效杜子美夔州歌體 雜用俚語 戱成絶句)」宣川土色白如雪선천의 흙 색깔은 희어 눈 같네. 御器燔成此第一임금의 그릇이 구워 만들어지는데 여기 것이 제일이야..
② 힘겨운 백성의 삶을 담아내다 1. 정협(鄭俠)의 「유민도(流民圖)」에 빗대어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전통의 계승1) 조선 초기 성현(成俔)은 「벌목행(伐木行)」를 지어 겨울철 산속에서 목재를 채취하는 백성들의 참상을 시로 그려냄. 2) 한겨울인데도 정강이가 나온 옷을 걸치고 나무를 찍느라 손등은 얼어터지고 손가락은 아예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고 참상을 밝힘. 3) 마지막 대목에서 자신은 목민관으로서 참상을 차마 보지 못하여 오색구름으로 덮인 구중궁궐의 임금께 이를 알리고 싶지만 유민도를 그릴 재주는 없어 정협의 죄인이라 하면서 시상을 종결함. 2. 조위한(趙緯韓)의 「유민탄(流民歎)」1) 우리말 가사로 세상에 널리 유통되어 듣는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 지금은 전하지 않으며, 광해군(光海..
24.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① 유민도와 정약용 1. 유민도(流民圖) 1)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대학가에는 고통 받는 민중을 그린 걸개그림이 걸려 있곤 했다. 2) 유민도의 연원은 송나라 정협(鄭俠)에서 찾는다. 정협은 여러 차례 왕안석에게 서찰을 보내어 신법이 백성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얼마 후 안상문의 수문장이 되는데 이때 큰 가뭄이 들어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많았음. 정협은 이들 모습을 그려 상소문을 바치자 신종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혁파함. 3) 조선에선 임진왜란 발발한 지 1년이 된 1593년 5월 9일 『선조실록』에는 죽은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아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자, 구걸하는 남녀, 자식을 버려 나무뿌리에 묶어 놓은 어미 등이 그..
④ 태평성대의 기상이 담긴 한시 1. 정민교(鄭敏僑)의 「확귀(穫歸)」九月寒霜至 南鴻稍稍飛9월에 차가운 서리 내리자 남으로 기러기 조금씩 날아가네.我收水田稻 妻織木綿衣나는 논의 벼를 수확하고 아내는 무명옷 짜네.白酒須多釀 黃花自不稀백주 많이 빚으니, 국화는 절로 적지 않게 피네.於焉聊可隱 且作百年歸이에 즐기며 숨을 만하니, 또한 백년 인생 돌아가리라. 1) 위항시인 정민교(鄭敏僑)는 시로 이름이 높았지만 가난하여 호남의 한천(寒泉)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이때의 모습을 시로 그려냄. 2) 가난한 살림이지만 중양절의 풍류는 잊지 않고 국화 곁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자 거친 막걸리일망정 푸짐하게 빚어둔다고 함. 3) 조선후기 위항문학의 성과가 바로 이러한 일상적 삶을 진솔하게 드러낸 데 있는데, 김창협..
③ 채소를 한시에 담다 1. 김창업(金昌業) 또한 자신의 집과 밭에 있는 70종의 식물을 대상으로 방대한 규모의 시를 제작했다. 1) 자 대유(大有), 호 노가재(老稼齋).2)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며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이 그의 형이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김창집을 따라 1712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노가재연행록(老稼齋燕行錄)』을 저술함. 2.김창업(金昌業)의 「시금치菠薐(時根菜)」菠薐傳數名 其始出波羅 시금치는 여러 이름이 전해지는데 처음에 페르시아에서 나왔네. 我國有俗稱 恐是赤根訛 우리나라에선 속칭이 있는데 아마도 적근의 와전인 듯. 1) 시금치는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것으로 파사초, 파사채, 파채라고 했음. 2) 뿌리가 붉어 적근채(赤根菜)라고도 했는데, 김창업은 ‘적근채’가 와..
5. 이응희(李應禧)의 시로 적은 백과사전인 『만물편(萬物篇)』1) 자는 자수(子綏), 호는 옥담(玉潭). 산본의 수리산 아래 살면서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서울이 이름난 문인들과도 교유하지도 않음. 2) 지극히 평범했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 3) 만물편엔 만물을 25종의 유형으로 나누고 다시 그 아래 280개의 사물을 나열한 다음, 각각의 사물에 대해 오언율시를 지음. 4) 만물편엔 특히 물고기와 채소, 과일 등에 대한 자료가 풍부함. 6. 이응희(李應禧)의 「진과(眞瓜)」名眞意有在 其理我能窮 이름의 ‘참’의 뜻이 있으니 그 이치는 내가 궁리할 수 있다네.短體稱唐種 長身號水筒 짧은 놈은 ‘당종’이라 부르고, 긴 놈은 ‘수통’이라 부르지.刳分金子散 條折蜜肌濃 쪼개 놓으면 금가루 흩날리..
② 한시, 음식을 담아내다 1. 한시의 소재가 넓어지다1) 우리 한시사에서 음식이 시의 소재로 일찍부터 등장했음. 2) 이색(李穡)은 일상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먹을거리와 관련된 풍속도 담아냈다. 2. 이색(李穡)의 「종동정구리(從東亭求梨)」筵前平桂積如山연석 앞에 평계는 쌓여 있는 게 산 같았네. 1) 평계(平桂): 꿀떡이다. 밀가루와 꿀을 섞어 납작하고 길쭉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구운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이를 과자라고도 불렀으며, 제사상이나 잔칫상, 손님상에 한 자 정도 수북하게 쌓아 놓음. 2) 『소문쇄록(謏聞瑣錄)』 3번에선 평계를 “대를 잘라 면채자를 꿰어, 간장 발라 불에 구웠네[削竹串穿蕎麥餻 仍塗醬汁火邊燒]”라 했는데, 면채자(麪菜炙)는 메밀가루를 여러 나물과 섞어서 대나무에 꿰어 ..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① 일상을 담은 한시 1. 한시의 역할 1) 시는 교양이며 생활이 일부임. 2) 좋은 일로 축하해줄 때도, 벗이나 친지가 죽는 슬픔을 맞이할 때도, 벗이 찾아오거나 떠나갈 때도 시를 지었음. 3)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소재한 시들이 많을 수밖에 없음. 2. 서거정(徐居正)의 일상시 1) 서거정은 쉽게 시를 썼던 사람으로 하루에 10수의 시를 지은 적도 있었음. 2) 늘 함께 시를 주고받는 벗들이 있어 그들이 아들을 낳아도, 만나려다 병으로 만나지 못해도, 꽃이나 약재 등 선물을 받아도 시를 지었음. 3. 서거정의 시 誰識酒腸淺 自知詩料貧 뉘 알랴 술 창자 작은 것을, 절로 아네 시의 재료가 빈천하다는 걸. 大醉逢妻諫 苦吟被僕嗔 만취하여 아내 잔소리 듣고, 괴롭게 읊..
③ 이규상 외 사람의 작품들 1. 18세기 한시의 특징1) 조선의 풍광을 직접 보고 흥감을 적는 것이었음. 2) 김창흡(金昌翕)을 위시하여 18세기 한시단(漢詩壇)에서 우뚝한 존재들은 학통이나 당색을 불문하고 이런 흐름을 따름. 2. 유목양의 「목동(牧童)」驅牛赤脚童 滿載秋山色소 끄는 맨발의 아이, 한 가득 가을 산색을 실었구나.叱叱搔蓬頭 長歌歸月夕이랴 이랴 봉두난발 긁적이며 달 뜬 저녁에 긴 노래 부르며 돌아오네. 1) 무명의 인물이지만,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아름다운 이 시 한 편이 수록되어 후세에 전함. 2) 조선후기의 한시에 담긴 풍경에는 산과 물보다 먹고 살려고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백성이 중심에 있음. 3. 이미의 「촌가잡영(村家雜詠)」溪橋中斷兩成洄시냇가 다리 끊어진 곳 양쪽에서 소용돌이 일..
② 김홍도의 풍속화 같던 이규상의 시 1. 이규상(李圭象) 시의 특징1) 이규상이 시로 그린 그림은 정선의 그림이라기보다 김홍도의 속화(俗畫)를 닮음. 2) 강세황(姜世晃)의 『단원기(檀園記)』에선 “화가들은 각각 하나의 재능을 떨쳤지 다른 기예를 겸하지 않는다.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 근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하여 못 그리는 게 없었다. 인물과 산수, 불화와 꽃이나 과일그림, 새와 벌레와, 물고기와 게와 같은 것에 이르면 모두 오묘한 등급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니 옛 사람에 비교하더라도 거의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이 우리 조선의 인물과 풍속을 잘 묘사했으니, 예를 들면 선비가 공부하는 모습, 상인들의 시장에 가는 모습, 나그네와 규방 아녀자의 모습, 농부와 길쌈하는 여인의 모습..
4. 이규상(李圭象)의 「전가행(田家行)」鷄冠迥立鳳仙橫맨드라미 우뚝 서고 봉선화는 늘어져瓠蔓縈莖紫翠笳덩굴진 박 줄기 자줏빛 가지와 엉켜一陣朱蜻來又去한 무리의 고추잠자리 오고 또 가네.雲高日燥見秋生구름은 높고 해 말라 가을이 생겨남을 보이네. 1) 이 그림은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보통의 산수화와는 조금 다르다. 먼 배경에 산을 그리고 한쪽에 개울을 그려 넣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한 산과 물이 없어도 무방하다. 2) 맨드라미, 봉선화, 고추잠자리도 붉고, 가지는 자줏빛, 박 줄기는 파란색이어서 색감이 산뜻함. 3) 경(景)을 위주로 하고 정(情)은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시골살이의 흥이 절로 일음. 沙融溪暖荻芽微눈 녹고 시내 따스하니 억새 싹이 작게 폈고靑靄初收白鷺飛푸른 이내 처음 사라지니 백로 날아간다. ..
22. 시에 담은 풍속화 ① 조선의 풍경을 담은 시들 1. 산수화(山水畵)의 특징 1) 사람을 잘 그리지 않고, 그린다 해도 신선의 풍모를 지니게 그림. 2) 우리 회화사에서 조선의 산수에 조선 옷과 갓을 쓴 조선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세기 무렵부터임. 3) 정선(鄭敾)이 조선의 산수를 화폭에 담아내고 또 그 안에 조선에 사는 사람을 그림. 2. 진시(眞詩) 운동이 펼쳐지다 1) 정선(鄭敾)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 형제가 진경(眞景)과 진정(眞情)을 드러낸 진시(眞詩)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승한 것임. 2) 16세기 후반부터 당시를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그 중 뛰어난 작품은 당나라 시인의 시집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
5. 이병연(李秉淵)의 「장필문만(張弼文挽)」君得李一源 我得張弼文그대 나를 얻었고, 나는 장필문 그댈 얻었지相得而相失 于玆三紀云서로 얻고 서로 잃어버린지, 이제 꼭 36년째. 我有張弼文 君有李一源나에겐 그대가 있고, 그대에겐 내가 있었지. 相去千萬里 心焉吾友存서로의 거리 천만리지만 마음엔 내 벗이 있었다오. 一源白嶽下 弼文驪水頭나는 백악의 아래에 그대는 여강에 살아,我病縶騾子 君來豈無舟내가 병들어 노새를 매어뒀는데 그대 오려는데 어찌 배가 없겠는가? 詩成何所寄 顔面不復論시를 지어도 어디에 부칠꼬? 얼굴보고 다시 의론치 못하네.地下張弼文 地上李一源지하에 있는 그대, 지상에 있는 나. 1) 첫째 수에서 서로 만난 지 36년 되었다는 것을 나타냄. 2) 둘째 수에서는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늘 그리..
③ 조선 후기의 머리로 쓴 만사 1. 만사의 시체 변화1) 조선전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만사는 율시(법이 있는 시)가 중심에 있었음. 2) 노수신(盧守愼)의 「만김대간(挽金大諫)」은 격식을 갖추어, 죽은 이의 생애와 자신과의 관계, 상대에 대한 칭송 등을 압축적으로 제시함. 3) 절구는 노래와 가깝기 때문에 격식을 갖춘 애도보다 목 놓아 통곡을 하거나, 은근한 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함. 4) 조선 후기에는 참신(斬新)함을 추종하는 문단의 분위기로 죽은 이에 대한 애도가 전혀 나타나지 않음. 역사가가 냉정하게 평가하듯 죽은 사람의 이생에서 남긴 의미를 집약적으로 제시함. 2. 홍세태(洪世泰)의 「이숙장만(李叔章挽)」種穀不須嘉 嘉者多不實곡식을 심는데 꼭 좋은 씨일 필욘 없다. 좋은 씨여도 많이 열매 맺질 못하..
3. 유근의 「만차첨정(挽車僉正)」老莊馬史偏多讀노장과 사마천을 두루 많이 읽고, 李杜韓詩最熟精이백ㆍ두보ㆍ한유의 시를 가장 정독했다네. 1) 차천로(車天輅)가 죽었을 때 유근도 남용익의 「정동명만(鄭東溟挽)」와 유사한 만사를 지음. 2) 이수광(李睟光)은 ‘차천로(車天輅)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사마천(司馬遷)의 문장, 그리고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한유(韓愈)의 시를 정독한 것은 사실이지만, 차천로 문학의 핵심이 정독이 아니라 박학에 있었으므로, 유근이 차천로를 잘 안 것은 아니다’라고 함. 4. 이수광(李睟光)의 「차오산천로만(車五山天輅挽)」 詞林活氣三春盡문학 숲의 활기는 봄에 다하였고,學海長波一夕乾학문 바다의 긴 파도는 하루 저녁에 말라버렸네. 1) 이수광(李睟光)은 차천로(車天輅)의 죽..
② 죽은 이의 생애가 아닌 지향점을 담아낸 만사 1. 성혼(成渾)의 「만사암박상공순(挽思庵朴相公淳)」世外雲山深復深세상 바깥의 구름 낀 산은 깊고도 또 깊어,溪邊草屋已難尋시냇가 초가집 이미 찾기 어렵네.拜鵑窩上三更月배견와 위의 한 밤 중 달은應照先生一片心응당 선생의 일편단심을 비추는 것이려니. 1) 이이가 탄핵을 받자 벼슬을 그만두고 포천 북쪽 창옥병(蒼玉屛)에 배견와(拜鵑窩)라 이름한 초당을 짓고 은거했는데, 배견와(拜鵑窩)는 두견새에게 절을 하는 움집이라는 뜻이다. 2) 성혼(成渾)은 여기서 영의정까지 오른 박순(朴淳)의 이력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선 “사암의 만사는 이 정도로 그쳐야만 한다. 만약 재상의 사업에 착안하였다면 알맞지 않다.”고 했고 “무한한 감상의 뜻을 말 밖..
21. 눈물과 통곡이 없는 만사 ① 진실을 담은 만사 1.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슬프지만 지금은 죽음의 풍경이 바뀌었고, 문학사에서는 만사(挽詞)나 제문(祭文)이 사라짐. 1) 만사는 통곡을 하기 위해 지은 게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여 저 세상으로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지음. 2) 만사엔 과장이 있어선 안 되며 죽은 자의 생애를 얼마나 압축적으로 표현했는가가 중요함. 2. 노수신(盧守愼)의 「만김대간(挽金大諫)」 珍島通南海 丹陽近始安 진주는 남해와 통하고 단양은 시안에 가깝다. 風霜廿載外 雨露兩朝間 풍상으로 20년을 시달렸으나 은혜를 두 왕조에서 누렸구나. 白首驚時晩 靑雲保歲寒 흰머리 느즈막한 때가 놀라운데 청운에도 세한의 지조 지켰네. 平生壯夫淚 一灑在桐山 평생 함께 한 장부의 눈물, ..
③ 이서구의 시와 신운(神韻) 1. 산과 물이 좋아 길을 나선 이의 특징1) 산과 물이 좋아 길을 나선 사람은 서두르지 않음.2)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 무술(戊戌) 3에서 “무릇 유람은 즐김을 위주로 하는 법이어서 시일에 구애받지 않고 아름다운 곳을 만나면 멈춰 즐겨야 한다. 그리고 나를 알아주는 벗을 데리고 마음에 꼭 맞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니, 떠들썩거리고 후끈 분위기가 달아오른 것 같음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는 禪房에서 기생을 끼고서 물소리 옆에다가 풍악을 펴니, 그거야말로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며 과자를 놓은 격이라 하겠다.[凡遊以趣爲主, 行不計日, 遇佳卽止. 携知己友, 尋會心處, 若紛紜鬧熱, 非我志也. 夫俗子者, 挾妓禪房, 張樂水聲, 可謂花下焚香, ..
3. 김창흡(金昌翕)의 「갈역잡영(葛驛雜詠)」尋常飯後出荊扉늘 그러하듯 밥 먹고 사립문 나서니輒有相隨粉蝶飛그때마다 호랑나비 나를 따라 나선다.穿過麻田迤麥壟삼밭 뚫고 지나니 굽이진 보리밭 언덕草花芒刺易牽衣풀과 꽃의 가시가 쉬이 옷을 당기네. 1) 영시암에 머물러 산 것은 환갑이 가까운 1711년 무렵이었고 설악산과 금강산 유람을 즐기던 김창흡은 64세 때 다시 함경도로 여행을 나섦. 이때의 삼라만상을 392수의 엄청난 규모의 연작시로 담은 것이 위의 시임. 2) 연작시의 첫 번째 작품임. 산길을 걷노라면 범나비가 자신을 따라 흥을 돋운다. 삼밭이든 보리밭이든 발길 닿는 대로 가노라니, 여기저기 풀에 돋은 가시가 옷에 자꾸 걸린다. 들길을 걸을 때 겪는 일을 너무나도 심상하게 그려냄. 4. 김창흡(金昌翕)의 ..
② 김창흡의 산수벽이 가득한 시 1. 김창흡(金昌翕)의 산수벽(山水癖)1) 조선 후기 가장 영향력이 높은 시인으로 한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음.2) 그의 형제들은 벼슬길에 들어서지 않아 청운(靑雲)보다 백운(白雲)의 길을 택함. 3) 정약용(丁若鏞)이 쓴 『산행일기(汕行日記)』에서 김창흡(金昌翕)의 초상화를 보고 ‘온화하면서도 단정하고 엄숙하며 복건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어 산림처사의 기상이 있다’고 평함.4) 젊은 시절에 천마산과 성거산을 유람하고 돌아와 「천태산부(天台山賦)」라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산수의 흥이 일어 금강산으로 떠났다는 일화가 전해짐.5) 모친의 강권으로 21살에 진사가 되었지만 그때 외엔 평생 떠돌며 산수를 즐김.6) 철원의 삼부연(三釜淵) 폭포 곁에 집을 짓고 살자 아..
20. 길을 나서는 시인 ① 김시습의 산수벽이 가득한 시 1.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을 벽(癖)이라 하며 조선 시인 중엔 산수의 벽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1) 산과 물에 벽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산과 물을 찾아 나선다. 2) 조선 전기의 김시습(金時習)이, 후기엔 김창흡(金昌翕)이 대표적임. 김시습(金時習)은 ‘산수에 벽이 있어 시로 늙었다[癖於山水老於詩]’라고 한 대로 평생을 산수에서 노닐면서 지를 지음. 2. 김시습(金時習)의 「산행즉사(山行卽事)」 兒捕蜻蜓翁補籬 아이 잠자리 잡고, 노인 울타리 보수하고 小谿春水浴鷺鶿 작은 시내 봄물엔 가마우지 멱 감네. 春山斷處歸程遠 봄산 끊어진 곳에 귀로 멀기만 하니, 橫擔烏藤一箇枝 등나무 한 가지 어깨에 비껴 매네. 1) 세상이 싫어 산속에 들어갔지만 가..
④ 18세기 이후 조선풍이 담기다 1. 18세기 이후 이어 사용의 경향1) 이때부터 이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조선의 풍물을 핍진하게 담아내려 함.2) 이옥은 시를 쓰면서 족두리(簇頭里), 아가씨(阿哥氏), 가리마(加里麽), 사나이(似羅海) 등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여 시어로 활용했고, ‘무자식 상팔자[無子反喜事]’라는 속담으로 한 연을 구성하기도 함. 2. 이옥(李鈺)의 「아조(雅調)」早習宮體書 異凝微有角어려서 궁체를 익혀 ‘이응’에 살짝 뿔이 났죠.舅姑見書喜 諺文女提學시부모님 글을 보고 기뻐하며 “한글 여제학이로다”라 하시네. 1) 막 시집간 새댁이 시부모 앞에서 한글을 쓴다. 궁체를 배워 ‘o’ 위의 꼭지가 예쁘게 튀어 올라와 있다. 시부모는 한글 쓰는 여자 제학이 시집왔다 기뻐한다. 훈훈한 백성들의..
③ 고유어를 사용하여 재미로 시를 지어야 했던 시기. 1. 고유어를 시에 사용하는 문제1) 이색이나 노수신은 특이하게도 떳떳하게 우리말을 시어로 사용하여 새로움을 창조했음.2) 대부분의 문인들은 그러질 못하고 속어로 시를 지을 땐 ‘장난삼아 이어(俚語)를 썼다’고 밝힘. 2. 이명한(李明漢)의 「중양전일일 희용이어구호(重陽前一日 戱用俚語口號)」: 속어를 장난처럼 사용한 시引用重陽節 村醪典當來 중양절을 끌어와서 막걸리를 전당포에서 가져왔네.黃花太遲晩 分付眼前開노란 국화 너무 늦게 피니, 분부하노라 “눈앞에서 피어라” 1) 중양절이 하루 남았지만 이명한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중양절을 끌어들임. ‘인용(引用)’이란 시어를 사용해 ‘자기편이 되게 했다’는 내용을 담았고, ‘전당(典當)’이란 용어조차도 맘..
4. 노수신(盧守愼)의 「체우상(遞右相)」土虎春全暮 吳牛喘未穌무인년 봄은 저무는데 오나라 소는 헐떡임 멈추질 않네.初辭右議政 便就判中樞처음에 우의정을 사직하고 곧 판중추로 나아갔지.睿澤深如海 慈恩潤似酥임금은 은혜 깊기가 바다 같고, 자애로운 은혜 윤택하기가 술과 같아,避賢仍樂聖 能住幾年盧탁주를 피하고 청주를 즐기니, 몇 년이나 나를 머물게 할꼬? 1) 노수신은 지명 사용에서 더 나가 관직명과 심지어 자신의 성까지도 사용함. 2) 육십대 중반의 노년인지라 노수신은 사직하고자 하나 선조는 윤허해주지 않음. 아홉 차례나 상소를 올린 끝에 면직되었지만 곧바로 다시 판중추부사에 임명됨. 3) ‘토호(土虎)’는 무인(戊寅)을 다르게 표기한 것. 시에서 이런 표기는 보이지 않으니, 노수신이 낯선 시어를 사용했음을 알..
② 노수신의 지명과 관직명, 이름을 사용한 새로운 시 1. 우리말로 된 단어와 속담을 끌어들여 ‘이속위아(以俗爲雅)’를 실천하기도 함. 1) 이색(李穡)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서거정은 『동인시화(東人詩話)』 하권 59번에서 ‘이색의 시가 힘이 있고 범상하지 않지만, 그의 시를 잘못 배우면 자칫 비리하고 조야한 데 떨어질 우려가 있다[牧隱長篇. 變化闔闢縱橫古今. 如江漢滔滔波瀾自濶. 奇怪畢呈. 然喜用俗語. 學詩者. 學牧隱不得. 其失也流於鄙野]’고 경계한 바 있음. 2) 실제 이색(李穡)의 시 중에 예술성이 높지 못한 작품이 상당수가 있음. 2. 조선시대 문인들은 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렸으며 지명조차 시어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1) 당나라 시와 비슷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조선 중기에는 우리 지명..
19.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시학 ① 문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일상어를 쓰다 1. 이속위아(以俗爲雅), 비속어를 잘 사용하여 새로움을 얻는 방법 1) 황정견(黃庭堅)은 문학이 새로워질 수 있는 대안으로 ‘이속위아(以俗爲雅)’와 ‘이고위신(以古爲新)’을 대안으로 내세움. 2) “비속한 것을 이용하여 우아하게 하고 옛것을 사용하여 새롭게 하는 것은 손자와 오기의 병법처럼 백전백승이다.”라고 함. 3) 시를 짓는 사람들은 비속한 단어를 잘 쓰려 하지 않는데 비속한 단어를 잘 구사하면 새로움을 얻을 수 있었음. 4) 18세기 문인 성섭(成涉)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필원산어(筆苑散語)』에서는 “대게 시인들이 용사(用事)한 것이 비록 이어(俚語)라 하더라도 점화(點化)를 잘하면 점철성금(點綴成金)이 될 수 있다..
4. 이양연(李亮淵)의 「촌노부(村老婦)」老婦夜中績 先聞山雨時할매가 밤중에 길쌈하다가 먼저 산 빗소리 들었네.庭麥吾且收 家翁不須起“뜰의 보리는 나가 거둘거잉게, 영감태기는 인나지 마쇼.” 1) 밤에 호롱불을 밝히고 할머니는 길쌈을 한다. 영감은 꾸벅꾸벅 조는데 그때 비가 오자 할머니가 자라고 하고 자신이 치우겠다고 함. 2) 할머니의 말을 직접 인용하여 질박한 노부부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줌. 5. 이옥(李鈺)의 「아조(雅調)」小婢窓隙來 細喚阿只氏어린 계집종이 창틈으로 와서 쥐죽은 듯 말하네. “아기씨,思家如不禁 明日送轎子친정 그리움이 사무치거들랑 내일 가마를 오라할까요?“ 1) 자신의 시집을 비속한 말이라는 뜻에서 『이언(俚言)』이라 했지만, 내심 당대의 시경이라 여김. 2) 「이언인(俚諺引)」을 보면..
③ 고졸한 맛을 내기 위해 사람 말을 인용하다 1.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전하는 오언절구 중 상당수는 근체시가 아니다. 이를 고절구(古絶句)라 한다. 1) 민가(民歌)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오언절구는 근체시로 이행하던 과정에서 고졸한 맛을 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율격을 따르지 않음. 2) 또 근체시의 율격을 따른 오언절구라도 일부러 고졸한 맛을 풍기기도 함. 3) 정철(鄭澈)이 「제쌍계설운시축(題雙溪雪雲詩軸)」라는 시에서 사람의 말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것은 고졸한 맛을 내기 위해서임. 2. 손필대의 「전가(田家)」日暮罷鋤歸 稚子迎門語날이 저물어 호미질 그만두고 돌아오니 어린 아들이 문에서 맞이하며 얘기하네,東家不愼牛 齕盡溪邊黍“동쪽 집에서 소를 살피질 않아 시냇가의 기장들을 죄다 뜯어먹었대요.” 1) 농..
② 사람의 대화가 섞인 오언절구 1. 정철(鄭澈)의 「산사야음(山寺夜吟)」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를 착각하여 가랑비라 여겼지.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스님 불러 문에 나가 보게 했더니, “달이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렸던데요.”라고 하네. 1) 이 구절은 무가상인(無可上人)의 「만추기가도(晩秋寄賈島)」의 아래 구절과 유사함. 여기서의 빗소리는 낙엽이 뒹구는 소리임. 聽雨寒更盡 開門落葉深빗소리 듣노라니 추위는 다하였고 문을 여니 낙엽은 소복하네 2) 송(宋) 혜홍(惠洪)이 지은 『냉재시화(冷齋詩話)』에선 무가상인의 시에선 “상외(象外)의 구절이다”라고 하며 시각적인 형상을 넘어선 오묘한 표현임을 지적했음. 3) 정철의 시는 상외(象外)의 묘함에다 승려의 말을 직접 인용하여 운치를 더함. 4) 스님..
18. 짧은 노래에 담은 노래 ① 정철의 소리가 있는 오언절구 1. 오언절구는 짧은 시형이기에 좋은 작품을 짓기 어려움. 1) 우리나라 문집엔 칠언절구>칠언율시>오언율시>오언절구 순으로 담겨 있음. 2) 두보(杜甫)나 한유(韓愈)ㆍ소식(蘇軾) 등의 이름을 날리던 시인조차도 오언절구에 뛰어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음. 2. 5언절구의 성행 1) 우리나라에선 16세기 후반 임억령(林億齡),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임제(林悌)와 같은 호남의 문인들 중심으로 제작됨. 2) 절구(絶句)에 당시(唐詩)를 읽는 듯한 흥감을 불어넣은 명편을 제작함. 3) 정철(鄭澈)은 절구에 뛰어난 시인인데, 특히 오언절구에 많은 힘을 기울여 30%나 차지할 정도임. 3. 정철(鄭澈)의 「추일작(秋日作)」 山雨夜鳴竹 草虫秋..
③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담긴 시 당풍송풍가슴으로 쓰는 시머리로 쓰는 시익숙한 것을 지향새로운 것을 지향 1. 최경창(崔慶昌)의 「봉은사승축(奉恩寺僧軸)」 三月廣陵花滿山3월의 광릉엔 꽃이 산에 한 가득. 晴江歸路白雲間갠 강에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에 있네.舟中背指奉恩寺배속에서 등지고 봉은사를 가리키네蜀魄數聲僧掩關소쩍새 자주 소리 내니 스님은 문을 닫는구나. 1) 꽃이 만발한 3월에, 봉은사에서 스님과 헤어지면서 준 작품. 2) 이 시는 저광희(儲光羲))의 「기손산인(寄孫山人)」나 위응물(韋應物)의 「수유낭중춘일귀양주남국견별지작(酬柳郎中春日歸楊州南國見別之作)」와 흡사하다. 新林二月孤舟還신림의 2월 외로운 배로 돌아오니,水滿淸江花滿山맑은 강엔 온통 물이고, 산엔 온통 꽃이네. 廣陵三月花正開광릉의 ..
② 당풍의 맑고 시원한 시 1. 이이(李珥)는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를 선발하며 이백(李白)ㆍ맹호연(孟浩然)ㆍ위응물(韋應物)의 시를 뽑았는데, 당나라 때 시인들이 이런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음. 2. 우리나라 한시의 시대별 경향신라 말~ 고려 초조선전기~~조선 중기만당풍(晩唐風)송풍(宋風) 강서시파(江西詩派) 당풍(唐風)1) 황정견(黃庭堅)ㆍ진사도(陳師道)의 영향을 받은 박은(朴誾)ㆍ이행(李荇)ㆍ박상(朴祥)ㆍ정사룡(鄭士龍)ㆍ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ㆍ최립(崔岦) 등이 강서시파(江西詩派)를 연마함. 2)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난삽한 병폐에 반대하며 부드럽고 맑은 흥을 지닌 시를 짓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남. 3) 이주(李胄)ㆍ유호인(俞好仁)ㆍ신종호(申從濩)ㆍ신광한(申光漢) 등이 외롭게 당시를 짓고..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①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 1. 이이가 중국 한시를 선발하여 이이(李珥)가 지은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 밝힌 시를 선발한 기준 1) 충담소산(沖淡蕭散): 이 기준을 먼저 들고 수식에 힘쓰지 않아야 자연스러움 속에 오묘한 멋이 깊어진다고 함. 2) 한미청적(閑美淸適): 조용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흥겨움에서 시가 나오므로 사색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시를 읽으면 권세나 이익, 명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함. 3) 청신쇄락(淸新灑落): 매미가 가을바람에 이슬을 맞아 허물을 벗은 것처럼 밥을 지어 먹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위장 속의 비릿한 피를 씻어내어 영혼과 골격이 맑아져 인간세상의 냄새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함. 2. 이이(李珥)가..
2. 정사룡(鄭士龍)의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반의 한 가운데 같고,暝色初沈洞壑空 석양빛 처음으로 잠기니 골자기는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반짝이는 별이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樹顚禽動竄深叢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晴灘遠聽翻疑雨 비 오나 의심될 정도로 맑은 여울소리 멀리서 들리고, 病葉微零自起風 스스로 일어난 바람에 병든 잎사귀 살살 떨어지네.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읊조리던 평상의 요금 나눠 내겠지만,明朝珂馬軟塵紅 다음날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1) 정사룡(鄭士龍)은 탄핵을 받으면 양근(오늘날 양평은 서쪽의 양근과 동쪽의 지평이 합쳐진 것임)으로 물러나 있었음. 2) 양근 관아가 있던 곳..
② 정사룡의 조탁하며 지은 시 1. 정사룡(鄭士龍)의 「기회(記懷)」 四落階蓂魄又盈 네 번 계단의 명협초 졌고 달은 또한 차올랐지만,悄無車馬閉柴荊 쓸쓸히 수레와 말도 없이 사립문 닫아거네.詩書舊業抛難起 시 쓰고 글 쓰는 옛날의 업은 포기하고 다신 하기 어려우나, 場圃新功策未成 채마밭의 새로운 일은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네. 雨氣壓霞山忽瞑 빗 기운이 노을을 누르니 산은 문득 어두워졌으나, 川華受月夜猶明 강 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오히려 밝기만 하네. 思量不復勞心事 생각으로 다시는 마음의 일을 수고롭게 말아야지. 身世端宜付釣耕신세 마땅히 낚시질과 농사일에 부치노라. 1)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에 제작된 것. 2) 중국 사신이 오면 시를 잘 짓는 이들로 접대해야하기에 시 잘 짓는 사람 양성에 힘씀에도 인재난에 시..
3. 박상(朴祥)의 「차영남루운(次嶺南樓韻)」 客到嶺梅初發天손님이 고개에 이르니 매화가 처음으로 피어나 자연스러우니,嘉平之後上元前섣달이 지나 대보름 전이라네. 春生畫鼓雷千面 춘흥(春興)은 화고(畫鼓)의 둥둥거리는 천 번의 소리에 생겨나고,詩會靑山日半邊 시흥(詩興)은 푸른 산 해 반쯤 걸린 곁에서 모여든다. 漁艇載分籠渚月 고깃배는 물가 두른 달을 나누어 실었고,官羊踏破羃坡煙 관아의 염소는 언덕 덮던 안개 깨뜨려 밟는다. 形羸心壯凌淸曠몸은 야위었으나 마음은 건장해 맑은 들판 오르니, 驅使乾坤入醉筵하늘과 땅을 부려 취한 술자리에 끌어들이네. 1) 밀양에 들어서자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갯마루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림. 2) 조카 박순(朴淳)의 『송퇴계선생남환(送退溪先生南還)』에서도 꽃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피..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① 풍경에 시인의 감정이 담겨 1. 한시와 풍경 1) 풍경 속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하고 풍경이 감정과 혼융(混融)되기도 함. 2) 창작방법은 선경후정(先景後情)으로 선경은 시인의 감정을 축발하는 흥의 효과가 있음. 3) 또 다른 창작방법으론 부(賦), 비(比), 흥(興)이 있음. 부(賦) 비(比) 흥(興) 시경 있는 사실을 펼쳐내 그대로 말하는 것.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저 물건을 끌어 이 물건을 비유하는 것. 以彼物比此物也 먼저 다른 물건을 말함으로 읊고자 하는 내용을 끄집어 내는 것.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也 신경준 부는 알기가 쉽다. 賦知之易. 위 구절엔 비록 저것이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이 있지만, 아래 구절엔 대응하는 말이 없는 것. 上雖有彼如斯矣等語, 而下無對應之語..
⑤ 죽은 벗을 그리는 절절함을 담은 권필의 시 1. 권필(權韠)의 「곡구김화상구우양주지산중 인왈모유숙 천명출산(哭具金化喪柩于楊州之山中 因日暮留宿 天明出山)」 幽明相接杳無因 유명이 서로 접하나 아득하여 닿질 않고, 一夢殷勤未是眞 하나의 꿈 은근하더라도 이것은 참이 아니지.掩淚出山尋去路 눈물 닦고 산을 나서서 돌아갈 길 찾으니, 曉鶯啼送獨歸人 새벽 꾀꼬리 울며 홀로 돌아가는 나를 전송하는 구나. 1) 김화현감을 역임한 구용은 권필(權韠)ㆍ이안눌(李安訥)과 시명(詩名)을 나란히 다툼. 2) 김화현감으로 있다가 죽었는데 권필(權韠)은 양주의 장지까지 따라갔다가 날이 저물어 유숙함. 3) 꿈속의 구용은 그대로였으나 깨니 벗의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고 터벅터벅 울며 걸으니 꾀꼬리가 구용의 넋인 양 전송한다는 내용임...
④ 이행, 박은을 그리워하다 1.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편찬하다. 1) 박은(朴誾)이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사형당한 후 2년이 지나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났고 이행(李荇)은 복귀함. 2) 이때 박은(朴誾)의 흩어진 시를 수습하여 이 유고집을 편찬함. 3) 이 둘은 『논어(論語)』 「안연(顔淵)」에서 말한 ‘이문회우(以文會友)’의 뜻을 이루었다고 할 만함. 2. 이행(李荇)의 「제천마록후(題天磨錄後)」 卷裏天磨色 依依尙眼開책 속의 천마의 산색 흐리나 오히려 눈앞에 펼쳐지네.斯人今已矣 古道日悠哉 이 사람 지금은 없어졌고 옛길 날로 그윽하네.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가랑비 영통사에 내리고, 비낀 해 만월대에 비치네.死生曾契闊 衰白獨徘徊죽고 살아 일찍이 보질 못하니, 쇠한 백발로 홀로 배회한다. 1) ..
③ 박은의 시참(詩讖)이 담긴 시 1.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1) 개성의 천마산과 한강의 잠두봉을 유람한 시문필첩(詩文筆帖)으로 1502년 2월 박은(朴誾)과 이행, 승려 혜침(惠沈)과 질탕하게 유랑하여 「난정기(蘭亭序)」의 고사에 의거하여 술잔을 띄워놓고 술잔이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마시는 놀이 함. 2) 임술년에 남곤이 참여하여 7월 16일에(「적벽부(赤壁賦)」가 지어진 해와 간지가 같기에 이날 열림)에 서호 잠두봉에서 시회를 갖고 적벽부를 쓰게 함. 2. 박은(朴誾)의 「복령사(福靈寺)」 伽藍却是新羅舊 절은 도리어 신라의 오래된 것이고, 千佛皆從西竺來 천개의 불상은 다 서축에서 왔네. 終古神人迷大隈 예로부터 신인은 大隈에서 헤맸고 至今福地似天台 지금의 복된 땅은 천태산 같지. 春陰..
② 박은과 이행의 우수에 찬 시 1. 박은(朴誾)의 성격 1) 고초는 있었지만 훗날 승승장구한 이행과는 달리 박은은 성격이 강직했음. 2) 죽음에 임박해서도 말을 바꾸지 않아 26살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당함. 3) 이런 성격적인 차이에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음. 2. 박은(朴誾)의 「우중유회택지(雨中有懷擇之)」 寒雨不宜菊 小尊知近人 차가운 비는 국화에 어울리지 않으나 작은 술잔은 사람을 가까이 할 줄을 아네. 閉門紅葉落 得句白頭新 문을 닫으니 붉은 낙엽 떨어지고 글귀 얻으니 백발 새로이 난다. 歡憶情親友 愁添寂寞晨 기쁘게 정든 친구 생각하나 근심은 적막한 새벽에 더하다네. 何當靑眼對 一笑見陽春 어찌 마땅히 푸른 눈으로 마주하며 한 번 웃으며 봄볕을 볼까나? 1) 을씨년스럽게 비 내리는 날 지기..
15. 진정한 벗을 위한 노래 ① 이행과 박은의 사귐 1. 벗에 대한 정의 1) 박지원(朴趾源)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두 번째의 나[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일이 잘 되도록 주선하는 사람[周旋人]’이라고도 함. 2) 이덕무(李德懋)는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서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手染五絲, 十日成一色, 五十日成五色. 曬之以陽春之煦, 使弱妻, 持百鍊金針, 繡我知己面. 裝以異錦, 軸以古玉. 高山峨峨, 流水洋洋, 張于其間, 相對無言, 薄暮懷而歸也.” 3) 맹자는 ‘상우천고(尙友千古)’라 말함. 2. 이행(李荇)과 박은(朴誾)의 인연 1) 두 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내세울 만한 진정한 우정을 나눔. 2) 정조(正祖)는 박은(朴誾)의 시집을 편찬케 하며 「어제제증정읍취헌집권수..
④ 소설에 담긴 한시와 이후의 상황 1. 『주생전(周生傳)』 내용주생이 과거에 실패하고 상인이 되어 배도(俳桃)와 사랑을 나눔→그 후 싫증이 나고 새로 선화(仙花)를 사랑하게 됨→배도에게 들켜 만날 수 없게 됐지만 배도가 죽을 때 허락함→주생은 선화의 동생인 국영(國英)을 공부시킨다는 구실로 만남을 이어오다가 국영이 죽어 만날 기회가 없어짐→우여곡절 끝에 노부인의 도움으로 혼인하기로 했지만 임란 발발로 다시 헤어짐 2. 주생의 사(詞)小院深深春意鬧작은 집 깊숙한 곳에 봄뜻이 시끄럽고月在花技 寶鴨香烟裊달은 꽃 가지에 있고 향기로운 향 연기가 어지럽네.窓裏玉人愁欲老창속에 옥인 근심으로 삭아가려 하니,遙遙斷夢迷花草아득한 꿈에서 깨니 꽃과 풀에 어지럽네. 1) 주생의 이 시를 보고 배도는 몸을 허락함. 2) 권..
③ 이생규장전 이야기 1. 단편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 1) 최씨가 이생에게 하룻밤을 허락하겠다고 아래의 시를 읊음.桃李枝間花富貴복숭아와 오얏 가지 사이에 꽃은 부귀로워鴛鴦枕上月嬋娟원앙 배게 위에 달은 선명하네요. 2) 그리고 이 시를 듣고 약간 망설이며 이생이 아래의 시로 대답을 대신함. 他時漏洩春消息다른 때에 봄소식이 흘러나간다면風雨無情亦可憐바람과 비 무정하리니, 또한 가엾어지리. 3) 최씨는 밝은 달밤 복사꽃 꽃그늘에서 원앙처럼 정다운 부부의 연을 맺자고 했지만 이생은 무정한 비바람에 꽃이 지는 게 두렵다고 하며 누설될까 몸을 사렸다. 4) 최씨는 이생에게 두려워 말라며 시를 지어주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됨. 2. 최씨의 방에 놓인 병풍인 쓰여진 18편의 시: 소설에서는 누구의 시인지 알 ..
② 스토리의 보강을 위해 소설에 한시로 사랑을 담다 1. 전기소설(傳奇小說)로 담아낸 사랑이야기1) 최치원(崔致遠)이 중국으로 가던 도중 두 여인을 만나 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태평통재(太平通載)』 「쌍녀분(雙女墳)」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음.2) 이 글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기에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남녀의 애정을 산문과 시로 엮는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2. 애정 소재 전기소설의 백미(白眉)는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임. 獨倚紗窓刺繡遲 홀로 비단 창에 기대니 자수는 느리고,百花叢裏囀黃鸝 흰 꽃 떨기 속에 누런 꾀꼬리 지저귀네. 無端暗結東風怨 끝없이 동풍에 원망이 맺어져不語停針有所思아무 말 없이 바느질 멈추고 그리워하노라. 路上誰家白面郞 길가 누구집의 얼굴 흰 낭군인가.靑衿大..
14. 시로 읽는 소설 ① 양반이 사랑을 시로 표현하는 법 1. 시의 정의 1)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아름다운 자연물을 담아낸 것이 많음. 2) 사람 사는 모든 일(벗을 만남, 잔치, 죽은 영혼을 달램, 실의에 빠짐)에 시가 따라다님. 3) 점잖은 양반이기에 조심스러웠던 주제가 바로 사랑에 관한 시를 쓰는 것이었음. 2. 양반이 체통을 구기지 않으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방법 1) 고대 민간의 노래인 악부(樂府)를 본뜨는 것임. 한(漢) 때 민간의 가요를 채집하던 관청이름이며, 그 관청에서 수집된 민간가요를 말함. 당(唐) 때부터 악부 스타일을 흉내낸 의고악부(擬古樂府)가 지어졌고 양반들은 이 악부체를 빌어 사랑을 노래함. 2) 악부는 하나의 정황만 주어져 잇고 또 정황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사랑을 노래..
③ 서글픈 환경이 스산한 봄으로 남아 1. 김종직(金宗直)의 「화홍겸선제천정차송중 추처관운(和洪兼善濟川亭次宋中 樞處寬韻)」吹花擘柳半江風강바람이 꽃에 불고 버들개지 쪼개었고,檣影搖搖背暮鴻돛대 그림자는 흔들흔들 저물녘 기러기를 등져 있네.一片鄕心空倚柱한 조각 고향생각에 부질없이 기둥에 기대니,白雲飛度酒船中흰 구름은 술 싣고 가는 배를 지나 날아가네. 1) 시원한 봄바람이 버들가지 가르게 하는데 한강엔 호화로운 배가 떠있음. 그러나 고향에 가고 싶은 맘에 기생들과 술은 눈에 들어오지 않음. 2) ‘술 실은 배’엔 서거정 같은 권세가가 타 있고 자신은 묵묵히 쳐다볼 뿐임. 3) ‘백운(白雲)’은 청운(靑雲)과 대비되는 은자의 삶을 상징하며,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함. 서거정김종직문학을 겸비한 대학자학문을..
3. 춘흥을 노래한 시에서 반복적인 표현이 나온 예들. 1)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심화고사(尋花古寺)」: ‘화(花)’가 네 번이나 사용됨. 我自尋花花已盡 나는 절로 꽃을 찾아 왔지만 꽃은 이미 지고,尋花還作惜花歸 꽃 찾아 다시금 꽃을 아쉬워하며 돌아왔지. 2) 남효온(南孝溫)의 「상사성남(上巳城南)」: ‘성(城)’과 ‘화(花)’를 반복하면서 ‘남(南)’과 ‘북(北)’, ‘서(西)’와 ‘동(東)’이란 상반된 글자로 리듬감을 강화함. 城南城北杏花紅성의 북쪽과 성의 남쪽에 살구꽃 붉고,日在花西花影東해가 꽃의 서쪽에 있으니, 꽃의 그림자 동쪽으로 있네. 3) 백광훈(白光勳)의 「춘후(春後)」: ‘문(門)’을 반복하며 구중대(句重對)를 구사함. 春去無如病客何 봄이 가니 늙은 나그네 어이하랴. 出門時少閉門多 ..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① 상황에 따라 봄의 느낌은 달라라 1. 구양수(歐陽脩): 산림(山林)의 문학은 그 기운이 고고(枯槁)하고 관각의 문학은 그 기운이 온윤(溫潤)하다고 함. 2. 서거정(徐居正): 「계정집서(桂庭集序)」에서 기상은 관각과 산림과 불교의 세 가지로 나뉘며 뒤로 갈수록 좋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함.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의 내용과 진배없이 관각문학을 우위에 둠. ② 여유로우니 봄이 좋아라 1. 이규보(李奎報)의 「춘망부(春望賦)」 羯鼓聲高 둥둥 북소리에 紅杏齊綻 살구꽃이 활짝 필 때 望神州之麗景 서울의 고운 봄빛을 바라보면서 宸歡洽兮玉觴滿 임금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此則春望之富貴也 부귀한 자의 봄 구경이요. 彼王孫與公子 왕손과 귀공자가 結豪友以尋芳 벗들과 봄놀이..
3. 신광한(申光漢)의 「증별당질원량잠지임영동군(贈別堂姪元亮潛之任嶺東郡)」一萬峯巒又二千 일만 봉우리에 또 이천 봉우리. 海雲開盡玉嬋姸 바다구름 개자 옥 같은 봉우리들 선연해. 少時多病今傷老 어려선 병이 많았고 지금은 늙음에 속상하여終負名山此百年마침내 명산을 저버린 나의 삶 백년. 1) 이 작품은 관동으로 벼슬살이를 가는 종질 申潛을 전송하면서 쓴 것임. 2) 권근(權近)의 「금강산(金剛山)」에서 표현한 것을 가져와 금강산의 외형을 묘사하고 있음. 3) 젊은 시절에는 병으로 금강산을 찾지 못하다가 늙게 되어 끝내 금강산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함. 4. 양사언(楊士彦): 동래(蓬萊)ㆍ해객(海客: 해금강의 나그네)라는 호는 금강산에 대한 사랑을 보여줌 -「제발연반석상(題鉢淵磐石上)」 白玉京 蓬萊島백옥경..
③ 금강산의 흥취를 표현한 시 1. 김정(金淨)의 「증석도심(贈釋道心)」落日毗盧頂 東溟杳遠天비로봉 정상에 해지니, 동쪽 바다는 먼 하늘에 아득하네.碧巖敲火宿 連袂下蒼煙푸른 바위에서 불 지펴 자고, 함께 푸른 이내에 하산했지. 1) 1516년 금강산에 갔을 때 지은 작품. 2) 윤휴(尹鑴)의 『풍악록(楓岳錄)』에서 “이 시야말로 고금의 시인들 작품 중에 빼어나다. 이 시는 우리나라에 전무후무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 가는 작품인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알아보는 자가 없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함. 3) 3, 4구에서 시인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흥감을 드러내는 배경으로 표현함. 2. 정두경(鄭斗卿)의 조부인 정지승(鄭之升)에 대한 『어우야담』의 기록 내가 어릴 때 외..
② 가보지 않고 금강산의 기상을 노래한 시 1. 권근(權近)의 「금강산(金剛山)」雪立亭亭千萬峰 눈 속에 우뚝 솟은 천 만 봉우리. 海雲開出玉芙蓉 바다 구름 개자 나타난 옥 같이 푸르네. 神光蕩漾滄溟近 신비한 빛 넘실넘실 푸른 바다에 가깝고淑氣踠蜒造化鍾맑은 기운 구불구불 조화가 모였네.突兀岡巒臨鳥道 우뚝 솟은 산등성은 험한 길에 닿았고淸幽洞壑秘仙踪 맑고 그윽한 골짜기엔 신선의 자취가 담겨 있지. 東遊便欲陵高頂 동쪽으로 노닐며 다시 높은 봉우리에 올라俯視鴻濛一盪胸 천지의 원기를 굽어보니 가슴의 응어리 풀린다. 1) 정도전이 황제에게 올린 표문이 불손하다며 저자의 입궐을 명하자 권근도 책임이 있다며 함께 따라가게 됐음. 그때 지나가며 본 풍경을 시로 지은 것 중 하나임. 2) 운무(雲霧)가 걷힌 금강산은 벽옥..
12. 금강산을 시에 담는 두 방식 ①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 1. 금강산에 긍부정의 평가 1) 강세황(姜世晃): “산에 다니는 것은 인간으로서 첫째가는 고상한 일이다. 그러나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가장 저속한 일이다.” 2) 김정희(金正喜)의 「여권이재(與權彛齋)」 21에서 “매양 금강산에서 노닐고 돌아온 사람 가운데 본 것이 들은 것만 못하다고도 하는데, 이 말도 괴이할 것이 없소. 옛날 제갈량 밑에 있던 한 늙은 군졸이 晉 나라 때까지 생존했는데, 혹자가 제갈량에 대해서 묻자, 그는 ‘제갈량이 살았을 때는 보기에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제갈량이 죽은 뒤에는 다시 이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소’[每遊此山而歸者, 或以爲見不如聞, 亦無恠也. 昔武侯一老卒, 至於晉時尙存, 或有問武侯者, 對云: ‘見武侯生..
4. 정도전(鄭道傳)의 「봉천문(奉天門)」春隨細雨渡天津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金吾不問醉歸人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1) 혁명 완수 후 높은 벼슬을 받아 명에 들렸을 때 지은 시로 호기로움이 느껴짐. 2) 자신의 처지는 쉴 새 없이 바뀌었지만 작품 속에 스스로를 던져 중심이 되도록 했다는 점에선 같음. 3) 풍경의 주인공으로 거나하게 술에 취해 궁궐문을 나서고 있음. 5. 이숭인(李崇仁)의 「호종성남(扈從城南)」郊甸秋成早 君王玉趾臨교외의 가을걷이 이른데, 군왕은 옥 같은 발걸음으로 임하셨네. 觀魚前事陋 講武睿謨深물고기 구경하던 옛 일은 비루한 일이지만, 군사훈..
② 묘사하는 이숭인, 시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전 1. 이숭인(李崇仁)의 「촌가(村家)」赤葉明村逕 淸泉漱石根붉은 잎사귀가 시골길 밝히고 맑은 샘 바위 뿌리를 씻기누나. 地僻車馬少 山氣自黃昏땅은 궁벽져 수레와 말 없고, 산기운은 절로 어슴푸레하네. 1) 작은 붓으로 자신이 사는 집을 맑게 그려 시인의 모습을 철저히 격리시킴. 2) 시인의 모습은 철저하게 풍경과 격리되어 있어 보이지 않음. 2. 정도전(鄭道傳)의 「산중(山中)」山中新病起 稚子道衰客산속에서 새로운 병이 생기니 어린 아이 나보고 쇠하였다고 말하네. 學圃親鋤藥 移家手種松채마밭 기술을 배워 친히 호미질하고 약치고 집을 옮겨 손수 소나무 심었지. 暮鐘何處寺 野火隔林舂저물녘 종소리 울리니 어느 절인가? 들풀은 수풀 너머에서 활활 타오르네.領得幽居味 年來..
4.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1번에 등장한 정도전, 이숭인, 권근의 묘사 정도전, 이숭인, 권근이 평생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도전이 말했다. “북방에 눈이 막 휘날릴 때 가죽옷을 입고 준마에 올라타서 누런 사냥개를 끌고 푸른 사냥매를 팔뚝에 얹은 채 들판을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소.” 이숭인이 이렇게 말했다.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를 짓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라오.” 권근은 이렇게 말했다. “흰 구름이 뜰에 가득하고 붉은 햇살이 창에 비칠 때 따스한 온돌방에서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서 책 한 권을 들고 편안히 누워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부드러운 손으로 수를 놓다가 가끔 바느질..
11. 풍경 속의 시인 ① 시인이 시속으로 들어가거나 풍경만 묘사하거나 1. 서경시(敍景詩) 1) 감정은 배제하고 맑은 산과 나무만 포치(布置)한 시. 2) 서경시엔 인간세상의 티끌이 없어 이런 시를 읽으면 한여름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해짐. 2. 이숭인(李崇仁)의 「제승사(題僧舍)」 山北山南細路分 산은 여기저기에 있고 오솔길 나눠지는데 松花含雨落繽粉 송홧가루 비에 젖어 하늘하늘 진다. 道人汲井歸茅舍 스님 우물에서 물 길어 절로 돌아가고 一帶靑烟染白雲 한 줄기 푸른 안개 흰 구름을 물들이네. 1) 이 시는 그림을 보고 지은 것으로,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文章部)』엔 이 시를 보고 스승 이색이 칭찬하여 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음. 2)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시에 등장하지만..
③ 잠심(潛心)을 통한 섬세한 시 1. 정몽주와 원유(遠遊)1) 원유(遠遊)를 통해 호방의 미학으로 발전된 작품에선 소식(蘇軾)이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 ‘창을 비껴 메고 시를 읊조린다[橫槊賦詩].’고 했던 대장부의 웅걸찬 기상을 확인할 수 있음. 2) 정몽주는 뛰어난 시인이면서 걸출한 학자임. 3) 밖에선 호탕한 시를 지었지만, 물러나 방 안에 앉아서는 눈을 감고 사물의 진리를 보려 했음. 2. 정몽주(鄭夢周)의 「춘(春)」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봄비 가늘어 방울지지도 않는데 야밤에 은밀히 소리 들렸지. 雪盡南溪漲 草芽多少生 눈은 다 녹아 남쪽 계곡 불어나 풀과 새싹이 쑥쑥 나겠구나. 1) 관조의 자세로 생생(生生)의 이치를 담아냈으며 들리지 않는 가랑비의 빗소리를 들음. 2) 눈이 녹아 풀들을 돋게 ..
4. 정몽주(鄭夢周)의 고난1) 137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오다 12명이 익사했고 정몽주도 13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이듬해에 귀국함. 그 후로도 5번이나 더 중국을 다녀옴. 2) 1377년 왜구들이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을 송환하기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옴. 3) 사이가 나빴던 이인임이 나홍유가 왜구 근절을 외치다 구금된 적이 있기에 위험에 빠뜨리려 일본에 보낸 것임. 4) 정몽주는 두려운 기색도 없이 우두머리를 감복시켰고 고려 수백 명을 무사히 데리고 옴. 5. 정몽주(鄭夢周) 「홍무정사봉사일본작(洪武丁巳奉使日本作)」水國春光勳 天涯客未行물나라 일본의 봄빛은 환한데, 하늘가의 나는 움직이질 못해. 草蓮千里綠 月共兩鄕明풀과 연꽃이 천 리 푸르고 달은 두 나라를 함께 비추는데,遊說黃金盡 思..
② 원유(遠遊)를 통한 호방한 시 1. 정몽주(鄭夢周)의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定州重九登高處정주의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오르니,依舊黃花照眼明노란 국화는 예스러워 눈을 밝게 비추네.浦敍南連宣德鎭개펄은 남쪽으로 선덕진에 이어져 있고峯巒北倚女眞城봉우리는 북쪽으로 여진성에 기대었구나. 百年戰國興亡事백년 전쟁의 흥망사 속에萬里征夫慷慨情만 리로 원정을 떠난 사내의 강개스런 정.酒罷元戎扶上馬술자리 끝나 장군의 부축으로 말에 오르니, 淺山斜日照紅旌 산은 낮아 비낀 해는 붉은 정기를 비치네. 1) 타고난 높은 기상에 변방으로의 원유(遠遊)가 더해져 시를 더욱 호방하게 함. 2) 정포(鄭誧)의 「계미중구(癸未重九)」과 완전히 대조적인 기상을 보이며 정몽주에겐 변방에서도 국화가 보인다고 함. 定州重九登高處정..
10. 시의 뜻을 호방하게 하는 법 ① 부귀영화해야 호방한 시를 쓸 수 있다? 1. 호방한 스케일의 시를 쓸 수 있는 방법 1) 『맹자(孟子)』 「만장(萬章)」 하8의 얘길 통해 ‘詩格=人格’이란 생각이 퍼짐. 2) 성현(成俔)은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에서 “보통 사람으로 배우려는 이는 힘쓰고 애써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두렵게 하여 우환에 젖어들고 공부에 힘을 쓴다. 그런 후에야 쓸 만한 것을 얻어 문장을 짓는데 조탁한 것이 기이함에 힘쓰지만 그 기상은 얇고도 비근한 병폐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왕족과 양반은 그렇지가 않다. 사는 곳이 기를 움직이게 하고 기른 것이 몸을 움직이게 하여 거처하는 곳이 높고 보는 것이 원대하여 배움에 힘쓰질 않아도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업을 다듬으려 하지..
③ 제화시, 시와 그림이 서로를 상보하다 1. 제화시(題畵詩)에 논의 1) 청(淸) 방훈(方薰)의 「산정거화론(山靜居畵論)」에서 “높고 심원한 뜻과 생각은 그림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므로 시로 써서 이를 편다.”고 했음. 2) 발달: 당(唐) 때 두보ㆍ이백에 의해 성행함 ⇒ 원ㆍ명대에 성숙의 경지에 이름 ⇒ 당 후기 왕유(王維)에 이르러 시와 그림의 내면 관계가 밀접해지기 시작함 ⇒ 북송 시기 문인화가 발달하면서 제화시는 더욱 발전함 ⇒ 원(元)ㆍ명(明)대에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됨. 2. 이인로(李仁老) 「소상야우(瀟湘夜雨)」 一帶蒼波兩岸秋 한 줄기 푸른 물결, 양 옆 언덕엔 가을 風吹細雨灑歸舟 바람이 가랑비 불어 돌아가는 배를 씻기네. 夜來泊近江邊竹 밤에 와서 근처 강변 대나무숲에 정박하니, 葉葉寒聲摠..
② 그리기엔 부족하기에 시로 썼네 1. 강극성(姜克誠)의 「호당조기(湖堂朝起) / 호정조기우음(湖亭朝起偶吟)」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강의 해 늦도록 솟질 않고 아득히 십리까지 뻗힌 안개. 但聞柔櫓聲 不見舟行處 다만 부드러운 노 젓는 소리 들리나, 배 가는 곳 보이질 않누나. 1) 한강 동호의 정자에서 쓴 시로 홍만종(洪萬鍾)은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94에서 처음에 이 시가 왜 좋은지 몰랐다고 직접 경험한 후에는 달라졌다고 함[余初咀嚼不識其味. 嘗寓江亭, 一日早起開窓, 大霧漫空. 朝日韜輝, 不識行舟, 但聞戞軋之聲, 始覺其說景逼眞]. 2) 청(淸) 문인 심덕잠(沈德潛)은 『명시별재(明詩別裁)』에 「원포귀범(遠浦歸帆)」를 소개하며 ‘煙昏不見人, 隱隱數聲櫓’와 함께 새벽풍경을 표현한 것이 모두 그림으로는..
9.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① 시 속에 그림이 있다[詩中有畵] 1. 시중유화(詩中有畵):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의 시를 칭찬할 때 했던 말로, 그 이후로 여러 시평에서 쓰임 1)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51에서 정도전(鄭道傳)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대한 평가. 2)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62에서 김종직(金宗直)의 「장현촌가(長峴村家)」에 대한 평가. 3)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20의 평가 2. 김득신(金得臣)의 「용호(龍湖)/ 용산(龍山)」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흰 눈 속의 고목, 소나기 곁의 가을 산.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저물녘 강에서 풍랑 일어 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는 구나. 1) 정선흥(鄭善興)이란 문신이 이 시가 적힌 부채를 자주 보자 효종이 칭찬을 하고 어..
③ 서경(西京)과 관련 있는 한시들 1. 신광수(申光洙)의 「관서악부(關西樂府)」 朝天舊事石應知 하늘을 조회하던 옛 일 바위는 응당 알겠지. 故國滄桑物不移 옛 나라는 상전벽해했지만 물건은 바뀌질 않아 城下滿江明月夜 성 아래 물 가득한 대동강 달 밝은 밤에 豈無麟馬往來時 어찌 기린말 가서 오지 않는가? 1) 평양감사로 가는 채재공을 위해 제작한 작품. 2) 이 작품은 「관서악부」 중 65번째 것으로, 이색(李穡)의 「부벽루(浮碧樓)」를 바탕에 깔고 지은 것임. 3) 상전벽해를 겪어 고구려 수도 평양의 옛 모습은 전혀 남은 것이 없지만, 조천석이 있어 옛날의 영화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함. 4) 3연과 4연엔 이렇게 달 밝은 밤이 신선이 되어 간 동명왕이 혹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 것임. 이색의 정감에 자신을..
② 부벽루에서 쓴 이색과 신광수의 시 1. 예전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은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시를 지었으며 김극기(金克己)의 ‘오색 구름 속의 백옥루가 지상으로 날아와 천상의 놀이에 알맞은 듯[五色雲中白玉樓, 飛來地上稱天遊]’라는 시도 있음. 2. 이색(李穡)의 「부벽루(浮碧樓)」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기린 말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여 어디서 노시는가?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길게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읊조리니, 산을 절로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는구나. 1) 원(元)에서 공부하던 중 23살 때 잠시 귀국하여 개성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① 대동강과 유적지 1. 옛 노래에 담긴 대동강 1)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아아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2)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주소 없는 겉봉투에 너의 얼굴 그리다가 눈보라 치던 밤 달도 없던 밤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못 본 체하네, 못 본 체하네. 반겨주려마, 한 많은 대동강” 3) 이처럼 대동강은 분단 이래 실향민의 눈물이 어린 장소였음. 2. 대동강의 구조 및 이름 1) 구조: 남강ㆍ무진천ㆍ보통강ㆍ순화강 등과 평양에서 합쳐져 대천을 이룸. 2..
⑥ 만나지도 못하고 그저 애끓는 감정을 담은 시 1. 임제(林悌)의 「무어별(無語別)」 감상하기十五越溪女 歸來掩重門15세의 아름다운 처녀 부끄러워 말없이 이별하고선羞人無語別 泣向梨花月돌아와 겹문 닫아걸고 배꽃 같은 달 향해 눈물 짓네. 1) 16세기 후반 호탕한 삶을 살았던 임제의 정이 듬뿍 담긴 시.2) 청의 문인 왕사정(王士禎)이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수록하여 중국에까지 전파된 작품. 3) 말조차 건네지 못한 낭자의 마음을 하소연할 곳은 훤한 달밖에 없음. 4) 어린 처녀의 속마음을 매우 곡진하게 담아냄. 2. 강세황(姜世晃)의 「노상소견(路上所見)」 감상하기凌波羅襪去翩翩비단 버선 신고 사뿐사뿐一入重門便杳然한 번 중문에 들어가선 곧 정적만 흘러惟有多情殘雪在오직 다정한 정만 잔설에 남아屐痕留印短墻邊..
⑤ 미련을 담아내다 1. 사랑을 노래하는 시의 특징1) 사랑을 노래하려면 미련을 잘 묘사해야 함.2) 미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묘사할 때 명편이 됨. 2.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小樂府)」 감상하기浣紗溪上傍垂楊수양버들 드리운 개울가에서執手論心白馬郎손잡고 마음 얘기한 백마 탄 낭군.縱有連詹三月雨만약 섣달 동안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도指頭何忍洗餘香손끝에 남은 향기를 어찌 씻으랴. 1) 이제현은 원에서 성리학을 수용하여 퍼뜨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고려 후기에 유행하던 민간의 노래를 칠언절구로 번역하여 소개함.2) 수양버들 늘어진 개울에 가서 사랑을 맹세했는데, 님은 갔고 임의 향기가 나를 붙잡고 있다는 미련을 말함. 3. 이덕무(李德懋)의 「효발연안(曉發延安)」 감상하기不已霜鷄郡舍..
④ 눈물을 드리우지 않고 이별의 절절한 감정을 담아낸 시 1. 정포(鄭誧)의 「양주객관별정인(梁州客館別情人)」 감상하기五更燈影照殘粧3~5시에 등불 그림자에 지워진 화장 비추니,欲語別離先斷腸이별의 말 하고자 해도 먼저 애간장 끊어지네.落月半庭推戶出 지는 달 뜰에 반쯤 걸려 있을 때 문을 밀고 나가니,杏花疎影滿衣裳살구꽃의 성긴 그림자가 저고리에 가득하구나. 1) 정포가 황산강에서 여인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정인(情人)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정인과 양산 객관에서 하루 유숙하고 헤어질 때의 절절한 감정을 담아낸 시.2) 사랑을 노래한 우리나라 한시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힘. 3) ‘성장(盛粧)→잔장(殘粧)’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함으로 ‘잔(殘)’ 한 글자에 눈물은 감추되 이별의 절절한 감정을 모..
③ 정포의 시에 차운한 시들 1. 황산강과 색향(色鄕)1) 오랜 세월 황산강 일대는 번성을 누렸고 고려 시대엔 색향(色鄕)이었던 모양임. 2) 이곡(李穀)도 정포(鄭誧)의 「황산가(黃山歌)」에 차운하며 남녀의 정을 노래하며 곱게 단장한 여인을 싣고 화려한 배에서 노니는 질탕한 분위기를 그림. 2. 이의현의 「여래남경년(余來南經年)」 감상하기 良州勝觀亦云多양주에 명승지 또한 많다고 하니, 雙碧登來梵宇過쌍벽루에 올라보고 통도사를 지나야지. 別是黃江遊可樂 특별히 황산강의 놀이 즐길 만하니,女郞猶唱鄭誧歌여인네들 아직도 정포의 노래를 부르네. 1) 우의정 조상우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감사에 부임하지 못하고 파직되어 돌아오면서 지은 작품으로 40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인네들이 정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② 정포의 「황산가(黃山歌)」 1. 정포(鄭誧)가 중국으로 가기 전에 행적1) 울산과 양산, 동래에 마음을 붙임.2) 울산의 명승을 노래한 「울주팔경(蔚州八景)」, 동래의 풍물을 노래한 「동래잡시(東萊雜詩)」가 이때의 작품임. 2. 정포(鄭誧)의 「황산가(黃山歌)」 감상過雨霏霏濕江樹지나는 비 부슬부슬, 강의 나무 적시고,薄雲洩洩凝晴光엷은 구름 하늘하늘 맑은 빛에 엉기네.黃山江深不可渡황산강 깊어 건너질 못하고回望百里雲茫茫고개를 돌리니 백리의 구름이 뭉게뭉게, 江頭兒女美無度강머리 아녀자 아름다워 형언할 수가 없고臨流欲濟行彷徨강에 다다라 건너려 두리번거리네.鳴鳩乳燕春日暮봄날 저무는 때 비둘기 울고 제비 지저귀고落花飛絮春風香떨어지는 꽃, 흩날리는 버들개지로 봄바람 향기롭구나. 招招舟子來何所뱃사공을 불러 어디 곳..
7. 꽃그늘에 어린 미련 ① 울주ㆍ양산ㆍ동래에 시인들의 발길이 머물다 1. 황산강과 시인 1) 울주ㆍ양산ㆍ동래 부근은 천성산 자락을 뒤로 하고 황산강이 흐름. 2)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권상 33엔 ‘이 일대에 백성들의 집이 대나무 숲 사이에 가물가물 보이는데, 집집마다 남녀가 대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세금과 의식을 해결하는 가난한 마을이었다’고 적혀 있음. 3) 아름다운 황산강 일대에 누정이 일찍부터 발달했기에 시인이 이곳을 찾아 시를 많이 남김. 2. 황산강과 최치원, 김극기 1) 송담서원(松潭書院) 강 쪽에 있던 임경대(臨鏡臺)에서 최치원(崔致遠)이 시를 지었기에 최공대(崔公臺)라고도 불리게 됨. 2) 훗날 정중부의 난을 피해 이십대의 김극기(金克己)는 산천을 떠돌며 임경대에 이르렀고 최..
6. 가난한 시인의 말 ①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가? 궁한 사람이 시를 잘 쓰는가? 1.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1) 시인은 가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옛 사람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詩能窮人]”고 생각함. 2) 이규보(李奎報)는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지어 시마의 다섯 가지 병폐 중 마지막에 “네가 사람에게 붙으면 염병에 걸린 듯 몸이 더러워지고 머리가 봉두난발이 되며 수염이 빠지고 외모가 초췌해진다. 너는 사람의 소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사람의 가슴을 여위게 하니, 환란의 매개요 평화의 도적이다[汝著於人, 如病如疫, 體垢頭蓬, 鬚童形腊, 苦人之聲, 矉人之額, 耗人之精神, 剝人之胸膈, 惟患之媒, 惟和之賊].”라고 썼다. 2. 가난한 사람이 ..
5. 원숙과 참신의 시학 ① 역사 속의 라이벌 1. 정지상↔김부식의 문학적 자질 대결(비교: 한시미학산책) 侍中金富軾, 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時 兩人爭軋不相能. 世傳知常有,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之句, 富軾喜而索之, 欲作己詩, 終不許. 後知常爲富軾所誅, 作陰鬼. 富軾一日詠春詩, 曰: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忽於空中鄭鬼批富軾頰曰: “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富軾頗惡之. 後往一寺, 偶登厠, 鄭鬼從後握陰卵, 問曰: “不飮酒何面紅?” 富軾徐曰: “隔岸丹楓照面紅.” 鄭鬼緊握陰卵曰: “何物皮卵子?” 富軾曰: “汝父卵, 鐵乎?” 色不變. 鄭鬼握卵尤力, 富軾竟死於厠中. -『백운소설(白雲小說)』 7 2. 이인로↔이규보의 한시 창작법 대결 1) 이규보(李奎報)는 「답전리지논문서(..
4. 재창조의 시학 ① 김부식(金富軾)의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을 통해 김부식의 말년의 꿈을 들여다 보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세의 손님 이르지 못하는 곳에, 오르니 마음이 맑구나.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빛은 밤에 오히려 분명하네.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흰 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 홀로 감이 가볍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스스로 부끄러워하노라, 달팽이 뿔 위에서 반백 년 동안 공명 찾았으니, 1. 배경지식 1)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엔 김부식을 ‘살이 찌고 체구가 크며, 검은 얼굴에 눈이 튀어나옴’이라 표현함. 2) 노년에 접어든 김부식이 공문(空門)의 벗 혜소(惠素)와 자주 만나 시를 수창(酬唱)함 3) 감로사는 예성..
3. 시 속에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 ①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민가(民歌)를 끌어와 절창이 되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 풀빛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 보낸 남포엔 슬픈 노래 흐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의 물은 언제나 마를꼬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 걸. 1. 평양 부벽루에 당당히 걸려 있는 작품으로 중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을 지님(성수시화). 2. 이별은 봄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냄(죽었던 만물의 소생↔멀쩡히 있던 이의 사라짐): 2구에서 봄날 남포의 이별은 더욱 서러움. 3. 강엄(江淹)이 지은 「별부(別賦)」의 ‘봄풀 푸른색이고 봄물 푸른 물결인데 그대 보낸 남포에서 속상하는 걸 어찌할꼬[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傷如之何]’를 보고 ..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① 법에 맞는 한시, 율시의 정착 1. 한시의 시체 고시(古詩) 율시(律詩)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시 절구처럼 압운을 함 평측을 고름 2연과 3연엔 반드시 대(對)를 해야 함. 2. 율시의 정비 1) 중국에선 당나라 초엽에 율시가 정비됨. 2) 최초로 등장한 작품은 8세기에 쓴 김지장의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임. 하지만 6세기의 고구려 승려 정법사의 시가 율시에 근접해 있음. ② 잘 다듬어진 시를 보다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逈石直生空 平湖四望通 먼 바위 곧장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평평한 호수 네 방향으로 통하였네. 巖根恒灑浪 樹杪鎭搖風 바위 뿌리 항상 물결에 씻기고 나뭇가지 항상 바람에 흔들리지. 偃流還漬影 侵霞更上紅 물결에 누우니 도리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