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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하나’를 지향했던 헤겔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일상적 이해 방식은 사랑의 완성을 가족을 구성하는 데서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랑을 결혼이란 형식을 통해서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만약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에 실패하게 된다면,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일종의 미완성, 혹은 비극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런 일상적 이해를 낯설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헤겔【헤겔은 영원한 진리를 추구했던 철학에 역사성, 혹은 시간성을 도입했던 철학자이다. 그는 개인이나 사회도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 즉 변증법적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이해했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부정을 전제하는 것처럼 변증법은 부정의 논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변증법은 단순한 방법이..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1장 사랑 그리고 가족 이데올로기 생각하기 힘든 사랑 그리고 가족이라는 테마 종교, 국가, 심지어 주체마저도 철학이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철학의 힘이 있습니다. 철학은 자명하다고 전제되어온 모든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일종의 고별 의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철학의 날카로운 칼날을 가소롭다는 듯이 피하고 있는 영역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란 테마입니다. 물론 철학이 사랑 자체를 사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철학이 사랑을 우리로부터 충분히 낯설게 만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니 낯설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철학은 사랑이란 테마를 더욱 자명한 것으로, 마치 건드려서..
더 읽을 책들 루이 알튀세르, 『철학에 대하여』(서관모 · 백승욱 옮김, 서울: 동문선, 1997) 저자는 우발성의 유물론에 대한 도전적인 논문을 쓴 다음 이 논문에 대해 나바로(F, Navarro)라는 멕시코 철학자와 진지한 토론을 하는데, 이 책은 이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의 우발성의 유물론이 어떤 철학적 의의를 가지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동욱, 『차이와 타자』(서울: 문학과지성사, 2000) 현대철학의 쟁점이 차이와 타자라는 두 범주에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들뢰즈의 철학이 현대 프랑스 철학의 흐름에서 어떤 고유성을 지니는지를 해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들뢰즈가 강조했던 철학의 두 가지 이미지에 대한 매우 친절하고 문학적인 설명이 돋보입니다. 다니엘 벤사이드..
두 가지 사유의 이미지② 마지막으로 들뢰즈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이 문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그도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을 발견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리좀’은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친자 관계(filiation)를 이루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alliance)를 이루며, 오직 결연 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 존재한다(être)’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와(et) ……와(et)……’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 존재한다’라는 동사에 충격을 주고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충분하게 들어 있다.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두 가지 사유의 이미지 사실 동양철학에서 필연성의 철학과 우발성의 철학이 갈라서는 가장 극적인 장면은 동중서와 왕충의 대립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자(老子, 생몰연대 미상)【노자는 고대 중국의 가장 심오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의 근본에는 ‘도’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도를 인식하면, 인간이 세계 속에서 갈등과 대립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도의 인식이 모든 인간에게 제안된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군주에게만 한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사상은 81편의 철학시로 쓰인 『도덕경』에 압축적인 형식으로 실려 있다】와 장자(莊子, BC 369?~286?)【장자는 인간의 삶이 타자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찰했던 ..
필연성의 사유를 공격한 어느 동양철학자②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동중서가 필연성의 철학을 주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충(王充, 27~100)【왕충은 중국 후한 시대에 활동했던 탁월한 자연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이나 귀신설 같은 일체의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사유를 공격했다. 그가 모든 종교적인 사유를 공격할 때 취한 이론적 무기가 바로 우발성이란 관념이었다. 우발성이란 관념의 파괴력을 은폐하기 위해 주류 중국철학 전통은 아직도 그를 숙명론자라고 비난하면서 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사상은 『논형』이란 저서에 잘 드러나 있다】이라는 자연주의자가 또다시 중국에 태어납니다. 헤겔이 등장하자 맑스가 등장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게 말이죠. 어떤 사람의 품성은 어질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다. 그..
필연성의 사유를 공격한 어느 동양철학자 앞서 보았듯이 알튀세르는 서양철학사에 면면히 흐르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유 경향을 발견합니다. 그 하나가 필연성의 철학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발성의 철학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구분은 단지 서양철학의 흐름에서만 발견되는 것일까요? 분명 그렇지는 않습니다. 순자의 사유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동양철학에서도 방금 언급했던 두 가지 사유 흐름이 서로 대립하며 전개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비가 내리는 것 사이의 관계가 단지 우발적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뒤 같은 유학 사상가였던 동중서(董仲舒, BC 176~104)【동중서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로 유명한 한나라 때의 유학자이다. 천인감응설은 글자 그대로 하늘..
거꾸로 된 변증법을 바로 세우려는 맑스② 그렇다면 변증법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합’이라는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에 ‘정’과 ‘반’이라는 차이 나는 두 계기를 그 자체로 사유하자는 것, 나아가 이 두 계기의 마주침을 사유하자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맑스의 변증법은 ‘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과 ‘반’으로부터 출발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맑스의 바로 세워진 변증법이란 ‘우발성의 변증법’ 혹은 ‘마주침의 변증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겠지요. 맑스의 『자본론』 이란 바로 이렇게 마주침의 변증법에 입각해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생산물의 교환은 서로 다른 가족, 부족 또는 공동체가 접촉하게 되는 지점에서 ..
거꾸로 된 변증법을 바로 세우려는 맑스 인당수에 심청을 희생물로 바쳤던 뱃사람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 절실하게 기우제를 지냈던 고대 중국인들! 이들은 알튀세르가 ‘마주침의 철학’이라고 부른 사유 전통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주친 사건의 우발성을 두려워 합니다. 인당수의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두려워하고 끝나지 않을 듯한 가뭄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들은 무의미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점점 몰입합니다. ‘신이 존재하고 계실 거야. 그리고 그 신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만약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신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이 세계에는 어떤 마주침도, 사건이란 것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알튀세르② 그런데 이 사유의 흐름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은 바로 에피쿠로스입니다. 그는 우발성의 철학, 마주침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숙고했던 최초의 사상가이니까요. 그럼 에피쿠로스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튀세르의 말을 통해 잠시 들어보도록 하지요.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자는 항상 떨어진다. 이는 세계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세계의 모든 요소는 어떤 세계도 있기 이전인 영원한 과거로부터 실존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는 또한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Sens)도, 또 어떤 원인(Cause)도, 어떤 목적(Fin), 어떤 근거(Raison)나 부조리(Déraison)도 실존하지 않..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알튀세르 순자가 죽고 2000여 년이 지난 뒤, 프랑스에서는 알튀세르【알튀세르는 사유나 문체에 있어서 가장 탁월했던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의 철학적 목표는 맑스의 사유에 ‘철학’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그가 스피노자, 루소, 마키아벨리 등을 철학적으로 다시 읽어내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궁극적으로 그가 맑스에게 부여하고자 했던 ‘철학’은 헤겔과는 다른 반목적론적인 변증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 『맑스를 위하여』, 『철학에 대하여』 등이 있다】라는 탁월한 철학자가 태어납니다. 그는 맑스(K. Marx, 1818~1883)의 정치경제학에 철학을 부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위대한 정치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 정신병 발작으로 자신의 아내를 ..
인당수에 내리던 비를 상상하며② 인당수의 비와 심청의 희생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우발성’을 주장하는 입장인 반면 뱃사람들은 ‘필연성’을 주장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필연성을 믿는 것이 초래할 수도 있는 일종의 완고함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비와 심청 사이에는 ‘우발성’이 있을 뿐이라고 충고하더라도, ‘필연성’을 믿고 따르는 뱃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의 확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심청을 인당수에 던졌는데 비가 전혀 그치지 않았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우리는 즉각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것 보세요. 인당수의 비와 심청의 희생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잖아요.” 그러나 뱃사람들은 양자 사이의 관계가 우발적이라는 우리의 생각에 조금도 동요되지 ..
3장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 인당수에 내리던 비를 상상하며 마침내 인당수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바람마저 강하게 불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를 뒤섞어버리는 폭풍우가 배를 덮치려고 할 것입니다. 심청을 태운 배는 15일에 출항했습니다. 인당수의 폭풍우를 잠재우기 위해서 뱃사람들은 이미 희생물도 준비해두었습니다. 심청이 바로 그 희생물이지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삼백 석의 공양미가 필요했던 그녀는 자진해서 희생물로 배를 탔던 것입니다. 이제 마침내 그녀가 배에서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더 난폭해진 폭풍우가 그녀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청은 비를 맞으며 뱃전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죽는다는 것이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의 희..
더 읽을 책들 버트런드 러셀, 『철학의 문제들』 (박영태 옮김, 서울: 이학사, 2000) 지금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철학 개론서입니다. 러셀 특유의 간명하고 분명한 문체가 장점인 이 책은 좁게는 현대 영미 철학 개론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넓게는 철학하기가 무엇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른스트 투겐트하트·우슬라 볼프, 『논리-의미론적 예비학』(하병학 옮김,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9) 논리학은 단순히 형식적인 추론 규칙을 탐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 지평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나아가 이 책은 ‘논리 의미론’이란 지평에서 서양철학의 논리학적 전통을 요령 있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이경신 옮김, 서울: 민음사, 19..
철학과 인문학적 경험 철학은 ‘지금-여기’를 비판적으로 다루지만, 또한 동시에 아직은 없는 세계를 꿈꾸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여기’를 문제 삼기보다 여러모로 정당화하기에만 급급한 제도권의 철학, 혹은 ‘지금-여기’를 전혀 숙고하지 않고 ‘아직은 없는’ 세계만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철학, 이 모두가 거짓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같은 매우 날카로운 능선을 걸어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오른쪽에는 ‘시간’이라는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고, 왼쪽에는 ‘영원’이란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능선을 걷다보면, 여러분은 자신만의 철학, 그 정상부에 오를 수 있게 될 겁니다. 마치 우리가 험준한 길을 걸어..
철학이란 무엇인가?② 자, 그럼 이제 문제의 상황에 좀 더 접근해봅시다. 들뢰즈는 ‘반시대성’이 ‘시간’과 ‘영원’보다 더 심오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시대성’이 ‘시간’보다 심오한 이유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앞에서 살펴보았던 비만한 여성의 삶과 비교해봅시다. ‘시간’이란 특정한 시기, 즉 이 경우는 ‘그녀가 비만했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니체의 반시대성이란, 그녀의 비만함이 단지 특정한 시간에만 가능했던 제한적인 것임을 폭로하고, 그녀가 날씬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녀는 ‘날씬함’을 지향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자신이 비만했던 ‘시간’을 이제 과거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비만함을 당당하게 거부함으로써 비만했던 때를 ..
철학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성이란 ‘어떤 주장에 대해 이유나 근거를 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의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근거를 제시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레셔라면 그 ‘누구’를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 즉 ‘우리’라는 이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보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철학이란, 공동체의 삶의 규칙, 즉 일반성의 원리를 수용하는 한에서만 가능한 것이 될 겁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어진 삶의 규칙에 입각해 어떤 주장을 정당화하고 설득하는 논쟁의 기술 정도를 철학이라고 부르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성을 ‘공동체가 인정할 만한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는 능..
반시대적이어야만 하는 철학② 가령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에 갔다고 해봅시다. 이때 여러분은 지금처럼 삼종지도는 전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주장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목숨을 내놓는 결단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그런데도 여러분이 삼종지도를 거부하는 이런 위험한 주장을 내놓는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조선 시대라는 일반성을 벗어난 경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건너간 여러분이 삼종지도를 비판했을 때, 그 주장에 동조하는 어떤 조선 시대 사람을 만났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이야 이미 조선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었지만, 도대체 ..
반시대적이어야만 하는 철학 특정 공동체에 속한 어떤 사람과 논쟁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주장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방을 전혀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나 근거를 제시한다면, 일체의 대화나 논쟁이란 것이 모두 무의미해질 겁니다. 따라서 모든 논쟁에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은 ‘우리’라는 맥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레셔의 주장을 음미해볼 가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홀로 사유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라는 것, 즉 특정한 공동체를 매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진정 그렇다면, 공동체가 수용하기 힘든 새로운 주장, 즉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란 전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 ..
이성의 의미와 한계 어떻습니까? 삼단논법에도 나름대로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철학적 사유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선 어떤 것에 대해 의미 있는 주장을 내세웁니다. 만약 이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주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어떤 근거를 찾는 것이니까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삼단논법을 최초로 체계화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바로 이런 문제점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시다. 이제 주어진 문제에 응답하기 위한 삼단논법이 적합하게 제공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찾을 것인지 그리고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적합한 출발점(전제)을 파악할 것인지를 서술해야 한다. 우리는 삼단논법의 구조에 대해 ..
삼단논법의 숨겨진 비밀②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사정은 정반대이지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머릿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어떤 구체적인 생각 하나를 떠올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익숙한 현상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봅시다. “내 생각에 소크라테스는 분명 죽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내 주장에 동의해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생각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이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우리의 생각은 증명..
2장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삼단논법의 숨겨진 비밀 여러분은 철학이란 학문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학문, 무엇인가 심오하기는 한 것 같지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학문, 삶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현학적인 학문, 배우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는 고급 교양……. 철학에 대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마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몇은 과거에 철학을 공부해보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혹은 앞으로 어떤 계기로 인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어떤 이유로든 철학을 좀 제대로 배워보려고 시도하자마자, 여러분은 논리학(logic)이라는 학문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흔히들 철학이 ..
22화: 김진사, 시의 종장(宗匠)을 평하다 大君把盃而問曰: “古之詩人, 孰爲宗匠?” 進士曰: “以小子所見言之, 李白天上神仙, 長在玉皇香案前, 而來遊玄圃, 餐盡玉液, 不勝醉興, 折得萬樹琪花, 隨風雨散落人間之氣像也. 至於盧王, 海上仙人, 日月出沒, 雲華變化, 滄波動搖, 鯨魚噴薄, 島嶼蒼茫, 草樹薈鬱, 浪花菱葉, 水鳥之歌, 蛟龍之淚, 悉藏於胸襟, 此詩之造化也. 孟浩然音響最高, 此學師曠, 習音律之人也. 李義山學得仙術, 早役詩魔, 一生編什, 無非鬼語也. 自餘紛紛, 何足盡陳.” 해석 大君把盃而問曰: “古之詩人, 孰爲宗匠?” 대군은 잔을 들면서 물었습니다. “옛날 시인의 누구를 종장(宗匠)이라 하나요?” 進士曰: “以小子所見言之, 李白天上神仙, 진사가 답했습니다. “소인의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이백(李白)은 천상의..
47화: 자란을 믿고 따르겠다는 4명의 궁녀들 紫鸞曰: “從之者半, 不從者半, 事不諧矣.” 欲起而還坐, 更探其意, 或欲從之, 而以兩言爲恥. 紫鸞曰: “天下之事, 有正有權, 權而得中, 是亦正矣. 豈無變通之權, 而膠守前言乎.” 左右一時從之. 紫鸞曰: “余非好辯, 爲人謀忠, 不得不爾.” 飛瓊曰: “古者蘇秦, 使六國合從, 今紫鸞能使五入承順, 可謂辯士.” 紫鸞曰: “蘇秦能佩六國相印, 今吾以何物贈之乎?” 金蓮曰: “合從者, 六國之利也. 今此承順, 有何所利於五人乎?” 因相對大笑. 紫鸞曰: “南宮之人皆善, 而能使雲英復繼垂絶之命, 豈不拜謝?” 乃起而再拜, 小玉亦起而拜. 紫鸞曰: “今日之事, 五人從之, 上有天, 下有地, 燈燭照之, 鬼神臨之, 明日, 豈有他意乎?” 乃起拜而去, 五人皆拜送于中門之外. 紫鸞歸於妾, 妾扶壁而起, ..
46화: 소옥은 운영을 따르기로 하다 小玉曰: “妾旣許諾, 三人之志, 旣已順矣, 豈可半塗而廢乎. 設或事泄, 雲英獨被其罪, 他人何與焉哉. 妾不爲再言, 當爲雲英死之.” 해석 小玉曰: “妾旣許諾, 三人之志, 소옥이 말했다. “나는 이미 허락했고 세 사람의 뜻도 旣已順矣, 豈可半塗而廢乎. 이미 따르기로 했으니 어찌 중도에 폐기하겠는가? 設或事泄, 雲英獨被其罪, 설혹 일이 누설되어 운영이 홀로 죄를 당하더라도, 他人何與焉哉.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치겠는가? 妾不爲再言, 當爲雲英死之.” 나는 다시 말하지 않고 마땅히 운영을 위하여 죽으리다.” 인용 목차 전문 1화: 수성궁과 근처 모습의 묘사 2화: 술기운에 류영 소동파 시를 읊다 3화: 류영, 술 취한 채 이상한 기척을 느끼다 4화: 함께 모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45화: 운영의 상사병에 대한 간절한 이야기 雲娘答曰: “不幸有疾, 朝夕將死. 妾之微命, 死無足惜, 而九人之文章才華, 日就月長, 他日, 佳篇麗什, 聳動一世, 而妾不及見矣, 是以悲不能禁.” 其言頗極悽切, 妾爲之下淚, 到今思之, 其疾實在於所思也. 嗟呼! 紫鸞, 雲娘之友也. 欲以垂死之人, 置之於天壇之上, 不亦難哉. 今日之計, 若不得成, 則泉壤之下, 死不暝目, 怨歸南宮, 其有旣乎? 『書』曰: “作善降之百祥, 不善降之百殃” 今此之論, 善乎? 不善乎?” 해석 雲娘答曰: “不幸有疾, 朝夕將死. 운영이 말했다. “불행히 병이 있어 조석으로 죽을 듯하다. 妾之微命, 死無足惜, 나의 미미한 목숨이야 죽어 아까울 게 없지만 而九人之文章才華, 日就月長, 아홉 명의 문장과 재화가 일취월장하니, 他日, 佳篇麗什, 聳動一世, 다른..
44화: 운영과의 인연에 대한 비경의 발언 飛瓊泣把羅帶, 强留之, 以鸚鵡盃, 酌雲乳勸之, 左右皆飮. 金蓮曰: “今夕之會, 務在從容, 而飛瓊之泣, 妾實悶之.” 飛瓊曰: “初在南宮時, 與雲英交道甚密, 死生榮辱, 若與同之, 今雖異居, 寧忍忘之. 前日, 主君前問安時, 見雲英於堂前, 纖腰瘦盡, 容色憔悴. 聲音細縷, 若不出口. 起拜之際, 無力仆地, 妾扶而起之, 以善言慰之.” 해석 飛瓊泣把羅帶, 强留之, 비경이 울면서 비단허리띠를 잡고 억지로 만류하고, 以鸚鵡盃, 酌雲乳勸之, 左右皆飮. 앵무잔에다 유하주를 따르고 권하여 좌우에서 모두 마셨습니다. 金蓮曰: “今夕之會, 務在從容, 금련이 말했다. “오늘 저녁 모임은 힘써 조용히 해야 하는데, 而飛瓊之泣, 妾實悶之.” 비경의 울음소리에 나는 참으로 괴롭다.” 飛瓊曰: “..
43화: 금련마저 구설수가 날까 두려워하며 완사행사에 빠지겠다고 하다 金蓮曰: “今夜之論, 終不歸一, 我且穆卜.” 卽展『羲經』而占之, 得卦解之曰: “明日, 雲英必遇丈夫矣. 雲英容貌擧止, 似非人世間者也. 主君傾心已久, 而雲英以死拒之, 無他故矣, 不忍負夫人之恩也. 主君之威令雖嚴, 而恐傷雲英之身, 故不敢近之. 今舍此寂寞之處, 而欲往彼繁華之地, 遊俠少年見其色, 則必有喪魂欲狂者. 雖不能相近, 而指點送目, 斯亦辱矣. 前日, 主君下令曰: ‘宮女出門, 外人之名, 其罪皆死.’ 今此之行, 妾不與焉.” 紫鸞知事不儕, 憮然不樂, 方欲辭去. 해석 金蓮曰: “今夜之論, 終不歸一, 금련이 말했다. “오늘밤 의론은 끝내 결론을 못 냈으니, 我且穆卜.” 나는 또한 화목하게 될까 점 치리라.” 卽展『羲經』而占之, 得卦解之曰: 그리고 곧..
42화: 완사행사에 빠지겠다는 보련의 발언 寶連曰: “言者文身之具, 謹與不謹, 慶殃隨之. 是故, 君子愼之, 守口如甁. 漢時, 丙吉張相如, 終日不語, 而事無不成, 嗇夫喋喋利口, 而張釋之, 秦詆之. 以妾觀之, 紫鸞之言, 隱而不發; 小玉之言, 强而勉從; 芙蓉之言, 務在文飾, 皆不合吾意, 今此之行, 妾不與焉.” 해석 寶連曰: “言者文身之具, 보련이 말했다. “말이란 문신하는 도구와 같아서, 謹與不謹, 慶殃隨之. 삼가느냐 삼가지 않느냐에 따라 경사와 재앙이 따른다. 是故, 君子愼之, 守口如甁. 이러므로 군자는 이를 삼가 입지키기를 병(甁)과 같이해야 한다. 漢時, 丙吉張相如, 한(漢) 나라 때에 장상여(張相如)는 終日不語, 而事無不成, 종일 말하지 않아도 일을 이루지 못함이 없었고, 嗇夫喋喋利口, 而張釋之, 秦詆..
41화: 부용이의 딴지걸기 芙蓉曰: “凡事心定, 上言未定, 兩人爭之, 終夜未決, 事不順矣. 一家之事, 主君不知, 而僕妾密議, 心不忠矣. 日間所爭之事, 宵未半而屈之人, 人不信矣. 且淸湫玉川, 無處不有, 而必往城祠, 似不宜矣. 匪懈堂前, 水淸石白, 每歲浣洗於此, 而今欲所轍, 亦不宜矣. 一擧而有此五失, 妾不從命.” 해석 芙蓉曰: “凡事心定, 上言未定, 부용이 말했다. “무릇 일이란 마음을 결정해야 하는데, 먼저 정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여 兩人爭之, 終夜未決, 事不順矣. 두 사람이 다투니 일이 순조롭지 않겠구나. 一家之事, 主君不知, 而僕妾密議, 心不忠矣. 한 집안의 일을 대군도 모르게 우리들끼리 몰래 의논하니 마음이 불충하구나. 日間所爭之事, 宵未半而屈之人, 人不信矣. 낮에 다투던 일을 밤이 반도 안 가서 굴..
40화: 자란의 가슴 절절한 얘기에 소옥이도 따르기로 하다 小玉起而謝曰: “我燭理未瑩, 不及於君遠矣. 初不許城內者, 城中素多無賴俠客之徒, 慮有意外强暴之辱, 故疑之, 今汝能使余, 不遠而復通. 自今以後, 雖白日昇天, 而吾可從之; 雖憑河入海, 而亦可從之. 所謂因人成事, 而及其成功則一也.” 해석 小玉起而謝曰: “我燭理未瑩, 不及於君遠矣. 그러자 소옥이 일어나 사례하며 말했다. “내가 밝은 이치가 어두워, 너의 원대함에 미치지 못했구나. 初不許城內者, 城中素多無賴俠客之徒, 처음에 성 안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성 안에는 본디 무뢰한 협객의 무리가 많아 慮有意外强暴之辱, 故疑之, 뜻밖에 강포한 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그 점을 의심하였는데, 今汝能使余, 不遠而復通. 너는 나로 하여금 멀어지지 않도록 하고 다시 소통하게 ..
39화: 빨래터를 정하기 위한 궁녀들의 설전 – 궁녀이기에 말할 수 없었던 불행 其夜, 紫鸞曰: “南宮五人中, 小玉主論, 我以奇計, 可回其意.” 以玉燈前導, 至南宮, 金蓮喜迎曰: “一分西宮, 如隔秦楚, 不意今夕玉體左臨, 深謝厚意.” 小玉曰: “何謝之有? 此乃說客也.” 紫鸞歛袵正色曰: “他人有心, 予忖度之, 其子之說歟?” 小玉曰: “西宮之人, 欲往昭格署洞, 而我獨堅執. 故汝中夜來訪, 其謂說客, 不亦宜乎.” 紫鸞曰: “西宮五人中, 吾獨欲往城內也.” 小玉曰: “獨思城內, 其何意哉?” 紫鸞曰: “吾聞昭格署洞, 乃祭天星之處, 而洞名三淸云. 吾徒十人, 必是三淸仙女, 誤讀『黃庭經』, 謫下人間. 旣在塵寰, 則山家野村, 農墅漁店, 何處不可? 而牢鎖深宮, 有若籠中之鳥, 聞黃鸝而歎息, 對綠楊而歔欷. 至於乳燕雙飛, 栖鳥兩眠,..
38화: 빨래터를 정하려는 남궁과 서궁 사람들의 다툼 于時, 旅鴈南飛, 玉露成團, 淸溪浣紗. 正當其時. 欲與諸女, 牢定日期, 而論議甲乙, 未定浣濯之所. 南宮之人曰: “淸溪白石, 無踰於蕩春臺下.” 西宮之人曰: “昭格署洞泉石, 不下於門外, 何必舍邇而求諸遠乎.” 南宮之人, 固執不許, 未決而罷. 해석 于時, 旅鴈南飛, 玉露成團, 곧 기러기 떼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옥이슬이 둥그러지면 , 淸溪浣紗. 正當其時. 맑은 시냇물에 빨래를 해왔는데, 정히 그 때를 당하였습니다. 欲與諸女, 牢定日期, 여러 궁녀들과 날짜를 정하려 했지만 而論議甲乙, 未定浣濯之所. 의론이 분분하여 빨래할 장소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南宮之人曰: “淸溪白石, 無踰於蕩春臺下.” 남궁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맑은 시내와 흰 돌로 탕춘대(蕩春臺) 아래..
37화: 사실을 알고 놀려먹는 비취 翡翠微聞其語, 佯若不知, 而語妾曰: “汝初來時, 顔色如梨花, 不施鉛粉, 而有天然綽約之恣, 故宮中之人, 以虢國夫人稱之. 比來容色減舊, 漸不如初, 是何故耶?” 妾答曰: “稟質虛弱, 每當炎節, 則例有署渴之病, 梧桐葉落, 繡幕生凉, 則自至稍蘇矣.” 翡翠賦一詩戱贈. 無非翫弄之態, 而意思絶妙, 妾奇其才而羞其弄. “荏苒數月 節屬淸秋 凄風夕起 細菊吐黃 草虫歛聲 皓月流光 妾知西宮之 人已不可隱” 해석 翡翠微聞其語, 佯若不知, 而語妾曰: 비취는 은밀히 그 말을 듣고 모르는 채 연기하다가 저에게 말했답니다. “汝初來時, 顔色如梨花, “너는 처음 궁에 왔을 때에는, 안색이 배꽃 같아서 不施鉛粉, 而有天然綽約之恣, 분을 바르지 않아도 천연미가 있기 때문에 故宮中之人, 以虢國夫人稱之. 궁인들이 ..
36화: 자란이 알려준 방법 一夕, 紫鸞密言于妾曰: “宮中之人, 每歲仲秋, 浣紗於蕩春臺下之水, 仍說盃酌而罷. 今年則設於昭格署洞, 而往來尋見其巫, 則此第一良策.” 妾然之, 若待仲秋, 度一日如三秋. 해석 一夕, 紫鸞密言于妾曰: 어느 날 저녁에 자란이 은밀히 제게 말했습니다. “宮中之人, 每歲仲秋, “궁중의 사람들은 매년 중추절이면 浣紗於蕩春臺下之水, 仍說盃酌而罷. 탕춘대(蕩春臺) 아래 물에서 빨래를 행하여 주연을 열려. 今年則設於昭格署洞, 금년에는 아마 소격서동(昭格署洞)에 설치했다면 而往來尋見其巫, 則此第一良策.” 오가다 그 무녀를 찾는 것이 제일의 상책이야.” 妾然之, 若待仲秋, 度一日如三秋. 저는 이 말에 동의하여 중추절을 기다렸는데 하루가 세 번의 가을 같았습니다. 인용 목차 전문 1화: 수성궁과 근..
35화: 서궁으로 가게 된 운영, 어떻게 김 진사를 만날까 一日, 大君呼翡翠曰: “汝等十人, 同在一室, 業不專一, 當分五人置之西宮.” 妾與紫鸞ㆍ銀蟾ㆍ玉女ㆍ翡翠, 卽日移焉. 玉女曰: “幽花細草, 流水芳林, 正似山家野庄, 眞所謂讀書堂也.” 妾答曰: “旣非舍人, 又非僧尼, 而鎖此深宮, 眞所謂長信宮也.” 左右莫不嗟惋. 其後, 妾欲作一書, 以致意於進士, 以至誠事巫, 請之甚懇, 而終不肯來, 盖不無挾憾於進士之無意於渠也. 해석 一日, 大君呼翡翠曰: 하루는 대군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비취를 불러 말하셨습니다. “汝等十人, 同在一室, “너희 열 사람이 한 방에 있으면 業不專一, 當分五人置之西宮.” 학업에 방해가 되니, 다섯 명은 서궁(西宮)에 두기로 하겠다.” 妾與紫鸞ㆍ銀蟾ㆍ玉女ㆍ翡翠, 卽日移焉. 그래서 저와 자란, 은..
34화: 김진사의 맘을 알게 된 운영이의 애끓는 마음 妾覽罷, 聲斷氣塞, 口不能言, 淚盡繼血. 隱身於屛風之後, 唯畏人知. 自是厥後, 頃刻不忘, 如癡如狂, 見於辭色, 主君之疑, 人言之怪, 實不虛矣. 紫鸞亦怨女, 及聞此言, 含淚而言曰: “詩出於性情, 不可欺也.” 해석 妾覽罷, 聲斷氣塞, 저는 읽기를 마치니 소리는 끊어지고 기운은 막혀 口不能言, 淚盡繼血. 입으로 말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하자 피눈물이 이어졌습니다. 隱身於屛風之後, 唯畏人知. 다만 병풍 뒤에 몸을 감추고 오직 사람이 알까하여 두렵기만 했습니다. 自是厥後, 頃刻不忘, 如癡如狂, 그 후로부터는 세월 가는 줄도 잊고 미친 듯 설친 듯하여 見於辭色, 主君之疑, 말과 안색에 드러나니 대군의 의혹함이나 人言之怪, 實不虛矣. 타인들의 소문이 괴이함도 실로..
33화: 무녀가 운영에게 편지를 전해주다 巫持入宮門, 則宮中之人皆怪其來, 巫權辭以對. 乃得間目, 引妾于後庭無人處, 以封書授之. 妾還房拆而視之. 其書云: “自一番目成之後, 心飛魂越, 不能定情, 每向城西, 幾斷寸腸. 曾因壁間之傳書, 敬承不忘之玉音, 開未盡而咽塞, 讀未半而淚滴濕字. 自是之後, 寢不能寐, 食不下咽, 病入膏盲, 百藥無效. 九原可見, 唯願溘然而從. 蒼天俯憐, 神鬼黙佑, 倘使生前, 一洩此恨, 則當紛身磨骨, 以祭于天地百神之靈矣. 臨楮哽咽, 夫復何言, 不備謹書.” 書下復有七韻一詩云: “樓閣重重掩夕霏 樹陰雲影摠依微 落花流水隨溝出 乳燕含泥趁檻歸 倚枕未成蝴蝶夢 回眸空望鴈魚稀 玉容在眼何無語 草緣鸞啼淚濕衣” 해석 巫持入宮門, 則宮中之人皆怪其來, 무녀는 편지를 가지고 수성궁으로 들어가니 궁중의 사람들도 무녀가 온 ..
32화: 김진사의 침착한 마음에 무녀도 도와주기로 하다 巫卽就靈座, 拜于神前, 搖鈴祝說, 遍身寒戰, 頃之. 動身而言曰: “郎君誠可怜也. 以齟齬之策, 欲遂其難成之計, 非但其意不成, 未及三年, 其爲泉下之人哉.” 進士泣而謝曰: “巫雖不言, 我亦知之. 然中心怨結, 百藥未解. 若因神巫, 幸傳尺素, 則死亦榮矣.” 巫曰: “卑賤巫女, 雖因神祀, 時或出入, 而非有招命, 則不敢入. 然爲郎君, 試一往焉.” 進士自懷中出一封書, 以贈曰: “愼毋枉傳, 以作禍機.” 해석 巫卽就靈座, 拜于神前, 무녀도 곧 영좌에 나가 신에게 배례하고 搖鈴祝說, 遍身寒戰, 頃之. 방울을 흔들며 축설하니 몸엔 한기가 잠깐 동안 머물렀다. 動身而言曰: “郎君誠可怜也. 그러고선 몸을 움직여 말했습니다. “낭군은 정말 가련합니다. 以齟齬之策, 欲遂其難成之..
31화: 자신에게 마음을 둔 무녀를 물리 친 김진사 巫見進士容貌脫俗, 中心悅之. 而連日往來, 不出一言. 意謂年少之人, 必以羞澁不言. 我先以意挑之, 挽留繼夜, 要以同枕. 明日, 沐浴梳洗, 盡態凝粧, 多般盛飾. 布滿花氈瓊瑤席, 使小婢坐門外候之. 進士又至, 見其容飾之華, 鋪陳之美, 中心怪之. 巫曰: “今夕何夕? 見此至人.” 進士意不在焉, 不答其語, 愀然不樂. 巫怒曰: “寡女之家, 年少之男, 何往來之不憚煩!” 進士曰: “巫若神異, 則豈不知我來之意乎?” 해석 巫見進士容貌脫俗, 中心悅之. 무녀는 진사의 용모가 탈속적인 것을 보고 마음속에서 정염이 타올랐습니다. 而連日往來, 不出一言. 그러나 진사가 매일 와도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은, 意謂年少之人, 必以羞澁不言. ‘아직 연소하기에 반드시 부끄러워 말하지 않는 것’이..
30화: 편지를 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무녀를 찾아가다 聞有一巫女, 居在東門外, 以靈異得名, 出入其宮中, 甚見寵信. 進士訪至其家, 則其巫年未三旬, 姿色殊美, 早寡, 以淫女自處. 見進士至, 盛備酒饌, 而待之甚厚. 進士把盃不飮曰: “今日有忙迫之事, 明日再來矣.” 翌日又往, 則亦如之. 進士不敢開口, 但曰: “明日又再來矣.” 해석 聞有一巫女, 居在東門外, 그런데 진사는 우연히 한 무녀(巫女)가 동문밖에 사는데, 以靈異得名, 出入其宮中, 甚見寵信. 영험하기로 이름이 높아 자주 수성궁에 출입하면서 대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進士訪至其家, 진사가 무녀의 집을 심방했는데 則其巫年未三旬, 姿色殊美, 무녀는 나이가 삼십을 넘진 않았으며 자색이 아름다웠습니다. 早寡, 以淫女自處. 그러나 일찍이 과부가 되어..
29화: 운영의 맘을 알게 된 김진사는 괴로워만 지네 拆而視之, 悲不自勝, 不忍釋手, 思念之情, 倍於曩時, 如不能自存. 卽欲答書以寄, 而靑鳥無憑, 獨自愁歎而已. 해석 拆而視之, 悲不自勝, 不忍釋手, 진사는 편지를 열어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고, 思念之情, 倍於曩時, 如不能自存. 그리워하는 정은 지난날보다 배가 되어 스스로 보존할 수 없는 듯했다. 卽欲答書以寄, 而靑鳥無憑, 곧 제게 답서를 전하려 하였지만 청조(靑鳥)【靑鳥: 즉 전설적인 선녀인 西王母의 사신으로, 보통 임금의 사신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漢나라 班固의 『漢武故事』에 “홀연히 푸른 새 한 마리가 서방에서 날아와 전각 앞에 내려앉자, 상이 동방삭에게 물으니, 동방삭이 서왕모가 오려는 모양이라고 대답하였는데, 과연 얼마..
28화: 기회를 엿보다 전한 운영의 마음을 받아들다 坐客皆歛膝而敬. 進士以年少儒生, 坐於末席, 與內只隔一壁. 夜已將闌, 衆賓大醉. 妾穴壁作孔而窺之, 進士亦知其意, 向隅而坐. 妾以封書, 從穴投之, 進士拾得歸家. 해석 坐客皆歛膝而敬. 좌중은 모두 무릎을 가다듬고 이 말을 공경하였습니다. 進士以年少儒生, 坐於末席, 진사는 나이 어린 유생이었기에 말석에 앉았는데, 與內只隔一壁. 제가 있던 안쪽과는 다만 한 벽의 사이였습니다. 夜已將闌, 衆賓大醉. 어느덧 밤도 야심하고 문객들은 모두 취하였습니다. 妾穴壁作孔而窺之, 저는 벽에 구멍을 내고 엿보고 있었는데, 進士亦知其意, 向隅而坐. 진사도 또한 그 뜻을 알고 구석을 향하여 앉았습니다. 妾以封書, 從穴投之, 이때 저는 편지를 벽 틈으로 던졌는데 進士拾得歸家. 진사는 ..
27화: 김진사의 시를 본 묵객들의 초대로 다시 찾아오다 其夜月夕, 大君開酒大會, 賓客咸稱進士之才, 以二詩示之. 俱各傳觀, 稱贊不已, 皆願一見. 大君卽送人馬請之. 俄而, 進士至而就坐, 形容癯瘦, 風槪消沮, 殊非昔日之氣像. 大君慰之曰: “進士未憂楚之心, 而先有澤畔之憔悴乎?” 滿坐大笑. 進士起而謝曰: “僕以寒賤儒生, 猥蒙進士之寵眷, 福過災生, 疾病纏身, 食飮專廢, 起居須人, 今承厚招, 扶曳來謁矣.” 해석 其夜月夕, 大君開酒大會, 그런데 어느 날 달밤에 대군이 주대회를 열어 문객들을 청하여 賓客咸稱進士之才, 以二詩示之. 빈객이 다 진사의 시재를 칭찬하며 진사의 시 두 수를 문객들에게 보였습니다. 俱各傳觀, 稱贊不已, 皆願一見. 모두 각각 전달하며 보며 칭찬을 그치질 않았고 모두 진사를 한번 보기를 원했습니다...
26화: 운영, 김진사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애태우다 其後, 大君頻接進士, 而以妾等不相見, 故妾每從門隙而窺之, 一日, 以薛濤牋寫五言四韻一首曰: “布衣革帶士 玉貌如神仙 每從簾間望 何無月下緣 洗顔淚作水 彈琴恨鳴絃 無限胸中怨 擡頭欲訴天” 以詩及金鈿一隻同裏, 重封十襲, 欲寄進士, 而無便可達. 해석 其後, 大君頻接進士, 그 후에도 대군은 자주 진사와 접촉했지만, 而以妾等不相見, 故妾每從門隙而窺之, 저희들에게 서로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매번 문틈으로 엿보았습니다. 一日, 以薛濤牋寫五言四韻一首曰: “布衣革帶士 玉貌如神仙 每從簾間望 何無月下緣 洗顔淚作水 彈琴恨鳴絃 無限胸中怨 擡頭欲訴天” 하루는 설도전(薛濤牋)에다 오언 사운 한 수를 썼습니다. 布衣革帶士 玉貌如神仙 베옷 입고 가죽띠 띤 선비가 옥 같은 얼굴이 신선..
25화: 김진사의 붓에서 튄 먹물에서 영광스러움을 느끼다 又使草書, 揮筆之際, 筆墨誤落於妾之手指, 如蠅翼. 妾以此爲榮, 不爲拭除, 左右宮人, 咸顧微笑, 比之登龍門. 時夜將半, 更漏相催, 大君欠身思睡曰: “我醉矣. 君亦退休, 勿忘‘明朝有意抱琴來’之句.” 翌日, 大君再三吟其兩詩而歎曰: “當與謹甫爭雄, 而其淸雅之態, 則過之矣.” 妾自是, 寢不能寐, 食滅心煩, 不覺衣帶之緩, 汝未能織之乎? 紫鸞曰: “我忘之矣. 今聞汝言, 恍若酒醒.” 해석 又使草書, 揮筆之際, 진사님이 붓을 들어 글씨를 쓸 때에 筆墨誤落於妾之手指, 如蠅翼. 먹물이 잘못 제 손가락에 떨어졌으니, 마치 파리 날개인 듯했습니다. 妾以此爲榮, 不爲拭除, 저는 이것을 영광으로 여겨 씻어 제거하려 하지 않았으니 左右宮人, 咸顧微笑, 比之登龍門. 좌우의 궁인..
24화: 김진사의 시재(詩才)에 반한 안평대군 大君曰: “聞君之言, 胸中惝恍, 若御長風上太淸. 第杜詩, 天下之高文, 雖不足於樂府, 豈與王ㆍ孟爭道哉? 雖然, 姑舍是, 願君又費一吟, 使此堂增倍一般光彩.” 進士卽賦七言四韻一首, 其詩曰: “烟散金塘露氣凉 碧天如水夜何長 微風有意吹垂箔 白月多情入小堂 夜畔隱開松反影 盃中波好菊留香 院公雖小頗能飮 莫怪瓮間醉後狂” 大君益奇之, 前席摎手曰: “進士非今世之才. 非余之所能論其高下也. 且非徒能文章筆法, 又極神妙, 天之生君於東方, 必非偶然也.” 해석 大君曰: “聞君之言, 胸中惝恍, 대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가슴 속이 황홀하여 若御長風上太淸. 긴 바람을 타고 태청궁(太淸宮)에 오르는 것 같네. 第杜詩, 天下之高文, 雖不足於樂府, 다만 두보 시가 천하의 고귀한 문..
23화: 김진사, 두보를 평가하다 大君曰: “日與文士論詩, 以草堂爲首者多, 此言何謂也?” 進士曰: “然. 以俗儒所尙言之, 猶膾炙之悅人口. 子美之詩, 眞膾與炙也.” 大君曰: “百體俱備, 比興極精, 豈以草堂爲輕哉?” 進士謝曰: “小子何敢輕之. 論其長處, 則如漢武帝, 御未央之宮, 憤四夷之猖夏, 命將薄伐, 百虎萬態之士, 連亙數千里, 言其短處, 則如使相如賦「長楊」ㆍ馬遷草「封禪」. 求神山, 則如使東方朔侍左右, 西王母獻天桃. 是以杜甫之文章, 可謂百體之俱備矣. 至比於李白, 則不啻天壤之不侔, 江海之不同也. 至比於王ㆍ孟, 則子美驅車先適, 而王ㆍ孟執鞭爭道矣.” 해석 大君曰: “日與文士論詩, 대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문사들과 시를 논하면, 以草堂爲首者多, 此言何謂也?” 두보(杜甫)를 제일로 꼽는 이가 많은데 이것은 ..
21화: 대군, 김진사를 만난 자리에 궁녀들을 대동케하다 大君以金蓮唱歌, 芙蓉彈琴, 寶蓮吹簫, 飛瓊行盃, 以妾奉硯. 于時, 妾年十七, 一見郎君, 魂迷意闌. 郎君亦顧妾, 而含笑頻頻送目. 大君謂進士曰: “我之待君, 誠款至矣. 君何惜一吐瓊琚, 使此堂無顔色乎?” 進士卽握筆, 書五言四韻一首曰: “旅鴈向南去 宮中秋色深 水寒荷折玉 霜重菊垂金 綺席紅顔女 瑤絃白雪音 流霞一斗酒 先醉意難禁” 大君吟咏再三而驚之曰: “眞所謂天下之奇才也. 何相見之晩耶!” 侍女十人, 一時回顧, 莫不動容曰: “此必王子晋, 駕鶴而來于塵寰. 豈有如此人哉!” 해석 大君以金蓮唱歌, 하지만 대군은 금련에게는 노래 부르도록, 芙蓉彈琴, 寶蓮吹簫, 부용에겐 탄금을 타도록, 보련에겐 피리 불도록, 飛瓊行盃, 以妾奉硯. 비경에겐 술잔 심부름을 하도록, 제게는 벼루..
20화: 자란에게 속으로 그리워한 김 진사를 얘기하다 妾起而謝曰: “宮人甚多, 恐有囑喧, 不敢開口, 今承悃愊, 何敢隱乎? 上年秋, 黃菊初開, 紅葉漸凋之時, 大君獨坐書堂, 使侍女磨墨張縑, 寫七言四韻十首. 小童自外而進曰: “有年少儒生, 自稱金進士見之.” 大君喜曰: “金進士來矣.” 使之迎入, 則布衣革帶士, 趨進上階, 如鳥舒翼. 當席拜坐, 容儀神秀, 若仙中人也. 大君一見傾心, 卽趨席對坐. 進士避席而拜辭曰: “猥荷盛眷, 屢辱尊命, 今承警咳, 無任悚恢.” 大君慰之曰: “久仰聲華, 坐屋冠盖, 光動一室, 錫我百朋.” 進士初入, 已與侍女相面, 而大君以進士年少儒生, 中心易之, 不令以妾等避之. 大君謂進士曰: “秋景甚好, 願賜一詩, 以此堂生彩.” 進士避席而辭曰: “虛名蔑實, 詩之格律, 小子安敢知乎?” 해석 妾起而謝曰: “宮人..
19화: 자란은 날로 야위어가는 운영을 걱정하다 是夜, 紫鸞以至誠問於妾曰: “女子生而願爲有嫁之心, 人皆有之. 汝之所思, 未知何許情人, 悶汝之形容, 日漸減舊, 以情悃問之, 妾須毋隱.” 해석 是夜, 紫鸞以至誠問於妾曰: 이날 밤에 자란이 지성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女子生而願爲有嫁之心, 人皆有之. “여자로 태어나서 혼인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汝之所思, 未知何許情人, 네가 생각하고 있는 애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하나, 悶汝之形容, 日漸減舊, 네 안색이 근심으로 날로 조금씩 예전보다 말라가니 以情悃問之, 妾須毋隱.” 안타까이 여겨 내 진심으로 물으니 너는 반드시 숨기지 말라.” 인용 목차 전문 1화: 수성궁과 근처 모습의 묘사 2화: 술기운에 류영 소동파 시를 읊다 3화: 류영, 술 취한 채 ..
18화: 성삼문, 궁녀들의 시를 평가하다 群疑未定, 俄而成三問至曰: “才不借於異代. 自前朝迄于今, 而已六百餘年, 以詩鳴於東國者, 不知其幾人. 或沉濁而不雅, 或輕淸而浮藻, 皆不合音律, 失其性情, 吾不欲觀諸. 今觀此詩, 風格淸眞, 思意超越, 小無塵世之態, 此必深宮之人, 不與俗人相接, 只讀古人之詩, 而晝夜吟誦, 自得於心者也. 詳味其意, 其曰 ‘臨風獨惆悵’者, 有思人之意. 其曰 ‘孤篁獨保靑’者, 有守貞節之意. 其曰 ‘風吹自不定’者, 有難保之態. 其曰 ‘幽思向楚君’者, 有向君之誠. 其曰 ‘荷葉露珠留’者, ‘西岳與前溪’者, 非天上神仙, 則不得如此形容矣. 格調雖有高下, 而薰陶氣像, 則大約皆同. 進賜宮中, 必儲養此十仙人, 願毋隱一見.” 大君內自心服, 而外不頷可曰: “誰謂謹甫有詩鑑乎? 我宮中豈有此等人哉! 可謂惑之甚矣.”..
17화: 뭇 문인들이 궁녀들의 시를 성당의 시라 평가하다 翌日, 門外有車馬騈闐之聲, 閽者奔入而告曰: “衆賓至矣.” 大君掃東閣延入, 皆文人才士也. 坐定, 大君以妾等所製賦烟詩示之, 滿坐大驚曰: “不意今日復見盛唐音調. 非我等所可比肩也. 如此至寶, 進賜從何得之?” 大君薇笑曰: “何爲其然耶? 童僕偶然得於街上而來, 未知何人之所作, 而想必出於閭閻才士之手也.” 해석 翌日, 門外有車馬騈闐之聲, 이튿날 문밖에서 요란한 수레소리가 들리더니 閽者奔入而告曰: “衆賓至矣.” 문지기가 달려와 알렸습니다. “여러 손님들이 오십니다.” 大君掃東閣延入, 皆文人才士也. 대군은 동각을 청소하게 하고 들어와 맞으니 모두 문인 재사들이었습니다. 坐定, 大君以妾等所製賦烟詩示之, 滿坐大驚曰: 자리를 정하고 대군은 저희들이 지은 부연시를 내보이니 ..
16화: 의심을 해명하기 위해 시를 지은 운영 卽以「窓外葡萄」爲題, 使作七言四韻促之, 妾應口卽吟, 其詩曰: “蜿蜒藤草似龍行 翠葉成陰忽有情 署日嚴威能徹照 晴天寒影反虛明 抽絲攀檻如留意 結果垂珠欲效誠 若待他時應變化 會乘雨雲上三淸” 小玉見詩, 起而拜曰: “眞天下之奇才也! 風格之不高, 雖似舊調, 而蒼卒製作如此, 此詩人之最難處也. 我之心悅誠服, 如七十子之服孔子也.” 紫鸞曰: “言不可不愼也, 何其許如之太過耶? 但文字蜿曲, 且有飛騰之態, 則有之矣.” 一座皆曰: “確論也.” 妾雖以此詩解之, 而群疑猶未盡釋. 해석 卽以「窓外葡萄」爲題, 使作七言四韻促之, 그리하여 「창 밖의 포도[窓外葡萄]」라는 제목으로 칠언 사구를 짓도록 재촉하여, 妾應口卽吟, 其詩曰: “蜿蜒藤草似龍行 翠葉成陰忽有情 署日嚴威能徹照 晴天寒影反虛明 抽絲攀檻如留..
15화: 소옥이 운영의 마음을 읽어내다 十人皆退在洞房. 畵燭高燒, 七寶書案, 置唐律一卷, 論古人宮怨詩高下. 妾獨倚屛風, 悄然不語, 如泥塑之人. 小玉顧見妾曰, “日間賦烟之詩, 見疑於主君. 以此隱憂而不語乎? 抑主君向意, 當有錦衾之歡, 故暗喜而不語乎? 汝心所懷, 未可知也.” 妾歛容而答曰: “汝非我, 安知我之心哉? 我方賦一詩, 搜奇未得, 故若思不語耳.” 銀蟾曰: “意之所向, 心不在焉. 故旁人之言, 如風過耳. 汝之不言, 不難知也. 我將試之.” 해석 十人皆退在洞房. 저희 열 명은 모두 물러나 동방(洞房)에 있었습니다. 畵燭高燒, 七寶書案, 置唐律一卷, 대군이 어전에서 나와서 동방의 촛불을 돋우고 칠보서안(七寶書案)에 당율(唐律) 한 권을 놓고, 論古人宮怨詩高下. 옛 사람들의 궁중시를 평했습니다. 妾獨倚屛風, 悄然不..
13화: 안평대군 운영의 시에서 그리움의 감정을 알아채다 大君看罷, 大驚曰: “雖比於晩唐之詩, 亦可伯仲, 而謹甫以下, 不可執鞭也.” 再三吟咏, 莫知其高下, 良久曰: “芙蓉詩, 思戀楚君, 余甚嘉之, 翡翠詩, 比前騷雅, 玉女詩, 意思飄逸, 末句有隱隱然餘意, 以此兩詩, 當爲居魁.” 又曰: “我初見詩, 憂劣莫辨, 一再翫繹, 則紫鸞之詩, 意思深遠, 令人不覺嗟嘆而蹈舞也. 餘詩亦皆淸雅, 而獨雲英之詩, 顯有惆悵思人之意. 未知其所思者何人, 事當訊問, 而其才可惜, 故姑置之.” 해석 大君看罷, 大驚曰: 대군은 다 보시더니 말하셨습니다. “雖比於晩唐之詩, 亦可伯仲, “비록 만당시에 비교하여도 첫째 둘째가 될 것이니, 而謹甫以下, 不可執鞭也.” 근보(謹甫: 성삼문) 이하는 채찍을 잡지 못하리라.” 再三吟咏, 莫知其高下, 두세 ..
12화: 10명의 궁녀들이 지은 시 小玉先呈曰: ‘緣烟細如織, 隨風伴入門. 依微深復淺, 不覺近黃昏.’ 芙蓉次呈曰: ‘飛空遙臺雨, 落地復爲雲. 近夕山光暗, 幽思向楚君.’ 翡翠呈曰: ‘覆花蜂失勢, 籠竹鳥迷巢. 黃昏成細雨, 窓外聽蕭蕭’ 飛瓊呈曰: ‘小杏難成眼, 孤篁獨保靑. 輕陰暫見重, 日暮又昏暝’ 玉女呈曰: ‘蔽日輕紈細, 橫山翠帶長. 微風吹漸散, 猶濕小池塘’ 金蓮呈曰: ‘山下寒烟積, 橫飛宮樹邊. 風吹自不定, 斜日滿蒼天’ 銀蟾呈曰: ‘山谷繁陰起, 池臺緣影流. 飛歸無處覓, 荷葉露珠留’ 紫鸞呈曰: ‘早向洞門暗, 橫連高樹低. 須臾忽飛去, 西岳與前溪.’ 妾亦呈曰: ‘望遠靑烟細, 佳人罷織紈. 臨風獨惆悵, 飛去落巫山.’ 寶蓮呈曰: ‘短壑春陰裡, 長安水氣中. 能令人世上, 忽作翠珠宮.’ 해석 小玉先呈曰: ‘緣烟細如織,..
11화: 안평대군이 궁녀들에게 시를 짓게 하다 一日, 大君自外而入, 呼妾等曰: “今日與文士某某飮酒, 有祥靑烟, 起自宮樹, 或籠城堞, 或飛山麓. 我先占五言一絶, 使坐客次之, 皆不稱意. 汝等以年次, 各製以進.” 해석 一日, 大君自外而入, 呼妾等曰: 하루는 대군이 밖에서 들어와 저희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今日與文士某某飮酒, 有祥靑烟, “오늘은 문사 아무개와 주배(酒杯)를 나누었는데, 그 때에 상스러운 파란 연기가 起自宮樹, 或籠城堞, 或飛山麓. 궁중의 나무로부터 일어나 궁성을 싸고 산봉우리로 스르르 날아갔다. 我先占五言一絶, 使坐客次之, 내가 먼저 오언 일절을 짓고 손님들에게 차운케 했지만 皆不稱意.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汝等以年次, 各製以進.” 너희들은 연령대로 각각 지어 올리라.” 인용 목차 전문..
더 읽을 책들 발라스 듀스,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남도현 옮김, 서울: 개마고원,2002) 현대철학에 대한 알기 쉬운 개론서인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적인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의 임무가 바로 개념의 창조라고 이야기했던 들뢰즈의 입장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 (김재희 옮김, 서울: 한나래, 1998) 서양철학의 전통이 ‘건축’이란 은유로 지탱되었음을 폭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맑스,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등을 통해서 타자 그리고 타자와의 비대칭적 차이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사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동환, 『안티호모에렉투스』 (강릉: 길, 2001) 서양철학의 논리와 중..
사건과 무의미②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 아닐까요? 애인의 눈물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사랑한다’는 의미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를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가 기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은, 그 기호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모순’이란 말처럼 ‘사건’과 ‘기호’의 논리를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라는 모순된 사태와 우리가 마주쳤다면, 그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은 A일까, 아니면 A가 아닐까?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
사건과 무의미 지금까지 우리는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의 비밀에 어느 정도 접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은 우리가 낯선 사건‘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하고자 할 때 우리는 최종적으로 ‘사건’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장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사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를 갖도록 할 것입니다.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예를 다시 하나 들어봅시다. 그에게 오..
교환 가능한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왜 ‘2인칭적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는데 ‘3인칭적 죽음’은 그냥 스쳐가는 것, 우리에게 별다른 생각을 강요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일까요? 왜 아내의 밤늦은 귀가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나의 뇌리를 지배하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행실은 그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다시 질문해본다면, 왜 어떤 경우에 나는 사건의 의미를 찾는 사람, 즉 기호의 해석자가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음미해보기 위해 잠시 키르케고르(S. Kierkegaard, 181..
죽음이라는 사건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 ‘사건’, ‘마주침’ 그리고 ‘기호’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낯선 것입니다. 이런 낯섦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지요. 들뢰즈는 이런 낯섦의 의미를 찾는 것을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가 ‘기호의 해석’이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기호를 해석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홍조 띤 얼굴, 화장실에서의 콧노래, 남편에게 보내는 미소 등의 기호는 남편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이 이런 기호를 해석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어쩔 수 없는 의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각’이란 것은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
나의 사유를 강요하는 사건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항상 예상치 못한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혼한 지 20년이 된 너무나 친숙한 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부부는 ‘손 안에 있는’ 관계, 즉 너무나 친숙해서 전혀 생각이 발생하지 않는 습관적인 관계에 빠져 있습니다. 서로의 안색만 보아도 두 사람은 상대방의 욕구, 불만족 등을 생각하지 않고도 알게 됩니다. 남편이 아침 밥상에서 반찬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면, 아내는 금방 오늘 야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또 역으로 아내가 저녁상에 와인을 올려놓고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면, 남편은 아내가 돈이 ..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이래로 서양에서는 인간을 보통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관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공룡능선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아니면 서북주릉을 타고 대청봉에 오를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무엇일까?’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그 사람은 오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등등.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인간이 분명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과연..
3. 삶엔 철학의 차가움을, 철학엔 삶의 따뜻함을 작지만 많은 자명한 것들로 우리의 삶은 영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삶은 항상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낯설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을 낯설게 돌아보도록 만드는 불가피한 사태가 도래하기 전에,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는 ‘미리 삶에 낯설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내가 나중에 알게 될 것을 지금 알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우리에게 불편함과 당혹감을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훗날 직면하게 될 불편함과 당혹감에 비한다면, 철학적 사유가 주는 불편함과 당혹감은 사실 매우 적은 것에 지..
2. 헤어진 후에야 알게 되는 뒤늦은 깨달음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의 삶은 너무나 많은 자명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단히 나열해보도록 하죠. 부모님께 효도하기, 부모님께 혼나기, 피곤해서 일찍 귀가하기, 외출하기 전에 화장하기, 설거지하기, 홈페이지 관리하기, 메일 확인하기. 친구와 전화하기, 영어 공부하기, 스포츠에 열광하기, 유명 연예인 좋아하기, 이별에 슬퍼하기, 친구들과 술 마시기, 외박하기, 친구들과 여행하기, 산에 오르기, 나이든 사람에게 자리 양보하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 독서하기, 시험공부하기, 시험 보기, 직장 다니기, 아르바이트하기, 월급 타기, 쇼핑하기, 저축하기, 휴가 떠나기, 군대 가기, 예비군 훈련받기, 결혼하기, 아이 낳기, 아이 야단치기, 투표에 ..
프롤로그 1.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문제 삼는 것 햇살이 따사롭지만 그리 덥지는 않은 초가을 날입니다. 한 쌍의 남녀가 카페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마시며, 그들은 잠시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남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사랑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모르겠어. 그런데도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집앞에서 헤어질 때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거든, 내 생각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런 것 같아. 사랑이 뭔지 잘 모르면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음악에 취해 있던 남자는 갑작스런 애인의 의문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합니다. “아니, 너 왜 그래? 너 지금 무슨 말을..
책을 시작하며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농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혀 웃지 않더군요. 웃기는커녕 오히려 제 농담을 노트에 적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때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있었지요. 저는 진지하게 어떤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저는 심각하게 논의를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당혹스런 경험들로부터 저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이야기가 농담이 되느냐 진담이 되느냐는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수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지 ..
맹자 사람의 길 목차 (맹자한글역주) 도올 김용옥 서론 서(序) 맹자제사(孟子題辭) 조기(趙岐), 그는 누구인가? 범례 본문 1. 양혜왕 상(梁惠王 上) 1 하필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까 2 현자인 이후에야 이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3 50보 도주한 이가 100보 도주한 이를 비웃다 4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이다 5 인자무적(仁者無敵) 6 달갑게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는 사람 7 흔종(釁鐘)에 아파하는 마음과 정치 2. 양혜왕 하(梁惠王 下) 1 백성과 함께 즐겨라 2 나라 가운데에 함정을 파다 3 청컨대 임금께선 용맹을 크게 키우십시오 4 선왕의 여행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5 왕이 재물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6 제선왕이 두리번거리며 딴 얘길하다 7 백성의 뜻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라 8 고립된 사..
선진 제십일(先進 第十一) 편해(篇解) 주희는 이 편을 가리켜 공자가 제자들의 현부(賢否: 현명한 정도)를 평한 것이 많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이 편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 만큼 전편이 공자만년의 학단에 있어서의 사제(師弟)의 언행을 채록한 양식으로 일관 되어 있는 유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보편타당한 교훈이라든가 대기설법(對機說法)적인 교훈이나 자술적 교훈이 아닌,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들에 관한 공자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의 성격이나 덕성, 그리고 만년 학단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추상적 메시지가 아닌 인간 내음새로 가득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에는 공자말년 노나라 공자학단을 리드했던 중요한 인물들..
18. 까투리에 감정 이입한 공자 10-18. 새는 뭔가 위험스러운 기색이 느껴지면 튀쳐오른다. 그리고 하늘에서 빙빙 돌다가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올라앉는다. 10-18. 色斯擧矣, 翔而後集. 공자께서 이런 광경을 보시고 시 구절을 읊으셨다: “저 깊은 산 외나무다리에 앉은 까투리야! 좋을 때로다! 좋을 때로다!” 曰: “山梁雌雉, 時哉! 時哉!” 자로가 이 노래를 잘못 알아듣고 까투리를 잡아 요리를 하여 바쳤다. 공자께서 세 번 냄새만 맡으시고는 일어나시었다. 子路共之, 三嗅而作. 모든 사람이 이 장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나, 그것 은 주희가 이 장에 궐문(闕文)이 있어 억지 주석 달 수가 없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가 덩달아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논어』의 여타 구절과..
17. 수레에 탈 때의 공자 모습 10-17. 수레에 오르실 때에는 반듯하게 서서 수레지붕으로부터 내려와 있는 끈을 잡고 오르셨다. 수레 안에서는 공연히 뒤돌아보지 않으셨으며, 큰소리로 빠르게 뭔 일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셨다. 10-17. 升車, 必正立執綏. 車中,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동거마(銅車馬)를 보더라도 1호거(一號車)는 마부 와 탑승자가 모두 한 공간에 서는 형식의 수레이고 2호거(二號車)는 마부는 앞에 앉고 뒤에 요즈음 자동차 같은 방이 있어 그 실내에 앉도록 되어 있다. 두 수레를 보면 모두 수레의 높이가 큰 바퀴의 중심축 위로 있기 때문에 상당히 높다. 그냥 올라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둘 다 수레에 오르는 것은 옆에서 오르는 것..
16. 공자가 안색이 변하는 상황에 대한 기록 10-16A. 잠잘 때에는 시체처럼 대(大)자로 뻗어 주무시는 법이 없었으며, 사적으로 집에서 거하실 때는 일체 용태를 꾸미는 법이 없었다. 10-16A. 寢不尸, 居不容.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아도 부부가 한 침대에서 반듯하게 누워 불을 끄는 것이 뭐 정도인 양 항상 그런 장면을 비추지만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다. 부부가 꼭 한 침대에서 자야한다는 서양식 발상도 이미 우리나라의 절대 보편적 규범인 것처럼 미신화되어 버렸다. 방의 여유가 있다면 각방과 합방은 자유롭게 운용되어야 한다. 그런 문제에 관해 하등의 사랑을 운운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잠은 완벽하게 깊은 잠을 자는 것이 다음날의 일과를 위해 좋은 것이요, 꼭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만 좋은 잠을 자는 것..
15. 벗을 사귀는 공자의 모습 10-15A. 붕우가 죽었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리 집에 빈소를 차려주어라.” 10-15A.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빈(殯)’이란 옛날 초분의 습관이 발전된 것이며, ‘장(葬)’ 이전의 단계인데, 요즈음의 3일장, 9일장과는 달리,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최소한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과정이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붕우에 대한 공자의 배려는 보통사람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붕우(朋友)’란 의(義)로써 맺어지는 관계이다. 죽어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 어찌 빈해주지 않을 수 있으리오. 朋友以義合, 死無所歸, 不得不殯. 10-15B, 붕우의 선물은 제아무리 수레와 말과 같은 ..
14. 공자, 태묘에 들어가 모든 절차를 묻다 10-14.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매사를 물으시었다. 10-14. 入太廟, 每事問. 노나라에 있는 태묘야말로 노나라사람들의 프라이드를 떠받쳐주는 최 고의 상징물이다. 이 태묘의 대제의 조제자(助祭者)로서 예에 밝기로 소문난 공자가 매사를 묻는다는 이 충격적인 장면은 「팔일(八佾)」 15에서 이미 진설(盡說)하였다. 그러나 「팔일」과 「향당(鄕黨)」의 이 두 기사가 단순히 같은 파편이 두 번 중출(重出)한 것이 아니라는 황간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팔일」은 ‘혹자’의 비난에 대하여 공자께서 말씀하신 특정한 사례를 기술한 특칭의 단편이고, 이것은 평소 공자의 주공 태묘에서의 일반적인 행태를 기술한 전칭의 단편이라는 것이다[此是錄平生常行之事]..
13. 임금을 섬길 때의 공자 모습 10-13A. 임금께서 요리된 음식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르게 하고 앉아서 본인이 먼저 조금씩 맛을 보시었다. 임금께서 날고기를 보내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제단에 바치시었다. 임금께서 산 짐승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집에서 기르셨다. 10-13A.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앞에서 이미 ‘석(席)’의 문제는 이야기를 하였다.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는 것이다[席, 猶坐也. 황소]. ‘상지(嘗之)’는 단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금씩 일부를 떼어 먹는 것이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집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상하지나 않았는지, 자기 몸으로 확인한 다음에 자기 집안의 권속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먹은 음식..
12. 사람의 생명을 중시했던 공자의 모습 10-12. 공자의 집안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시어 이를 아시고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상했느냐?” 그리고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10-12. 廐焚. 子退朝, 曰: “傷人乎?” 不問馬. 『논어』 중에서 공자의 휴매니즘(humanism) 정신을 나타내는 극적인 고사로서 잘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여기 핵심적인 포인트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인명의 존엄성을 우선시하는 공자의 몸에 배어있는 정신이다. 인명을 너무도 천박하게 다루는 희랍이나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의 신화적 세계에 비하면, 너무도 상식적이고 은은한 인간존엄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공자의 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
11. 다른 사람과 친교를 맺을 때의 공자 모습 10-11A. 사람을 다른 나라에 보내어 그곳에 있는 붕우의 안부를 물을 때에는, 그 떠나는 사자에게 두 번이나 절하고 보내시었다. 10-11A.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황소는 다른나라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자가 직접 타국의 군주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것은 공자의 사적 사절이며 외국에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유보남 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토산물의 예물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그 사신이 떠나기 전에 그 사신에게 ‘재배(再拜)’를 했다는 것은 그 사신에게 절한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절한다는 뜻이다. 그 공경의 마음을 사절에게 담아 보내는..
10. 마을에 있을 때의 공자의 모습 10-10A. 향당에서 향음주례가 파하고 퇴장을 할 때에 큰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먼저 일어나 나가면 그제야 그 뒤를 따라 나가셨다. 10-10A.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향음주례에 관한 것은 『의례』에 잘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향음주례가 파했을 때의 광경에 관한 것이다. ‘장자(杖者)’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어른)이다. 그 당시 지팡이는 요즈음 허리에까지 올라오는 작은 것이 아니라 산신령 민화 속에 나오듯이 본인의 키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불편할 것 같은데 경극(京劇)에도 모두 그런 지팡이를 쓰는 것을 보면 근세까지 내려온 풍습이었다. 당시(唐詩)에 등장하는 지팡이도 다 그렇게 높은 것이었다. 편의의 문제라기보다는 권 위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예기』 「왕..
9. 자리를 반듯하게 한 후에야 앉던 공자 10-9. 공자께서 착석하실 때에는 반드시 자리를 반듯하게 한 후에 앉으시었다. 10-9. 席不正, 不坐. 나의 번역이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원문에 즉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는 모르겠으나, 본 장의 해석이 보통 심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오해를 막기 위하여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공자는 앞서 말했듯이 형식주의자가 아니다. 조선의 졸유(拙儒)들이 이런 구문을 형식주의적으로만 해석하여 피상적인 예절을 따지는 데 바로 우리 유학전통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라고 단순히 해석될 문제가 아니다. 고전을 모르는 속유들이 당대의 자기습관을 가지고 항상 고문(古文)에 자기류의 의미를 덮어씌우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선 ..
8. 음식을 대하는 공자의 모습 10-8A. 밥은 도정(搗精)이 잘 된 흰쌀밥을 싫어하지 않으셨으며, 날고기(육회, 생선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10-8A. 食不厭精, 膾不厭細. 어떤 사람은 ‘현미종교’에 빠져있어 그것이면 만병통치인 것처럼 선전 하나, 사실 현미는 먹기에 괴롭다. 나는 흰쌀밥을 좋아한다. 그냥 입맛에 편한 것이 좋은 것이다. 흰쌀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식생활의 원칙은 영양가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갈함과 편안한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다. ‘회(膾)’는 육회, 생선회를 다 포괄한다. 지금의 중국인은 별로 육회를 즐기지 않으나 공자 때는 육회가 중요한 음식이었다. 유독 한국인만 육회를 즐기는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 고산동지역 문화가 우리 조선과 교류가 ..
7. 재계할 때의 공자 모습 10-7A 재계(齋戒)기간 동안에는 반드시 명의(明衣)라는 특별의상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베로 만들었다. 10-7A. 齊, 必有明衣, 布.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그 외로 다양한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목욕재계라는 것을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성관계 등 모든 것이 통제된다. 산재(散齊)가 7일, 좀 느슨한 재계이다. 치재(致齊)가 3일, 치열하고 엄격한 재계이다. 모두 10일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에 여러 번 목욕을 하는데, 목욕 하고나서 입는 옷을 명의(明衣)라고 한다. 명의는 신명(神明)과 소통하는 옷이라는 뜻도 되고, 명결(明潔)한 옷이라는 뜻도 된다. 이 명의는 베로 만든다. 목욕하고나서 베를 몸에 대는 것보다 면제품이 좋을 듯 싶으나, 우리가 알..
6. 공자의 복식에 대해 10-6A. 군자는 짙은 색과 검붉은 색으로는 깃과 끝동에 선을 두르지 않는다. 10-6A. 君子不以紺緅飾. 이 장은 주를 한 군데로 몰지 않고 한 조 한 조 따로 해설하는 것이 이해를 도울 것 같아 번호를 각 조(條)마다 따로 붙였다. ‘감색(紺色)’은 붉은 빛이 도는 심청색인데 우리말로는 그냥 ‘짙은 곤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의미전달이 쉽다고 복식하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여기 ‘군자’는 편해(篇解)에서 이야기했듯이 공자가 스스로를 부르는 일인칭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이것은 군자를 일반화시켜서 ‘군자는 모름지기 …… 해야 한다’라고 공자가 말한 것이 되므로, 결국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의복습관을 이야기한 것이 된다. 보통 짙은 곤색(감색)이나 검붉은 색(추색..
5. 이웃나라를 빙문할 때의 공자모습 10-5. 외국에 사신으로 나아가 규(圭)를 잡고 상대방의 군주를 알현할 때에는 몸을 굽혀 마치 그 규의 무게를 못 이기는 듯 장중하게 거동하시었다. 먼저 규를 높게 치켜들면서 읍한 후에, 물건을 드리는 자세로써 규를 내려 봉헌하였다. 이 때 얼굴빛이 변한 것이 파르르 떨 듯하였다. 걸음은 발뒤꿈치를 안쪽으로 휘게 끌면서 궤적을 따라가는 듯이 하였다. 10-5.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縮縮, 如有循. 규를 봉헌하고 나면 빙례의 연회가 열리는데 그때는 편안한 기운이 감도는 용모를 지으시었다. 享禮, 有容色. 그 후로 사람들을 사사로이 만나보실 때에는 흐뭇하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私覿, 愉愉如也. ‘규(圭)’는 옥으로 만든 것이며 위가 ..
4. 조정에 있을 때의 공자 모습 10-4. 공자께서 궁궐문을 들어가실 때에는 몸을 숙이어 마치 비좁은 곳을 들어가듯 경건히 들어가시었다. 서 있을 때는 사람이 들락거리는 곳 한가운데(중문中門) 서 계신 법이 없었고, 다니실 때는 절대 문지방을 밟지 않으시었다. 10-4.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 임금께서 항상 서 계시는 곳은 빈자리일지라도 지나갈 때는 얼굴빛을 근엄하게 바꾸시었고 발걸음은 종종걸음을 하시었다. 궁궐에서는 평소 말씀하시는 것이 부족한 듯하시었다.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계단을 올라 승당하실 때에는 치맛자락을 손으로 감아올리시고 허리를 굽히어 절하듯 하시었다. 숨을 멈추어 마치 숨이 죽은 듯하시었다.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 궁궐에서 ..
3. 외국 사절단을 접대하는 공자의 모습 10-3. 임금께서 공자를 불러 외국사절단을 접대케 하시었다. 이때는 얼굴빛이 장중하게 변하시었고 걸음은 의례에 맞는 종종걸음을 하시었다. 영빈대열에 같이 서있는 동료에게 말을 전할 때는 말을 전하는 방향에 따라 두 손을 읍하여 좌우로 상체를 움직이게 되는데, 늘어진 옷자락의 앞뒤 재봉선이 가지런히 맞아 흐트러짐이 없었다. 빠르게 나아가실 때에는 긴 소매깃이 좌우로 펄럭이는 모습이 새가 날개를 편 듯하였다. 10-3.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 襜如也. 趨進, 翼如也. 빙례가 종료되고 외국사절단을 보내고 나면 반드시 명령을 잘 수행하였다고 복명해야 한다. 그때 공자께서는 이와 같이 말 씀하시었다: ‘손님들은 뒤돌아 볼 일 없이 잘..
2. 조정에서 조회 볼 때에 공자의 자세 10-2. 조정에서는 하대부(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깐깐하게 말씀하셨고, 상대부(上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은은하게 말씀하시었다. 10-2. 朝, 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임금이 계실 때는 거동을 조심스럽게 하였으나 위의(威儀)를 잃지는 않았다.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원래 중국고래의 조정의 습관에 의하면 해뜨기 전에 신하들이 다 궁중에 출근해서 군주가 출어(出御)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해가 뜨면 군주가 나타나 임석(臨席)한다. 조정의 조(朝)라는 말이 이렇게 아침에 모이는 습관에서 비롯 된 것이다. 즉 조정(朝廷)이란 아침에 모이는 뜨락이라는 뜻이다. 최근 청조까지 이 습관은 지켜졌다. 해뜨기 전 상대부ㆍ하대부 조정의 관료들이 모였을..
1.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다 10-1. 공자께서는 향당에 계실 때에는 따사롭고 공순(順)하게만 보여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같았다. 10-1.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그러나 종묘와 조정에서는 또박또박 말씀을 잘하셨고 단지 삼가셨을 뿐이다.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향당(鄕黨)’은 공자의 일상적 삶의 영역을 가리킨다. 그 사인(私人)으로서의 생활영역이다. ‘종묘(宗廟)’는 국가제식이 행하여지는 곳, ‘조정(朝廷)’은 구체적으로 임금과 함께 정무(政務)를 보는 곳이다. 공(公)과 사(私)의 두 생활영역이 대비되고, 공자의 생활자세도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사(私) 공(公) 향당(鄕黨) 종묘(宗廟) 조정(朝廷) 온공(溫恭)하다 정확하고 삼간다 말 못하는 듯하다 또박또박 말 잘한다 ..
향당 제십(鄕黨 第十) 편해(篇解) 우선 양식적으로 이 「향당(鄕黨)」편은 타 제편과 구분된다. 타 제편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다고 하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기온 파편을 주로 모은 것임에 반해, 이것은 공자의 언행에 관한 내러티브이다. 따라서 ‘자왈(子曰)’ 파편이 거의 없다. 그리고 구설(舊說)에 의하면 전체가 한덩어리로 되어 있던 것이라서 장절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주자는 그 한 덩이를 17절로 나누었고, 마지막의 색사거의(色斯擧矣) 장은 하나의 성격을 달리하는 1단장(斷章)으로 분리시켰다. 그래서 주자의 분류에 의하면 본 편은 18장이 된다. 주자의 『집주』에 분명히 18장으로 분장되어 있다. 이러한 전체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자의 편해에 ‘1장 17절’이라고 한 말 때문에 중간..
30. 집이 멀어 애인을 보러 갈 수 없다는 비겁한 핑계 9-30. “이스랏의 꽃잎은 봄바람에 펄럭펄럭, 아~ 어찌 그대가 그립지 않으리오마는 왜 그리 멀리 있소. 그대 집은.” 9-30.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이 노래를 들으시며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집만 멀다 말하느뇨?”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이스랏은 산앵두나무. 그것이 당체(唐棣)다. 겹잎의 담홍색(淡紅色) 아 름다운 꽃이 봄에 핀다. 당체는 때로 아가위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주의 입장은 이 장을 전 장에 종속시켜 ‘권도(權道)’의 문제를 계속 끌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이런 입장이 도무지 애매하고 별로 취할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 인용된 시는..
29. 권도(權道)의 경지 9-2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도(道)로 나아갈 수는 없다. 더불어 함께 도로 나아갈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우뚝설 수는 없다. 더불어 함께 우뚝 설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권(權)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9-29.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인간의 호학의 경지의 상달(上達)의 차서를 말한 것이다. 4 권(權) 자유로운 상황적 실천(Free Situational Application) ⬆ 3 입(立) 주관의 정립(Establishment of Thought System) ⬆ 2 도(道) 바른 방향을 잡음(Right Direction) ⬆ 1 학(學) 기초의 습득(Bas..
28. 지혜로운 자와 인한 자와 용맹한 자의 특징 9-2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자(知者)는 미혹됨이 없고, 인자(仁者)는 잔 걱정을 하지 않으며, 용자(勇者)는 두려움이 없다.” 9-28.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14-30에 공자의 자겸(自謙)의 말로서 중출(中出)한다. 밝음[明]은 족히 리(理)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의혹됨이 없고, 리(理)는 족히 사사로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이 없고, 기(氣)는 족히 도의(道義)에 짝할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이것은 배움의 차서이다. 明足以燭理, 故不惑; 理足以勝私, 故不憂; 氣足以配道義, 故不懼. 此學之序也. 도올서원에서 어느 학생이 나에게 이와 같이 물었다: “여기 지자(知者)는 자공(子貢)이고, 인자(仁者)는 안회(..
26. 공자의 칭찬에 자로는 그 말씀만 외우려 하다 9-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다 해져버린 누비솜옷을 입고, 찬란한 여우가죽이나 담비가죽 갖옷을 입은 신사 옆에 서있어도, 조금도 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자! 유(由)일진저! 『시』에 있지 않은가! ‘사람을 해치지 아니 하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아니하니, 어찌 선(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9-26. 子曰: “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 而不恥者, 其由也與? 不忮不求, 何用不臧?” 자로가 듣고 신이 나서 이 『시』의 구절을 종신토록 암송하려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꾸짖어 말씀하시었다: “그런 방법이 어찌 족히 좋다 말할 수 있으리오?”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臧?”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로! 우직하고 정직하기에 꿀림이 없고 당당..
27. 한계에 이르러야만 가치를 알게 되는 것들 9-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듦을 견디어내는 모습을 알 수 있도다.” 9-27.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세한(歲寒)’은 일년 중 추운 계절, ‘송백(松柏)’은 상록침엽수, ‘후조(後彫)’는 문자 그대로는 ‘늦게 시든다’는 의미이지만, 강조가 ‘시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시듦을 견디다’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고주는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세한’을 매년 다가오는 겨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처럼 다가온 특별한 해의 추위로 해석하는 것이다. 중목(衆木)은 극심한 추위로 다 시들고 얼어죽고 마는데, 송백만은 조금 시들고 만다는 식으로..
25. 사람의 의지는 빼앗지 못한다 9-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군의 거대병력으로부터도 우리는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9-25.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공자의 명언이다. ‘삼 군(三軍)’은 7-10에도 자로의 말로 나왔는데 37,500명의 대군단병력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재적 힘이요 시스템이다. 전략만 잘 짜면, 조조라도, 항우라도 다 빼앗아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부의 의지는 인간 존재의 내면의 힘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한다면 어떠한 외재적 힘도 그것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서슬퍼런 칼날 위에도 딛고 설 수 있지만 중용은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는(『중용(..
24. 허물이 있다면 고치길 꺼려하지 말라 9-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러나오는 마음과 믿음 있는 말을 주로 하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삼지 아니하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9-24.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1-8에 나왔다. 거듭 나왔는데 「학이(學而)」 8장과 비교하면 그 상반부가 여기에는 없다. 重出而逸其半.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3. 권위 있는 말은 고쳐야 하고 칭찬의 말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9-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법에 따라 해주는 권위있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뇨?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귀하니라. 귀에 거슬림이 없는 부드러운 말은,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뇨? 왜 칭찬을 받는지 그 실마리를 캐어보는 것이 귀하니라. 기뻐하기만 하고 그 실마리를 캐어보지도 않고, 따르기만 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과연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뇨?” 9-23.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 ‘법어지언(法語之言)’과 ‘손여지언(巽與之言)’의 정확한 뜻에 관해서는 주석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법어지언’은 권..
22. 후배들의 실력 향상이 놀랍다 9-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새로 자라나는 젊은 생명들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다. 앞으로 올 생명들이 지금 세대보다 못하다고 누가 감히 말하는가! 사오십이 되어도 뚜렷한 족적이 없는 자, 이 또한 족히 두려워할 것 없는 자들일 뿐.” 9-22.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 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은 지금 우리의 일상언어 속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다. 이것은 공자의 인간 지성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앞으로 올 세대들이 분명 지금 세대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신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후생’은 전통적으로 안회를 지칭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귀로 후 공문에 속속 들어오는..
21. 요절했던 비운의 이들에게 9-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세상엔 싹을 틔웠으나 애석하게도 꽃을 못 피우는 자도 있고, 꽃을 피웠으나 애석하게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9-21. 子曰: “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안회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이토록 아름다운 메타포로 표현하는 공자의 시적 정취가 동방인에게 문학을 안겨주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삶의 무상함에 대한 통찰은 안회라는 개인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운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꽃을 못 피우는 위대한 싹이 얼마나 많을까? 꽃을 피웠으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꺾이고 만 비운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백두산의 정기를 담아 흐르는 올기강, 이도백하, 해란강, 모란강, 송화강의 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