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10 (1296)
건빵이랑 놀자
64. 탁월하여 놀라게 할 만한 한시들 我東自崔孤雲以後, 歷高麗, 至我朝, 其間數千餘載, 爲文章者, 不啻數百家, 而大家則僅十餘人. 今記其表表警聯. 故無論諸詩話載與不載, 並錄之. 崔學士孤雲之「潤州慈和寺」詩, “畵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余未嘗不歎其感慨 李白雲春卿之「元日早朝」詩, ‘三呼萬歲神山湧, 一熟千年海果來.’ 未嘗不歎其壯麗. 李益齋仲思之「記行」詩, “雨催寒犢歸漁店, 風動輕鷗送客舟.” 未嘗不歎其精緻. 李牧隱穎叔之「山中」詩, “風淸竹院逢僧話, 草軟陽坡共鹿眠..” 未嘗不歎其穠贍‘ ⇒해석보기 徐四佳剛中之「龍鍾」詩, “黑雲暗淡葡萄雨, 紅霧霏微菡萏風.” 未嘗不歎其沖融. 金佔畢齋季溫之「淸心樓」詩, “十年世事苦吟裏, 八月秋容亂樹間.” 未嘗不歎其爽朗. 金東峰悅卿之「山居」詩, “龍曳洞雲歸遠壑, 雁拖秋日下遙岑.” ..
새벽에 출발하며 울적한 심사를 표현한 장유의 한시 晨發板橋官路脩 새벽에 판교를 출발하니 관로는 아득하네. 客子弊衣風露秋 나그네의 해진 옷이 가을바람 맞고 이슬에 젖는다네. 寒蟲切切草間語 추위벌레들은 절절하게 풀 사이에서 울어대고 缺月輝輝天際流 조각만 환하게 하늘가로 흐르네. 馬上瞌睡不成夢 말 위의 말뚝잠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眼中景物添却愁 눈에 들어온 경물들은 도리어 시름만 더하네. 人生百年各形役 우리네 한 평생 각자 육신의 부림받기 마련이나 南去北來何日休 남북으로 오가는 일, 어느 때나 그치려나. 『谿谷先生集』 卷之三十 수련에선 새벽에 출발하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어찌 보면 수련에선 감정이 드러난다기보다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아직 대로에 접어들기까진..
새벽에 출발하며 시를 짓는 이유와 소화시평 후기를 마무리 지으며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마지막에 초대된 사람은 장유다. 작년 4월 11일에 소화시평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드디어 맨 마지막 후기를 쓰게 됐다. 더욱이 소화시평 하권64는 다른 편들에선 발췌된 시만 있을 경우 발췌된 시들만 보며 홍만종의 시평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반면에 이번 편에선 모두 한 번씩은 봐야 하는 좋은 시들만 수록되어 있다며 전문을 함께 공부했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에 발맞춰 나도 64번에 나온 시들은 한 편 한 편에 대한 기록을 남겨 모두 15편을 썼고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 기록은 소화시평 후기를 마무리 짓는 기록이자 하권64번에 기록된 15편 중 마지막을 ..
‘나 이제 시 안 쓸래요’라는 의미를 담아 시를 쓴 최립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인물은 최립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최립이 왜 중국으로 사신을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시대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신 가는 일은 국가적인 대사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라는 책은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일부로 함께 청나라로 가게 되며 겪게 된 일들을 써놓은 책이다. 축하사절단이니 가는 길이 무겁지 않고 마치 여행을 하듯 그 상황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축하해주기 위해, 또는 중국과 조선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오고 가는 사절단의 경우엔 무겁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 ..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황정욱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황정욱이다. 이 시 또한 황정욱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황정욱도 호소지의 한 명인 노수신과 마찬가지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고 손녀가 선조의 아들인 순화군과 결혼하며 외척의 지위까지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에 왜적과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게 되어 유배를 가게 됐고 거기서부터 인생은 180도 꼬이게 된다. 노수신은 해배된 후에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간 반면, 황정욱은 재기하지 못하고 울분을 안은 채 살다가 죽게 된다. 午憩東樓缷馬鞍 오후에 동루에서 쉬려 말안장을 푸니 窮陰忽作暮天寒 섣달이라 홀연 저녁 기운 차갑구나. 紅塵謾說歸田好 세상살이할 땐 공연히 ‘전원으로 돌아가길 좋아한다’..
64-4. 탁월하여 놀라게 할 만한 한시들(황정욱~장유) 黃芝川景文之「罷官」詩, “靑春謾說歸田好, 白首猶歌行路難.” 未嘗不歎其激切. 崔東皐立之之「將赴京」詩, “劍能射斗誰看氣, 衣未朝天已有香.” 未嘗不歎其矯健. 張谿谷持國之「早發板橋店」詩, “寒蟲切切草間語, 缺月輝輝天際流.” 未嘗不歎其淸楚. 此可以嘗臠知鼎. 해석 黃芝川景文之「罷官」詩, “靑春謾說歸田好, 白首猶歌行路難.” 지천 황경문의 「관직을 그만두고[罷官]」라는 시의 다음 구절은 靑春謾說歸田好 젊어서는 공연히 ‘전원으로 돌아가길 좋아한다’고 말만 하다가 白首猶歌行路難 늙어서는 오히려 이백의 「행로난(行路難)」을 노래하는 구나. 未嘗不歎其激切. 일찍이 격절적임에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 崔東皐立之之「將赴京」詩, “劍能射斗誰看氣, 衣未朝天已有香.” 동고 최립..
노수신의 ‘친구야 보고 싶다’를 한시로 표현하는 법 由來嶺海能死人 고개와 바다 거쳐 오려고 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不必驅馳也喪眞 힘들게 말달려 죽을 필욘 없네. 日暮林烏啼有血 석양에 숲의 까마귀 울음에 피가 있고 天寒沙雁影無隣 날씨 차가운 모래사장 기러기 그림자 짝이 없네. 政逢蘧伯知非歲 정이 거백옥이 49년의 삶이 잘못됨을 안 50살이 되었고 空逼蘇卿返國春 부질없이 소무가 귀국하던 때가 닥쳐왔네. 災疾難消老形具 질병은 없애기 힘든 늙은 형구(刑具)이니, 此生良覿更何因 다시 어느 인연으로 이 생애에 즐겁게 만날 수 있을까. 『穌齋先生文集』 卷之四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노수신이다. 이 시를 해석하기 이전에 노수신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 안다고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노..
정사룡이 한시로 쓴 용비어천가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작가는 정사룡이다. 이 글은 권하 64번에서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발표한 이후 두 번째로 하는 발표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완전히 포인트가 엇나갔고 해석도 많은 부분이 틀렸다. 아직도 한시를 보는 게 많이 서툴다는 게 느껴진다. 이번 시는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금강으로 진출해서 몰리고 몰리다 남원지방까지 내려갔고 이성계가 출진하여 황산에서 왜구의 적장인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구를 섬멸했다. 이번 시는 바로 이런 사실을 담고 있는 영사시(詠史詩)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가 나오면 당연히 한나라 고조인 유방과 매칭시키곤 한다. 유방은 농민출신으로 이미 엄청난 세력을 유지하..
기심을 잊은 이행이 여행하며 쓴 한시 그렇다면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인용된 이행의 「대흥동도중(大興洞途中)」이라는 시는 여행시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 것 중에 어디에 포함되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선 전편을 본 후에 어디에 들어갈지 각자 생각해보며 정리해보도록 하자. 芒鞋藜杖木綿衣 짚신 신고 명아주 지팡이 짚고 목면 입고 나니까, 未覺吾生與願違 나의 삶이 원하는 것과 어긋나지 않는구나. 塵土十年寧有是 속세에 10년 동안 어찌 이것이 있었겠나. 溪山終日便忘機 산수 속에서 종일토록 문득 기심마저 잊었네. 多情谷鳥勸歸去 다정한 골짜기의 새는 돌아가길 권하고 一笑野僧無是非 한바탕 웃는 들의 스님은 시비를 안 따지네. 更着詩翁哦妙句 다시 시옹이 붙어서 묘한 시구 읊조리..
여행을 담은 한시의 유형들, 그리고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정신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인물은 이행이다. 이 시는 대흥동으로 가는 도중에 쓴 시다. 이런 식의 여행 도중에 써낸 몇 편의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유몽인이 쓴 「양양도중(襄陽途中)」이란 한시에선 유종원이 쓴 「포사자설(捕蛇者說)」처럼 현장에서 직접 본 그대로 세금문제로 핍박받는 민심을 드러냈으며, 성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마치 내가 같이 여행을 하는 듯이 핍진하게 여행 도중의 풍경을 그려냈으며, 이곡이 쓴 「도중피우유감(途中避雨有感)」이라는 한시에선 길에서 만난 비를 피하러 큰 저택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인생무상을 맛본 경험담을 서술했으며, 권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당시풍의 대가답게 여행 도중의 한 상..
속세를 벗어나 사찰에 들어가야만 보이는 것을 노래한 박은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네 번째로 초대된 인물은 박은이다. 이번 시에서 박은 복령사라는 사찰을 노래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억불숭유(抑佛崇儒)’가 떠오르며 스님이나 사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을 것 같고 배제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에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엔 국교가 불교였을 정도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심상에 불교는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고 합리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안엔 유교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같다. 600년 이상을 유교국가의 이상 속에서 살았으니 그게 다른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순..
64-3. 탁월하여 놀라게 할 만한 한시들(박은~노수신) 朴挹翠仲說之「福靈寺」詩,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 未嘗不歎其神奇. 李容齋擇之之「大興道中」詩, “多情谷鳥勸歸去, 一笑野僧無是非.” 未嘗不其閑淡. 鄭湖陰雲卿之「荒山戰場」詩, “商聲帶殺林巒肅, 鬼燐憑陰堞壘荒.” 未嘗不歎其勁悍. 盧蘇齋寡悔之「寄尹李」詩, “日暮林烏啼有血, 天寒沙雁影無隣.” 未嘗不其悽惋. 해석 朴挹翠仲說之「福靈寺」詩,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 읍취헌 박중열의 「복령사(福靈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春陰欲雨鳥相語 봄구름은 비 내릴 듯하니 새들이 서로 지저귀고 老樹無情風自哀 늙은 나무 정이 없으니 바람이 절로 애처롭네. 未嘗不歎其神奇. 일찍이 신령스럽고 기이함을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李容齋擇之之「大興道中」詩, “..
영사시에 담긴 서글픈 마음을 담아낸 성현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세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성현이다. 조선 초기에 서거정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왕위 찬탈과 같은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신을 잘 보전하여 부침도 없이 벼슬살이를 했던 관각문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땐 부침이 없었다 해도 죽고 나선 무오사화에 휘말리며 그의 시체에 매질을 가하게 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었으니 이걸 다행이라 할까, 불행이라 할까. 鵠嶺凌空紫翠浮 송악산이 하늘을 침범해서 붉고 푸른 기운이 서려있고, 龍蟠虎踞擁神州 용 앉고 범이 앉아 도성을 끌어안았네. 康安殿上松千夫 강안전 위에 소나무 천 그루. 威鳳樓前土一丘 위봉루 앞에 흙 만한 언덕이네. 羅綺香消春獨在 여인 향기 사라진 채 봄만 홀로 있고 ..
도인을 칭송하는 품격 있는 김시습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김시습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산지를 떠돌았던 시인이자 문인인 김시습은 유교일색으로 변해가는 조선사회에 유불도를 망라하는 사상세계를 구축한 반항아이기도 했다. 김시습이 쓴 시를 해석했었는데 스터디를 하면서 완전히 포커스가 엇나갔다는 걸 느꼈다. 그건 애초에 전제해둔 방향이 잘못된 데서 비롯된 거였다. 나는 이 시를 해석할 때 ‘이 시는 김시습이 지은 것이니 당연히 김시습의 얘기를 담은 거겠지’라는 점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내용 자체가 도통한 스님과 같은 시였기에 김시습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증준상인(贈峻上人)」이란 시처럼 명약관화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문학이 그렇듯 시를 ..
슬픈 정감으로도, 시원한 정감으로도 읽히는 기이한 김종직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두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김종직이다. 이미 권상 62번에서 그의 시 세계와 왜 그런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본 적이 있으니, 그 내용과 함께 이번 편에 소개된 시를 본다면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차청심루운(次淸心樓韻)」이라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청심루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주에 있는 누각으로 한양에서 머물던 그가 선산부사로 가기 위해 한양을 떠나며 여주 청심루에 들러 그곳 누각의 주인을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그때의 누각에 오른 소감을 적은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쓰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관수루 제영시(觀水樓 題詠詩)」를 보면..
늙음의 여유로움이 담긴 서거정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사람은 서거정이다. 서거정은 조선시대의 뭇 학자들과는 달리 흔한 유배조차 가지 않았으며 임금의 총애를 받아 외직조차 맡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고 그 권력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가 살았던 시기는 권력이 안정되고 문제가 없던 시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기는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가 일어나던 혼란의 시기였다. 그런데도 그런 변화무쌍한 권력의 흐름 속에서도 목숨 부지를 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가 얼마나 처세술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여기에 인용된 시는 아마도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던 말년 때의 시일 ..
64-2. 탁월하여 놀라게 할 만한 한시들(서거정~성현) 徐四佳剛中之「龍鍾」詩, “黑雲暗淡葡萄雨, 紅霧霏微菡萏風.” 未嘗不歎其沖融. 金佔畢齋季溫之「淸心樓」詩, “十年世事苦吟裏, 八月秋容亂樹間.” 未嘗不歎其爽朗. 金東峰悅卿之「山居」詩, “龍曳洞雲歸遠壑, 雁拖秋日下遙岑.” 未嘗不歎其雅健. 成虛白磬叔之「延慶宮古基」詩, “羅綺香消春獨在, 笙歌聲盡水空流.” 未嘗不歎其凄楚. 해석 徐四佳剛中之「龍鍾」詩, “黑雲暗淡葡萄雨, 紅霧霏微菡萏風.” 사가 서강중의 「늙고 병들다[龍鍾]」라는 시의 다음 구절은 黑雲暗淡葡萄雨 검은 구름 어둑하다가 포도에 비 내리고, 紅霧霏微菡萏風 붉은 노을 자욱하다가 연꽃엔 바람 부네. 未嘗不歎其沖融. 일찍이 평온하고 넉넉함에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金佔畢齋季溫之「淸心樓」詩, “十年世事苦吟裏..
과거를 회상할 이유를 알려준 이색의 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네 번째로 초대받은 작가는 목은 이색이다.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대표적인 작가로 고려 말기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고려 왕들을 위해 한 몸 불살라 최선을 다했고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었다. 그는 고려 뿐 아니라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며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눈 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인용된 「억산중(憶山中)」이란 시는 확 와 닿는다. 그건 마치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중년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막상 젊을 때 꿈꿨던 대로 살고 있는지 회한도 들고, 그때 친구와 밤하..
여행을 담는 한시의 품격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작가는 이제현이다. 이제현이 지은 「팔월십칠일 방주향아미산(八月十七日 放舟向峨眉山)」을 보기 위해선 그가 왜 원나라의 아미산에 갔는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15살이던 1301년에 과거에 급제했고 당시의 유력자인 권부(權溥)의 사위가 되었다. 그만큼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잘 나가며 여러 벼슬을 맡다가 28살이던 1314년에 충선왕으로 부름을 받아 원나라 연경(燕京)의 만권당(萬卷堂)에 머물게 되었고 원나라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30살이던 1316년에 충선왕을 대신하여 아미산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3개월 동안 서촉(西蜀) 지방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시의 배경인 아미산은 이때 가게 된 거라는 ..
이규보가 지은 아부시, 화려한데도 씁쓸한 이유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두 번째로 인용된 시의 주인공은 이규보다. 최치원 다음에 이규보가 나온다는 건 물론 홍만종의 개인적인 취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확 나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건 곧 삼국시대엔 최치원을 최고로 치는 것까진 인정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고려 전기엔 괜찮은 시가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고려 전기에 활약한 시인 중엔 정지상이나 김부식, 이인로와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의 시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다루지 한 명 정도는 다룰 만한데도 다루지 않았다. 이쯤 되면 홍만종에게 정말 묻고 싶어진다. 이번 편은 좋다는 한시들만을 선별했는데 그 기준이 무언지 궁금하다고, 그리고 고려 전기의 작품을 하나도 들지 않은 건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 말이..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여러 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첫 번째 시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라는 시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해서 문학사를 다루는 책이나 한시를 다루는 책에선 빠짐없이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리 못해도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고 그만큼 내용도 분명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에 읽던 방식대로 시를 읽게 되어 있고 그 방식대로 발표 준비를 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 방식이 옳은 줄만 아니, 지금까지 이해한 방식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스터디를 하면서 기존에 이해한 방식이 얼마나 많은 걸 놓치게 만들고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
작은 차이가 천지의 뒤틀림을 낳는다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선 홍만종이 생각하는 최고의 시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그에 대한 평을 하고 있다. 시평은 ‘일찍이 ~함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다[未嘗不歎]’라는 통일된 양식으로 ‘탄(歎)’이란 글자 뒤에 ‘감개(感慨)ㆍ장려(壯麗)ㆍ정치(精緻)’와 같은 두 글자의 단어들이 들어간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게 있다. 그건 당신은 최근에 문학작품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나서 감탄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예전에 돈도 궁하고 지지리도 궁상 맞게 공부하던 시기엔 꽤나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막상 단재학교에 들어가 영화팀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과 매년 전주와 부산의 국제영화제에 다니며 영화를 ..
64-1. 탁월하여 놀라게 할 만한 한시들(최치원~이색) 我東自崔孤雲以後, 歷高麗, 至我朝, 其間數千餘載, 爲文章者, 不啻數百家, 而大家則僅十餘人. 今記其表表警聯. 故無論諸詩話載與不載, 並錄之. 崔學士孤雲之「潤州慈和寺」詩, “畵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余未嘗不歎其感慨 李白雲春卿之「元日早朝」詩, ‘三呼萬歲神山湧, 一熟千年海果來.’ 未嘗不歎其壯麗. 李益齋仲思之「記行」詩, “雨催寒犢歸漁店, 風動輕鷗送客舟.” 未嘗不歎其精緻. 李牧隱穎叔之「山中」詩, “風淸竹院逢僧話, 草軟陽坡共鹿眠..” 未嘗不歎其穠贍. 해석 我東自崔孤雲以後, 歷高麗, 至我朝, 우리 동방은 최고운 이래로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其間數千餘載, 爲文章者, 不啻數百家, 그 사이에 수천 년 동안 문장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수백 명 뿐이..
21자로 표현된 장유의 심리학 보고서 『소화시평』 권하 63번의 주인공은 장유다. 지금의 나에게 계곡 장유는 「회맹후반교석물사연양공신사전(會盟後頒敎錫物賜宴兩功臣謝箋)」이라는 악명 높은 글을 쓴 장본인으로 남아 있다. 한문실력이 좋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웬만한 글들은 여러 가지를 조합하다보면 해석이 되는 정도다. 하지만 이 글은 길지도 않음에도, 그리고 해석본까지 참고하면서 보는 데도 도무지 해석도 안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곳 투성이다. 임금께 드리는 글답게 전고(典故)가 가득 차 있어 산 넘어 산이듯 전고를 지나면 또 다시 전고가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니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썼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막고 품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나에겐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데 홍만..
63. 점필재와 간이에 견주어도 될 시재를 지닌 장유의 시 張谿谷維, 文章圓暢馴熟, 爲一大家. 金淸陰序其集曰: “宣陵之世, 畢齋獨步, 穆廟之時, 簡易高蹈.” 蓋言谿谷文章, 可幷二公而爲三傑也. 其「贈畸庵」詩曰: “叢篁抽筍當階直, 乳燕將雛掠戶斜. 自笑蓬蒿張仲蔚, 平生不識五侯家.” 此可以見一斑而知虎豹之文. 해석 張谿谷維, 文章圓暢馴熟, 계곡 장유는 문장이 원만하고 트여 있으며 순하고 원숙하여 爲一大家. 한 명의 대가가 되었다. 金淸陰序其集曰: 청음 김상헌이 계곡의 문집에 서문을 쓰며 말했다. “宣陵之世, 畢齋獨步, “선릉의 시기엔 점필재가 독보적이었고 穆廟之時, 簡易高蹈.” 목릉(선조)의 시기엔 간이가 우뚝했다【고도(高蹈): 툭 일어섬, 특출남[崛起, 特出]】. 蓋言谿谷文章, 可幷二公而爲三傑也. 아마도 계곡의..
연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62번에선 연원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원이 있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근본이 있다는 얘기이고 기본이 갖춰져 있다는 얘기이다. 정약용이 쓴 「원교(原敎)」라는 글을 통해 얘기해보자면, 다산은 효제충신(孝弟慈忠信)과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선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있는 사람은 어른을 만나면 공경할 것이고, 상사를 만나면 충성할 것이며, 자식을 만나면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때그때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근본에 인의(仁義)만 있다면 저절로 행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시적 재능도 힘차느냐,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느냐 하는 것은 그런 자질을 연마하는 것..
62. 밑바탕이 있는 시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feat. 조찬한) 大凡詩與文, 貴有淵源. 其所謂奇崛者, 淡雅者, 雖其才之不同, 而惟源深者, 欲奇而奇, 欲淡而淡. 趙玄洲纘韓, 平生爲詩, 奇怪險崛. 其詠玩瀑臺詩曰: “深藏睡虎風烟晦, 倒掛生龍霹靂噴.” 有捕龍蛇搏虎豹之勢, 至如「贈槐山守吳肅羽」詩, 則曰: “新燕不來春寂寂, 故人將去雨紛紛.” 殆平易淡雅, 絶無險截之態, 非其源之深博者, 能若是乎. 해석 大凡詩與文, 貴有淵源. 대체로 시와 문장은 연원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 其所謂奇崛者, 淡雅者, 말했던 기이하고 우뚝한 것과 담백하고 우아한 것은 雖其才之不同, 비록 재주가 같지 않지만, 而惟源深者, 오직 연원이 깊은 사람이라면 欲奇而奇, 欲淡而淡. 기굴하려 하면 기굴해지고 담아하려면 담아해진다. 趙玄洲纘韓, 平生爲詩..
61. 호음ㆍ동고ㆍ동악ㆍ소암이 스님에게 준 시를 평가하다 古人贈僧詩, 多矣. 湖陰詩曰: “踏盡千山更萬山, 滿腔疑是碧孱顔. 他年縱未超三界, 猶與婆娑作寶關.” 東皐詩曰: “白雲涵影古溪寒, 和月時時上石壇. 詩在山中自奇絶, 枉尋岐路太漫漫.” →해석보기 東岳詩曰: “老年何事喜逢僧, 欲訪名山病未能. 花落矮簷春晝永, 夢中皆骨碧層層.” 疎庵詩曰: “儒言實理釋言空, 氷炭難盛一器中. 惟有秋山碧蘿月, 上人淸興與吾同.” 鄭詩奇健, 崔精深, 李淸灑, 任超脫, 各臻其極. →해석보기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서설 상권 목차 하권 목차 조선과 불교, 선비와 불교 산이 된 스님을 담은 호음의 시 은근한 마음을 스님에게 전한 동고의 시 스님이 보고 싶었던 동악의 시 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빙탄상애(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儒言實理釋言空 선비는 실리를 말하고 스님은 공(空)을 말하니, 氷炭難盛一器中 얼음과 숯을 한 그릇에 담기 어려워라. 惟有秋山綠蘿月 오직 가을 산의 푸른 넝쿨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있어야 上人淸興與吾同 스님의 맑은 흥이 나와 같구려. 『소화시평』 권하 61번 맨 마지막에 인용된 시는 임숙영의 시다. 임숙영은 이미 권필이 쓴 「임무숙이 삭과됐다는 걸 듣고[聞任茂叔削科]」라는 시의 주인공을 말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했고 광해군과의 대책을 나누는 자리에서 광해군의 비인 유씨의 친족(유희사, 유희분)이 국정을 좌우하며 고혈을 빼먹고 있는 걸 보고 광해군에게 버드나무[柳]에 빗대어 뼈 있는 얘기를 했다가 유희분의 눈 밖에 나서 관직이 삭과되었다가 다시 급제하는 ..
스님이 보고 싶었던 동악의 시 『소화시평』 권하 61번에선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스님에게 준 시 네 편을 모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앞선 편에서 호음이 준 시와 동고가 준 시를 보며 어떤 부분이 이색적이었는지를 살펴봤기에, 이젠 그 다음에 나오는 사람인 동악시를 중심으로 살펴볼 차례다. 老來何事喜逢僧 늘그막에 무슨 일로 스님 보길 좋아하나? 欲訪名山病未能 명산을 방문하려 해도 병들어 할 수 없어서지. 花落矮簷春晝永 꽃 지는 낮은 처마엔 봄날이 기나긴데, 夢中皆骨碧層層 꿈속에서 개골산은 층층이 푸르더이다. 동악의 시는 1~2구가 하나로 이어져 의미를 만들어낸다. 마치 이백의 「산중답인(山中答人)」이라는 시처럼 1구에서 스스로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자문..
61-2. 호음ㆍ동고ㆍ동악ㆍ소암이 스님에게 준 시를 평가하다 東岳詩曰: “老年何事喜逢僧, 欲訪名山病未能. 花落矮簷春晝永, 夢中皆骨碧層層.” 疎庵詩曰: “儒言實理釋言空, 氷炭難盛一器中. 惟有秋山碧蘿月, 上人淸興與吾同.” 鄭詩奇健, 崔精深, 李淸灑, 任超脫, 各臻其極. 해석 東岳詩曰: “老年何事喜逢僧, 欲訪名山病未能. 花落矮簷春晝永, 夢中皆骨碧層層.” 동악의 「설잠 스님에게 주다[贈雪岑上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老來何事喜逢僧 늘그막에 무슨 일로 스님 보길 좋아하나? 欲訪名山病未能 명산을 방문하려 해도 병들어 할 수 없어서지. 花落矮簷春晝永 꽃 지는 낮은 처마엔 봄날이 기나긴데, 夢中皆骨碧層層 꿈속에서 개골산은 층층이 푸르더이다. 疎庵詩曰: “儒言實理釋言空, 氷炭難盛一器中. 惟有秋山碧蘿月, 上人淸興與吾同..
은근히 스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동고의 시 白雲涵影古溪寒 흰 구름의 그림자를 담아 놓으니 오래된 시내는 차고 和月時時上石壇 달과 때때로 석단에 오르네. 詩在山中自奇絶 시는 산 속에 있어야 절로 기이해지는데, 枉尋岐路太漫漫 잘못 갈림길을 찾아 너무나 오랫동안 헤매었네. 『소화시평』 권하 6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는 동고의 시다. 호음의 시는 스님 자체를 중심에 놓고 그를 인정해주는 말들로 가득 찬 반면에 동고의 시엔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즉 두 사람의 시는 접근부터 완벽히 달랐던 셈이고, 그 말은 곧 이 시를 쓰려했던 이유가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1구와 2구엔 스님에게 준 시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산 속 제단의 모습만 드러나고 있다. 1구 자체는 시내를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하..
산이 된 스님을 담은 호음의 시 『소화시평』 권하 61번은 서두부터 간단명료하게 ‘옛 사람이 스님에게 준 시가 많다[古人贈僧詩, 多矣].’라고 말하며 훅 치고 들어온다. 저번에 김형술 교수의 특강과 박동섭 교수의 특강에 대한 후기를 쓸 때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해 세심하게 결을 가다듬으며 서두를 정성껏 전개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두 분의 교수님처럼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분위기 자체를 압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처럼 이 글에서 홍만종은 말하고 싶은 걸 짧고도 굵게 단번에 내뱉으며 연이어 네 편의 시를 첨부하며 마지막엔 네 편에 시를 단 두 글자의 평가하며 마무리 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주 심플하면서도 말하고..
조선과 불교, 선비와 불교 고려와 조선을 나누는 기준점을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단순히 왕의 성씨가 바뀐 것만으로는 백성들에게 새 왕조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후반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도록 만든 건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체계화되어 수입된 주자학(성리학)이라는 것이었고 그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중에 일개 신진학자임에도 뭔가 고려라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한 명의 학자는 맹자의 ‘무도한 임금은 그저 한 명의 외로운 사내(獨夫)에 불과하기에 죽이거나 갈아치우는 것도 가능하..
61-1. 호음ㆍ동고ㆍ동악ㆍ소암이 스님에게 준 시를 평가하다 古人贈僧詩, 多矣. 湖陰詩曰: “踏盡千山更萬山, 滿腔疑是碧孱顔. 他年縱未超三界, 猶與婆娑作寶關.” 東皐詩曰: “白雲涵影古溪寒, 和月時時上石壇. 詩在山中自奇絶, 枉尋岐路太漫漫.” 해석 古人贈僧詩, 多矣. 옛 사람이 스님에게 준 시가 많다. 湖陰詩曰: “踏盡千山更萬山, 滿腔疑是碧孱顔. 他年縱未超三界, 猶與婆娑作寶關.” 호음의 「무제(無題)」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踏盡千山更萬山 수천 산 밟고 나면 수만 산을 또 갔으니, 滿腔疑是碧孱顔 스님의 속에 든 것은 필시 푸르고 우뚝한 모습이리라. 他年縱未超三界 다른 해에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猶與婆娑作寶關 사바세계에 머뭇거리며 절집을 짓겠지. 東皐詩曰: “白雲涵影古溪寒, 和月時時上石壇. 詩在山中自奇絶,..
60. 조희일의 도망시 趙竹陰希逸, 嘗以從事官到瑞興. 時蓀谷李達新亡所眄妓, 諸公適會驛樓, 爲蓀谷, 賦悼亡詩. 竹陰先題曰: ‘生離死別兩茫然, 恨入嬋姸洞裏綿. 飛步無蹤仙佩冷, 殘花不語曉風顚. 美人寃血成春草, 神女朝雲鎖峽天. 九曲柔腸元自斷, 驛名何事又龍泉.’ 諸公皆閣筆. 龍泉, 卽瑞興館名. 해석 趙竹陰希逸, 嘗以從事官到瑞興.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이 일찍이 종사관이 되어 황해도 서흥(瑞興)에 도착했다. 時蓀谷李達新亡所眄妓, 諸公適會驛樓, 爲蓀谷, 賦悼亡詩. 이때 손곡 이달이 아끼던 기녀가 막 죽어 여러 사람들이 마침 역의 누각에 모여 손곡을 위해 도망시를 지어줬다. 竹陰先題曰: ‘生離死別兩茫然, 恨入嬋姸洞裏綿. 飛步無蹤仙佩冷, 殘花不語曉風顚. 美人寃血成春草, 神女朝雲鎖峽天. 九曲柔腸元自斷, 驛名何事又龍泉..
59. 박엽의 시 朴叔夜燁, 極有文才, 號葯窓. 未釋褐時, 過某邑, 主倅饋以烹鴈. 朴卽題盤面曰: ‘秋盡南歸春北去, 溪邊羅網忽無情. 來充太守盤中物, 從此雲間減一聲.’ 嘗爲平安監司, 贈入京使臣曰: ‘歌低琴苦別離難, 隴月蒼蒼隴水寒. 我與雪山留此地, 君隨西日向長安.’ 有才如此, 而終枉其身, 可惜也. 해석 朴叔夜燁, 極有文才, 號葯窓. 숙야(叔夜) 박엽(朴燁)은 매우 글재주가 있었고 호는 약창(葯窓)이다. 未釋褐時, 過某邑, 主倅饋以烹鴈. 한미한 옷을 벗지 않았을 적에 모읍을 지나는데 사또[主倅]가 삶은 기러기를 보내왔다. 朴卽題盤面曰: ‘秋盡南歸春北去, 溪邊羅網忽無情. 來充太守盤中物, 從此雲間減一聲.’ 박엽은 곧바로 소반의 면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秋盡南歸春北去 가을이 다하여 남쪽으로 돌아와 봄에 북쪽으로..
58. 홍서봉과 이식 鶴谷「挽朴錦溪」詩一聯曰: ‘搏鵬一失扶搖勢, 病樹虛經爛熳春’ 澤堂「挽南雪簑」詩云: ‘一炊爛熳邯鄲枕, 萬斛撑過灩澦堆.’ 人稱兩句, 造意鑄思相同. 해석 鶴谷「挽朴錦溪」詩一聯曰: ‘搏鵬一失扶搖勢, 病樹虛經爛熳春’ 학곡의 「만박금계(挽朴錦溪)」라는 시의 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摶鵬忽失扶搖勢 단붕홀실부요세 모인 붕새가 문득 회오리바람[扶搖] 같은 기세를 잃었고 病樹虛經爛熳春 병수허경란만춘 병든 나무는 헛되이 화려하게 꽃핀[爛熳] 봄을 지내는 구나. 澤堂「挽南雪簑」詩云: ‘一炊爛熳邯鄲枕, 萬斛撑過灩澦堆.’ 택당의 「만남설사(挽南雪簑)」라는 시의 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一炊爛熳邯鄲枕 일취난만감단침 한 번 밥 불 땔 때의 현란한 한단의 꿈 같았고 萬斛撑過灎澦堆 만곡탱과염여퇴 만 곡을 지탱하여 지..
57. 홍서봉의 시재 洪鶴谷瑞鳳, 爲詩沈鬱豪健, 然時病澁僻, 每作一首, 必費數日. 嘗到醴泉郡, 得‘詹留如客燕, 池謝似郞花’之句, 終日苦吟, 竟未成篇. 奉使關西, 「贈龍川老馬頭」詩曰: ‘當時從事未生鬚, 醉騁驊騮爾輒扶. 三十年來相見地, 吾豪爾健一分無.’ 筆力老而益健. 해석 洪鶴谷瑞鳳, 爲詩沈鬱豪健, 然時病澁僻, 每作一首, 必費數日.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은 시를 지은 것이 침울하고 호쾌하고 강건하지만 이따금 떫고 시시콜콜한 병통이 있었으며 매번 한 수를 지을 때면 반드시 여러 날을 소비했다. 嘗到醴泉郡, 得‘詹留如客燕, 池謝似郞花’之句, 終日苦吟, 竟未成篇. 일찍이 예천군(醴泉郡)에 이르러 다음 구절을 얻었지만 종일토록 괴롭게 읊조려봐도 마침내 한 편을 완성치 못했다. 詹留如客燕 池謝似郞花 처마엔 나그..
56. 이안눌과 허적 夫娼情冶思之作, 有正有邪, 正有可說, 邪亦有戒. 李東岳嘗按察北關, 有一妓善歌, 遂贈以衣資, 題詩以贈曰: ‘莫怪樽前贈素衿, 老翁寧有少年心. 秋空月白思歸夜, 一曲姸歌直萬金.’ 許水色𥛚, 嘗於芝山家有注意兒, 作詩曰: ‘擬將今日死君家, 魂化春閨箔上蛾. 長在玉人纖手下, 不辭軀殼似蟬花.’ 해석 夫娼情冶思之作, 有正有邪, 正有可說, 邪亦有戒. 일반적으로 기녀의 정과 그리워하는 생각의 작품은 바른 게 있고 사악한 게 있으니 바른 것은 말할 만하고 사악한 것은 또한 경계할 만하다. 李東岳嘗按察北關, 有一妓善歌, 遂贈以衣資, 題詩以贈曰: ‘莫怪樽前贈素衿, 老翁寧有少年心. 秋空月白思歸夜, 一曲姸歌直萬金.’ 이동악이 일찍이 북관(北關)에 안찰(按察)하러 갔을 적에 한 기녀가 잘 노래하니 마침내 옷[衣資]..
55. 김류의 시 申東淮嘗得「上林圖」于瀋陽, 屬金北渚賦詩曰: ‘紫閣昆明一掌中, 武皇車馬若雷風. 六丁有力排天外, 三絶無端落海東. 去趙常爲和氏璧, 輸韓亦是楚人宮. 獨憐上苑猶秦地, 誰經襄王賦小戎.’ 淸陰ㆍ觀海皆次之. 觀海嘗云: “此老此詩甚奇健, 但未知輸韓二字出處.” 客曰: “韓字莫是三韓之謂乎?” 觀海笑曰: “非也. 若是則大誤矣, 此老必有所見耳.” 해석 申東淮嘗得「上林圖」于瀋陽, 屬金北渚賦詩曰: ‘紫閣昆明一掌中, 武皇車馬若雷風. 六丁有力排天外, 三絶無端落海東. 去趙常爲和氏璧, 輸韓亦是楚人宮. 獨憐上苑猶秦地, 誰經襄王賦小戎.’ 동회(東淮) 신익성(申翊聖)이 일찍이 심양(瀋陽)에서 「상림도(上林圖)」를 얻어 김북저(金北渚)에게 시 짓기를 부탁하여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紫閣昆明一掌中 자각곤명일장중 자각(紫閣)과 곤..
의고파 시의 특징과 이안눌의 시가 굳센 이유 『소화시평』 권하 54번의 주인공도 앞에서부터 쭉 살펴봤다시피 이안눌(1571~1637)이다. 아무래도 홍만종(1637~1688)의 입장에선 그나마 2세대 위의 선배로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돌고 있고 많은 자료들도 남아 있는 이안눌에 대한 글을 쓰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니 권하 50번부터는 계속해서 이안눌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그의 시적 재능을 평가하고 그와 관련 있었던 양경우 시와의 비교(50번, 51번)를 했었고, 이번 편에선 석주 시와의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50번 감상글에서도 썼다시피 이안눌은 의고파다. 의고파는 ‘문장은 반드시 진나라와 한나라 때의 문장으로 짓고 시는 반드시 성당의 시체로 짓는다[文必秦漢, 詩必盛唐].’를 핵심적인 기치로 걸고..
54. 이안눌의 축수연 시, 석주와 동악을 평가한 동명 沈判書輯, 乞養除安邊, 壽大夫人. 東岳席上賦一律, 其頷聯曰: “卿月遠臨都護府, 壽星高拱大夫人.” 文士李進見之, 歎曰: “眞六經文章也.” 余問東溟曰: “石洲ㆍ東岳詩誰優?” 東溟曰: “石洲甚婉亮, 東岳甚淵伉, 比之禪家, 石洲頓悟, 東岳漸修, 二家門路雖不同, 優劣未易論.” 해석 沈判書輯, 乞養除安邊, 판서 신집이 봉양을 구걸해서 안변부사를 제수 받았을 때 壽大夫人. 대부인의 축수연을 열었다. 東岳席上賦一律, 其頷聯曰: “卿月遠臨都護府, 壽星高拱大夫人.” 동악이 자리에서 율시를 지었으니 함련은 다음과 같다. 卿月遠臨都護府 경월은 멀리 도호부에 임했고 壽星高捧太夫人 수성은 높이 태부인을 받들었네. 文士李進見之, 歎曰: “眞六經文章也.” 문사 이진이 이 시를 ..
53. 이안눌의 재능 澤堂一日往拜東岳, 適有二緇徒來在. 時維正月之初五, 而前三日連雪, 東岳卽口占: ‘春天五日雪三日.’ 澤堂諦視, 姑俟其對句如何, 東岳又吟: ‘遠客四人僧二人.’ 儷偶極妙, 澤堂驚歎不已. 해석 澤堂一日往拜東岳, 適有二緇徒來在. 택당이 하루는 동악을 가서 뵈었는데 마침 두 명의 스님이 와서 있었다. 時維正月之初五, 而前三日連雪, 東岳卽口占: ‘春天五日雪三日.’ 이때가 정월 초닷새로 어제까지 사흘간 눈에 내렸는데 동악은 즉석에서 입에 나오는 대로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春天五日雪三日 봄 날씨 닷새째인데 눈 사흘 내렸고 澤堂諦視, 姑俟其對句如何, 東岳又吟: ‘遠客四人僧二人.’ 택당이 자세히 보며 짐짓 대구가 어떠한지 기다리니 동악이 또한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遠客四人僧二人 먼 손님 4명인데 ..
죽은 이를 그리는 방법 『소화시평』 권하 52번에선 동악과 석주, 그리고 체소와의 진한 우정이 담겨 있다. 이미 석주와의 인연과 마음에 대해선 글을 쓰기도 했으니, 둘의 관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체소와도 가까운 관계란 건 이번 글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석주와 동악은 정철 스승에게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단순히 동문수학한 동기 정도가 아니라 남다른 서로에 대한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권필에 궁류시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유배를 가다가 죽은 이후 「곡석주(哭石洲)」라는 정말 친한 사이에서 억지로 꾸며내려 하지 않아도 절로 우러나는 만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동악이었으니 석주와 체소의 아이들이 강화도에 살고 있는 자신을 찾아왔을 때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어떤 연유로..
52. 이안눌이 석주와 권필의 자식들을 만나 느꺼워하며 지은 시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一樽江海秋雲寒.” 詞甚遒麗. 體素初擢第, 直拜檢閱, 終于宗簿寺僉正; 石洲曾爲童蒙敎官, 今贈司憲持平, 兩君年皆止四十有四. 해석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동악 이안눌은 체소와 석주와 서로 친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다.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훗날 양가의 자제들이 함께 강도에서 동악을 방문했는데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
분석보단 이해의 중요성을 알려주다 『소화시평』 권하 51번에선 권하 50번의 글과는 달리 서로 경쟁적으로 글을 짓는 분위기는 아니다. 왜 이런 시를 짓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은 생략된 채 처음부터 양경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殘花杜宇聲中落 쇠잔한 꽃은 두견새 소리 속에 지고 芳草王孫去後靑 향기론 풀은 왕손이 떠난 후에 푸르네. 여기까지만 보면 매우 일반적인 이야기인 것만 같다. 누군가 어떤 환경에서 시를 지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 누군가 애써 지은 작품에 대해 바로 그 앞에서 평가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하다. 서로의 관계도 있지만 시의 우열로 인해 너무 기고만장한 사람으로 비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런 것조차도 허물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친했던..
소화시평이 준 공부의 변화 『소화시평』 권하 51번은 권하 50번에서 봤던 글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을 보기 이전에 50번 글과 함께 보면 무슨 내용인지 더 이해하기가 쉽다. 본문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과거 회상을 해보려 한다. 예전에 임용을 공부하던 시기에도 한시는 여러 편 봤었고 시화도 『파한집(破閑集)』, 『성수시화(惺叟詩話)』를 보긴 했었다. 그땐 그게 공부하는 방식이라 생각했고 임용고시를 위해 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한계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그 한계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모든 그저 눈으로만 보고 피상적으로 이해된 것을 ‘마치 잘 이해한 것처럼 ..
51. 같은 듯 다른, 양경우와 이안눌의 시 霽湖嘗作詩曰: “殘花杜宇聲中落, 芳草王孫去後靑.” 自以爲警聯 東岳見而笑曰: “此詩直說, 無曲折.” 因誦自家詩曰: “海棠花下逢僧話, 杜宇聲中送客愁.” 李ㆍ梁詩, 雖無淺深, 作法自有巧拙, 學詩者於此, 灼有所見, 則可與言詩. 해석 霽湖嘗作詩曰: “殘花杜宇聲中落, 芳草王孫去後靑.” 제호가 일찍이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殘花杜宇聲中落 쇠잔한 꽃은 두견새 소리 속에 지고 芳草王孫去後靑 향기론 풀은 왕손이 떠난 후에 푸르네. 自以爲警聯 스스로 놀랠 만한 연이라 생각했다. 東岳見而笑曰: 동악이 보고 웃으며 말했다. “此詩直說, 無曲折.” “이 시는 직설적이어서 굽고 꺾인 것이 없다.” 因誦自家詩曰: “海棠花下逢僧話, 杜宇聲中送客愁.” 그래서 스스로 지은 시를 외웠으니 ..
한시엔 정답이 아닌 관점만이 있다 『소화시평』 권하 50번엔 면앙정에 올라 제호와 동악이 한시 대결을 했고 두 시에 대해 제호 양경우는 동악의 시가 더 좋다고 평가했다. 여기까지 글을 보고 나면 단순히 ‘이안눌의 시가 양경우의 시보다 좋았구나’라는 결론이 지어지게 된다. 하지만 보통의 영화가 그렇듯 반전의 묘미가 잘 살 때 그 영화가 남다르게 보이고 다시 처음부터 곱씹으며 보고 싶어지듯, 이 글에서도 반전을 숨겨놓아 글을 읽는 맛을 배가 시키고 있다. 그건 바로 홍만종의 평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양경우는 이안눌의 시가 자신의 시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했던 반면에, 홍만종은 그런 얘기를 거절하며 ‘양경우의 시가 훨씬 낫다’고 매우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만종은 ‘동악의 시는 비록 원만하게 전..
면앙정에서 펼쳐진 제호와 동악의 한시 대결 『소화시평』 권하 50번의 주인공은 양경우와 이안눌이다. 양경우에 대한 글은 이미 권상 37번에서 다뤘었다. 그 글을 읽으며 한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그 경치가 그대로 그려지는 걸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안눌 같은 경우는 작년 3월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승 정철, 그리고 친구인 권필과의 추억을 글로 정리하며 좀 더 가까운 사람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치 마주치지 않던 평행선처럼 느껴졌던 두 사람이 이번 글에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양경우의 말을 통해 상황과 서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첨부하고 그런 평가에 대하 홍만종 자신의 평가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
소화시평, 글쓰기 그리고 도전정신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지만 참으로 막막했다. 한때 임용을 5년 정도 준비했다곤 하지만 임용공부란 게 그렇지 않은가. 자신을 좁디 좁은 공간에 유폐시켜 놓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도 오로지 ‘임용공부’라는 네 글자에 가둬놓는다. 그렇다고 제대로 공부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초반에야 이것저것 글을 보고 의미를 부여하며 공부를 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부턴 관성이 작용해서 하던 공부를 그저 해야만 하기에 들여다보는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부의 장수생에게 최고의 적은 바로 그와 같은 무맥락적이고, 무의미적인 공부란 활동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임용공부를 징하게 할 때에도 실력은 늘 제자리를 멤돌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임용공부를 그..
50. 면앙정에서 지은 양경우와 이안눌의 한시를 비교하다 霽湖梁慶遇曰: “李東岳宰秋城時, 與僕登俛仰亭賦詩, 僕敢唐突先手. 頷聯云: ‘殘照欲沈平楚闊, 太虛無閡衆峯高.’ 自以爲得雋語. 東岳次曰: ‘西望川原何處盡, 南來形勝此亭高.’ 下句隱然與老杜, ‘海右此亭高’ 語勢略似, 可謂‘投以木瓜, 報之瓊琚’云.” 以余觀之, 東岳詩, 雖似圓轉無欠, 終不如霽湖淸新突兀, 豈故作遜語以詫之. 해석 霽湖梁慶遇曰: “李東岳宰秋城時, 제호 양경우가 말했다. “이동악이 담양부사가 되었을 때【추성(秋成)은 대부분 사본에 추성(秋城)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추성(秋成)은 전라도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의 옛 이름이다 백제 때에는 추자혜(秋子兮郡)이었다가 통일신라 때 추성군(秋成郡)으로 바뀌었고 고려 때 담양으로 정해졌다 여지승람..
시엔 그 사람이 드러나며, 한 글자엔 미래가 보인다 『소화시평』 권하 49번은 권상 85번에서 봤던 것처럼 시참(詩讖)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85번 감상글에서 서술했다시피 시참은 너무도 결과론적으로 상황을 껴 맞추는 느낌이 나서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85번의 내용은 시참이라기보단 시를 보고 그 사람의 미래를 예언한 경우라 보아야 한다.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해 결과론적으로 시를 껴맞추기보단 시에 드러난 그 사람의 기상을 보고 훗날의 일을 예상한 것이니 말이다. 홍섬이 모함에 의해 투옥되어 다들 걱정을 한아름 하고 있을 때 유독 소세양만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홍섬이 이전에 지은 시를 보니 어떤 극적인 상황이든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
49. 시참과 학곡부인 古今詩讖. 如「詠珠」詩 ‘夜來雙月滿, 曙後一星孤’之類甚多, 不可勝記. 而洪監司命耈兒時作一句云: ‘花落天地紅’ 鶴谷大夫人, 見而歎曰: “此兒必貴, 然似當夭折. 若曰: ‘花開天地紅’ 則福祿無量, 而落字無遐福氣像, 惜哉.” 後公以平安監司戰死金化, 時年四十二, 卒應其讖. 鶴谷大夫人, 卽於于柳夢寅之妹也, 於于受業之時, 從傍竊學, 其文章絶世. 然自以夫人不宜吟咏, 故絶無所傳. 惟‘入洞穿春色, 行橋踏水聲’一句, 傳于世. 해석 古今詩讖. 如「詠珠」詩 ‘夜來雙月滿, 曙後一星孤’ 고금의 시참은 예를 들면 「영주(詠珠)」라는 시의 구절 夜來雙月滿 曙後一星孤 밤이 되자 두 달이 가득 찼는데 날이 밝자 별 하나가 외롭구나. 之類甚多, 不可勝記. 과 같은 종류가 매우 많아서, 이루다 기록할 수가 없다. 而洪..
독창적인 글세계를 열어젖힌 유몽인 『소화시평』 권하 48번은 권하 47번 글과 이어서 보면 이 시를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야 그가 왜 과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부는 누굴 상징하며 과부의 어떤 정조를 기리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七十老孀婦 端居守閨壺 70살의 늙은 과부가 단정히 규방을 지키네. 家人勸改嫁 善男顔如槿 집사람이 개가하라 권하는데 좋은 사람인데 얼굴도 무궁화 같다고. 頗誦女史詩 稍知妊姒訓 “여사의 시를 많이 익혔고 임사의 가르침을 조금은 알고 있어요.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흰 머리로 젊은 자태 짓는다면 어찌 연지분에 부끄럽지 않겠소.” 1구~2구에선 ‘과부=정조’를 표현하고 있다.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해석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
48. 인조반정을 비판하고자 지은 유몽인의 시 於于於獄中, 書進「孀婦詞」曰: “七十老孀婦, 端居守閨壼. 家人勸改嫁, 善男顔如槿. 頗誦女史詩, 稍知妊姒訓.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竟坐死. 論者稱於于之於簡易, 老熟雖不及,, 才調過之. 簡易固有依形而立者, 於于皆出自機軸, 變化無窮, 此最難處云. 於于平生所著述, 不止數十萬言, 而惜其被禍, 文集不行於世, 良可歎也. 해석 於于於獄中, 書進「孀婦詞」曰: “七十老孀婦, 端居守閨壼. 家人勸改嫁, 善男顔如槿. 頗誦女史詩, 稍知妊姒訓.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유몽인이 가막소에서 「과부의 노래[孀婦詞]」라는 글을 지어 바쳤으니 다음과 같다. 七十老孀婦 端居守閨壺 70살의 늙은 과부가 단정히 규방을 지키네. 家人勸改嫁 善男顔如槿 집사람이 개가하라 권하는데 좋은 사람인데 ..
시에 드러난 유몽인의 반반정 정신과 숨겨진 의미 『소화시평』 권하 47번에 소개된 이 시를 보면 이미 유몽인은 현실의 벼슬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걸 지레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직접적으로 드러내선 안 되고 이와 같이 좀벌레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사화(士禍)의 시대엔 관직에 있지 않은 유학자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여러 가지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당쟁이 본격화되는 시대엔 어느 당파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변화무쌍한 권력지형의 요동침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줄을 타느냐에 따라 출세와 질시, 삶과 죽임이 갈린다. 유몽인이 볼 땐 이런 정치지형은 매우 나쁜 것으로 보였고, 매우 공적이어야할 정치활동이 사적인 정치활동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
인조반정과 임진왜란을 대처하는 유몽인의 방식 『소화시평』 권하 47번에서는 ‘좀벌레두[蠹]’라는 글자가 핵심적인 글자로 나오는데, 이 글자와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12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2007년 다산연구소에서 기획하여 떠난 실학캠프에서 정여창 고택에 갔을 때 처음 알게 됐다. 정여창의 호가 바로 ‘일두(一蠹)’였고 그에 따라 여러 감상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엔 아래와 같은 감상을 담아놨다. 그의 호는 대단히 이색적이다. 보통 자신의 거주지나 추구하는 인생관을 호에 담기 마련이어서 호를 통해 그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자호는 일두(一蠹)이지 않은가. 바로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이다. 왜 그런 자기비하에 가까운 호를 붙였는지, ..
47. 사익을 탐한 무리를 한시로 꾸짖은 유몽인 柳於于少時閱書籙, 見簡冊中有蠹魚狼藉, 遂作一絶曰: “秦王餘魄化爲蟫, 食盡當年未盡書. 等食須知當食字, 一篇私字食無餘.” 蓋有所激而云, 豈獨憎蠹魚也哉. 해석 柳於于少時閱書籙, 어우 유몽인이 젊을 적에 책을 보다가 見簡冊中有蠹魚狼藉, 책 가운데에 책벌레가 낭자한 걸 보고서 遂作一絶曰: “秦王餘魄化爲蟫, 食盡當年未盡書. 等食須知當食字, 一篇私字食無餘.” 마침내 「책을 보다가 책벌레가 낭자한 걸 보고서[閱書帙見蠧魚狼藉]」라는 절구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秦王餘魄化爲蟫 진시왕의 남은 넋이 변하여 책벌레가 되었는지 食盡當年未盡書 당년에 못 먹은 책을 죄다 먹어 치우네. 等食須知當食字 똑같이 먹더라도 모름지기 마땅히 먹어야 할 글자를 알아야 하니, 一篇私字食無餘 한 권..
46. 유몽인의 시 柳於于夢寅「送李校理日本」詩曰: ‘鯨曝東溟十二年, 馬洲蕭瑟隱重烟. 城頭畵閣催紅日, 臺上華筵近碧天. 秋日賓盤饒島橘, 夜風漁笛識夷船. 書生正坐談兵略, 醉撫龍泉看跕鳶.’ 只此一詩, 可見所立卓犖. 且如「山行」詩: ‘蚌螺黏石何年海, 蘿葍生山太古田.’ ‘躑躅背岩多白蘂, 狌鼯食栢或靑毛.’ 等聯, 皆極幽奇. 해석 柳於于夢寅「送李校理日本」詩曰: ‘鯨曝東溟十二年, 馬洲蕭瑟隱重烟. 城頭畵閣催紅日, 臺上華筵近碧天. 秋日賓盤饒島橘, 夜風漁笛識夷船. 書生正坐談兵略, 醉撫龍泉看跕鳶.’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송이교리일본(送李校理日本)」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鯨曝東溟十二年 고래가 동쪽 바다에서 볕을 쬔 지 12년에 馬洲蕭瑟隱重烟 대마도[馬洲島]는 쓸쓸히 겹겹의 안개 속에 숨어 있네. 城頭畫角催紅日 성 어..
가문의 시재를 풀어낸 홍만종 楊柳依依二十橋 버드나무 휘늘어진 열두 다리. 碧潭春水正迢迢 푸른 호수엔 봄물이 참으로 아스라하네. 粧樓珠箔待新月 고운 누대 구슬 늘어뜨린 주렴에서 새로 뜰 달을 기다리니, 江畔家家吹紫簫 강가에선 집집마다 퉁소를 불고 있네. 위에서 말한 시풍에 대한 지식으로 『소화시평』 권하 45번에서 두 번째로 소개된 「항주도(杭州圖)」라는 시를 보면 이건 두 말할 나위 없이 당시풍의 시라는 걸 알 수 있다. 항주엔 가본 적도 없지만 위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항주의 풍경을 그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곳은 물로 가득 찬 베네치아 같은 곳이리라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교수님도 그곳은 운하가 뚫리며 문화의 도시로 각광 받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수많은 문인들이 그곳을 찾게 됐노라고 이야기를 해줬..
단장취의로 한시의 시풍이 바뀌다 한문에는 관습적으로 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내는 ‘단장취의(斷章取義)’의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어느 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풀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주제를 강화하는 용도로 쓰곤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할 때의 문제점은 전체내용이 아닌 부분의 내용으로 전체내용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글이란 게 쓰다 보면 여러 예시도 들어가고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반대되는 말도 하게 마련이다. 나의 글에도 여러 부분에 ‘빨갱이’란 단어들이 들어 있는데 누군가 그 부분만 딱 떼어내어 “건빵은 빨갱이를 싫어하는 반공주의자다”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억울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맹자는 ‘단장취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
45. 아계와 석루의 부전자전 李慶全, 號石樓. 九歲時鵝溪抱置膝下, 使作卽景, 其詩曰: “一犬吠, 二犬吠, 三犬亦隨吠, 人乎虎乎風聲乎? 童言山月正如燭, 半庭惟有鳴寒梧.” 十歲作「杭州圖」詩曰: “楊柳依依十二橋, 碧潭春水正迢迢. 粧樓珠箔待新月, 江畔家家吹紫簫.” 鵝溪早以神童稱, 而石樓之髫齔奇藻又如此, 可稱其家兒也. 해석 李慶全, 號石樓. 이경전은 호가 석루다. 九歲時鵝溪抱置膝下, 9살에 아버지 아계 이산해가 무릎에 앉혀두고 使作卽景, 아이에게 눈앞에 보이는 경치를 짓게 하니【『석루유고(石樓遺稿)』엔 13살 때의 작품이라고 나온다】 其詩曰: “一犬吠, 二犬吠, 三犬亦隨吠, 人乎虎乎風聲乎? 童言山月正如燭, 半庭惟有鳴寒梧.” 「개가 짓다[犬吠]」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一犬吠二犬吠 첫째 개가 짖으니 둘째 개도 짖..
차운로의 호기로운 한시 峽墮新霜草木知 골짜기에 내린 새 서리, 초목이 알려주는데, 寒江脈脈向何之 차가운 강은 말없이 어디로 흘러가나? 老龍抱子深淵裏 노룡은 새끼 품고 깊은 못에서 臥敎明春行雨期 누워 내년 봄의 비 내릴 때를 가르치겠구나. 『소화시평』 권하 44번에서 두 번째로 소개된 시는 「산행즉사(山行卽事)」다. 1~2구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답게 눈에 보인 그대로의 풍경을 읊었다. 골짜기에 서리가 내렸다는 건 풀과 나무의 이슬을 통해 알 수 있고, 차가운 시냇물을 졸졸졸 어딜 향해 흘러가기만 한다. 공자 같았으면 물을 보고 철학적인 깨달음을 담았을지도 모르지만, 차운로는 그렇게까지 나아가진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 물속엔 늙은 용이 살고 있으며 지금은 서리가 내린 때라 칩거한 채 자식을..
정돈된 시를 잘 짓는 차운로 차천로에 대해선 다루고 있는 글들이 많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의 동생인 차운로에 대해선 그나마 『소화시평』 권하 44번에서 다룬 덕에 보게 되었다. 이게 바로 시화집을 읽는 맛이다. 한문학사든, 임용고사에서 다루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을 다룰 수는 없다. 이미 ‘교육학에서 다룬 비고츠키를 지워라’라는 글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현실을 자기의 의식 속에서 구조화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럴 때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지도, 문학적 영향력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운로보단 차천로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판단 하에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것이고 차천로의 글 위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기준과 홍만종이 살던 당..
44. 묘사가 뛰어난 한시를 지은 차운로 車滄洲雲輅「竹西樓」詩曰: “頭陀雲樹碧相連, 屈曲西來五十川. 鐵壁俯臨空外島, 瓊樓飛出鏡中天. 煙霞近接官居界, 風月長留几案前. 始覺眞珠賢學士, 三分刺史七分仙.” 讀之爽然. 且如「山行卽事」詩曰: “峽墮新霜草木知, 寒江脈脈向何之. 老龍抱子深淵裏, 臥敎明春行雨期.” 詩意甚奇, 道人所未道. 評詩者以滄洲優於五山. 滄洲嘗自論詩曰: “吾則精米流脂五百石, 家兄則皮雜穀幷一萬石耳.” 해석 車滄洲雲輅「竹西樓」詩曰: “頭陀雲樹碧相連, 屈曲西來五十川. 鐵壁俯臨空外島, 瓊樓飛出鏡中天. 煙霞近接官居界, 風月長留几案前. 始覺眞珠賢學士, 三分刺史七分仙.” 창주 차운로의 「죽서루에서[竹西樓]」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頭陀雲樹碧相連 두타산의 구름 뚫고 솟은 나무는 푸르게 서로 이어져 屈曲西來五十川 구..
총석정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김정 千古高皐叢石勝 천고의 높은 언덕, 총석정이 빼어나서 登臨寥落九秋懷 올라서 보니 가을 회포 쓸쓸하네. 斗魁散彩隨滄海 두괴의 광채를 흩어 푸른 바다에 떨구고, 月宮借斧削丹崖 월궁의 도끼를 빌려 붉은 벼랑 깎았네. 巨溟欲泛危巒去 거대한 바다는 가파른 산봉우리를 띄워 보내려 하는데, 頑骨長衝激浪排 억센 바위는 오래도록 힘찬 파도와 부딪혀 밀쳐내네. 蓬島笙簫空淡竚 봉래산 신선의 피리소리, 부질없이 기다리면서 夕陽搔首寄天涯 석양에 머리 긁으며 하늘 끝에 붙어 있노라. 『소화시평』 권하 43번에 소개된 조위한의 시에 비하면 김정의 시는 그런 군더더기가 없어서 훨씬 좋다. 이런 이유와는 다르겠지만 홍만종도 조위한의 시보단 김정의 시가 훨씬 좋다고 봤다. 김정이 총석정을 읊은 시는 모두..
총석정의 탁월한 묘사와 찝찝한 뒷맛을 담은 조위한의 시 우린 한반도에서 태어났다고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섬에 살고 있는 셈이다. 육로로는 휴전선 부근까지밖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생활을 철원 GOP에서 하면서 휴전선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온몸으로 느꼈던 터라, 휴전선의 역설(휴전선이 주는 안전하다는 의식과 함께 이곳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소화시평』 권하 43번에서 다루는 총석정의 경우는 조선시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시로 남아 있다. 심지어 시를 별로 쓰지 않았던 연암 박지원마저도 총석정에 대한 시를 남길 정도니 말이다. 지금 우린 분단되기 전에 남아 있는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정도지만, 막상 사진으로만 ..
43. 총석정을 읊은 김정과 조위한 趙玄谷緯韓, 「叢石亭」詩, ‘叢巖積石滿汀洲, 造物經營渺莫求. 玉柱撑空皆六面, 蒼龍偃海幾千頭. 輸來豈是秦鞭着, 刻斸元非禹斧修. 不念邦家棟樑乏, 屹然何事立中流.’ 雖稱佳作, 未若金冲庵. ‘千古高皐叢石勝, 登臨寥落九秋懷. 斗魁散彩隨滄海, 月宮借斧削丹崖. 巨溟欲泛危巒去, 頑骨長衝激浪排. 蓬島笙簫空淡竚, 夕陽搔首寄天涯.’ 險絶奇語, 令人眩眼. 해석 趙玄谷緯韓, 「叢石亭」詩, ‘叢巖積石滿汀洲, 造物經營渺莫求. 玉柱撑空皆六面, 蒼龍偃海幾千頭. 輸來豈是秦鞭着, 刻斸元非禹斧修. 不念邦家棟樑乏, 屹然何事立中流.’ 현곡【곡(谷)자가 대부분 사본에 주(洲)로 되어 있으나 조위한의 호는 현곡(玄谷)이 맞으므로 수정하여 제시한다 그 아우 조찬한의 호 현주(玄洲)와 혼동한 결과로 보인다】 조위한..
반골기질의 허균을 비판한 홍만종 허균은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누비며 실력을 뽐내지만 예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 탓에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며 파직 당했다가 재임용되는 등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그러다 결국 광해군 때에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거열형에 처해져 능지처참되며 생애를 마감한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호걸스런 사내다운 삶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내용을 알고 『소화시평』 권하 42번을 읽으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 권하 41번에서도 봤다시피 허균은 끊임없이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출중했던 탓에 주요보직에 머물며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예 겸춘추관이란 직위까지 겸직하게 되자 여러 감상이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반골기질의 허균과 그를 도와준 사람들 『소화시평』 권하 42번의 주인공은 허균이다. 우리에게 허균은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문이 권력의 지표가 되고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로 폄하되던 당시에 한문으로 유창한 글을 쓸 수 있던 사람이 한문이 아닌 한글로 글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엔 소설이란 장르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 호평을 받지 못하고 ‘그저 신변잡기나 읊어대는 불온한 글’이란 인상까지 있었으니, 『홍길동전』이 조선 전기 문인사회에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허균은 양반가의 막내아들로 뛰어난 문학적 소양으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신분제 사회에선 모든 기득권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42. 시의 내용과 행동이 위배된 허균 許筠「除兼春秋有感」詩曰: “投閑方欲乞江湖, 金櫃紬書亦濫竽. 丘壑風流吾豈敢, 丹鉛讐勘歲將徂. 壯遊未許追司馬, 良史誰能繼董狐. 碧海烟波三萬頃, 釣竿何日拂珊瑚.” 辭意極其婉轉. 第附麗兇徒, 煽俑邪論. 言與行違. 一至於此, 何哉. 해석 許筠「除兼春秋有感」詩曰: “投閑方欲乞江湖, 金櫃紬書亦濫竽. 丘壑風流吾豈敢, 丹鉛讐勘歲將徂. 壯遊未許追司馬, 良史誰能繼董狐. 碧海烟波三萬頃, 釣竿何日拂珊瑚.” 허균의 「겸춘추관에 제수되자 느꺼움이 있어[除兼春秋有感]」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投閑方欲乞江湖 한가로움에 푹 빠지려 곧 강호에 구걸하려 했는데, 金匱紬書亦濫竽 금갑에 넣을 글 엮는 것으로 또 분수를 넘어서는 일이 되었네. 丘壑風流吾豈敢 산천의 풍류를 내가 어찌 바라겠나. 丹鉛讎勘歲將徂..
태평한 기운을 한시로 표현하는 방법 田園蕪沒幾時歸 전원이 거칠어졌으니, 어느 때에 돌아갈꼬? 頭白人間宦念微 머리 세니 인간세상 벼슬생각이 옅어지네. 寂寞上林春事盡 적막해라. 상림원에 봄 풍경 끝났지만, 更看疎雨濕薔薇 보슬비가 다시 장미를 적셨구나. 懕懕晝睡雨來初 나른한 낮잠은 비온 처음에 一枕薰風殿閣餘 배게엔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 전각엔 여운이 있구나. 小吏莫催嘗午飯 아전들아 일찍이 점심 먹으라 재촉하지 말게, 夢中方食武昌魚 꿈속에서 곧 무창의 물고기를 먹으려던 참이니, 『소화시평』 권하 41번에 나오는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이라는 시는 위의 시와 그닥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1~2구에선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인다는 것에 대해 풀어냈다. 그런데 3~4구에 오면 위의 시와 확연히 다..
주지번과 허균 『소화시평』 권하 41번에서는 중국 사신인 주지번이 말하는 허균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다. 이미 권상 35번 글을 통해 허균과 주지번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 평가하는 걸 보니 단순히 친한 정도가 아니라, 어찌 보면 소울 메이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예 허균을 매우 칭송하며 ‘중국에 있더라도 상위권에 랭킹될 정도의 실력파 문장가[雖在中朝, 亦居八九人中]’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를 다룬 ‘관포지교(管鮑之交)’나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담을 다룬 ‘지음(知音)’이나 이안눌과 권필의 우정담 등이 모두 그렇듯이 자기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냐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설 연휴에 모처럼 성남에 사는 친구와 만..
41. 주지번과 홍만종도 인정한 허균의 시작 재능 朱太史之藩, 嘗稱端甫雖在中朝, 亦居八九人中, 端甫, 許筠字也. 第以刑死, 文集不行, 人罕知之, 特揀數首. 其「有懷」詩, “倦鳥何時集, 孤雲且未還. 浮名生白髮, 歸計負靑山. 日月消穿榻, 乾坤入抱關. 新詩不縛律, 且以解愁顔.” 「初夏省中」詩曰: “田園蕪沒幾時歸, 頭白人間宦念微. 寂寞上林春事盡, 更看疏雨濕薔薇. 懕懕晝睡雨來初, 一枕薰風殿閣餘. 小吏莫催嘗午飯, 夢中方食武昌魚.” 評者謂: “東岳詩如幽燕少年, 已負沈鬱之氣; 石洲詩如洛神凌波, 微步轉眄, 流光吐氣; 許筠詩如波斯胡陳宝列肆, 下者乃木難火齊. 해석 朱太史之藩, 嘗稱端甫雖在中朝, 태사 주지번은 일찍이 ‘단보는 비록 중국에 있었더라도 亦居八九人中, 또한 8~9등엔 들어간다’고 칭찬했으니, 端甫, 許筠字也. 단보..
40. 허난설헌의 시 中國以我東爲偏邦, 諸子詩無一見選者. 近世薊門賈司馬ㆍ新都汪伯英, 選東方詩, 獨蘭雪軒詩最多. 如「湘絃謠」等作, 皆稱最工云. 其詞曰: ‘花泣露湘江曲, 九點秋煙天外綠. 水府凉波龍夜吟, 蠻娘輕戞玲瓏玉.’ ‘離鸞別鳳隔蒼梧, 雨氣侵江迷曉珠. 閑撥神絃石壁上, 花鬟月鬢啼江姝.’ ‘瑤空星漢高超忽, 羽盖金支五雲沒. 門外漁郞唱竹枝, 銀潭半掛相思月.’ 王同軌行甫所著『耳談』中, 亦載此詩. 其地河岳之靈, 偏發於陰於柔, 如其方偏, 故獨盛乎. 不知姬公ㆍ召公之遺音, 許氏得聞否云. 해석 中國以我東爲偏邦, 諸子詩無一見選者. 중국에선 우리나라를 구석탱이라 여기기에 여러 작가들의 시를 한 편이라도 뽑아 보는 이가 없었다. 近世薊門賈司馬ㆍ新都汪伯英, 選東方詩, 獨蘭雪軒詩最多. 근래에 계문(薊門)의 가사마(賈司馬)와 신도(新..
39. 허엽 가문의 시 許氏自麗朝埜堂以後, 文章益盛. 奉事澣生曄, 是爲草堂. 草堂生三子, 其二篈, 筠季, 女號蘭雪軒. 澣之從叔知中樞輯, 再從兄忠貞公琮, 文貞公琛, 皆以文章鳴. 或傳許氏祖山有玉柱長丈餘, 及筠椎碎之後, 文章遂絕云. 今摘各人一篇, 以見豹斑. 輯之「實性寺」詩曰: ‘梵宮金碧照山椒, 萬壑雲深一磬飄. 僧在竹房初入定, 佛燈明滅篆烟消.’ 琮之「夜坐卽事」詩曰: ‘滿庭花月寫窓紗, 花易隨風月易斜. 明月固應明夜又, 十分愁思屬殘花.’ 琛之「春寒次太虛韻」詩曰: ‘銅臺滴瀝佛燈殘, 萬壑松濤夜色寒. 喚起十年塵土夢, 擁爐新試小龍團.’ 澣之「村庄卽事」詩曰: ‘春霖初歇野鳩啼, 遠近平原草色齊. 步啓柴門閒一望, 落花無數漲南溪.’ 曄之「箕城戱題」詩曰: ‘許椽東來下界塵, 大平江上喚眞眞. 相將去作吹簫伴, 浮碧樓高月色新.’ 篈之「謫夷山..
38. 임전의 시 任處士錪, 號鳴皐, 工於詩, 而平生所讀李白ㆍ『唐音』而已. 嘗有作句, 雖好調響, 若不類唐, 則輒不示人. 其「江干詞」云: ‘三竿日出白烟消, 江北江南上晩潮, 隔浦坎坎齊打鼓, 郞船已近海門橋.’ 淡雅可詠. 해석 任處士錪, 號鳴皐, 工於詩, 而平生所讀李白ㆍ『唐音』而已. 처사 임전(任錪)의 호는 명고(鳴皐)로 시에 재주가 있었는데 평생 읽은 게 이백 시집과 『당음(唐音)』이었을 뿐이다. 嘗有作句, 雖好調響, 若不類唐, 則輒不示人. 일찍이 시구를 지은 것이 비록 격조와 음향이 좋더라도 당풍에 유사하지 않으면 별안간 남에게 보여주질 않았다. 其「江干詞」云: ‘三竿日出白烟消, 江北江南上晩潮, 隔浦坎坎齊打鼓, 郞船已近海門橋.’ 淡雅可詠. 「강간사(江干詞)」라는 시는 다음과 같으니 맑고 고와 읊을 만하다. ..
37. 구용의 시 具竹窓容, 嘗與石洲遊楮子島, 有詩一聯曰: ‘春陰一邊雨, 落照萬重山.’ 一時傳誦. 해석 具竹窓容, 嘗與石洲遊楮子島, 有詩一聯曰: ‘春陰一邊雨, 落照萬重山.’ 죽창(竹窓) 구용(具容)이 언젠가 석주와 서자도에서 놀다가 시 한 연구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春陰一邊雨 落照萬重山 한 구석에 비 내려 봄 그늘지고 만겹의 산에 낙조지네. 一時傳誦. 한 때에 전하며 외워질 정도였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해직 당한 후 써나간 천연스러움이 가득한 권필의 시 『소화시평』 권하 36번에서는 홍만종이 생각하는 문학론을 볼 수 있고 권상 97번의 후기에서 당시(唐詩)와 강서시(江西詩)를 이야기하면서 다룬 창작관까지 볼 수 있다. 홍만종은 아주 파격적인 선포를 하면서 글을 열어젖히고 있다. ‘시는 하늘로부터 얻은 게 아니면 시라고 말할 수 없다[詩非天得, 不可謂之詩].’라는 서두가 그것인데, 너무도 확고하고 너무도 분명한 어조라 감히 다른 말을 섞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마저 감돈다. 이건 문학론으로 한정되어 말한 발언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흔히 사상 점검을 할 때 “‘김일성이 싫어요’, ‘북한은 인권 후진국’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면 ‘빨갱이’다.”라는 말과 매우 비슷한 구조를 ..
36. 선천적으로 시적 재능을 타고난 권필 詩非天得, 不可謂之詩. 無得於天者, 則雖劌目鉥心, 終身觚墨, 而所就不過咸通諸子之優孟爾. 譬如剪彩爲花, 非不燁然, 而不可與語生色也. 余觀石洲詩格, 和平淡雅, 意者其得於天者耶. 其「解職後」詩曰: “平生樗散鬂如絲, 薄宦悽凉未救飢. 爲問醉遭官長罵, 如何歸赴野人期. 催開臘瓮嘗新醞, 更向晴窓閱舊詩. 謝遣諸生深閉戶, 病中惟有睡相宜.” 辭意極其天然, 無讓正唐諸人. 해석 詩非天得, 不可謂之詩. 시는 하늘로부터 얻은 게 아니면 시라고 말할 수 없다. 無得於天者, 則雖劌目鉥心, 終身觚墨, 하늘로부터 얻은 게 없다면, 비록 치열하게 종신토록 창작【귀목술심(劌目鉥心): 맹교(孟郊)가 시를 지을 때 “눈동자를 파고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이 하며, 칼날로 얽힌 실을 푸는 것 같이 한다[劌目..
35. 불우한 권필 天使顧ㆍ崔之來, 權石洲韠, 以白衣從事被選. 宣廟命徵詩稿以入, 置之香案, 常諷誦之. 其「寒食」詩: ‘祭罷原頭日已斜, 紙錢飜處有啼鴉. 山谿寂寞人歸去, 雨打棠梨一樹花.’ 詞極雅絶, 且如‘人烟寒食後, 鳥語晩晴時.’ 其自然之妙, 何减於‘芙蓉露下落, 楊柳月中踈.’ 谿谷曰: “余見石洲, 凡形於口吻, 動於眉睫, 無非詩也.”云, 蓋石洲之於詩, 眞所謂天授者歟! 惜乎! 始以詩受知於宣廟, 終以詩得禍於光海, 士之遇時, 其幸不幸如此哉! ▲ 권필은 임금의 잘못을 꾸짖는 시 한 편으로 목숨과 바꿨다. -그림 이무성 작가 해석 天使顧ㆍ崔之來, 權石洲韠, 以白衣從事被選. 명나라 사신인 고천준(顧天埈)과 최정건(崔廷健)이 오니, 석주(石洲) 권필(權韠)이 벼슬 없이 종사관(從事官)으로 뽑히게 됐다. 宣廟命徵詩稿以入, ..
34. 이춘영이 지은 영보정 시 李體素春英, 爲文章, 浩汗踔厲, 自成一家言. 嘗作「永保亭」詩四篇, 今錄其一曰: ‘雉堞縈紆水樹間, 金鰲頂上壓朱欄.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渥氣全勝水氣冷, 角聲半雜江聲寒. 共君相對不須睡, 待到曉霧淸漫漫.’ 極其縱橫, 步驟挹翠. 해석 李體素春英, 爲文章, 浩汗踔厲, 自成一家言. 체소(體素) 이춘영(李春英)은 문장을 잘 지어 호탕하고 넉넉하며 뛰어나고 힘차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嘗作「永保亭」詩四篇, 今錄其一曰: ‘雉堞縈紆水樹間, 金鰲頂上壓朱欄.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渥氣全勝水氣冷, 角聲半雜江聲寒. 共君相對不須睡, 待到曉霧淸漫漫.’ 일찍이 「영보정(永保亭)」 시 네 편을 지었지만 이제 한 편을 기록해두니 다음과 같다. 雉堞縈紆水樹間 성가퀴는 숲 사이를 휘돌..
33. 고려와 조선 한시, 표절보고서 詩家最忌剽竊, 而古人亦多犯之. 成獨谷‘淸宵見月思親淚, 白日看雲憶弟心’ 用老杜‘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之句. 姜通亭「寄弟」詩, ‘江山此日頭將白, 骨肉何時眼更靑’ 用黃山谷‘江山千里俱頭白, 骨肉十年終眼靑’之句. →해석보기 揖翠軒‘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 用歐陽公‘雷喧空外響, 露結日邊陰’之句. 李容齋‘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用唐人顧況詩‘一家千里外, 百舌五更頭’之句. 林石川‘江月圓還缺, 庭梅落又開’ 用金老峯‘多情塞月圓還缺, 少格山花落又開’之句. →해석보기 盧蘇齋「別弟」詩 ‘同舟碧海何由得, 幷馬黃昏未擬回’ 用老杜‘同舟昨日何由得, 並馬今朝未擬回’之句. 李芝峯「挽車五山」詩, ‘詞林秀氣三春盡, 學海長波一夕乾’ 用唐人詩‘詞林枝葉三春盡, 學海波濤一夕乾’之句. 夫自出機杼,..
한시의 표절 시비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33번은 지금까지 읽은 『소화시평』의 내용 중, 아니 어떤 한문 기록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처럼 여러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비교ㆍ대조해볼 수 있는 세상에선 표절을 하게 되면 금방 들통 나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 표절 시비가 붙곤 한다. 최근엔 ‘상어가족’ 표절 시비가 붙었을 정도로, 문학작품, 영화, 음악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원저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주려 한다. 하지만 이처럼 자료의 검색이 수월하기 이전엔 표절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70~80년대 대표 만화들은 일본 작품들을 무단으로 표절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최초 로봇만화인 ‘태권도 V’는 ‘마징가Z’의 아류라는 오명에서..
33-3. 고려와 조선 한시, 표절보고서 盧蘇齋「別弟」詩 ‘同舟碧海何由得, 幷馬黃昏未擬回’ 用老杜‘同舟昨日何由得, 並馬今朝未擬回’之句. 李芝峯「挽車五山」詩, ‘詞林秀氣三春盡, 學海長波一夕乾’ 用唐人詩‘詞林枝葉三春盡, 學海波濤一夕乾’之句. 夫自出機杼, 務去陳言, 不果戞戞乎, 其難哉! 해석 盧蘇齋「別弟」詩 ‘同舟碧海何由得, 幷馬黃昏未擬回’ 소재 노수신의 「아우와 이별하며[別弟] / 또 녹진에 이르러 영결하며[又至鹿津永訣]」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同舟碧海何由得 배 함께 탄 푸른 바다, 어찌 해야 얻으려나? 竝馬黃昏未擬回 말을 나란히 한 황혼, 돌아오지 않으리라. 用老杜‘同舟昨日何由得, 並馬今朝未擬回’之句. 두보의 「다시 신 원외랑을 전송하며[又送]」라는 시의 구절을 사용했다. 同舟昨日何由得 어제 배 탔던 어..
33-2. 고려와 조선 한시, 표절보고서 揖翠軒‘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 用歐陽公‘雷喧空外響, 露結日邊陰’之句. 李容齋‘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用唐人顧況詩‘一家千里外, 百舌五更頭’之句. 林石川‘江月圓還缺, 庭梅落又開’ 用金老峯‘多情塞月圓還缺, 少格山花落又開’之句. 해석 揖翠軒‘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 읍취헌 박은의 「역암에서 노닐며[遊櫪巖]」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怒瀑自成空外響 성난 폭포 스스로 허공 저편을 울리고 愁雲欲結日邊陰 우수 찬 구름 해 주변에 엉기려 해서 어둑하네. 用歐陽公‘雷喧空外響, 露結日邊陰’之句. 구양수 시의 구절을 사용했다. 雷喧空外響 露結日邊陰 우레가 치니 허공 저편이 울리고, 이슬 맺히니 해 저편이 어둑하네. 李容齋‘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용재 이행의 「10월 ..
33-1. 고려와 조선 한시, 표절보고서 詩家最忌剽竊, 而古人亦多犯之. 成獨谷‘淸宵見月思親淚, 白日看雲憶弟心’ 用老杜‘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之句. 姜通亭「寄弟」詩, ‘江山此日頭將白, 骨肉何時眼更靑’ 用黃山谷‘江山千里俱頭白, 骨肉十年終眼靑’之句. 해석 詩家最忌剽竊, 시인들은 가장 표절을 꺼리는데 而古人亦多犯之. 옛 사람도 또한 많이 그것을 범했었다. 成獨谷‘淸宵見月思親淚, 白日看雲憶弟心’ 독곡 성석린의 「고성에서 아우에게 부치며[在固城寄舍弟]」라는 시는 다음과 같은데. 淸宵見月思親淚 맑은 밤에 달을 보니 어버이 생각나 눈물 나고 白日看雲憶弟心 환한 대낮에 구름 보니 아우가 그리운 마음이 이네 用老杜‘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之句. 두보의 「이별을 한스러워하며[恨別]」라는 시의 구절을 사용했다..
32. 홍경신의 시 余問東溟以玄翁ㆍ芝峯兩子詩優劣, 溟老曰: “玄翁行文雖優, 詩非本色, 故不及芝峯ㆍ鹿門.”云. 鹿門洪慶臣與芝峯齊名, 鹿門之「東江卽事」詩曰: ‘日落江天碧, 煙昏山火紅. 漁舟殊未返, 浦口夜多風.’ 「江行」詩: ‘黃帽呼相語, 將船泊柳汀. 前頭惡灘在, 未可月中行.’ 「明妃詞」: ‘靑海城頭白雁飛, 塞風吹落漢宮衣. 朝來一倍琵琶怨, 昨夜甘泉夢裏歸.’ 格韻雅潔, 似唐詩. 해석 余問東溟以玄翁ㆍ芝峯兩子詩優劣, 溟老曰: “玄翁行文雖優, 詩非本色, 故不及芝峯ㆍ鹿門.”云. 내가 동명 노인께 현옹과 지봉 두 사람 시의 우열을 묻자, 동명 노인은 “현옹은 문장을 짓는데 비록 낫지만 시는 본색이 아니기 때문에 지봉과 녹문만 못하지.”라고 말씀하셨다. 鹿門洪慶臣與芝峯齊名, 鹿門之「東江卽事」詩曰: ‘日落江天碧, 煙昏山火紅..
31. 이수광의 시 『芝峯類說』, 多載己詩數十句曰: ‘世所稱道者, 故錄之.’云. 而以余觀之, 無可稱者, 惟‘林間路細纔通井, 竹裏樓高不碍山’一句, 差可於意. 如本集中所載「棘城」詩: ‘烟塵古壘鵰晨落, 風雨荒原鬼晝行’一聯, 句語奇怪, 有足可稱, 而不錄於其中, 豈以世不稱道, 故闕之歟! 車滄洲嘗評芝峯詩, 如草屋明窓, 賓主相對, 酒旨肴嘉, 而一巡行盃. 更問餘幾, 則只有一盃, 無以更進, 歡意索然. 해석 『芝峯類說』, 多載己詩數十句曰: ‘世所稱道者, 故錄之.’云.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많이 자기의 시 수 십구를 싣고서 ‘세상에서 칭찬받아 말하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而以余觀之, 無可稱者, 惟‘林間路細纔通井, 竹裏樓高不碍山’一句, 差可於意. 내가 그걸 보니 칭찬받을 만한 게 없고 오직 다..
30. 정지승과 이수광 鄭叢桂之升「留別」詩曰: ‘細草閒花水上亭, 綠楊如畫掩春城. 無人解唱陽關曲, 惟有靑山送我行.’ 李芝峯睟光詩曰: ‘寂寞扁舟鴨綠津, 風光渾似昔年春. 誰能解唱陽關曲, 惟有江波送遠人.’ 叢桂ㆍ芝峯, 生幷一世, 未必蹈襲, 而何其相似? 鄭詩比李頓勝. 해석 鄭叢桂之升「留別」詩曰: ‘細草閒花水上亭, 綠楊如畫掩春城. 無人解唱陽關曲, 惟有靑山送我行.’ 총계(叢桂) 정지승(鄭之升)의 「유별(留別)」 시는 다음과 같다. 細草閒花水上亭 가는 풀과 여린 꽃을 물가 정자에서 보고 綠楊如畫掩春城 푸른 버들 그림 같아 봄성을 덮네. 無人解唱陽關曲 양관곡(陽關曲) 창화(唱和)할 줄 아는 이 없으니 惟有靑山送我行 오직 푸른 산만이 나의 걸음을 보내는 구나. 李芝峯睟光詩曰: ‘寂寞扁舟鴨綠津, 風光渾似昔年春. 誰能解唱陽關..
29. 신흠의 시 申玄翁欽, 自少爲文章, 便自成家, 評家或卑之, 亦過矣. 其「龍灣」詩曰: ‘九月遼河蘆葉齊, 歸期又滯浿關西. 寒沙淅淅邊城合, 短日荒荒雁翅低. 故國親朋書欲絶, 異鄕魂夢路還迷. 愁來更上醮樓望, 大漠浮雲易慘悽.’ 濃厚老成, 不可輕也. 해석 申玄翁欽, 自少爲文章, 便自成家, 評家或卑之, 亦過矣. 현옹(玄翁) 신흠(申欽)은 어려서부터 문장을 지어 문득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평론가들이 혹 비하하기도 하는데 또한 잘못이다. 其「龍灣」詩曰: ‘九月遼河蘆葉齊, 歸期又滯浿關西. 寒沙淅淅邊城合, 短日荒荒雁翅低. 故國親朋書欲絶, 異鄕魂夢路還迷. 愁來更上醮樓望, 大漠浮雲易慘悽.’ 「용만(龍灣)」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九月遼河蘆葉齊 9월 9일에 요하의 갈대잎 가지런하고 歸期又滯浿關西 조정에 돌아갈 기한 또한 ..
소나무에 담은 문인의 가치와 문학의 위대성 그렇다면 『소화시평』 권하 28번에 나온 이 시는 과연 정말 그렇게까지 추앙을 받을 만한 작품일까?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를 짓게 된 모티프는 물가에 잠긴 소나무에 있다. 과연 이런 광경을 보고 홍만식은 어떤 시를 썼을까? 高直千年幹 臨溪學老龍 고상하고 곧은 천년의 가지, 시내를 굽어보며 늙은 용을 배웠구나. 蟠根帶流水 似欲洗秦封 서린 뿌리를 흐르는 물로 둘렀으니 진나라에 봉해진 소나무 씻겨주려는 듯. 1구 자체는 매우 평범하다. 물가에 잠긴 소나무를 칭송하는 말로 포문을 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2구에선 확 전환되어 소나무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투영한다. 소나무가 물을 굽어보며 ‘노룡을 배웠구나’라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니 말이다. 갑..
‘내가 졌소’를 외칠 수 있는 문화풍토 『소화시평』 권하 28번은 『소화시평』의 시리즈 중 하나인 ‘내가 졌소[閣筆]’의 두 번째 편이다. 이미 권상 57번에서 이와 비슷한 흐름을 가진 이야기가 나왔었다. 조선 문인들에게 시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글 솜씨만을 뽐내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하나의 운자를 가지고 시를 지으며 얼마나 빨리 시를 짓냐를 경쟁하며 자신의 시재를 뽐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하 22번과 같이 치열한 경쟁의식이 표출되기도 하고, 사람을 대하기도 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으로 깔보다가 시 한 수를 보고 경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한시를 짓는 일이란 문학소양을 드러내는 일임과 동시에 실력발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고..
28. 홍만식의 시에 감탄한 이호민 余曾王考, 諱鸞祥, 慕堂之弟也. 與李五峯好閔同庚, 又同蓮榜, 五峯爲壯元. 與同榜諸公會于蕩春臺, 諸公適見蒼松根入水中, 相與賦詩. 曾王考先成一絶, 其詩曰: “高直千年幹, 臨溪學老龍. 蟠根帶流水, 似欲洗秦封.” 五峯大加稱賞曰: “昨日壯元, 今屈於君.” 遂閣筆. 해석 余曾王考, 諱鸞祥, 慕堂之弟也. 나의 증조부는 휘가 난상이니 모당 홍이상의 아우시다. 與李五峯好閔同庚, 오봉 이호민과는 동갑이었고 又同蓮榜, 五峯爲壯元. 또 함께 소과에 합격하여【연방(蓮榜): 소과(小科), 즉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를 뽑던 과거 시험의 합격자 명단을 말한다】 오봉이 장원이었다. 與同榜諸公會于蕩春臺, 함께 합격한 사람들과 탕춘대(蕩春臺)에서 모여, 諸公適見蒼松根入水中, 사람들은 마침 푸른 소나..
27. 홍이상의 시 諱履祥, 號慕堂, 於余曾伯祖也. 嘗受知於栗谷, 及先生卒, 以挽哭之曰: ‘斯文宗匠國蓍龜, 海內名聲走卒知. 洛下正逢司馬日, 蜀中新喪臥龍時. 靑衿不耐摧樑痛, 丹扆偏深失鑑悲. 何意挺生何意奪, 蒼天漠漠問憑誰.’ 每讀此詩, 不覺隕涕, 況親炙之者乎! 해석 諱履祥, 號慕堂, 於余曾伯祖也. 홍이상(洪履祥)의 호(號)는 모당(慕堂)으로 내게는 증백조(曾伯祖)이시다. 嘗受知於栗谷, 及先生卒, 以挽哭之曰: ‘斯文宗匠國蓍龜, 海內名聲走卒知. 洛下正逢司馬日, 蜀中新喪臥龍時. 靑衿不耐摧樑痛, 丹扆偏深失鑑悲. 何意挺生何意奪, 蒼天漠漠問憑誰.’ 일찍이 율곡에게 인정받았고 율곡선생께서 돌아가시자 만시로 그를 다음과 같이 곡했다. 斯文宗匠國蓍龜 사문(斯文)의 거장으로 나라의 의지할 원로라 海內聲名走卒知 국내의 이름과 ..
힘을 지닌 시의 특징 『소화시평』 권하 26번은 ‘글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문학론을 담고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은 이 글을 읽는 순간 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계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이 힘을 지니려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거나 간접체험일지라도 무수히 고민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리거나 할 때다. 그래서 국토종단을 다녀와선 쓴 글들이나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쓴 글들은 경험에 기반하여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내용이 알찰 수밖에 없고 읽는 사람도 그 경험에 장에 초대되어 그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글들이, 모든 작품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진실성을 얻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간접체험을 통해 더 너른 세상을 누비고,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며 생각을 넓히고 활..
26. 아계 이산해의 시적 감식안 五峯適見急雨打窓, 忽得一句曰: “山雨落窓多.” 仍續上句曰: “磵流穿竹細.” 遂補成一篇. 寄示鵝溪, 鵝溪只批點山雨之句而還之. 五峯後問其故, 鵝溪曰: “公必値眞境, 先得此句. 而餘皆追後成之, 一篇眞意都在此句故耳.” 其詩鑑如此. 해석 五峯適見急雨打窓, 忽得一句曰: “山雨落窓多.” 오봉 이호민이 갑작스런 비가 창을 치는 것을 보고서 문득 한 시구가 떠올랐다. 山雨落窓多 산비 창에 떨어져 요란하네. 仍續上句曰: “磵流穿竹細.” 遂補成一篇. 곧 윗 구절을 이었으니 다음과 같다. 磵流穿竹細 냇물은 대숲 지나 가녀리게 흐르네. 寄示鵝溪, 편지를 보내 아계 이산해 보여주니, 鵝溪只批點山雨之句而還之. 아계는 다만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라는 구절에 비점을 찍어서 돌려보내줬다. 五峯後問其..
임진왜란 때 쓰여진 한시로 본 조선의 무능 干戈誰着老萊衣 전쟁에 누가 노래자의 색동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 萬事人間意漸微 만사 인간의 뜻이 점점 희미해져가네. 地勢已從蘭子盡 지세는 이미 난자도로부터 끝났고, 行人不見漢陽歸 행인은 서울로 돌아가는 이 보이질 않네. 天心錯莫臨江水 임금께선 암담하게 압록강을 굽어보고, 廟算悽凉對夕暉 묘당의 계책은 처량하게 석양을 바라볼 뿐. 聞道南兵近乘勝 남도의 관군이 요즘 승기를 탔다고 들리던데, 幾時三捷復王畿 언제나 전승하여 서울을 수복하려나. 『소화시평』 권하 25번을 보면서 그런 역사의 순간들이 스칠 수밖에 없었다. 홍만종은 마치 선조가 나라에 대한 걱정에 눈물을 흘리는 뜨거운 임금처럼 묘사했고, 이호민의 시가 우국충정을 담은 것처럼 묘사하곤 있지만 난 이 글을 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