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10 (1296)
건빵이랑 놀자
임진왜란과 선조의 꽁무니 빼기 『소화시평』 권하 25번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담고 있다. 일본은 각 막부 중심으로 뿔뿔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들은 각각의 막부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란 군사집단을 가지고 있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화로 물꼬를 트기보다 사무라이란 힘을 통해서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비견할 만한 일본의 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사분오열로 나누어진, 그래서 모든 걸 칼과 힘으로만 제압하려 하는 야만이 판치던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엎어 통일하게 만든 사람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다. 그는 월등한 힘과 정략으로 일본 내의 통일을 이룩하긴 했지만 통일이 되면서 졸지에 애물단지가 된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해결해줘야만 했었다. 만약..
25. 의주로 파천한 선조를 감동시킨 이호민의 시 壬辰大駕西遷, 李五峯好閔扈從. 在龍灣, 聞下三道兵進攻漢城, 作詩曰: “干戈誰着老萊衣, 萬事人間意漸微. 地勢已從蘭子盡, 行人不見漢陽歸. 天心錯莫臨江水, 廟算悽凉對夕暉. 聞道南兵近乘勝, 幾時三捷復王畿.” 世傳宣廟覽至第二聯, 不覺流涕, 해석 壬辰大駕西遷, 李五峯好閔扈從. 임진(1592)년에 대가【대가(大駕): 임금이 거둥할 때 쓰는 수레】가 서쪽으로 파천(播遷)하니 오봉 이호민이 호위하였다. 在龍灣, 聞下三道兵進攻漢城, 용만에 있을 때 충청ㆍ전라ㆍ경사의 하삼도의 관군이 한양을 공격했다는 걸 듣고 作詩曰: “干戈誰着老萊衣, 萬事人間意漸微. 地勢已從蘭子盡, 行人不見漢陽歸. 天心錯莫臨江水, 廟算悽凉對夕暉. 聞道南兵近乘勝, 幾時三捷復王畿.” 「용만 행재소에서 하삼도의..
24. 이춘영의 오기 李體素春英, 眼高少許可人. 嘗與月沙隔墻而居, 一日體素過月沙門外, 立馬呼聖徵. 月沙出應之, 體素遙謂曰: “吾今日聞汝有‘春生關外樹, 日落馬前山’之句. 頗有步驟, 似可學詩, 汝其勉之!” 遂着鞭而去, 其自重傲人如此. 해석 李體素春英, 眼高少許可人. 체소(體素) 이춘영(李春英)은 안목이 높아서 승인해주는 사람이 적었다. 嘗與月沙隔墻而居, 一日體素過月沙門外, 立馬呼聖徵. 일찍이 월사와 담을 사이에 두고 사는데 하루는 체소가 월사 문밖을 지나가다가 말을 세우고 성징(聖徵) 이정구를 불렀다. 月沙出應之, 體素遙謂曰: “吾今日聞汝有‘春生關外樹, 日落馬前山’之句. 월사가 나가 응답하니 체소가 멀리서 말했다. “내가 오늘 그대가 아래 구절을 지었다고 들었네. 春生關外樹 日落馬前山 봄은 관문 밖 나무에서..
23. 웅화와 이정귀 天使熊化, 於太平館閑坐賦詩, 得一聯曰: ‘白晝一花落, 靑天孤鳥飛.’ 自以爲有神助. 館伴諸公, 和之者甚多, 天使皆不掛眼. 獨於李月沙廷龜: ‘淸香凝燕坐, 虛閣敞翬飛’之句, 始吟詠再三曰: “此有唐韻.” 해석 天使熊化, 於太平館閑坐賦詩, 得一聯曰: ‘白晝一花落, 靑天孤鳥飛.’ 명나라 사신인 웅화(熊化)가 태평관(太平館)에 한가로이 앉아 시를 짓다가 한 연구를 얻었으니 다음과 같다. 白晝一花落 靑天孤鳥飛 환한 낮에 한 꽃 지고 푸른 하늘에 외로운 새 나네. 自以爲有神助. 스스로 신령이 도왔다고 여겼다. 館伴諸公, 和之者甚多, 天使皆不掛眼. 관반(館伴)【관반(館伴):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한 관리.】의 여러 공들 중 화답한 이들이 매우 많았지만 웅화는 모두 눈에도 들이지 않았..
석주의 시와 오산의 시를 비교하다 『소화시평』 권하 22번엔엔 석주와 오산의 시가 동시에 실려 있고 이 두 시를 홍만종은 비교하고 있다. 鶴邊松老千秋月 학 곁의 소나무는 천년 세월 달빛 속에 묵어가고, 鰲背雲開萬里風 자라 등의 구름은 만 리의 바람에 열리네. 여기서도 석주는 마치 자신이 ‘이런 식의 차운한 시엔 나를 따를 사람이 없지’라는 걸 안다는 듯이 자신감 넘치게 휘리릭 써버렸다. 그런데 그가 쓴 내용은 정말로 호탕하기 그지없는 시였다. 그는 ‘소나무에 걸린 달 곁으로 날아가는 학과 자라 모양의 구름이 확 개는 광경’을 상상하며 이 시를 썼던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보면 너무도 평이한 광경이지만 석주는 그런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아주 절묘하게 시어를 배치하여 멋들어지게 써냈다. 나는 그렇게 ..
한시와 순발력 사람에게 간단명료하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려 할 때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이 특정 요소만을 놓고 비교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가 매우 명확해지고 하나의 개념이 더욱 분명하게 정의되어 전해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매우 선명하게 들리게 된다. 보통 이런 방편은 심각한 문제도 야기 시킨다. 그 대표적인 게 어떤 것이든 단순한 요소만 집중할 경우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은 묻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학교에서 성적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일이다. 얼핏 보면 성적을 통해 그 사람의 학업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 같고, 그로 인해 성적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게 매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부분의 능력들을 가리게 만들고 ‘성적만을 위해 다른 능력은 철저히 퇴화시키는 방향’으로 ..
22 석주와 오산, 누가 누가 한시 잘 쓰나? 權石洲與車五山, 共次僧軸韻, 到風字, 石洲先題曰: “鶴邊松老千秋月, 鰲背雲開萬里風.” 自詫其豪警. 五山次之曰: “穿雲洗鉢金剛水, 冒雨乾衣智異風” 其壯健過之 해석 權石洲與車五山, 共次僧軸韻, 석주 권필과 오산 차천로는 함께 스님의 시축에 운자를 따라 시를 짓다가 到風字, 石洲先題曰: “鶴邊松老千秋月, 鰲背雲開萬里風.” 풍(風)이란 운자에 이르러 석주가 먼저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鶴邊松老千秋月 학 곁의 소나무는 천년 세월 달빛 속에 묵어가고, 鰲背雲開萬里風 자라 등의 구름은 만 리의 바람에 열리네. 自詫其豪警. 스스로 호탕하고 놀랄 만함을 자랑했다. 五山次之曰: “穿雲洗鉢金剛水, 冒雨乾衣智異風” 오산이 다음으로 지었다. 穿雲洗鉢金剛水 구름을 뚫어 금강산 물에 ..
호기롭던 차천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소화시평』 권하 21번도 에피소드가 있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많긴 해도 재밌는 부분이며 홍만종의 시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우선 이규보의 일화로 시작한다. 당시의 글 잘 짓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규보는 일필휘지로 302운이 제시된 시의 차운시를 적어나간다. 그래서 홍만종은 이규보가 재빨리 시를 적어나가는 것에 대해 “비록 바람을 탄 돛단배나 군진 속의 전투마라도 쉽게 그 빠름을 견주질 못했다[雖風檣陣馬, 未易擬其速].”라는 매우 인상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KTX만큼 빨랐고 롯데월드타워 123층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만큼 잽쌌다.’는 식의 표현이 될 것이다...
21. 이규보와 차천로의 기개 李白雲嘗赴吳濮陽世文之邀, 一時文士咸集. 酒闌, 吳出所著三百二韻詩, 索和. 白雲援筆步韻, 韻愈强而思愈健, 浩汗奔放, 雖風檣陣馬, 未易擬其速. 又五山車天輅, 文章雄健奇壯. 李提督如松, 歸時索別語, 五山作七言排律一百韻, 半日而就, 如長江巨海, 愈寫而愈不窮. 體素李公, 嘗稱李奎報後一人. 五山嘗爲兵曹假郎廳, 戱題騎省壁上曰: “休將爛熟較酸寒, 一枕黃梁宦興闌. 天上豈無眞列宿, 人間還有假郞官. 愁看雁鶩頻當署, 笑把蛟龍獨自彈. 作此半生長寂寂, 烟江閒却舊漁竿.” 感慨激昻. 世或病其蛟螭蚯蚓, 往往相雜. 余則以爲五山詩長篇大作, 滾滾不渴, 其馳驟之際, 不遑擇言. 雖有少疵, 此猶鄧林枯枝, 滄海流芥. 해석 李白雲嘗赴吳濮陽世文之邀, 백운 이규보는 일찍이 복양 오세문이 초대한 자리에 갔는데 一時文士咸集...
20. 최립의 시 崔東皐謾爲詩一聯曰: ‘禽非易舌無陳語, 樹欲生花自好枝.’ 形容造化之妙, 有活動底意, 余謂非禽無陳語, 簡易無陳語. 해석 崔東皐謾爲詩一聯曰: ‘禽非易舌無陳語, 樹欲生花自好枝.’ 최동고가 무료하게 시 한 연구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禽非易舌無陳語 새는 쉬이 혀 놀리질 못해 진부한 말이 없고 樹欲生花自好枝 나무는 꽃 피려 해서 스스로 가지 뻗기 좋아하지. 形容造化之妙, 有活動底意, 余謂非禽無陳語, 簡易無陳語. 조화의 오묘함과 살아 움직이는 뜻을 형용했으니 나는 ‘새가 진부한 말이 없는 게 아니라, 간이가 진부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개성이 묻어나는 시와 그걸 알아보는 사람 『소화시평』 권하 19번의 에피소드는 바로 이런 ‘조회수 높은 글 VS 쓰고 싶은 글’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아주 서두를 파격적으로 열어젖히고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진실한 사람이 아니며, 모두가 좋아하는 글이란 지극한 글이 아니다[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 非正人也; 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 非至文也]’라고 말이다. 이 말에 나는 충분히 동의한다. 애초부터 ‘모두가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환상에 가까운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설혹 천만 영화와 같이 대다수가 보는 좋아하는 영화가 나왔을지라도 그건 그 당시의 시대상황, 영화관 여건 등이 전체적으로 고려된 결과치일뿐, 작품의 질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어떤 글 한 편..
조회수 높은 글과 쓰고 싶은 글 사이 최근에 극장가에선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천만을 가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었다. 영화에서 천만을 넘는다는 게 영화의 퀄리티와 상관없다는 걸 누구나 알면서도 천만이란 기준을 마치 ‘우월한 작품’이라는 식으로 모든 언론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천만을 넘어가면 ‘천만클럽’이란 걸 만들어 엄청난 혜택과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든, 음악을 만들든, 글을 쓰든 위와 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좀 더 다양한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의 색채는 걷어내고 흥행공식을 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색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엔 무관심한 채 나만의 것을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나의 경우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위의 공식에..
19. 모두가 좋아하는 시와 날 아는 이가 좋아하는 시 古人曰: “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 非正人也; 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 非至文也.” 信哉言乎! 其不知者, 則毁不足怒, 譽不足喜, 不如其知之者好之也. 客有自金剛來, 謁於張谿谷, 谿谷曰: “君今行, 豈無一詩耶?” 客以崔東皐杆城所題觀日出詩, 爲己作以瞞之. 谿谷擊節吟咏, 良久曰: “此非君詩. 是作必在八月十六七日夜.” 客大愕曰: “此詩本非警作. 而又何知其八月十六七日夜所吟也?” 谿谷曰: “古人於正秋多用玉宇文字.” 又日: “欲暮而月在西, 乃十六七日也. 第一句‘玉宇迢迢落月東’, 起得崔崒; ‘滄波萬頃忽飜紅’, 狀得怳惚; ‘蜿蜿百怪皆含火’, 極幽遐詭怪之觀; ‘捧出金輪黃道中’ 有高明廣大之象. 一語一字, 皆有萬鈞之力, 古今詠日出詩, 皆莫能及. 君從何得此來乎?” 客大驚服, 遂吐實..
시인의 위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소화시평』 권하 18번에서는 최립의 시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우선 시를 해석할 때 중심에 놓고 생각해봐야 할 거리에 대해 교수님은 이야기를 해줬다. 이 시에서 시인과 스님은 같이 있는가? 따로 있는가? 만약 따로 있다면 시인은 어느 곳에 있는가?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알고 두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면 그에 따라 시의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지금 시인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반반이 나누어져 한 편은 ‘스님과 함께 절에 있습니다.’라고 했고, 다른 한 편은 ‘관청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이 시는 시인의 위치를 딱 확정지어 말하기에 복잡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文..
18. 독창적인 시 세계를 연 최립 崔東皐岦, 一號簡易. 「次文殊僧卷韻」曰: “文殊路已十年迷, 有夢猶尋北郭西. 萬壑倚笻雲遠近, 千峰開戶月高低. 磬殘石竇晨泉滴, 燈剪松風夜鹿啼. 此況共僧那再得, 官街七月困泥蹄.” 此在東皐詩中稍似平穩, 比諸公詩, 猶覺有奇健氣味. 比諸公詩, 猶覺有奇健氣味. 許筠以爲簡易詩, “本無師承, 自創爲格, 意淵語傑, 非切磨聲律. 採掇花卉者, 所可企及. 吾以簡易詩爲勝於文”云. 해석 崔東皐岦, 一號簡易. 동고 최립은 또 다른 호가 간이(簡易)다. 「次文殊僧卷韻」曰: “文殊路已十年迷, 有夢猶尋北郭西. 萬壑倚笻雲遠近, 千峰開戶月高低. 磬殘石竇晨泉滴, 燈剪松風夜鹿啼. 此況共僧那再得, 官街七月困泥蹄.” 「문수 스님의 시권에 차운하다[次文殊僧卷韻] / 차운문수승권(次韻文殊僧卷)」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한시로 선연동의 기녀를 기린 권필 年年春色到荒墳 해마다 봄빛이 황량한 무덤에 찾아오면, 花似殘粧草似裙 꽃은 남은 화장인 듯, 풀은 치마인 듯. 無限芳魂飛不散 무한한 꽃다운 넋들이 흩어지지 않아서 秪今爲雨更爲雲 다만 지금은 비가 되었다가 다시 구름이 되었다가. 『소화시평』 권하 17번에서 나온 석주의 시는 절구로 되어 있기에 윤계선의 시에 비하면 사족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1구부터 아주 파격적으로 해마다 봄이면 찾아왔다고 자기 고백을 하며 2구에선 그때마다 보이는 꽃과 풀은 기녀들의 생전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매년 찾아와 넋들을 조문하지만 그럼에도 3구에선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다고 말을 한다. 동양사회에선 사람을 혼과 ..
한시로 선연동의 기녀를 기린 윤계선 『소화시평』 권하 17번을 보려면 이미 말했던 권하 14번의 글과 함께 보면 도움이 된다. 선연동에 대한 얘기는 이미 『우리 한시를 읽다』의 8번째 단원인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에서 익히 봤었고 여기선 박제가의 시가 실려 있다. 선연동은 기녀들이 집단으로 묻힌 곳으로 을밀대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어느 깊숙한 골짜기에 마련된 것이 아니라 주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맘만 먹으면 어느 시인이고 이곳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시 한 수를 남기는 건 ‘체면’을 무척이나 중시하던 조선시대에도 크게 흠이 되지 않았던가 보다. 瑤琴橫抱發纖歌 가야금 비껴 안고 가녀린 가락 부르던 이 宿昔京城價最多 지난 날 한양에서 몸값이 최고였다지. 春色易凋鸞..
17. 기녀들의 무덤, 선연동 嬋姸洞, 在箕城七星門外, 卽葬妓之處也. 有若唐之宮人斜, 騷人過此者, 必有詩. 坡潭尹繼先詩曰: “佳期何處又黃昏, 荊棘蕭蕭擁墓門. 恨入碧苔纏玉骨, 夢來朱閣對金樽. 花殘夜雨香無迹, 露濕春蕪淚有痕. 誰識洛陽遊俠客, 半山斜日弔芳魂.” 權石洲亦有一絶曰: “年年春色到荒墳, 花似殘粧草似裙. 無限芳魂飛不散, 秪今爲雨更爲雲.” 尹詩雖不及石洲, 而音韻亦覺瀏瀏. 但夢字未妥. ---- 余按『小華詩評』, “尹詩不及石洲”云者, 蓋以石洲優入化境, 坡潭詩特輕俊耳. - 金漸, 『西京詩話』 해석 嬋姸洞, 在箕城七星門外, 선연동은 기성(평양) 칠성문(을밀대) 밖에 있으니 卽葬妓之處也. 곧 기녀들을 장례지내는 곳이다. 有若唐之宮人斜, 당나라의 궁인야【궁인야(宮人斜): 고대 궁인들의 묘지[古代宮人的墓地]】와 비슷..
16. 이제신의 시 李淸江, 諱濟臣, 余外祖妣外王考也. 器度磊落, 文章豪邁, 氣蓋一世. 其「途中口占」詩曰: ‘男子平生在, 星文古劍寒, 重磨鴨綠水, 新倚白頭巒.’ 氣像可想. 해석 李淸江, 諱濟臣, 余外祖妣外王考也. 이청강(李淸江)의 휘(諱)는 제신(濟臣)으로 내 외조모의 외조부이시다. 器度磊落, 文章豪邁, 氣蓋一世. 재기(才器)와 도량(度量)이 크고[磊落]이 문장이 호쾌하고 힘 있어 기세가 한 세대를 덮었다. 其「途中口占」詩曰: ‘男子平生在, 星文古劍寒, 重磨鴨綠水, 新倚白頭巒.’ 「도중구점(途中口占)」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男子平生在 星文古劍寒 남자 한 평생에 있어 별의 움직임[星文]이 오랜 검 차갑게 하니 重磨鴨綠水 新倚白頭巒 압록강 물에 거듭 갈아 새롭게 백두산에 기대서네. 氣像可想. 기상이 상상해..
15. 양양 제영시를 보고 여행을 비판하다 沈一松喜壽襄陽題咏云: “淸澗亭前細雨收, 斜陽馱醉海棠洲. 沙鳴乍止方開眼, 身在襄陽百尺樓.” 沙鳴仙路, 閉眼而過, 此老此行, 可謂虛度. 해석 沈一松喜壽襄陽題咏云: “淸澗亭前細雨收, 斜陽馱醉海棠洲. 沙鳴乍止方開眼, 身在襄陽百尺樓.” 일송 심희수의 양양 제영시는 다음과 같다. 淸澗亭前細雨收 청간정 앞에 가랑비 그치자 斜陽馱醉海棠洲 석양에 해당화 핀 해변에서 취한 몸을 실었네. 沙鳴乍止方開眼 사각사각 잠시 멈추고 곧 눈을 뜨니, 身在襄陽百尺樓 몸이 양양의 백척 누각에 있구나. 沙鳴仙路, 閉眼而過, 사각사각 신선길을 눈 감고 지났으니, 此老此行, 可謂虛度. 이 어른의 이 행차는 헛된 걸음이라 할 만하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서설 상권 목차 하권 목차 시에 대한 다양한..
선비들이 기생에 대해 시를 쓰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14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권하 17번에서 나오는 선연동에서 읊은 시들과 함께 보면 더욱 좋다. 그건 한 때는 미모[春色]를 과시하고 맘껏 나래를 펼쳤지만 스러져가는 젊음에 대한 탄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녀를 읊은 시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한때는 미모를 과시하며 고관대작들과 어우러지던 꽃들이 시간이 흘러 이젠 시들어졌고 그에 대한 서글픈 정조를 담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기녀에 대한 얘기일 뿐 아니라, 스러져 가는 자신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정조를 지닌 시인들이 기녀들의 무덤인 선연동을 지나치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기녀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바로 ..
14. 늙은 기생에게 지어준 시 柳西埛根, 嘗於松都遇一老娼, 乃少時擅名京國者也. 遂贈詩曰: “瑤琴橫抱發纖歌, 宿昔京城價最多. 春色易凋鸞鏡裏, 白頭流落野人家.” 詞極悽惋, 石洲稱善. 해석 柳西埛根, 嘗於松都遇一老娼, 서경 류근이 일찍이 송도에서 한 늙은 기녀를 만났는데, 乃少時擅名京國者也. 젊을 적에 한양에서 이름을 떨치던 사람이었다. 遂贈詩曰: “瑤琴橫抱發纖歌, 宿昔京城價最多. 春色易凋鸞鏡裏, 白頭流落野人家.” 마침내 시를 주었으니, 다음과 같다. 瑤琴橫抱發纖歌 가야금 비껴 안고 가녀린 가락 부르던 이 宿昔京城價最多 지난 날 한양에서 몸값이 최고였다지. 春色易凋鸞鏡裏 춘색 난새 거울 속에서 쉽게 시들어 白頭流落野人家 흰 머리로 야인의 집을 떠도는 구나. 詞極悽惋, 石洲稱善. 말이 매우 슬프지만 석주 권필..
재상의 기운을 담아 장난스럽게 쓴 이항복의 한시 常願身爲萬斛舟 몸이 만 섬을 실을 수 있는 배가 되어 中間寬處起柁樓 중간 넓은 곳에 선실을 세워둔 채 時來濟盡東南客 때가 되면 동쪽과 남쪽의 나그네를 모두 건네주고서 日暮無心穩泛遊 해지면 말없이 평온하게 떠다니리. 『소화시평』 권하 13번에 소개된 이 시는 제목이 따로 없고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수초ㆍ인수와 함께 강가 집에 있었는데 여러 날 동안 배를 물색했지만 구하질 못하자 수초는 매우 울적해했었다. 그러자 수초가 탄식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몸이 큰 배가 되어 바람을 타고서 풍랑을 깨뜨릴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장난삼아 이 시를 지었다. 與守初ㆍ仁叟同在江舍, 數日索舟不得, 守初甚欝欝. 歎曰: “安得身爲巨艦, 乘風破..
홍만종의 조선인재발굴단, 이항복편 『소화시평』 권하 13번은 이항복이 어렸을 때부터 시를 지을 수 있는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판이 자자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 또한 노는 인간(호모 루덴스)이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옛날부터 최근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로그램 중에 ‘영재발굴단’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는 말 그대로 ‘영재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많은 영재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볼 때 단순히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영재란 무엇인가?’라는 기준 자체에 있다. 즉, 영재라는 기준 자체는 방송이 정한 ‘기업 비밀’에 해당되며, 그건 이 사회가 생각하는 ‘영재란 이런 거야’라는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영..
13. 이항복의 재기 넘치는 시 李白沙恒福八歲時, 參贊公命以劍琴作騈句. 白沙應聲曰: “劍有丈夫氣, 琴藏千古音.” 聞者知其將大成. 少時在江上, 數日索舟不得, 甚鬱鬱, 戱作一絶曰: “常願身爲萬斛舟, 中間寬處起柁樓. 時來濟盡東南客, 日暮無心穩泛遊.” 可見濟川氣像. 昔鄭湖陰論文翼公文曰: “世不以文章稱叔父者, 掩以功德也.”云. 吾於漢陰ㆍ白沙亦云. 해석 李白沙恒福八歲時, 백사 이항복은 8살 때에 參贊公命以劍琴作騈句. 참찬공이 검(劍)과 금(琴)으로 대구를 지으라고 시켰다. 白沙應聲曰: “劍有丈夫氣, 琴藏千古音.” 백사가 즉시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劍有丈夫氣 琴藏千古音 검에는 장부의 기운이 있고 거문고엔 천고의 음이 담겨 있네. 聞者知其將大成. 듣는 사람이 그가 장차 크게 성공할 거라는 걸 알았다. 少時在江上, ..
12. 이덕형의 영사시 李漢陰德馨十四歲時, 楊蓬萊士彦來過, 相携遊水石間, 占一律, 漢陰和之曰: ‘野闊暮光薄, 水明山影多.’ 蓬萊歎曰: “君我師也.” 漢陰由是華聞彌大. 嘗過柴市, 有感賦詩曰: ‘嶺海間關更起兵, 英雄運屈竟無成. 百年養士恩誰報, 萬死勤王志獨明. 虜主詎知容節義, 市人猶解惜忠貞. 招魂欲和王生句, 易水東流似哭聲.’ 悽惋感慨. 해석 李漢陰德馨十四歲時, 楊蓬萊士彦來過, 相携遊水石間, 占一律, 漢陰和之曰: ‘野闊暮光薄, 水明山影多.’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14살 때에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찾아왔고[來過] 서로 수석(水石) 사이에서 데리고 놀다가 한 편의 율시를 지으니 한음이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野闊暮光薄 水明山影多 벌판 트여 저녁빛은 얕고 물은 밝아 산 그림자 짙네. 蓬萊歎曰: “君..
11. 조휘의 시 趙徽, 號楓湖, 諸文士會獵, 見山火奄至, 各賦一詩. 趙最後至, 次其韻曰: ‘漢幟間行趨趙壁, 齊牛乘怒赴燕軍.’ 可謂末至居右. 해석 趙徽, 號楓湖, 諸文士會獵, 見山火奄至, 各賦一詩. 조휘(趙徽)는 호가 풍호(楓湖)로 여러 문사들과 모여 사냥하다가 산불이 갑자기 타오르는 걸 보고 각각 한 편의 시를 지었다. 趙最後至, 次其韻曰: ‘漢幟間行趨趙壁, 齊牛乘怒赴燕軍.’ 조휘가 가장 늦게 도착해 그 운에 차운했으니 다음과 같으니, 漢幟間行趨趙壁 한나라 깃발이 사잇길로 가서[間行] 조나라 벽에 달려가고 齊牛乘怒赴燕軍 제나라 소가 화를 내며 연나라 군대로 달리네. 可謂末至居右. 늦게 왔지만 윗 자리에 앉았다고 할 만하다【남조(南朝) 송(宋)의 사혜련(謝惠連)이 지은 「설부(雪賦)」에서 ‘사마상여(司馬..
10. 유성룡의 시 柳西崖成龍有一絕曰: ‘竹窓殘雪夜蕭蕭, 千里歸心故國遙. 白首縱霑新雨露, 豈宜重汚聖明朝.’ 東州嘗誦此詩曰: “詩雖非其所長, 亦精切可愛.”云. 해석 柳西崖成龍有一絕曰: ‘竹窓殘雪夜蕭蕭, 千里歸心故國遙. 白首縱霑新雨露, 豈宜重汚聖明朝.’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의 한 절구시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竹窓殘雪夜蕭蕭 대나무 창엔 남은 눈으로 밤은 쓸쓸하여 千里歸心故國遙 천 리라 고향에 돌아가고픈 맘 아득하여라. 白首縱霑新雨露 센 머리임에도 가령 새 비와 이슬의 은혜 입었으니 豈宜重汚聖明朝 어찌 마땅히 거듭 성스럽고 현명한 조정을 더럽히랴? 東州嘗誦此詩曰: “詩雖非其所長, 亦精切可愛.”云.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는 이 시를 외며 ‘시가 비록 그의 장점은 아니지만 또한 정밀함과 절절함은 아낄..
홍만종, 윤두수 시 평론에 실수를 하다 關外羈懷不自裁 변방에서 나그네 회포를 스스로 다잡지 못했는데 一春詩興賴官梅 봄 내내 시 흥취는 관청의 매화에 의지했었다네. 日長公館文書靜 날은 길고 공관의 문서작업은 뜸한데 時有高僧數往來 마침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소화시평』 권하 9번에선 윤두수의 시를 다루고 있고 홍만종은 이에 대해 ‘시(時)와 삭(數), 두 글자는 말의 뜻이 서로 반대된다[其時ㆍ數二字, 語意相反].’라고 평가를 했다. 홍만종은 위 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발견한다. ‘시(時)와 수(數), 두 글자는 말의 뜻이 서로 반대된다.’고 본 것이다. 물론 두 글자엔 상반된 의미가 담겨져 있긴 하다. 시(時)엔 간헐적으로라는 뜻이, 삭(數)엔 자주라는 뜻이 있으니 홍만종이 저..
윤두수의 한시 이해하기 도올 김용옥샘의 책을 읽다 보면 판본에 대한 정밀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걸 여러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지금처럼 한 권의 책이 다량으로 나올 수 있는 시기에도 개정판이나 증보판이 나오기 때문에 출처를 밝힐 땐 어느 출판사에서 언제 나온 책인지를 명확히 써야 한다. 그래야 판본에 대해 명확히 밝힐 수 있고 논점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 지금도 그런데 예전의 책들은 많이 생산되지 않았다 해도 사람들이 필사를 하며 글자가 바뀌거나 아예 내용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그러니 자신이 연구하는 판본이 제대로 된 판본인지, 그리고 다른 판본에는 다른 글자나 내용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저자의 입장을 정확히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런 과정이 빠진 채 한 권의 책이 어떤 출처에서 나..
9. 윤두수가 쓴 모순된 시 尹梧陰斗壽「贈僧」詩, ‘關外羈懷不自裁, 一春詩興賴官梅. 日長公館文書靜, 時有高僧數往來.’ 其時ㆍ數二字, 語意相反, 許筠之選入『詩刪』, 何哉? 해석 尹梧陰斗壽「贈僧」詩, ‘關外羈懷不自裁, 一春詩興賴官梅. 日長公館文書靜, 時有高僧數往來.’ 오음 윤두수의 「스님에게 주다[贈僧] / 서산 휴정의 시축에 쓰다[書西山休靜詩軸]」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關外羈懷不自裁 변방에서 나그네 회포를 스스로 다잡지 못했는데 一春詩興賴官梅 봄 내내 시 흥취는 관청의 매화에 의지했었다네. 日長公館文書靜 날은 길고 공관의 문서작업은 뜸한데 時有高僧數往來 마침 고승이 있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한다네. 其時ㆍ數二字, 語意相反, 시(時)와 삭(數), 두 글자는 말의 뜻이 서로 반대되니, 許筠之選入『詩刪』, 何哉..
8. 허봉의 시적 재능 谿谷稱東國詩人中荷谷爲最, 霽湖亦言絕代詩才. 余嘗見其「吉城秋懷」詩: ‘金門蹤跡轉依依, 落盡黃楡尙未歸. 塞角暗吹仙仗夢, 嶺雲低濕侍臣衣. 功名誤許麒麟畵, 歲月空驚燿燿飛. 憶得去年三署直, 禁城銀燭夜鍾微.’ 讀此一詩, 方信二人所言. 해석 谿谷稱東國詩人中荷谷爲最, 霽湖亦言絕代詩才. 계곡이 ‘우리나라 시인 중에 하곡이 최고다.’라고 말했고 제호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시재’라고 말했다. 余嘗見其「吉城秋懷」詩: ‘金門蹤跡轉依依, 落盡黃楡尙未歸. 塞角暗吹仙仗夢, 嶺雲低濕侍臣衣. 功名誤許麒麟畵, 歲月空驚燿燿飛. 憶得去年三署直, 禁城銀燭夜鍾微.’ 내가 일찍이 「길성추회(吉城秋懷)」라는 다음의 시를 보았다. 金門蹤跡轉依依 대궐의 종적은 갈수록 아련해져 落盡黃楡尙未歸 누런 느릅나무 모두 다지도록 아직 못..
7. 천재시인 허봉 荷谷許篈, 九歲賦「金錢花」詩曰: ‘化工爐上用功多, 鑄出金錢一樣花. 半兩五銖徒自貴, 不知還解濟貧家.’ 噫! 丹山之鳥, 五色於初生; 渥洼之馬, 汗血於作駒. 始知文章自有天才, 非學力所可致也. 且如「灤河」詩曰: ‘孤竹城頭月欲生, 灤河西畔聽鍾聲. 扁舟未渡尋沙岸, 烟霞蒼蒼古北平.’ 唐人絕調. 해석 荷谷許篈, 九歲賦「金錢花」詩曰: ‘化工爐上用功多, 鑄出金錢一樣花. 半兩五銖徒自貴, 不知還解濟貧家.’ 하곡(荷谷) 허봉(許篈)이 9살 때 지은 「금전화(金錢花)」란 시는 다음과 같다. 化工爐上用功多 조물주[化工]가 난로 위에서 공을 씀이 많아 鑄出金錢一㨾花 주조되어 나온 금전이 한결 같이 꽃모양이네. 半兩五銖徒自貴 반냥이나 오수(五銖)는 다만 스스로 귀하지만 不知還解濟貧家 도리어 흩어서 가난한 집을 구제..
이산해의 왕소군에 관한 시를 비판하다 『소화시평』 권하 6번에 나온 왕소군은 한나라 궁궐에 있던 궁녀로 미모가 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외모가 빼어나다고 해서 임금의 눈에 쉬이 뜨일 리는 없었다. 궁궐 안에만 3000명의 궁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금에 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제(元帝)의 측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직책을 맡거나 그도 아니면 궁중 화공(畵工)의 눈에 들어야 한다. 왜 갑자기 화공이 등장하냐면 이 당시 원제는 궁녀를 일일이 볼 수 없었기에 화공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합방할 궁녀들을 선택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공이 예쁘게 그려주면 간택될 확률이 높은 건 자명한 이치였고, 이에 따라 궁녀들은 화공에게 여러 뇌물을 건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왕소군은 화공에게 잘 보..
6. 왕소군을 그리며 노래하다 鵝溪有「詠昭君」二絶曰: “三千粉黛鎖金門, 咫尺無由拜至尊. 不是當年投異域, 漢宮誰識有昭君.” “世間恩愛元無定, 未必氈城是異鄕. 何似深宮伴孤月, 一生難得近君王.” 此蓋竊王荊公「明妃曲」, ‘漢恩自淺胡恩深, 人生樂在貴知心’之意. 而李詩辭意太露, 信乎. 言志, 心之聲也. 羅大經嘗評荊公此句曰: “苟心不相知, 臣可以叛其君, 妻可以棄其夫乎.” 朱子亦有評, 以爲悖理傷道云. 해석 鵝溪有「詠昭君」二絶曰: “三千粉黛鎖金門, 咫尺無由拜至尊. 不是當年投異域, 漢宮誰識有昭君.” “世間恩愛元無定, 未必氈城是異鄕. 何似深宮伴孤月, 一生難得近君王.” 아계 이산해의 「소군을 읊다[詠昭君] /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절구 두 수는 다음과 같다. 三千粉黛鎖金門 삼천 궁녀들이 금문에 갇혀 咫尺無因拜至尊 지척인데도..
5. 이산해의 시 鵝溪李山海、 七歲時詠一殼三栗曰: ‘一家生三子, 中者半面平. 隨風先後落, 難弟亦難兄.’ 蓋自髫齔能道奇語如此. 晩年「遣懷」詩曰: ‘夢裏分明拜聖顏, 覺來依舊在天端. 恨隨春草離離長, 淚滴踈篁點點斑. 萬事不求忠孝外, 一身空老是非間. 瘴江生死無人問, 烟雨孤村獨掩關.’ 淸婉圓轉, 若鵝溪者, 可謂能盡少時之才者也. 해석 鵝溪李山海、 七歲時詠一殼三栗曰: ‘一家生三子, 中者半面平. 隨風先後落, 難弟亦難兄.’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7살 때 하나의 껍질에 세 개 달린 밤톨이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一家生三子 中者半面平 한 집에서 세 자식 낳았는데 가운데 놈은 반절의 얼굴이 평평하네. 隨風先後落 難弟亦難兄 바람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니 아우라 하기 어렵고 또 형이라 하기 어렵구나. 蓋自髫齔能..
4. 정치 풍자를 담은 칠언절구 한시들 崔侍中承老「禁中新竹」詩曰: “錦籜初開粉節明, 低臨輦路綠陰成. 宸遊何必將天樂, 自有金風撼玉聲.” 有諷戒音樂之意. 李亨齋稷「登鐵嶺」詩曰: “崩崖絶磵愜前聞, 北塞南州道路分. 回首日邊天宇淨, 望中還恐起浮雲.” 有憂讒畏譏之意. 權愼村思復「放鴈」詩曰: “雲漢猶堪任意飛, 稻田胡自蹈危機. 從今去向冥冥外, 只要全身勿要肥.” 以譬逐利之徒. →해석보기 辛文學藏「詠木橋」詩曰: “斫斷長條跨一灘, 濺霜飛雪帶驚瀾. 須將步步臨深意, 移向功名宦路看.” 以戒干祿之徒. 崔東皐岦「十月雨」詩曰: “一年霖雨後西成, 休說玄冥太不情. 正叶朝家荒政晩, 飢時料理死時行.” 訏謨廊廟者, 可以自警. 柳於于夢寅「伊川」詩曰: “貧女鳴梭淚滿腮, 寒衣初擬爲郞裁. 明朝裂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來.” 分憂子民者, 可以爲鑑. 噫!..
시를 통해 관리들을 경계한 유몽인의 한시 貧女鳴梭淚滿腮 가난한 계집이 베 짜면서, 눈물이 뺨에 가득하니, 寒衣初欲爲郞裁 겨울옷 처음에 생각할 땐 낭군을 위해 만들려 했었는데, 朝來裂與催租吏 아침에 와서 세금을 재촉하는 아전에게 찢어서 줬는데, 一吏纔歸一吏來 한 아전이 겨우 돌아가니 다른 한 아전이 오는구나. 『소화시평』 권하 4번의 여섯 번째 소개된 유몽인의 시는 읽는 순간에 최치원의 「강남녀(江南女)」가 절로 떠올랐다. 60~70년대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무수한 시골 남녀들이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올라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장 말단에서 미싱을 돌리며 옷을 만들고 막노동판에서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밤잠 못 자가며 일했던 끈기 덕에 우리는 이만큼 먹..
시를 통해 관리들을 경계한 최립의 한시 一年霖雨後西成 한 해의 장마비가 추수 뒤에 내렸지만 休說玄冥太不情 물의 신이 매우 무정하다 말하지 마라. 正叶朝家荒政晩 바로 조정의 구황정책이 늦는 것과 같으니, 飢時料理死時行 굶주릴 땐 재더니만 죽을 때에야 시행하는 구나. 『소화시평』 권하 4번의 다섯 번째 소개된 최립의 시는 농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풍족해서 보릿고개와 같은 게 없고, 구황정책도 별도로 세울 필요가 없지만 50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먹는 것은 큰 문제였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건 모두 ‘박정희 대통령 덕’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밤낮을 세워가며, 온갖 안 좋은 환경에도 최선을 다해 일을 한..
신천이 나무다리를 통해 경계하고 싶은 것 斫斷長條跨一灘 긴 가지를 잘라 한 여울에 걸치니 濺霜飛雪帶驚瀾 흩뿌린 서리와 나는 눈, 거기에 사나운 물결까지 두르고 있네, 須將步步臨深意 걸음걸음 깊은 곳에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移向功名宦路看 공명을 탐하는 벼슬길로 옮겨서 봐야하리. 『소화시평』 권하 4번의 네 번째 소개된 신천의 시는 나무다리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1~2구에선 나무를 잘라 다리를 만들었으니 그 다리엔 서리와 눈도 쌓이고 놀란 여울물까지 수시로 다리를 흔들어댄다는 내용이다. 여기까지 보면 매우 평이한 상황에 대한 묘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3~4구에선 문의가 확 달라진다. 나무다리를 건널 때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건너는 게 아니라, 조심조심 건너 듯하는 행동을 통해 전혀 다른 상..
4-2. 정치 풍자를 담은 칠언절구 한시들 辛文學藏「詠木橋」詩曰: “斫斷長條跨一灘, 濺霜飛雪帶驚瀾. 須將步步臨深意, 移向功名宦路看.” 以戒干祿之徒. 崔東皐岦「十月雨」詩曰: “一年霖雨後西成, 休說玄冥太不情. 正叶朝家荒政晩, 飢時料理死時行.” 訏謨廊廟者, 可以自警. 柳於于夢寅「伊川」詩曰: “貧女鳴梭淚滿腮, 寒衣初擬爲郞裁. 明朝裂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來.” 分憂子民者, 可以爲鑑. 噫! 唐聶夷中‘二月賣新絲, 五月出新穀’之咏, 論者亦以周詩許之. 我東諸作, 其有補於風化者, 豈遽在聶夷中之下乎. 해석 辛文學蕆「詠木橋」詩曰: “斫斷長條跨一灘, 濺霜飛雪帶驚瀾. 須將步步臨深意, 移向功名宦路看.” 문학 신천【신천(辛蕆, ?-1339):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덕재(德齋).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1319년 6월에 총랑(摠..
권사복이 기러기를 통해 경계하고 싶은 것 雲漢猶堪任意飛 하늘은 오히려 니 뜻대로 날 수 있는데, 稻田胡自蹈危機 어쩌자고 논을 밟아 위기에 처했나? 從今去向冥冥外 이제부터 까마득한 저 하늘 밖으로 날아가서 只要全身勿要肥 다만 몸을 보전하길 구하고 살찌길 구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하 4번에서 권사복의 시와 신천의 시도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막상 시를 볼 땐 몰랐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보니 하권 4번에 나오는 6편의 시는 교묘히 안배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2편씩 같은 주제를 말하는 시를 묶음으로 내용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한 번 듣는 것보다 두 번 들으면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히듯, 아마도 홍만종은 그걸 염두에 두고 이런 식으로 편집한 것이리라. 권사복의 시를 읽는 순..
이직,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崩崖絶磵愜前聞 깎아지른 벼랑 깊은 골짜기는 전에 듣던 그대론데, 北塞南州道路分 북쪽 변방과 남쪽 고을의 길이 철령에서 갈라진다네. 回首日邊天宇淨 머리 돌리니 해 근처 하늘은 맑은데, 望中還恐起浮雲 바라보는 가운데 다시 뜬구름 일어날까 두렵다네. 『소화시평』 권하 4번의 두 번째 소개된 이직의 시는 숨겨진 맥락까지 있는 시였지만, 나는 너무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시만 보면 1~2구에선 철령의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설명을, 그리고 3~4구에선 철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보다가 갑작스레 ‘구름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괜한 걱정’ 정도로 읽혔다. 이렇게만 읽으면 단순히 생각나는 글이 바로 ‘기우(杞憂)’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천해자연의 아름다운..
최승로,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소화시평』 권하 4번에서는 한시를 통해 정치적인 풍자를 하고 있다고 홍만종은 보고 있다. 중요한 건 ‘작가가 정말 그런 의도로 썼냐?’하는 것을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은 뭐냐?’를 따지는 작업이 될 텐데, 문학작품을 볼 때 본질적인 의미로 들어가 따지다 보면 시비를 가리려 하게 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그래왔듯 ‘정답’을 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 마음에 심한 왜곡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소화시평을 공부하는 이상 홍만종이 품평한 시어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도무지 납득이 안 될 땐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달아 생각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錦籜初開粉節明 대껍질..
4-1. 정치 풍자를 담은 칠언절구 한시들 崔侍中承老「禁中新竹」詩曰: “錦籜初開粉節明, 低臨輦路綠陰成. 宸遊何必將天樂, 自有金風撼玉聲.” 有諷戒音樂之意. 李亨齋稷「登鐵嶺」詩曰: “崩崖絶磵愜前聞, 北塞南州道路分. 回首日邊天宇淨, 望中還恐起浮雲.” 有憂讒畏譏之意. 權愼村思復「放鴈」詩曰: “雲漢猶堪任意飛, 稻田胡自蹈危機. 從今去向冥冥外, 只要全身勿要肥.” 以譬逐利之徒. 해석 崔侍中承老「禁中新竹」詩曰: “錦籜初開粉節明, 低臨輦路綠陰成. 宸遊何必將天樂, 自有金風撼玉聲.” 시중 최승로의 「궁궐 속 새 대나무[禁中新竹] / 궁궐 동쪽 못에서 새로 자란 대나무[禁中東池新竹]」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錦籜初開粉節明 대껍질이 막 벌어져서 마디가 분명하다가 低臨輦路綠陰成 임금 가는 길에 낮게 임해서 녹음을 이루었네. 宸遊..
3. 일상 풍자를 담은 오언절구 한시들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興, 亦徒勞而已. 崔拙翕瀣「遆職後」詩曰: “塞翁雖失馬, 莊叟詎知魚. 倚伏人如問, 當須質子虛.” 以警患得患失之輩. 鄭雪谷誧「示兒」詩曰: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以警非分妄求之輩. 李稼亭穀「有感」詩曰: “身爲藏珠剖, 妻因徙室忘. 處心如淡泊, 遇事豈蒼黃.” 以譬人之物欲內蔽. 成獨谷石磷「送人楓岳」詩曰: “一萬二千峯,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以譬人之品性高下. →해석보기 崔猿亭壽城「江上」詩曰: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有急流勇退之意. 宋龜峰翼弼「南溪」詩曰: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有操守不變之意. 徐萬竹益「詠雲」詩曰: “漠漠復..
암초를 보며 양두구육하는 세태를 노래하다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네 번째로 소개된 신최의 시도 어찌 보면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도 홍만종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의 군상을 발견한다. 이 시의 내용은 기탄(歧灘)이란 곳에 대한 내용이고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암초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면 바깥으로 드러난 바위는 오히려 위협적이지 않지만 물속에 감춰져 있어 배에 심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암초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이 ‘입엔 꿀을 머금고 배엔 칼을 지녀 은밀히 공교로운 가운데 발동하는 사람을 비유했다[以譬口蜜腹劒, 潜發巧中者].’이라 평하며,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비유한 건 정말 적절했고 쉽게 이해가 됐다. 애초에 누구에게나 ‘저 사람은 별로다’라는 ..
몰입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경지란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꽃에 빠져 배 돌리기 늦었는데 달을 기다리다 여울 내려가기 또 늦었네.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취해 자면서도 오히려 낚시대 드리우니 배는 가도 꿈은 그대로구나. 『소화시평』 권하 3번에 여섯 번째로 소개된 송익필의 시도 시 자체에 담겨 있는 의미보다 그 시를 읽고 홍만종이 그려낸 의미가 더 적나라하기 때문에 홍만종의 시를 보는 관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다. 1~2구에선 배를 타고 꽃구경을 나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꽃구경에 흠뻑 빠지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배를 돌려 떠나야 할 시간이 지체되었다. 지금처럼 일분 일초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며 움직이는 시대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모습이기도 하다..
배가 정박한 모습과 선비들의 출처관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저물녘 푸른 강위에 날씨는 차갑고 물은 절로 파도치네.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외로운 배 마땅히 일찍 정박한 것은 풍랑이 저녁에 응당 많기 때문이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다섯 번째로 소개된 최수성의 시는 시의 내용보다 홍만종의 해석이 더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최수성의 시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기보다 아주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처세술의 한 방향으로 본 것은 홍만종의 시평이기 때문이다. 1~2구에선 저물녘 강가의 풍경을 읊고 있다. 아무래도 계절적인 배경은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일 것 같다. 그러니 저물녘 강가엔 차가운 한기가 돌고 그 한기를 더욱 배가(倍加) 시키듯 파도가 일어나니 말이다. 이 구절을 읽..
3-2. 일상 풍자를 담은 오언절구 한시들 崔猿亭壽城「江上」詩曰: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有急流勇退之意. 宋龜峰翼弼「南溪」詩曰: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有操守不變之意. 徐萬竹益「詠雲」詩曰: “漠漠復飛飛, 隨風任狗衣. 徘徊無定態, 東去又西歸.” 以譬改頭換面, 隨勢飜覆者 申春沼最「歧灘」詩曰: “歧灘石如戟, 舟子呼相謂. 出石猶可避, 暗石眞堪畏.” 以譬口蜜腹劒, 潜發巧中者. 해석 崔猿亭壽城「江上」詩曰: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원정 최수성의 「강가에서[江上]」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저물녘 푸른 강위에 날씨는 차갑고 물은 절로 파도치네.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외로운 배 마땅히 일찍 정박한 것은 풍랑이 ..
멋있게 나이 먹어야 하는 이유를 금강산으로 비유하다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일만이천봉의 높낮이가 절로 다르니,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그대 보게나, 해가 떠오를 때 어느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는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네 번째로 소개된 성석린의 시는 산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대번에 이해하게 되는 시다.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은 누구에겐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소감을 자아내지만 성석린에겐 인격을 나타내는 증표로 보았기 때문이다. 1~2구에선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의 높낮이가 같지 않다는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밑밥 깔기(build up)를 시도한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극한 현실을 묘사하고 나서 결국 그 얘기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팍하고 ..
바쁠수록 돌아가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3번에서 홍만종은 사람들에게 경계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시들을 선별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홍만종의 이런 시도가 남다르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글의 소재란 일상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감의 정리이거나 기존의 나온 작품들의 재해석이거나, 이미 나온 해석에 나만의 해석을 붙이는 것이거나 하는 따위이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듯이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있고 그걸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엮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라거나 ‘단순한 편집’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진 말자. 의미 있는 하나의 내용으로 구성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생각들을 하고 그걸 정리하며 구성해냈을 테니 말이다. 홍만종이 이 ..
정포가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던 삶의 비의를 한시로 전하다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먹을 것이 없으면 변변찮은 콩잎도 꿀맛이고 옷이 없으면 갈포옷도 아끼는 법.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따스함과 배부름의 즐거움을 구하려 한다면, 얻지 못하고 해가 먼저 따르지.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정포의 시는 아이에게 보여주는 시답게 대단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게 아이에게 욕망을 지니라고, 그래서 같이 경쟁하는 아이들을 이기라고 무시로 말을 할 것이다. 예전엔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했었는데 그 당시 학교설명회 때 온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
순간순간의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3번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시는 일의 실정을 전달할 수도 있어 풍자적인 비유와 통한다. 만약 말이 세속을 교화시키는 것과 뜻이 비흥에 있지 않다면 또한 헛수고일 뿐이다.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ㆍ興, 亦徒勞而已. 문학에 대한 관점 중 두 가지는 되풀이 되어 왔다. ‘순수 문학론’과 ‘참여 문학론’이 그것이다. 순수문학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문학은 정치ㆍ이데올로기ㆍ현실에서 벗어나 문학이 지닌 순수성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참여문학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문학작품이란 현실을 벗어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의 아픔ㆍ상황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3-1. 일상 풍자를 담은 오언절구 한시들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興, 亦徒勞而已. 崔拙翕瀣「遆職後」詩曰: “塞翁雖失馬, 莊叟詎知魚. 倚伏人如問, 當須質子虛.” 以警患得患失之輩. 鄭雪谷誧「示兒」詩曰: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以警非分妄求之輩. 李稼亭穀「有感」詩曰: “身爲藏珠剖, 妻因徙室忘. 處心如淡泊, 遇事豈蒼黃.” 以譬人之物欲內蔽. 成獨谷石磷「送人楓岳」詩曰: “一萬二千峯,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以譬人之品性高下. 해석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시는 일의 실정을 전달할 수도 있어 풍자적인 비유와 통한다.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ㆍ興, 만약 말이 세속을 교화시키는 것과 관계하지 않고 뜻이 비흥(比興)에 있지 않으면 亦徒勞而已. 또한 ..
2. 최고의 칠언 한시들 悽惋如崔孤雲「姑蘇臺」詩: ‘荒臺麋鹿遊秋草, 廢苑牛羊下夕陽.’ 寒苦如林西河「贈人」詩: ‘十年計活挑燈話, 半世功名把鏡看.’ 纖巧如金老峯「派川」詩: ‘飄盡斷霞花結子, 割殘驚浪麥生孫.’ 淸曠如李益齋「曉行」詩: ‘三更月照主人屋, 大野風吹遊子衣.’ 老熟如李牧隱「自述」詩: ‘身爲病敵難持久, 心與貧安已守成.’ 典麗如李陶隱「元日早朝」詩: ‘梯航玉帛通蠻貊, 禮樂衣冠邁漢唐.’ 古朴如金佔畢「伏龍途中」詩: ‘邑犬吠人籬有竇, 野巫迎鬼紙爲錢’ 高潔如金東峯「贈徹上人」詩: ‘流水落雲觀世態, 碧松明月照禪談.’ 奇逸如朴挹翠「永保亭」詩: ‘急風吹霧水如鏡, 近浦無人禽自謠.’ 鬯達如奇服齊「曉坐」詩: ‘心通萬水分源處, 耳順千林發籟間.’ 奇妙如鄭湖陰「旅舍」詩: ‘馬吃枯箕和夢聽, 鼠偷殘粟背燈看.’ 鍛鍊如崔東皐「客中」詩: ‘..
1. 최고의 오언 한시들 按『佔畢齋集』曰: ‘自學詩來, 得我東詩, 而詩之名家者, 不啻數百. 由今日而上溯羅季, 幾一千載. 其間識風敎, 形美刺, 開闔抑揚, 深得性情之正者, 可以頡頏於唐宋, 模範於後世’云. 盖東方詩學, 始於三國, 盛於高麗, 而極於我朝. 自畢齋至于今, 亦數百年, 文章大手相繼傑出, 前後作者, 不可勝記. 雖比之中華, 未足多讓, 豈太師文明之化有以致之歟! 今姑百取一二, 俾後人見一木而知鄧林之多材云爾. 余每誦金侍中「卽景」詩: ‘驚電盤絕壁, 急雨射頹陽.’ 則駭其奮迅, 鄭學士「咏杜鵑」詩: ‘聲催山竹裂, 血染野花紅.’ 則恠其工艷, 李白雲「德淵院」詩: ‘竹虛同客性, 松老等僧年.’ 則慕其孤高, 李牧隱「浮碧樓」詩: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則服其淸遠, 卞春亭「春事」詩: ‘幽夢僧來解, 新詩鳥伴吟.’ 則悅其淸新, 金..
소화시평(小華詩評) 홍만종(洪萬鍾) 권상(卷上) 서설(序說)1. 가치2. 17세기 국학의 대표자 홍만종3. 홍만종의 시화집들 특징4. 성격5. 비평가의 세 가지 자격6. 품평 언어7. 사본의 문제점서문1. 태현경의 가치를 지닌 소화시평(김진표)2. 성당풍 시를 짓는 우해의 평론집(홍석기)3. 소화시평의 특징과 가치(김득신)4. 긴 세월에 걸쳐 책을 만들다(홍만종)5. 시평치윤서(詩評置閏序)1. 활발발한 기상의 왕건 2. 거란과 문종 3. 현종의 원대한 시 4. 백상루에 빠진 충숙왕 5. 창업의 뜻을 담은 이성계의 시 6. 귤로 신하를 깨친 문종 7. 평양군을 기린 성종 8. 태평한 기상을 담은 인종 9. 섣달 매화를 읊은 선조신흠 – 청창연담 권하 5310. 인조의 비상함이 담긴 시 11. 효종의 호기로..
110. 광한루의 시회 蓀谷嘗客遊帶方郡, 與白玉峯ㆍ林白湖ㆍ梁松巖同登廣寒樓. 於酒席白湖林悌先賦一律曰: ‘南浦微風生晩波, 淸烟低柳碧斜斜. 山分仙府樓居好, 路入平蕪夜色多. 千里更成京國夢, 一春空負故園花. 淸尊話別新篇在, 却勝驪駒數曲歌.’ 蓀谷次曰: ‘淸溪雨後起微波, 楊柳陰陰水岸斜. 南陌一樽須盡醉, 東風三月已無多. 離亭處處王孫草, 門巷家家枳穀花. 流落天涯爲客久, 不堪中夜聽嗚歌.’ 王峯次曰: ‘畵欄西畔綠蘋波, 無限離情日欲斜. 芳草幾時行路盡, 靑山何處白雲多. 孤舟夢裏滄溟事, 三月煙中上苑花. 樽酒已空人易散, 野禽如怨又如歌.’ 松巖次曰: ‘烏鵲橋頭春水波, 廣寒樓外柳絲斜. 風烟千里勝區在, 詩酒一場歡意多. 誰向筵前怨芳艸, 行看歸騎踏殘花. 天涯去住愁如織, 强把狂言替浩歌.’ 世傳諸公此遊, 適値國恤. 盖林詩濃麗, 梁圓熟, 蓀谷..
“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東湖停棹暫經過 동호에 노를 멈추고 잠시 들러 가려고 하니, 楊柳悠悠水岸斜 수양버들은 치렁치렁 강둑에서 늘어졌는데, 病客孤舟明月在 병든 객의 외로운 배에 밝은 달빛이 비추겠고, 老僧深院落花多 늙은 스님의 깊은 뜰 진 꽃잎만 가득하겠지. 歸心黯黯連芳草 돌아가려는 마음에 시름겹게 고운 풀로 이어지나, 鄕路迢迢隔遠波 고향 길은 까마득이 큰 파도에 막혀 있어, 獨坐計程雲海外 홀로 앉아 갈길 따져보니 구름바다 밖이라, 不堪西日聽啼鴉 해질녘 길가마귀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소화시평』 권상 109번에 소개된 두 번째 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교수님은 “시를 안다는 건 그 정황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균과 이달의 재미난 첫 만남 이야기 공부를 막 시작할 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자인 허균은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허균은 정통 양반가의 자제인 반면 이달은 어머니가 관기 출신으로 서얼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급이 있는 사회(우리나라는 계급이 타파되었지만 직업적인 계급은 존재한다. 그래서 재벌은 재벌들끼리,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한다)가 그러하듯, 그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라 양반과 서얼은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울 만하다고 여기면 계급에 상관없이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소화시평』 권상 109번을 보니 허균이..
109. 허균을 경복케 한 이달의 시재 蓀谷李達少與荷谷相善, 一日往訪焉. 許筠適又來到, 睥睨蓀谷, 略無禮容, 談詩自若. 荷谷曰: “詩人在坐, 卯君曾不聞知耶? 請爲君試之.” 卽呼韻, 達應口而賦一絶, 其落句云: ‘墻角小梅開落盡, 春心移上杏花枝.’ 筠改容驚謝, 遂結爲詩伴. 且如「贈湖寺僧」詩曰: ‘東湖停棹暫經過, 楊柳悠悠水岸斜. 病客孤舟明月在, 老僧深苑落花多. 歸心黯黯連芳草, 鄕路迢迢隔遠波. 獨坐計程雲海外, 不堪西日聽啼鴉.’ 絶似唐人韻響. 해석 蓀谷李達少與荷谷相善, 一日往訪焉. 손곡 이달이 젊었을 적에 하곡 허봉과 서로 좋아하여 하루는 가서 방문했었다. 許筠適又來到, 睥睨蓀谷, 하곡의 동생 허균이 마침 또한 와서 도착했고 손곡을 흘겨보며, 略無禮容, 談詩自若. 거의 예의를 갖춘 태도도 없이 시를 말하는 게 태연..
본 것과 시로 표현하는 것과의 차이를 한시에 담다 手持一卷蘂珠篇 손에 한 권 『예주편』을 잡고 讀罷空壇伴鶴眠 다 읽고 빈 단에서 학을 벗해 잠들었다가 驚起中宵滿身影 한 밤 중에 몸에 가득한 그림자에 놀라서 깨니, 冷霞飛盡月流天 찬 구름은 흩어진 채 달빛만 흐르네. 『소화시평』 권상 108번의 마지막 시는 정말 꿈결 같은, 그림 같은, 아니면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다. 시 제목만으로도 뭔가 그럴 듯한 게 있어 보인다. 제목이 ‘세 가지로 뻗은 소나무에 걸린 달’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제목의 시라면 왠지 소나무와 달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데 이 시에선 전혀 그러질 않는다. 정황은 이렇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마도 그 밤은 날던 학도 고이 쉬던 밤이었으리..
스님을 전송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이유를 밝힌 백광훈의 시 智異雙溪勝 金剛萬瀑奇 지리산 쌍계사는 빼어나고, 금강산 만폭동은 기이하다는데, 名山身未到 每賦送僧詩 명산에 몸소 가질 못하고서, 매번 스님을 전송하는 시만 짓네. 『소화시평』 권상 108번의 두 번째 시는 읽는 순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대로 보였다. 그건 마치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드라마에서 문정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탈리아, 로마를 출발해 전 세계를 돌고, 다시 이탈리아 시칠리로 돌아오는 둘만의 세계일주를 하자”고 툭 던진 말을 희망으로 삼아 ‘언젠가는 세계일주를 할 것이다’는 희망 하나만을 부여잡고 사는 모습과 엇비슷하다. 이 시에서 백광훈도 ‘지리산 쌍계사나 금강산 만폭동이 절경이라는 건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가보겠..
변함없는 자연과 변하는 인공물을 대비한 백광훈의 시 『소화시평』 권상 108번에선 백광훈의 시 세계를 다루고 있다. 강서시파의 시가 이전에 살펴봤듯이 엄청난 수식이 가해지고 퇴고를 거친 후에 만들어진다면 백광훈의 시는 그렇지 않다. 그를 삼당시인(최경창, 백광훈, 이달)이라 부르는데 당시의 특징은 수식이나 퇴고를 가하려 하기보다 보이는 정감을 그대로 표현하여 마치 읽고 있으면 저절로 그 정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를 흔히 ‘그려지는 시’라 표현하고, 송시를 ‘서술하는 시’라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세 편의 작품들은 모두 마치 그림 같은 그 잔상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고 심오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수월한 편이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
108. 백광훈의 맑고도 고운 한시들 白玉峯光勳, 「弘慶寺」詩曰: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雅絶逼古. 「題僧軸」詩曰: ‘智異雙溪勝, 金剛萬瀑奇. 名山身未到, 每賦送僧詩.’ 淸婉可喜. 且如「三叉松月」詩曰: ‘手持一卷蘂珠篇, 讀罷空壇伴鶴眠. 驚起中宵滿身影, 冷霞飛盡月流天.’ 瑩澈無滓. 해석 白玉峯光勳, 「弘慶寺」詩曰: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옥봉 백광훈의 「홍경사(弘慶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가을 풀, 고려 때 절 그리고 부서진 비문에 담긴 학사들의 문장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천년 동안 흐르는 물,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雅絶逼古. 우아하고 독특하여 예스러움에 가깝다. 「題僧軸」詩曰: ‘智異雙溪勝, 金剛萬瀑奇. ..
홍만종도 인정한 당시풍의 최고 작가, 최경창 아직 당시(唐詩)와 송시(宋詩)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해동강서시파의 시(권상 73, 81, 102)를 보고 나서 이 시를 보면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당시(唐詩)는 해석이 난해하지 않고 그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언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바로 드러난다. 『소화시평』 권상 107번에선 고죽 최경창이야말로 당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당시를 배웠다 할지라도 만당(晩唐)을 배운 이달 같은 경우는 유약하다고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唐詩) 내에서도 최고의 시는 성당(盛唐)시를 쳐주고, 그보다 못한 경우는 중당(中唐)까지는 이해해주지..
107. 당시풍을 오롯이 익힌 최경창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唯崔孤竹終始學唐, 不落宋格,’ 信哉! 其高者出入武德·開元, 下亦不道長慶以下語, 如‘春流繞古郭, 野火上高山.’ 則中唐似之, ‘人烟隔河少, 風雪近關多.’ 則似盛唐, ‘山餘太古雪, 樹老太平烟.’ 則似初唐. 不知今世復有此等調響耶. 해석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내가 일찍이 선배에게 ‘우리 조선의 시는 唯崔孤竹終始學唐, 오직 고죽 최경창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풍(唐風)을 배워 不落宋格, 信哉! 송풍(宋風)의 격조로 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참이로구나! 其高者出入武德·開元, 격조가 높은 것은 무덕(618~626, 初唐)ㆍ개원(713~741, 盛唐)에 출입하며 下亦不道長慶以下語, 격조가 낮은 것 또한 장경(821~824, 中唐) 이하의 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 먼 언덕에 저녁 아지랑이 일어나니 찬 강물에 흰 물결 생기네. 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 정박한 배에 사람은 보이질 않으니, 술을 사러 어부의 집에 들어갔겠지. 窅窅日沈夕 蕭蕭風起波 아득한 해가 저녁에 잠기고 쓸쓸한 바람이 물결에서 이네. 遙知泊船處 隔岸有人家 멀리서도 알겠지, 배를 정박한 곳, 강둑 너머엔 인가가 있다는 걸. 『孤竹遺稿』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두 번째로는 이달의 시(위의 시)와 최경창의 시(아래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두 시는 모두 같은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그림을 보고 그 상황을 묘사한 시로 제화시(題畫詩)라고 불린다. 그런데 재밌게도 두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재밌다..
깊은 산골임을 시인이 묘사하는 방식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가려서 深樹棲禽晩不飛 깊은 숲속에 자던 새 늦도록 날질 않네. 古屋苔生門獨閉 옛집 이끼 껴 문 홀로 닫혀 있어, 滿庭淸露濕薔薇 온 뜰에 맑은 이슬이 장미를 적셨다네.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최경창의 「제낙봉인가(題駱峯人家)」라는 시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의 시다. 시를 해석한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던 지천 황정욱의 시와 시적 미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 한편을 통해 여기서 말하는 인가가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여실히 알 수 있다. 시인은 한 번도 집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구름과 이슬이 해를 가..
1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淸麗如畵. 嘗與蓀谷共賦「虛舟繫岸圖」, 蓀谷詩落句曰: ‘泊舟人不見, 沽酒有漁家.’ 孤竹詩曰: ‘遙知泊舟處, 隔岸有人家.’ 孤竹不下‘人不見’三字, 而無人之意, 自在其中, 崔詩爲優. 해석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고죽 최경창의 「낙봉 인가에 쓴 시[題駱峯人家] / 우연히 읊다(偶吟)【이하 세 편은 가장본엔 없지만 최경창과 백광훈의 시를 모아 간행한 『최백집』 속에서 얻은 것이다[此下三首, 家藏本無之, 而得於『崔白集』中].】」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105. 신응시의 두견새 辛白麓應時, 嘗以弘文修撰入直時, 宣廟以海棠下杜鵑啼爲題, 使諸學士製造. 白麓詩曰: ‘春盡棠花晩, 空留蜀鳥啼. 隔窓聞欲老, 倚枕夢猶凄. 怨血聲聲落, 歸心夜夜西. 吾王方在疚, 莫近上林棲.’ 或傳宣廟時在諒暗中, 覽至末句, 深加歎賞. 해석 辛白麓應時, 嘗以弘文修撰入直時, 宣廟以海棠下杜鵑啼爲題, 使諸學士製造. 백록(白麓) 신응시(辛應時)는 일찍이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으로 궁궐에 들어가 숙직할 때에 선조는 ‘해당화 아래 두견새 우네[海棠下杜鵑啼]’라고 제목을 짓고 뭇 학사들에게 짓도록 했다. 白麓詩曰: ‘春盡棠花晩, 空留蜀鳥啼. 隔窓聞欲老, 倚枕夢猶凄. 怨血聲聲落, 歸心夜夜西. 吾王方在疚, 莫近上林棲.’ 백록이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春盡棠花晩 空留蜀鳥啼 봄은 갔지만 해당화 늦게..
104. 정작과 선조임금 鄭古玉碏, 北窓之弟, 亦奇士也. 嘗有「子規」詩曰: ‘劍外稱皇帝, 人間託子規. 梨花古寺月, 啼到五更時. 遊子千年淚, 孤臣再拜詩. 愁腸一叫斷, 何用苦摧悲.’ 此詩膾炙一世. 張瞽師順命, 嘗召入禁中, 宣廟問: “汝近往何處?” 對曰: “流寓海西矣.” 宣廟曰: “聞鄭碏近在海州, 此人嗜酒, 其能得飮否?” 仍誦梨花古寺一聯曰: “佳作佳作! 恨不見全篇, 汝或記否?” 順命誦之, 御筆卽書壁. 해석 鄭古玉碏, 北窓之弟, 亦奇士也. 고옥(古玉) 정작(鄭碏)은 북창 정렴(鄭磏)의 아우로 또한 기이한 선비다. 嘗有「子規」詩曰: ‘劍外稱皇帝, 人間託子規. 梨花古寺月, 啼到五更時. 遊子千年淚, 孤臣再拜詩. 愁腸一叫斷, 何用苦摧悲.’ 일찍이 「자규(子規)」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劍外稱皇帝 人間託子規 검각산..
103. 유영길의 시 柳月篷永吉, 嘗與五山諸公到松都. 時値八月, 官池荷葉盡敗, 只有一朶殘葩, 冒雨獨立. 諸公各賦詩, 月篷先成, 其落句曰: ‘憐似楚王垓下夕, 旌旗倒盡泣紅粧.’ 一座閣筆歎賞. 해석 柳月篷永吉, 嘗與五山諸公到松都. 월봉(月篷) 유영길(柳永吉)이 일찍이 오산 등의 여러 사람과 송도에 도착했다. 時値八月, 官池荷葉盡敗, 只有一朶殘葩, 冒雨獨立. 때는 8월이라 관아의 연못 연꽃은 다 지고 다만 하나의 늘어진 진 꽃만이 비 오는 걸 무릅쓰고 홀로 서 있었다. 諸公各賦詩, 月篷先成, 其落句曰: ‘憐似楚王垓下夕, 旌旗倒盡泣紅粧.’ 뭇 사람들이 각각 시를 짓는데 월봉이 먼저 완성했으니 끝 구절은 다음과 같다. 憐似楚王垓下夕 가련하기가 마치 초나라 왕이 해하의 밤에 旌旗倒盡泣紅粧 깃발은 거꾸러져 다했고 붉은..
지천의 시, 한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중시키다 春事闌珊病起遲 봄 풍경이 끝물인데, 병이 더디게 나은지라. 鶯啼燕語久逋詩 꾀꼬리 울고, 제비 재잘대도 오래도록 시를 못 지었네. 一篇換骨脫胎去 한 편의 환골탈태(윤두수가 보내온 시)가 오니, 三復焚香盥手時 향을 사르고 손을 씻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었다네. 天欲此翁長漫浪 하늘은 이 늙은이(윤두수)에게 오래도록 자유롭게 해주고선, 人從世路苦低垂 나는 세상길에서 괴롭게도 떨구고자 하는 구려. 銀山松桂芝川水 은산의 소나무와 계수나무, 지천의 물이 應笑吾行又失期 응당 비웃겠지, 나의 행실이 또한 실기했다고. 『소화시평』 권상 102번에서 이 시를 처음 해석했을 땐 그저 보이는 그대로만 해석했다. 깊게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 난감하기만 ..
강서시파의 시가 어려운 이유 호소지(湖蘇芝)로 불리워지는 관각삼걸(館閣三傑)은 해동강서시파로 유명하다. 권상 73번과 권상 81번 글에서 시구를 단련하기로 유명한 강서시파의 시를 음미했었다. 확실히 당풍(唐風)의 시들은 내용도 별로 어렵지 않고 해석이 매끄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강서시파의 시는 아무리 보아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소화시평』 권상 102번에 보는 황정욱의 시도 마찬가지다. 해석도 매끄럽지 않을뿐더러, 해석하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니 말이다. 해동강서시파는 송풍(宋風)의 시 중에서도 여러 가지를 안배하여 시구를 꾸며내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한시 품평에선 ‘난삽(難澁)하다’, ‘정교(精巧)하다’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그만큼 자..
102. 해동강서시파 호소지와 지천의 난삽한 시 世稱近代名家, 必曰湖蘇芝, 謂湖陰·蘇齋·芝川. 湖之組織精緻, 蘇之雄拔富贍, 芝之橫逸奇偉, 眞可相角. 芝川「贈梧陰」詩曰: ‘春事闌珊病起遲, 鶯啼燕語久逋詩. 一篇換骨脫胎去, 三復焚香盥手時. 天欲此翁長漫浪, 人從世路苦低垂. 銀山松桂芝川水, 應笑吾行又失期.’ 亦可見大家一班. 許筠云: “見芝川近律百餘篇, 其矜持勁悍, 森邃泬㵳, 寔千年以來絶響. 覈其所變化, 盖出於訥齋, 而出入乎盧ㆍ鄭之間, 殆同其派而尤傑然者也.” 해석 世稱近代名家, 必曰湖蘇芝, 세상에서 근대의 명문장가를 일컬을 때 반드시 ‘호소지’라고 말하는데, 謂湖陰·蘇齋·芝川. 호음 정사룡ㆍ소재 노수신ㆍ지천 황정욱을 말한다. 湖之組織精緻, 蘇之雄拔富贍, 호음의 시적 조직이 치밀하고 정밀한 것과 소재의 웅장하고 특출..
꽃은 비에 피고 바람에 지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꽃은 지난 밤 비에 폈고 꽃은 오늘 아침 바람에 졌다네.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쿠나, 한철 봄 일이 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니. 花開因雨落因風 꽃은 비 때문에 피었다가 바람 때문에 지니, 春去秋來在此中 봄은 가고 봄이 오는 것이 이 가운데에 있구나. 昨夜有風兼有雨 지난밤 바람이 불고 또한 비까지 와 梨花滿發杏花空 복숭아꽃은 만발했고 살구꽃은 졌다네. 『소화시평』 권상 101번에 소개된 송한필의 시(위의 시)나 권벽의 시(아래의 시)는 모두 같은 운치를 담고 있다. 비에 봄꽃이 만개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불어 꽃이 져버렸으니 말이다. 봄 또한 송익필이 말한 달처럼 순식간에 상황이 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금세 꽃이 펴서 좋아했더니 바람이 불자 져버..
101. 꽃의 피고 짐으로 담아낸 운치 雲谷宋翰弼詩: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權習齋詩曰: ‘花開因雨落因風, 春去秋來在此中. 昨夜有風兼有雨, 梨花滿發杏花空.’ 意則一串, 而各有風致. 해석 雲谷宋翰弼詩: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운곡 송한필의 「우연히 읊다[偶吟]」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꽃은 지난 밤 비에 폈고 꽃은 오늘 아침 바람에 졌다네.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쿠나, 한철 봄 일이 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니. 權習齋詩曰: ‘花開因雨落因風, 春去春來在此中. 昨夜有風兼有雨, 梨花滿發杏花空.’ 습재 권벽의 「봄밤의 바람과 비[春夜風雨]」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花開因雨落因風 꽃은 비 때문에 피었다가 바람 때문에 지니, 春去秋來..
보름달과 같은 사람이 되길 未圓常恨就圓遲 보름달이 아닐 땐 항상 둥글어짐이 더딤을 한스러워하고, 圓後如何易就虧 보름달이 된 뒤엔 어째서 쉬이 기울어지려는가? 三十夜中圓一夜 30일 밤중에 보름달은 하룻밤이니, 百年心事摠如斯 인생 백년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다네.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소개된 이 시를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배우며 제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신은 이 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리고 과연 송익필은 이 시를 통해 무얼 말하고자 했겠는가? 보름달을 기대했다가 순식간에 이지러지는 현상을 보면서 ‘욕심의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욕심엔 명예, 지위, 돈과 같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보름달과 세잎 클로버 『소화시평』 권상 100번에 나오는 송익필의 「달을 바라보며望月」라는 시는 임용시험에도 두 번이나 출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시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시다. 시 자체만 읽어봐선 보름달이 되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하루 사이에 조금씩 이지러지며 얇아지는 모습에 대한 한탄이 들어 있다. 달은 늘 떠 있어 구름이 끼지 않는 한 언제든 볼 수 있기에 달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달 중에서도 보름달은 우리에게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크고 밝은 달이기에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뜬 날만 늑대로 변해 자신 안에 숨겨진 파괴본능을 맘껏 드러내기도 하니 말이다. 나 또한 달 중에서 보름달을 좋아했다. 그래서 평상시엔 달을 보며 어떤 감상도 남기지 않다가 보름달..
100. 인생에 대해 읊은 송익필 龜峯宋翼弼, 雖出卑微, 天品甚高, 亦能文章. 其「望月」詩曰: ‘未圓常恨就圓遲, 圓後如何易就虧.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事摠如斯.’ 語甚精到. 又「客中」詩曰: ‘食披叢竹宿依霞, 行計蕭然只一簑. 山近鷄龍秋氣早, 江連白馬夕陽多. 路通南北君恩足, 身歷艱危學力加. 子在秦城兄塞外, 夢中歸去亦無家.’ 旅泊之態, 見於言外. 해석 龜峯宋翼弼, 雖出卑微, 귀봉 송익필은 비록 출신이 비천하고 미비했지만, 天品甚高, 亦能文章. 천성적인 자질은 매우 높았고 또한 문장을 잘 지었다. 其「望月」詩曰: ‘未圓常恨就圓遲, 圓後如何易就虧.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事摠如斯.’ 「달을 바라보며[望月]」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未圓常恨就圓遲 보름달이 아닐 땐 항상 둥글어짐이 더딤을 한스러워하고, 圓後如何易就虧 ..
성리학의 주제를 담아낸 권필의 시 雨後濃雲重復重 비 갠 뒤 짙은 구름 뭉게뭉게 捲簾晴曉看奇容 발 걷으니 갠 새벽의 기이한 풍경이 이네. 須臾日出無踪跡 잠깐 사이에 해가 나와 종적조차 없어져 始見東南兩三峯 비로소 동남의 두세 봉우리 보이네【삼각산의 비 갠 구름[右三角晴雲]】.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권필의 「호정팔경(湖亭八景)」 중 ‘삼각청운(三角晴雲)’이라는 시다. 이 시는 그냥 읽으면 너무도 일상을 잘 담아낸 시처럼 보인다. 비 갠 아침에 안개가 자욱이 껴 있고 구름도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다. 그러니 늘 보이던 삼각산의 경치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해가 뜨고 나니 구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환하게 삼각산의 경치가 보인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도를 깨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성혼의 시 一區耕鑿水雲中 물가 구름 속의 한 구역에 밭 갈고 우물 파느라, 萬事無心白髮翁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 睡起數聲山鳥語 두어마디 산새소리에 잠을 깨서는 杖藜徐步繞花叢 명아주 지팡이로 천천히 걸으며 수풀 맴돈다네. 『소화시평』 권상 99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우계 성혼의 시는 저절로 「격양가(擊壤歌)」가 생각나며 달관한 사람의 면모가 가득 보인다. 세상을 달관한다는 게 무관심해진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절대정신 같은 것일 거다. 그러니 겉에서 보면 만사에 무심한 노인 같지만, 그는 자연의 흐름을 온몸에 받아들여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제와는 달리 오늘 새로 피어난 수풀의 이름 모를..
시와 작가와의 관계 『소화시평』 권상 99번에선 ‘문장을 지음으로 도를 깨쳤다[因文悟道]’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선시대의 문장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성리학이 송나라 시대에 발흥한 이후로 문장은 도를 싣는 도구여야 했다. 그래서 ‘글은 도를 실어야 한다[文以載道]’는 논의와 덧붙여 ‘도가 근본이고 글은 말단이다[道本文末]’와 같은 문학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글을 통해 도를 전해주고, 그 글을 읽으면서 도를 깨쳐야 한다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선시대의 문장론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전혀 어색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이란 어찌 되었든 저자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게 마련..
99. 우계와 석주의 도를 깨친 시 文章理學, 造其閫域, 則一體也, 世人不知, 便做看兩件物, 非也. 以唐言之, 昌黎因文悟道. 『恥齋集』云: “佔畢齋, 因文悟道.” 『石潭遺史』云: “退溪亦因文悟道.” 余觀成牛溪「贈僧」詩曰: ‘一區耕鑿水雲中, 萬事無心白髮翁. 睡起數聲山鳥語, 杖藜徐步繞花叢.’ 極有詞人體格. 權石洲「湖亭」詩曰: ‘雨後濃雲重復重, 捲簾晴曉看奇容. 須臾日出無踪跡, 始見東南兩三峯.’ 極似悟道者之語. 해석 文章理學, 造其閫域, 則一體也, 문장과 이학은 지극한 경지에 나아가면 하나의 체계다. 世人不知, 便做看兩件物, 세상은 알지 못하고 곧 두 가지의 사건이나 물건으로 간주하는데 非也. 그건 잘못된 것이다. 以唐言之, 昌黎因文悟道. 당나라로 예를 들자면 말하자면 한창려는 문장으로 도를 깨쳤다고 한다. 『..
정철의 자기 인식과 자유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민순은 아니고 곧 미치광이로 半世風塵醉得名 반백년 풍진 맞으며 취하여 명성을 얻었다네. 欲向新知道姓字 새로이 알게 된 이를 향해 성과 자를 말하려 하니, 靑山獻笑白鷗輕 청산은 비웃고 흰 기러기 무시하네. 『소화시평』 권상 98번에 소개된 「주중사객(舟中謝客)」라는 시는 정철의 후손이 문집에 그때의 상황을 기록해둔 덕에 왜 이런 시가 나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사죄하게 됐는지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그 당시에 유명하면서도 명망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 데에 대해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은 못 됩니다.’라고 사죄하며 시를 지은 것이다. 여기까지야 뭐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됐지만, 3구와 4구에선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
송강 정철과 팰컨 헤비 『소화시평』 권상 98번의 주인공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ㆍ「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한문학계에서보다 국문학계에서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자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처참하게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철에 대해 알게 된 건 권필과 이안눌이란 제자 때문이었다. 둘 다 정철이 죽은 이후에 그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이안눌은 달이 뜬 밤, 용산에서 기녀가 「사미인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오직 우리 선생을 알아주는 이는 기녀뿐이로구나.’라는 깊은 탄식을 시에 담았다. 권필은 낙엽지고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무덤가를 지난다. 그때 스승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두 명의 제자를 통해 회상되..
98. 정철의 얽매이지 않은 시와 속되지 않은 시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豪逸不羈. 「題樂民樓」詩曰: ‘白岳連天起, 成川入海遙. 年年芳草路, 人渡夕陽橋.’ 世稱絶唱. 然余意不俗則似矣, 絶唱則未也. 해석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송강 정철은 일찍이 배에서 한 선비를 만났는데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선비가 정철이 행촌 민순(閔純)인지 의심했고, 또한 우계 성혼인지 의심했다.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송강이 써서 한 절구(「배에서 손님에게 사죄하며[舟中謝客]」)를 주었으니 다음과 같다.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
고경명의 백마강 시에 은근히 드러난 정서 病起因人作遠遊 벗 때문에 병석에서 일어나 먼 여행을 떠났더니, 東風吹夢送歸舟 봄바람 꿈결에 불어 돌아가는 배를 전송하네. 山川鬱鬱前朝恨 산천은 짙푸르니 전 왕조의 한인 듯, 城郭蕭蕭半月愁 성곽은 쓸쓸하니 반달도 시름겨워하는 듯. 當日落花餘翠壁 그 날 당시의 낙화는 푸른 석벽에 남아 있고, 至今巢燕繞紅樓 지금도 둥지의 제비는 붉은 누각을 맴도네. 傍人莫問溫家事 벗이여 온조왕 옛 일은 묻지 마시라. 弔古傷春易白頭 옛날을 조문하고 봄을 애달파하면 쉬 백발이 될 테니. 『소화시평』 권상 97번에 두 번째로 나온 시는 고경명의 시다. 1~2구까진 자신이 어떻게 백마강까지 오게 됐는지를 표현했다. 병으로 시달리던 때 친구의 방문으로 백마강 답사가 실현되었고 마치 꿈처럼 어느..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정사룡과 고경명은 시를 통해 백제 멸망의 스산함을 간직한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며 그 대표작으론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 있다. 나 또한 단재학교에 신입교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3명의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났었다. 첫째 날엔 정림사지와 부여박물관을 돌아보며 백제의 역사를 곱씹었고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둘째 날엔 부소산성과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백제의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사룡의 시나 고경명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슴 절절한 아픔은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 너무 머나먼, 그래서 ..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백마강을 둘러보며 백제의 멸망을 바라본 두 학자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강서시파의 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강서시파의 면모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호소지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중국에서 최대한 다듬은 시구를 구사했던 송시(宋詩)의 계열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위시한 강서파의 조선 버전이다. 지금은 ‘버전’과 같은 영어식의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 당시엔 조선을 나타내는 ‘해동(海東)’이란 말을 덧붙여 ‘해동강서시파’라고 불렸다. 해동강서시파의 멤버를 보자면 거두인 눌재 박상이 있는데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서 여실히 보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
97. 백제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시 湖陰「白馬江」詩: ‘別酒澆胸未散愁, 野橋分路到江頭. 城池坐失溫王險, 圖籍曾聞漢將收. 花萎尙傳崖口缺, 龍亡猶認釣痕留. 寒潮强學靈胥怒, 亂送驚濤殷柁樓.’ 霽峰詩: ‘病起因人作遠遊, 東風吹夢送歸舟. 山川鬱鬱前朝恨, 城郭蕭蕭半月愁. 當日落花餘翠壁, 至今巢燕繞紅樓. 傍人莫問溫家事, 弔古傷春易白頭.’ 湖陰詩雖極雄豪, 未若霽峰之淸新高邁. 雖以劉夢得「金陵懷古」方之, 霽峰不必多讓. 해석 湖陰「白馬江」詩: ‘別酒澆胸未散愁, 野橋分路到江頭. 城池坐失溫王險, 圖籍曾聞漢將收. 花萎尙傳崖口缺, 龍亡猶認釣痕留. 寒潮强學靈胥怒, 亂送驚濤殷柁樓.’ 호음 정사룡의 「백마강에서[白馬江] / 밤에 백마강을 건너며[夜渡白馬江]」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別酒澆胸未散愁 이별주를 가슴에 부어도 근심은 사라지지..
이달과 고경명의 인연 『소화시평』 권상 96번에서 완전히 해석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양경우의 맨 마지막 말이 끝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그것이다. 여기에서의 원문은 ‘익견기장자야(益見其長者也)’이다. 난 별로 생각하지 않고 ‘고경명 어르신이 이달을 자기의 오른편에 두었으니, 고경명 어른이야말로 이달의 장점을 본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달을 살뜰히 챙기는 고경명 어르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녹아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형술 교수님은 그렇게 봐선 안 된다고 말해줬다. 益見其長者也 더욱 그 장점을 본 사람이다. 더욱 그가 어른 됨을 볼 수 있다 ‘장점을 봤다’라고 하면 ‘그저 좋은 점을 인정해줬다’는 얘기가 될 테지만, ‘고..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소화시평』 권상 96번은 홍만종이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양경우의 문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책이 귀하던 그 시절에 홍만종은 여러 사람의 문집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그런 문집들을 읽다가 자신이 언제가 활용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발췌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양경우의 문집과 이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열나게 베끼고 있는 홍만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나게 베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단연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도중 한 곳에 들어갔고 그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내용이 너무도 재기발랄하여 저녁에 정진사와 함께 찾아 반을 나누어 베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글이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엄청..
96. 이달과 고경명, 그리고 당풍 高霽峯敬命, 壬辰爲義兵將, 梁慶遇掌書記, 軍務之暇, 語及論詩. 霽峯稱道蓀谷詩格曰: “世罕其儔.” 梁曰: “蓀谷詩, 出於晩唐, 一篇一句可詠, 豈若閤下濃麗富盛乎?” 霽峯曰: “豈可易言其優劣乎! 如七言律·排律等作, 則吾不讓李, 至於短律若絶句, 決不可及. 昔守瑞山郡時, 邀李於東閣, 留連累朔, 與之唱和. 每賦絶句, 不敢以宋人體參錯於其間, 倉卒學唐, 半眞半假, 誠可愧也.” 梁逢人每言: “文人相輕, 自古而然. 霽峯之於蓀谷, 推許至此, 置之己右, 益見其長者也.” 余觀霽峯「漁舟圖」絶句: ‘蘆洲風颭雪滿空, 沽酒歸來係短篷. 橫笛數聲江月白, 宿禽飛起渚烟中.’ 其聲韻格律, 極逼唐家, 豈可謂半假乎? 公盖自謙也. 해석 高霽峯敬命, 壬辰爲義兵將, 제봉 고경명은 임진년에 의병장이 되었고 梁慶遇掌書記..
95. 이이의 시 天使黃·王之來也, 栗谷爲遠接使. 崔簡易宰成川, 欲試公, 會諸妓曰: “若有能瞞此老者, 厚賞之.” 有一美娥, 請往, 卽命送公. 公晝則命侍左右, 夜必命還其寓, 如是者月餘. 妓遂辭歸, 公乃贈一絕曰: ‘旅館誰憐客枕寒, 枉敎雲雨下巫山. 今宵虛負陽臺夢, 只恐明朝作別難.’ 以鐵石心肝, 爲此淸新婉麗之語, 與宋廣平「梅花賦」, 千載相符. 해석 天使黃·王之來也, 栗谷爲遠接使. 명나라 사신 황홍헌(黃洪憲)과 왕경민(王敬民)이 왔을 적에 율곡이 원접사가 되었다. 崔簡易宰成川, 欲試公, 會諸妓曰: “若有能瞞此老者, 厚賞之.” 최간이가 성천부사(成川府使)로 부임해 있어 율곡을 시험해보고자 해서 뭇 기녀를 모아 “만약 이 노인을 홀릴 만한 이라면 후하게 상을 내리겠다.”라고 말했다. 有一美娥, 請往, 卽命送公. 어떤..
경험을 해야 더 맛깔나는 한시들 ‘책 너머의 지식과 학교 너머의 공부’라는 것이 무언지는 『소화시평』 권상 94번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홍만종도 책을 통해서 시를 익혔던 사람이라 시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겠지’라고 갸우뚱하며 넘어갔나 보다. 굳이 홍만종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처럼 지식을 책을 통해서만 쌓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경험은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수없이 배웠던 여러 과목들은 분명히 경험이 무르익어 생성된 것임에도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배제된 ‘앙꼬 없는 찐빵’으로써의 지식만을 무작정 암기하고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면 배울수록 삶은 배움과 철저하게 괴리되어 갔던 것이다. 뭔가를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선 적용도 ..
책 너머의 지식, 학교 너머의 배움 한참 임용을 준비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단재학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6년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갖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건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전혀 생소한 인연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밖에 길이 있다’라던지, ‘교실이란 공간 밖에 배움이 있다’라던지 하는 말들을 해왔던 것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얘기는 텍스트에 사로잡혀서도, 공간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지식은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다른 건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며, 잠을 잘 때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
94. 경험해보고서야 시의 가치를 알게 되다 姜醉竹克誠「湖亭」詩曰: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但聞柔櫓聲, 不見舟行處.’ 余初咀嚼不識其味. 嘗寓江亭, 一日早起開窓, 大霧漫空. 朝日韜輝, 不識行舟, 但聞戞軋之聲, 始覺其說景逼眞. 石洲「曉行」詩: ‘雁鳴江月細, 曉行蘆葦間. 悠揚據鞍夢, 忽復到家山.’ 余奇其韻語, 未得其趣. 嘗向春川, 宿靑坪坡, 曉發時, 値九月念後. 沿江一路, 盡是蘆葦, 曉月如眉, 獨鴈呌群. 信馬垂鞭, 且行且睡, 始覺其模寫如畵. 兩公詩價, 對景益高. 해석 姜醉竹克誠「湖亭」詩曰: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但聞柔櫓聲, 不見舟行處.’ 취죽 강극성의 「호숫가 정자에서[湖亭] / 강가 정자에서 아침에 일어나[湖堂朝起]」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江日晩未生 蒼茫十里霧 강의 해 늦도록 솟질 않고 아득히 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