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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93. 양사언의 시 楊蓬萊士彥「國島」詩: ‘金屋樓臺拂紫烟, 濯龍雲路下群仙.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脫去塵臼. 해석 楊蓬萊士彥「國島」詩: ‘金屋樓臺拂紫烟, 濯龍雲路下群仙.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彥)의 「국도(國島)」【함경도 안변(安邊)에 있는 섬 이름으로 안변에서 동북쪽 60리쯤 되는 곳에 있다. 양사언이 1577년 무렵 안변부사로 재직하였을 때 지은 시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金屋樓臺拂紫烟 황금 지붕 누대는 붉은 연기 떨구고 濯龍雲路下群仙 탁룡【탁룡(濯龍): 후한(後漢) 황가(皇家)의 원림(園林) 이름으로, 보통 궁중을 뜻한다.】의 구름 길로 뭇 신선들 내려오네. 靑山亦厭人間世 푸른 산도 또한 인간 세상을 싫어해서 飛入滄溟萬里天 날아 푸른 바다의 만리..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소화시평』 권상 92에서 이안눌은 권벽과 권필 부자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를 놓고 비교를 한다. 우선 비교를 하려면 같은 느낌으로 쓰여진 시를 선별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고 시적 재능도 완전히 달랐으니, 다른 작품을 놓고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눌은 ‘중국 사신을 전별하는 시’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쓴 사신 전별시를 골랐고 그걸 통해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一曲驪駒正咽聲 한 곡조의 이별곡은 바로 오열하는 소리 朔雲晴雪滿前程 변방의 구름과 쌓인 눈이 앞길에 가득하구나. 不知後會期何地 훗날 기약 어디일지 알지 못하니, 只是相思隔此生 그저 그리움만 지닌 채 이 생은 떨어져 있으리. 梅發京華春信早 매화 피어 서울에..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 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
92. 동악이 평가한 습재와 석주의 시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二人俱有贈華使詩,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京華春信早, 氷消江浙暮潮平. 歸心自切君親戀, 肯顧東人惜別情.’ 石洲詩: ‘江頭細柳綠烟絲, 暫住蘭橈折一枝. 別語在心徒脈脈, 離盃到手故遲遲. 死前只是相思日, 送後那堪獨去時. 莫道音容便長隔, 百年還有夢中期.’ 習齋詩沈重, 石洲詩浮弱, 可於此兩詩論定.”云. 해석 有以習齋·石洲文章優劣, 問東岳, 東岳曰: 습재 권벽과 석주 권필 문장의 우열에 대해 동악 이안눌에게 물으니, 이안눌이 대답했다. “二人俱有贈華使詩, “두 사람이 모두 중국 사신에게 준 시가 있는데, 習齋詩: ‘一曲驪駒正咽聲, 朔雲晴雪滿前程. 不知後會期何地, 只是相思隔此生. 梅發..
91. 권벽의 시 權習齋, 諱擘, 余祖母外王考也. 爲文長於詩, 淸深典雅, 自成一家. 松溪權應仁嘗語梁松川應鼎曰: “閤下得見習齋所作歟?” 曰: “未慣.” 曰: “人問詞壇立幟者, 僕必以習齋爲對.” 松川曰: “唯唯!” 北海藤季達, 從韓詔使到我國. 時習齋爲遠接使從事官, 相得甚懽, 習齋贈之以詩曰: ‘有山皆着屐, 無水不流觴.’ 藤撫掌嘆賞曰: “僕行天下多矣, 未嘗見如此詩人.” 해석 權習齋, 諱擘, 余祖母外王考也. 권습재의 휘는 벽(擘)으로 우리 할머니의 외조부이다. 爲文長於詩, 淸深典雅, 自成一家. 문장을 지음에 시에 장점이 있어 맑고 심오하며 법칙 있고 우아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松溪權應仁嘗語梁松川應鼎曰: “閤下得見習齋所作歟?” 曰: “未慣.” 송계(松溪) 권응인(權應仁)이 일찍이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우리 고유어로 쓴 시는 아름답다 『소화시평』 권상 90번을 보면 문화사대주의에 쪄들었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엔 상식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긴 지금이라 해서 무작정 ‘한글전용’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곳이든 지나가다 보면 영어로 된 간판이나,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의 이름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지어지고 버젓이 써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한문이 국제사회의 언어로 맹위를 떨쳤다면 지금은 영어가 그 지위를 이어받은 모양새고, 이 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논조들이 지금도 영어로 대체되어 횡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권 당시엔 영어공용화 논쟁까지 불붙으며 어륀지 파문까지 일었겠는가. 그건 단순히 파문 문제로 끝난 게 아..
90. 우리나라 고유어로 시를 쓰라 世謂: “中國地名皆文字, 入詩便佳. 如‘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氣蒸雲夢澤, 波撼岳陽樓.’等句, 只加數字而能生色. 我東方皆以方言成地名, 不合於詩.”云. 余以爲不然, 李容齋「天磨錄」詩: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蘇齋「漢江」詩云: ‘春深楮子島, 月出濟川亭.’ 詩豈不佳? 惟在鑪錘之妙而已. 해석 世謂: “中國地名皆文字, 入詩便佳. 세상에선 말한다. “중국의 지명은 모두 문자이기 때문에 시에 삽입하면 더욱 아름답다. 如‘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두보(杜甫)의 「나그네[遊子]」의 다음 구절이나 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 봄풀 바깥에서 구강이 흐르고, 저물녘 돛대 앞에 삼협(三峽)이 놓여 있네. ‘氣蒸雲夢澤, 波撼岳陽樓.’等句, 맹호연(孟浩然)의 「동정호에 다다라[臨洞庭]」의 ..
도문대작을 어떻게 해석할까? 夢賚元將水月隣 몽뢰는 원래 수월정을 거느리고 인접하여 兩翁分占一江春 두 노인이 한 강의 봄을 나누어 차지했다네. 東家樂作西家聽 동쪽 정자에서 음악을 지으면 서쪽 정자에서 들으니, 絶勝屠門大嚼人 상상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구나.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두 번째 소개된 시의 4구(絶勝屠門大嚼人)가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았다. 1~3구까지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두 정자가 바로 옆에 있고 한 군데서 음악을 연주하면 바로 옆 정자까지 음악이 퍼지고, 함께 봄날의 경치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아주 평화로운 기색이 넘실거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도문대작인(屠門大嚼人)’이라는 걸까?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말은 허균의 작품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게 전거가 있는 단어..
사제(賜祭)를 드리며 조정을 찬양한 정유길의 시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처음에 소개된 시가 바로 이런 유형의 시다. 조정에 아부하기 위해 자신의 나태함을 나타낸다던지, 아예 조정이 없는 모습을 표현한다던지하는 두 가지 방식 외에 정유길의 이번 시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聖朝枯骨亦沾恩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 香火年年降塞門 향불 해마다 변방에 내리네. 祭罷上壇風雨定 제사 마친 제단에 오르니 바람과 비는 멎고 白雲如海滿前村 흰 구름은 바다처럼 앞마을에 가득 찼구나. 그건 1구에서부터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聖朝枯骨亦沾恩]’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구절만 읽어도 이 시가 지향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
조정에 한시로 아부하는 방식 관료로서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의 시는 여러 편을 봤었다. 권상 34번에 나오는 곽예는 시에서는 하릴없이 공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한 관리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가로이 근무하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이며 조정의 정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동양 사회에 이런 식의 태평성대에 대한 찬양이 생긴 것은 태평성세의 전범으로 삼는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鑿井而飮 耕田而食 우물을 파마시며 밭 갈아 먹으니, 帝力何有於我哉 임금의 정치가 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 시는 얼핏 보면 무정부상태를 칭송하..
89. 정유길의 충성심과 호기로운 기상 鄭相國, 諱惟吉, 號林塘, 余外高祖也. 文章富麗, 尤長於詩, 不事彫刻, 而自有風味. 「賜祭棘城」詩: ‘聖朝枯骨亦沾恩, 香火年年降塞門. 祭罷上壇風雨定, 白雲如海滿前村.’ 公江亭在漢津, 名夢賚, 與礪城尉水月亭接隣, 臥聞都尉亭歌管大作, 遂吟一絶: ‘夢賚元將水月隣, 兩翁分占一江春. 東家樂作西家聽, 絶勝屠門大嚼人.’ 其氣像可見. 해석 鄭相國, 諱惟吉, 號林塘, 정상국(1515~1588)의 휘는 유길이고 호는 임당으로, 余外高祖也. 나의 외고조부다. 文章富麗, 尤長於詩, 문장이 풍부하고 곱지만 더욱 시에 장점이 있어 不事彫刻, 而自有風味. 수식하려 애쓰지 않아도 절로 풍미가 있다. 「賜祭棘城」詩: ‘聖朝枯骨亦沾恩, 香火年年降塞門. 祭罷上壇風雨定, 白雲如海滿前村.’ 「극성에서 ..
퇴계 선생의 선비화 시가 불편한 사람들 앞선 후기에서 ‘공부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라고 했듯이 『소화시평』 권상 88번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퇴계의 시에서 스님의 말을 어느 부분까지 볼 것인지도 명확해진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고 가야 할 게 있다. 영주 부석사의 어느 암자 처마 아래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건 예로부터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기 위해 꽂아둔 석장이 어느새 뿌리가 내리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다. 바로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흘러오는 얘기이고 그런 기이한 이야기에 감동한 퇴계는 시까지 지으며 뒷받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퇴계야말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유학자 ..
신이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소화시평』 권상 88번의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땐 신이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종교계열의 이야기엔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으론, 일상적인 이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천지창조 이야기랄지,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랄지, 단군의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종교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무작정 수긍해야 한다거나, ‘어디서 그런 뻥카를’이란 생각으로 거부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읽고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엔 융이 말했던 ‘집단..
부석사 운에 차운하다(절은 영천 봉황산에 있다) 차부석사운 사재영천봉황산(次浮石寺韻 寺在榮川鳳凰山) 구봉령(具鳳齡) 紛生幻說破空門 正學千秋樹本根 一聯詩句留題處 肯向妖叢更視恩 先生詩云: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曺溪水, 不借乾坤雨露恩.” 寺有化僧言“植陰簷之下! 見日則枯.”云. 先生詩, 只斥其妄誕之實, 而人或不察故云. 『栢潭集』 해석 紛生幻說破空門 분연히 생긴 황당한 말은 공문을 깨뜨리고, 正學千秋樹本根 정학의 본 뿌리를 긴 세월동안 세우려 해서네. 一聯詩句留題處 한 연의 시구가 남은 곳에서 肯向妖叢更視恩 기꺼이 요망한 나무를 향해 다시 은혜를 보였구나. 先生詩云: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曺溪水, 不借乾坤雨露恩.” 퇴계 선생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擢玉森森倚寺門 옥처..
선비화는 부처의 은혜가 담겨 있다 부석사선비화(浮石寺仙飛花) 신좌모(申佐模) 傳, 義相大師住錫于浮石寺. 一日歸西笁, 植杖于寺之門內. 語“此杖生花葉, 可知吾法身不滅.” 果托根生花葉, 寺僧樹屛于門, 以防剪伐. 後有道伯截去原根, 今有旁根叢生, 年年開花. 退溪先生有詩揭門楣, 詩曰: “攢玉亭亭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曹溪水, 不借乾坤雨露恩.” 謹次其韻. 卓錫西歸一閉門 法身无滅證靈根 年年花葉長開落 不藉沾濡報佛恩 해석 傳, 義相大師住錫于浮石寺. 전하기로는 의상대사가 부석사 머물렀는데, 一日歸西笁, 植杖于寺之門內. 하루는 서축으로 돌아갈 때 절의 문 안에 석장을 꽂았다. 語“此杖生花葉, 그러면서 대사는 말했다. “이 지팡이에서 꽃과 잎이 피면 可知吾法身不滅.” 나의 법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88. 부석사의 선비화 榮川浮石寺, 卽新羅太師義相所刱也, 簷下有一樹, 莫知其名, 居僧相傳, 以爲太師柱杖. 始師入定之時, 植其杖於窓外, 遂閉戶坐化. 後杖忽生柯葉, 開花甚繁, 至今千有餘歲愈盛. 昔夸父擲杖, 化成鄧林, 與此頗相類. 而此樹在於簷宇之下, 不借雨露之濡, 而能亭亭獨立, 榮耀長春, 比諸鄧林尤異. 退溪先生有詩曰: ‘擢玉森森倚寺門, 僧言卓錫化靈根. 杖頭自有曹溪水, 不借乾坤雨露恩.’ 해석 榮川浮石寺, 卽新羅太師義相所刱也. 영천 부석사는 곧 신라 태사 의상이 창건한 곳이다. 簷下有一樹, 莫知其名. 처마 아래에 한 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알진 못한다. 居僧相傳, 以爲太師柱杖. 기거하던 스님이 서로 전하며 ‘태사의 지팡이’라고 말했다. 始師入定之時, 처음에 태사가 수행하기 위해 방안에 들어갔을 때에 植其杖於窓外, ..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솔바람 빗장 건 채 듣고 눈 속 매화는 화로 낀 채 보다보니,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각별하지만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지.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깨닫고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이전엔 괴안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네. 나야 사단칠정 논쟁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정관념적으로 이황 선생에 대해 되게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웬만하면 퇴계의 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소화시평』 권상 87번에 이황의 시가 실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를 보고나선 깜짝 놀랐다. 매우 인..
사단칠정론과 고정관념 『소화시평』 권상 87번의 주인공은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을 장식한 이황 선생이다. 이황하면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했다는 사실만이 깊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논쟁들이 그렇지만 그 당시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논리를 더 예리하게 다듬게 되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데없는 것에 힘쓴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비전향 장기수가 사상전환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그 생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세상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유전적으로 우린 조선 사람들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철학적으론 전혀 ..
87. 이황의 기상이 담긴 시 退溪先生, 非徒理學之爲東方所宗, 文章亦卓越諸子. 「次友人」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又關西錄一聯云: ‘絶域病攻天拂亂, 荒城雷聞鬼驚忙.’ 於此可見氣像. 해석 退溪先生, 非徒理學之爲東方所宗, 퇴계선생은 성리학으로 동방의 종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文章亦卓越諸子. 문장으로도 또한 여러 작가보다 탁월했다. 「次友人」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친구가 시를 보내 화답을 구하기에 차운하다次友人寄詩求和韻」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
86. 주세붕의 부석사 시 余曾遊榮川浮石寺, 登聚遠樓, 樓出半空, 俯臨洞壑, 飛鳥皆視其背. 周愼齋世鵬, 有題一律: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樓居雲雨上, 鐘動斗午間. 斫木分河逈, 開巖鍾玉閑. 非關眈佛宿, 蕭灑劫忘還.’ 他人所題, 莫能及此. 해석 余曾遊榮川浮石寺, 登聚遠樓, 樓出半空, 俯臨洞壑, 飛鳥皆視其背. 내가 일찍이 영천(榮川)의 부석사(浮石寺)에 유람할 때 취원루(聚遠樓)에 오르니 누각은 반쯤 허공에 튀어나와 골짜기를 굽어보면 나는 새가 모두 그 등을 보였다. 周愼齋世鵬, 有題一律: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樓居雲雨上, 鐘動斗午間. 斫木分河逈, 開巖鍾玉閑. 非關眈佛宿, 蕭灑劫忘還.’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의 한 율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浮石千年寺 平臨鶴駕山 부석사는 천년 사찰로 학가산에..
시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하나, 손님의 간담은 예로부터 서늘했었다지.但覺巖崖峻 誰知宇宙寬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누가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원숭이 끝없이 울어대면서 험한 여울 탄 나를 전송해주네. 『 忍齋先生文集』 卷之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 85번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시 한편의 내용 중 결구의 내용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홍섬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이 이야기는 신흠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실려 있던 글을..
시참론과 결과론적인 얘기의 불편함 한시를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참(詩讖,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예언서마냥 훗날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권상 85번에서처럼 마지막 구에서 작자의 생에 대한 의지를 봤고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경우나, 유몽인 ‘잘린 지렁이[斷蚓]’, ‘추운 파리[寒蠅]’라는 시어를 썼더니 단명하게 됐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홍명구란 사람이 ‘화락천지홍(花落天地紅)’라는 시를 짓자 할머니가 보고 “‘花發天地紅’이라 했으면 복록을 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요절할 거 같다.”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42세에 죽었다는 하권49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85. 홍섬, 시에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다 洪忍齋暹, 嘗賦月課「灩澦堆」詩: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但覺巖崖峻, 寧知宇宙寬. 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 詞極淸峻豪放. 忍齋少爲安老所陷, 逮獄被竄. 安老敗, 遂登顯. 當受刑時, 人皆危之, 蘇陽谷獨不憂曰: “曩見其課製灩澦堆詩, 末句有歷險始顯之意, 是以知其不死.” 해석 洪忍齋暹, 嘗賦月課「灩澦堆」詩: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但覺巖崖峻, 寧知宇宙寬. 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 인재 홍섬(1504~1585)이 월과(月課)로 지은 「염여퇴에서[灩澦堆]」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84. 정렴의 시 鄭北窓磏「山居夜坐」詩曰: ‘文章驚世徒爲累, 富貴薰天亦謾勞. 何似山窓岑寂夜, 焚香默坐聽松濤.’ 其人異也, 詩亦如其人. 해석 鄭北窓磏「山居夜坐」詩曰: ‘文章驚世徒爲累, 富貴薰天亦謾勞. 何似山窓岑寂夜, 焚香默坐聽松濤.’ 북창(北窓) 정렴(鄭磏)의 「산거야좌(山居夜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文章驚世徒爲累 문장이 세상을 놀래켰지만 다만 누만 되었고 富貴薰天亦謾勞 부귀로 하늘을 태웠지만 또한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하네. 何似山窓岑寂夜 산집 창의 적막한 밤에 焚香默坐聽松濤 향을 사르고 묵묵히 앉아 소나무 바람 소리 듣는 것만 하랴? 其人異也, 詩亦如其人. 그 사람이 기이하니 시 또한 그 사람 같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83.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정지상~유몽인)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意境入神,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造語俊健,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李白雲「夏日」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寫景精妙,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淸駃豪敞,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突兀壯奇,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해석보기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宏偉壯健, 如磨天巨斧, 闢開蜀山. 金佔畢「神勒寺」詩: ‘..
83-4.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李體素「永保亭」詩: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豪縱雄爽, 如蒲稍駃騠, 不受覊馽. 權石洲「北關」詩: ‘磨天嶺北山長雪, 豆滿江南草不春.’ 淸切嘹亮, 如戍樓悲笳, 響徹胡天. 許端甫「南平道中」詩: ‘春晩岸桃飄蔌蔌, 雨晴沙鴨語咬咬.’ 淸新婉麗, 如西子新粧, 倚門呈笑. 李東岳「鏡城」詩: ‘邊城缺月懸愁外, 故國殘花落夢中.’ 淸淑纖妙, 如淸水芙蓉, 天然去飾. 柳於于「加平山中」詩: ‘斑爛烏虺蟠道側, 傲兀黃熊坐樹巓.’ 奇怪幽險, 如飛天夜叉, 攫食虎豹. 해석 李體素「永保亭」詩: ‘月從今夜十分滿, 湖納晩潮千頃寬.’ 체소 이춘영(李春英)의 「영보정(永保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月從今夜十分滿 달은 오늘밤부터 가득 찰 것이고, 湖納晩潮千頃寬 호수에 만조 들어와 천 이랑이나 넓어지리..
83-3.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鄭湖陰「後臺夜坐」詩: ‘山木俱鳴風乍起, 江聲忽厲月孤懸.’ 凌厲振掉, 如秦師過周, 免冑超乘. 盧蘇齋「卽事」詩: ‘秋風乍起燕如客, 晩雨暴過蟬若狂.’ 橫逸老健, 如馬援钁鑠, 據鞍顧眄. 黃芝川「詠海」詩: ‘兩儀高下輪輿轉, 太極鴻濛汞鼎開.’ 奇傑雄渾, 如夸父追日, 烏獲扛鼎. 崔東皐「朝天」詩: ‘終南渭水如相見, 武德開元得再攀.’ 高雅典重, 如啇彛周鼎, 儼列東序. 車五山「明川」詩: ‘風外怒聲聞渤海, 雪中愁色見陰山.’ 汪洋憤猛, 如潮捲百川, 雷掀萬竅. 해석 鄭湖陰「後臺夜坐」詩: ‘山木俱鳴風乍起, 江聲忽厲月孤懸.’ 호음 정사룡의 「밤에 후대에 앉아[後臺夜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山木俱鳴風乍起 산과 나무가 함께 울리니, 바람이 홀연히 일어나고, 江聲忽慮月孤懸 강물 소리는 문득 사나..
83-2.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宏偉壯健, 如磨天巨斧, 闢開蜀山. 金佔畢「神勒寺」詩: ‘上房鍾動驪龍舞, 萬竅風生鐵鳳翔.’ 嚴重洪亮, 如勻天廣樂, 軣輵寥廓. 李忘軒「望海寺」詩: ‘蝙鳴側塔千年突, 龜負殘碑太古書.’ 幽遐奇古, 如埋酆神劒, 沈水禹鼎. 朴訥齋「琴臺」詩: ‘彈琴人去鶴邊月, 吹笛客來松下風.’ 高古爽朗, 如左挹浮丘, 右拍洪厓. 朴挹翠「永保亭」詩: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篷.’ 神奇恍惚, 如彩蜃吹霧, 架出樓閣. 해석 鄭圃隱「皇都」詩: ‘山河帶礪徐丞相, 天地經綸李太師.’ 포은 정몽주의 「명나라 도읍지에서[皇都]」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山河帶礪徐丞相 산하의 대려를 맹세한 승상 서달. 天地經綸李太師 천지를 경륜한 태사 이선장. 宏偉壯健, 웅장하..
83-1.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意境入神,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造語俊健,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李白雲「夏日」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寫景精妙,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淸駃豪敞,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突兀壯奇,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해석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우리 동방의 시는 위로 고려 때로부터 아래로 조선에 이르기까지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
82. 신령이 도운 시 詩之所謂有神助者, ‘池塘生春草’, 千古膾炙. 盖出語天然, 自得造化之妙, 議論安敢到也? 後世文人, 往往自云有神助者. 宋楊徽之‘新霜染楓葉, 明月借蘆花’之句, 雖自稱神助, 而謂之警聯則可矣, 豈可謂之神助耶? 我東卞春亭季良‘虛白連天江郡曉, 暗黃浮地柳堤春.’ 鄭湖陰‘雨氣壓霞山忽暝, 川華受月夜猶明.’ 兩公亦皆矜神助. 春亭詩寫景雖新, 未見其神處, 湖陰詩極有淸虛之氣, 雖謂之神助, 亦非過許. ▲ 개심사 산신각의 탱화 해석 詩之所謂有神助者, ‘池塘生春草’, 千古膾炙. 시에서 소위 신령이 도와줬다는 것은 ‘못에 봄 풀 나고[池塘生春草]’인데 천고토록 회자되었다. 盖出語天然, 自得造化之妙, 議論安敢到也? 대개 말을 자연스레 내어 절로 조화의 오묘함을 터득했으니 의론한 것이라면 어찌 감히 이르겠는가? 後世..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쿠리 안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 어둠에 막 잠기자 골자기는 텅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별은 흔들리면서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病葉微零自起風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시를 읊조린 침대값은 함께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내일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소화시평』 권상 81번에 소개된 시는 ‘곽(郭)’ 한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다면 이해가 쉽더라. 그래서 1구에선 이곳이 성곽으로 빙 둘러 있는 분지지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봐도, 두 번 봐도 모르니 조급해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상 73번 박상 시를 할 때 해동강서시파의 특징을 제대로 음미해봤었다. 여러 책을 참고하거나 ‘한국한시약사(韓國漢詩略史)’를 보다 보면 16세기에 이르러 15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강서시파의 시풍을 본받아 박은ㆍ이행ㆍ박상ㆍ정사룡ㆍ노수신ㆍ황정욱이 강서시를 수학했고, 박은ㆍ이행ㆍ정사룡을 해동강서시파라 부르게 됐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들의 시풍에 대해 흔히 ‘기괴(奇怪), 난삽(難澁)’이라 평하고는 한다는 말이 덧붙여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는 머리를 온통 쥐어 짜네 늘상 습관적으로 써 오던 관습을 집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전고를 쓴다던지, 기존에 쓰던 전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쓴다던지, 문장을 비틀어버린다던지 했던 것이다. 그..
81. 정사룡의 시를 통해 공부를 깨닫다 陽谷曰: “國朝以來, 代有作者, 各擅名家, 而未免偏方氣習之累, 不趍於流麗, 則或失於組織. 鄭湖陰士龍, 奇古峭拔, 一洗萎累之氣, 可與唐之長吉·義山竝較才力.”云. 湖陰「夜坐卽事」詩曰: ‘擁山爲郭似盤中, 暝色初沈洞壑空. 峰頂星搖爭缺月, 樹巓禽動竄深叢. 晴灘遠聽飜疑雨, 病葉微零自起風. 此夜共分吟榻料, 明朝珂馬軟塵紅.’ 眞所謂高秋獨眺, 晩霽孤吹. 해석 陽谷曰: “國朝以來, 양곡 소세양(蘇世讓)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로 代有作者, 各擅名家, 시대마다 작가들이 있어 각각 이름 난 작가로 떨쳤지만 而未免偏方氣習之累. 치우친 지방의 기운과 습속의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不趍於流麗, 則或失於組織. 그래서 유려한 데로 치닫지 않으면 간혹 조직하는 데서 잃었다..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落葉鳴廊夜雨懸 낙엽소리 울던 곁채에 밤비가 걸렸는데 佛燈明滅客無眠 불상의 등불 깜빡여 손님은 잠이 없네. 仙山一躡傷遲暮 신선의 산 한번 밟으니 나이 들음이 속상하네. 烏帽欺人二十年 오사모로 사람을 20년이나 속였구나.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유영길의 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영길은 직접 복천사에 가서 낙엽소리가 울리던 곁채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등불은 바람에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고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이곳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선..
신광한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나온 신광한이 지은 금강산 시는 『우리 한시를 읽다』의 12번 챕터에서 읽었었다. 거기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금강산을 면모를 엿보는데 매우 긴요했다. 최근에 남북엔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더욱 평양의 냉면이랄지, 평양의 부벽루랄지, 금강산, 백두산 같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으레 남아 있는 명승지에 대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치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두 발로 밟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감을 키워주는 데에 선조들이 써 놓은 한시가 아주 긴요하게 작용한다. 위의 시는 두 편 모두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삶에 치..
80.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申企齋送人金剛詩曰: ‘一萬峯巒又二千, 海雲開盡玉嬋姸. 少因多病今傷老, 孤負名山此百年.’ 柳月篷「福泉寺」詩曰: ‘落葉鳴廊夜雨懸, 佛燈明滅客無眠. 仙山一躡傷遲暮, 烏帽欺人二十年.’ 申詩傷其衰病, 柳詩歎其纏縛, 擺脫塵累, 致身名區, 若是之難乎! 兩詩格韻皆淸切, 而柳詩起語尤警. 해석 申企齋送人金剛詩曰: ‘一萬峯巒又二千, 海雲開盡玉嬋姸. 少因多病今傷老, 孤負名山此百年.’ 신기재가 금강산으로 사람을 전송하며 지은 시(「종질 원량 신잠이 영동군에 부임할 때 헤어지며 주다[贈別堂姪元亮潛之任嶺東郡]」)는 다음과 같다. 一萬峯巒又二千 일만 봉우리에 또 이천 봉우리. 海雲開盡玉嬋姸 바다구름 개자 옥 같은 봉우리들 선연해. 少因多病今傷老 어려선 병이 많았고 지금은 늙음을 슬퍼하니 孤..
79. 신광한의 옥원역 申企齋·鄭湖陰, 一時齊名, 兩家氣格不同, 申詩淸亮, 鄭詩雄奇. 企齋「沃原驛」詩曰: ‘暇日鳴螺過海山, 驛亭寥落水雲間. 桃花欲謝春無賴, 燕子初來客未還. 身遠尙堪瞻北極, 路迷空復憶長安. 更憐杜宇啼明月, 囱外誰栽竹萬竿.’ 企齋於詩各體俱備, 湖陰獨善七律, 湖似不及企. 而湖嘗曰: “申公各體, 豈能敵吾一律哉!” 해석 申企齋·鄭湖陰, 一時齊名, 兩家氣格不同, 申詩淸亮, 鄭詩雄奇. 신기재와 정호음의 한 때에 명성을 나란히 했지만 두 시인의 기격이 같지 않으니 신광한의 시는 맑고 밝으며 정사룡의 시는 웅혼하고 기이하다. 企齋「沃原驛」詩曰: ‘暇日鳴螺過海山, 驛亭寥落水雲間. 桃花欲謝春無賴, 燕子初來客未還. 身遠尙堪瞻北極, 路迷空復憶長安. 更憐杜宇啼明月, 囱外誰栽竹萬竿.’ 기재(企齋)의 「옥원역(沃原驛..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소화시평』 권상 78번에서 한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우 한 글자에 무에 그리 심상이 달라지겠냐고 영화 ‘신세계’에서의 이정재 말투처럼 “거 번, 광한형 이거 한 글자 가지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뇨?”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바뀐 글자를 놓고 시를 보니, 거기다가 교수님의 설명까지 들으니 한 글자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시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한 글자가 바뀜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살짝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뜻은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검토해보며 고친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바꾼다고 무에 달라질 게 있냐고 할 테지만, 한시의 경우는 매우 한정된 분량(5언 절구는 20자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에 담아야 하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단어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 한 단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된다. 거기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78. 한 글자에 시가 달라진다 古人詩不厭改, 唐任飜「題台州寺」云: ‘前峯月照一江水, 僧在翠微開竹房.’ 旣去, 有人改一字爲半字. 飜行數十里, 乃得半字, 亟回欲易之, 見所改字, 歎曰: “台州有人.” 我東申企齋光漢, 宿淸溪寺, 題詩云: ‘急水喧溪石, 輕香濕澗花.’ 行至半途, 忽得暗字, 復還, 改急爲暗. 盖一不如半字之奇, 急不如暗字之妙, 可見古人於詩不容易下字. 해석 古人詩不厭改. 옛사람은 시에서 고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唐任飜「題台州寺」云: ‘前峯月照一江水, 僧在翠微開竹房.’ 당나라 임번이 지은 「태주사에서 짓다[題台州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前峯月照一江水 앞 봉우리에 뜬 달이 온 강물을 비추니 僧在翠微開竹房 스님은 산허리에 죽방을 열었네. 旣去, 有人改一字爲半字. 임번이 이미 떠나자 어떤 사람이 ‘일..
77. 압록강을 읊은 화찰과 소세양 詔使華察「鴨綠江」詩: ‘春江三月送浮槎, 日落潮平兩岸沙. 天地本來分異域, 風塵此去愧皇華. 波飜鴨綠初經雨, 柳帶鵝黃未着花. 四海車書今一統, 東溟文物自商家.’ 遠接使陽谷蘇世讓次曰: ‘溶溶晴浪泊靈槎, 騎從如雲簇晩沙. 始識天公分物色, 故敎仙客管春華. 烟含濯濯江邊柳, 雨浥離離岸上花. 一脉斯文情誼在, 車書同屬帝王家.’ 詔使歎賞. 해석 詔使華察「鴨綠江」詩: ‘春江三月送浮槎, 日落潮平兩岸沙. 天地本來分異域, 風塵此去愧皇華. 波飜鴨綠初經雨, 柳帶鵝黃未着花. 四海車書今一統, 東溟文物自商家.’ 조사(詔使) 화찰(華察)의 「압록강(鴨綠江)」 시는 다음과 같다. 春江三月送浮槎 봄 강 3월에 뗏목 띄워 전송했는데 日落潮平兩岸沙 해 지고 조수가 두 언덕 모래톱에서 평평해졌네. 天地本來分異域 천지는..
76. 김안로의 시 金頤叔安老, 能文章, 其一聯: ‘巢鶴立晴麤意氣, 火山回碧頓精神.’ 鄭東溟嘗稱畫工手段. 해석 金頤叔安老, 能文章, 其一聯: ‘巢鶴立晴麤意氣, 火山回碧頓精神.’ 이숙(頤叔) 김안로(金安老)는 문장을 잘 지었는데 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巢鶴立晴麤意氣 소학산(巢鶴山)이 막 개자 의기가 거칠어졌지만 火山回碧頓精神 화산이 다시 푸르러지자 정신이 상쾌해졌네. 鄭東溟嘗稱畫工手段. 정동명이 일찍이 화공의 솜씨라 칭찬했다. 인용 목차 / 작가 / 서설 한시사 / 한시미학
소나무에 자신의 절망감을 이입하다 枝柯摧折葉鬖髿 가지 꺾였고 잎사귀는 헝클어져 斤斧餘身欲臥沙 도끼에 잘린 남은 몸통은 모래에 누우려 하네. 望絶棟樑嗟已矣 희망 끊긴 동량은 이제 그만이로구나! 枒楂堪作海仙槎 뗏목으로 바다의 신선이 탈 배를 만들련다. 『소화시평』 권상 75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소나무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에선 감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곁에 있는 다른 소나무를 보니 그 소나무는 가지도 꺾였고 잎사귀도 아무렇게 헝클어져 있으며 몸통은 도끼에 잘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고 많은 소나무들 중에 그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이렇게 시까지 쓰여지게 된 이유는 뻔하다.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아니 바로 쓰러질 듯 위태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유배지로 가는 절망 속에 희망을 읊은 김정 어쨌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3개월 동안 묵고 묵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것들은 묵혀두면 더 진한 맛을 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보면 막힐 때가 자주 있다. 일이 밀려 있으니 빨리 써재끼고 싶지만 한 번 막히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그러니 맘은 더욱 급해지고 그만큼 부담은 더욱 가중되며, 그럴수록 더욱 글은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멈추고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어떻게든 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이상 그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과 결합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으로 발효될 테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들이 용솟음쳐 오르며 콸콸콸 쏟아져 나와 한 편으..
3개월 만에 재개된 소화시평, 그리고 김정과 소나무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1학기에 순서를 배정할 때 내가 맡은 작품이라 이미 7월 16일에 모두 정리해서 해석해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1학기 소화시평 수업은 바로 이 작품 앞에서 끝이 났고 무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발효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2학기 수업이 과연 언제 시작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소화시평 수업은 ‘한시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다. 10년 전에 열나게 공부할 때 한시란 미로처럼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었다.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해석이 된다 해도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확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많은 작품을 ..
75. 소나무에 감정을 이입한 김정 金冲庵淨, 文章精深灝噩, 先輩稱謂文追西漢, 詩學盛唐. 坐黨禍, 杖流濟州, 尋賜死. 其至南海也, 「詠路傍松」曰: ‘海風吹去悲聲遠, 山月高來瘦影疎. 賴有直根泉下到, 雪霜標格未全除.’ 又曰: ‘枝柯摧折葉鬖髿, 斤斧餘身欲臥沙. 望絶棟樑嗟已矣, 枒楂堪作海仙槎.’ 格韻淸遠, 用意甚切, 盖以自況, 而竟不保命, 棟梁之用旣已矣, 仙槎之願亦絶焉, 悲夫! 해석 金冲庵淨, 文章精深灝噩, 충암 김정은 문장이 정밀하고 심오하며 문장의 기상이 활달하고 넓어, 先輩稱謂‘文追西漢, 詩學盛唐.’ 선배들이 “문장은 서한을 따랐고, 시는 성당을 배웠다.”라고 칭찬했다. 坐黨禍, 杖流濟州, 그러나 기묘사화에 연좌되어【김정金淨(1486~1520): 자는 원충(元沖), 호는 충암(冲庵)ㆍ고봉(孤峰). 1514..
74. 조광조의 절명시 靜庵先生, 坐己卯黨禍, 杖配綾城. 累囚中有詩一絕曰: ‘誰憐身似傷弓鳥, 自笑心同失馬翁. 猿鶴正嗔吾不返, 豈知難出覆盆中.’ 詞極凄切, 尋賜死, 吟一句日: ‘愛君如愛父, 天日照丹衷.’ 遂飮鴆卒, 士林傳誦, 莫不流涕. 해석 靜庵先生, 坐己卯黨禍, 杖配綾城. 정암(靜庵) 조광조 선생이 기묘사화에 연좌되어 곤장을 맞고 능성(綾城)에 유배되었다. 累囚中有詩一絕曰: ‘誰憐身似傷弓鳥, 自笑心同失馬翁. 猿鶴正嗔吾不返, 豈知難出覆盆中.’ 옥에 갇힌 후에 시 한 절구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誰憐身似傷弓鳥 신세가 화살에 다친 새 같은데 누가 가련히 여길까? 自笑心同失馬翁 마음이 말 잃은 노인 같아 스스로 웃기네. 猿鶴正嗔吾不返 원숭이와 학은 바로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꾸짖지만 豈知難出覆盆中 덮어진 동..
한유의 글을 시로 담아낸 박상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선 박상이 나오는데 당풍을 연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강서시파라는 설명도 덧붙여줬는데, 그렇다면 당풍 내에 강서시파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건지, 당풍과 강서시파는 전혀 다른 것인지 헛갈리긴 하다. 『한국한시사』라는 책을 읽고 정리한 한시 약사에선 송풍에서 당풍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 강서시파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변화되는 과정 속에 전혀 다른 게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강서시의 특징은 ‘난삽하고 기괴’하다고 알려주셨고, 약사에선 기교에 힘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충: 이 시를 처음 배웠을 때가 18년 8월이었고 다시 정리하는 지금은 19년 2월이다. 그새 6개월 정도가 지났고 지금은 1월에 진도를 쭉쭉..
73. 강서시파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난 박상의 작품 朴訥齋祥「南海神堂」詩曰: ‘蕙肴椒醑穆將愉, 神衛煌煌駕赤虯. 香火粲薰三宿裏, 月星明槪五更頭. 捎殘颶母天空闊, 鎖斷支祈海妥流. 禾黍有秋從可卜, 慶雲時起祝融陬.’ 老健奇偉. 又「嶺南樓」一聯.: ‘漁艇載分籠渚月, 官羊踏破羃坡烟.’ 則極淸緻. 「法聖浦」一聯.: ‘龍宮灑出鮫人錦, 蜃市跳回姹女車.’ 則極渺溟. 許筠嘗云: “少見芝川, 其持論甚倨, 談古今文藝少所許與, 如容齋而目爲太腴, 李達而指爲模擬, 湖陰·蘇齋稍合作家, 惟取訥齋以爲不可及”云. 해석 朴訥齋祥「南海神堂」詩曰: ‘蕙肴椒醑穆將愉, 神衛煌煌駕赤虯. 香火粲薰三宿裏, 月星明槪五更頭. 捎殘颶母天空闊, 鎖斷支祈海妥流. 禾黍有秋從可卜, 慶雲時起祝融陬.’ 눌재 박상의 「남해의 신당에서[南海神堂]」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
72. 이희보의 시 李希輔能文章, 號安分堂. 燕山嘗喪愛姬, 悼甚, 使諸臣挽之. 希輔製進一絕, 燕山覽之慟哀, 優其賞賚, 因此驟進大官. 後時議薄之, 終爲轗軻. 其「春日偶吟」詩曰: ‘錦繡千林鳥亦歌, 天工猶自喜繁華. 門前枯木無枝葉, 春力無由着一花.’ 其自傷之懷可見, 而詩亦絕佳. 해석 李希輔能文章, 號安分堂. 이희보(李希輔)는 문장을 잘 지었고 호(號)는 안분당(安分堂)이다. 燕山嘗喪愛姬, 悼甚, 使諸臣挽之. 연산군이 일찍이 총애한 계집을 잃고 슬퍼함이 극심하자 여러 신하들에게 만시(挽詩)를 짓도록 했다. 希輔製進一絕, 燕山覽之慟哀, 優其賞賚, 因此驟進大官. 이희보가 한 절구를 지어 올리니 연산군이 그 시를 보고 애통해하며 상을 내림을 넉넉히 하여 이 때문에 높은 관직에 올랐다. 後時議薄之, 終爲轗軻. 훗날에 시..
봄이 감을 아쉬워한 이행의 시와 두보의 악양루시 衰年奔走病如期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春興無多不到詩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睡起忽驚花事晩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一番微雨落薔薇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소화시평』 권상 7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1구가 원인이 되어야 2구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1구를 해석할 때 병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병이 들었기에 2구의 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면 입맛도 떨어지고, 좋은 경치도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기 위해서다. 낙화시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비애가 담길 수..
반전이 담긴 멋진 시를 쓴 이행 순서대로 진행되기에 권상 57번 이후의 시들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걸 맡은 학생들이 업로드를 하지 않아 과연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긴 했다. 하긴 그래도 예전에도 아이들 시험 기간 때면 교수님이 그냥 진행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오늘은 예비 TO까지 나왔고, 22명을 뽑는데 무려 전북에서 6명이나 뽑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나야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올해 될 리는 없고 내년에나 바라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런데 이번에 한참이나 순서가 뒤로 처져 있지만, 동원이가 ‘71번’ 준비한 것을 올렸었다. 너무나 멀기에 보지도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번엔 순서를 아예 바꿔서 이 시부터 하자고 하시며 진행하셨다. 세상에나 ..
71. 이행의 넉넉하고 봄을 아쉬워하는 시들 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 其「次韻」詩曰: ‘多難纍然一病夫, 人間隨地盡窮途. 靑山在眼誅茅晩, 明月傷心把筆孤. 短夢無端看蟻穴, 浮生不定似檣烏. 祗今贏得衰遲趣, 聽取兒童捋白鬚.’ 又「題直舍」詩曰: ‘衰年奔走病如期, 春興無多不到詩. 睡起忽驚花事晩, 一番微雨落薔薇.’ 皆溫裕典則, 詞家上乘. 해석 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용재 이행이 시를 지은 것이 화평하고 온순하며 원숙하고 넉넉하여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 신적인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허균은 ‘나라의 선비 중 제일[國士第一]’이라 말했다. 其「次韻」詩曰: ‘多難纍然一病夫, 人間隨地盡窮途. 靑山在眼誅茅晩, 明月傷心把筆孤. 短夢無端看蟻穴, 浮生不定似檣烏. 祗今贏得衰遲趣, 聽取兒童捋白鬚.’ 「..
70. 남곤의 신광사 止亭南袞, 文章甚佳, 東方所罕, 神光寺題詠六絕, 皆絕唱, 今錄其三首. ‘千重簿領抽身出, 十笏僧房借榻眠. 六月炎塵飛不到, 上方知有別般天.’ ‘金書殿額普光明, 二百年來結搆精. 試問開山大檀越, 碧空無際鳥飛輕.’ ‘庭前栢樹儼成行, 朝暮蕭森影轉廊. 欲問西來祖師意, 北山靈籟送凄涼.’ 許筠選入『詩刪』, 而評之曰: “雖其人可怒可唾, 而詩自好.” 余嘗見而笑之曰: “太宗祭魏武, 正所以自狀.” 해석 止亭南袞, 文章甚佳, 東方所罕, 神光寺題詠六絕, 皆絕唱, 今錄其三首. 지정(止亭) 남곤(南袞)은 문장이 매우 아리따워 우리나라에 드문 정도인데 신광사(神光寺)【황해도 해주 북숭산(北嵩山)에 있었던 거찰이다. 1342년 원나라 황제가 태감(太監) 송골아(松骨兒)로 하여금 장인 37명을 이끌고 고려인과 함께 이..
영보정 시를 읽었더니 그곳에 가고 싶어지다 『소화시평』 권상69번을 개발새발 해석했을 땐 잘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영후정자(營後亭子)」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어디까지나 정자를 묘사하며 지은 시였는데, 정자를 묘사한 방식도 탁월해서 정말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地如拍拍將飛翼 땅이 푸드덕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 같고, 樓似搖搖不繫篷 누각은 흔들흔들 거려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다. 北望雲山欲何極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서 끝나려는가? 南來襟帶此爲雄 강물이 남으로 와 띠처럼 둘렀으니 이곳이 웅장해지네. 海氣作霧因成雨 바다 기운이 안개가 되었다가 인하여 비를 이루고 浪勢飜天自起風 파도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서 저절로 바..
69. 영보정에 오르면 삼라만상이 보인다 挹翠軒朴誾·容齋李荇, 俱以文章相善. 挹翠於燕山朝被禍死, 容齋裒集詩文, 印行于世. 其詩天才甚高, 不犯人工, 如憑虛捕罔象. 其「永保亭」詩曰: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篷. 北望雲山欲何極, 南來襟帶此爲雄. 海氣作霧因成雨, 浪勢飜天自起風. 暝裡如聞鳥相喚, 坐間渾覺境俱空.’ 容齋曰: “其詩出人意表, 自然成章, 不假雕飾, 千古希音.” 해석 挹翠軒朴誾·容齋李荇, 俱以文章相善. 읍취헌 박은과 용재 이행은 모두 문장으로 서로 친했다. 挹翠於燕山朝被禍死, 읍취헌이 연산군의 조정에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죽게 되자, 容齋裒集詩文, 印行于世. 용재는 시문을 모아 세상에 간행했다. 其詩天才甚高, 不犯人工, 박은의 시가 천성적인 재질로 매우 높고 인위적인 가공을 범하지 않았으니, 如憑虛..
68. 강혼과 김류 姜木溪渾「臨風樓」詩一聯: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金北渚瑬「客中」詩: ‘遙山帶雨池蛙亂, 高柳含風海燕斜.’ 北渚詩, 蓋源於木溪, 而豪縱終讓一頭. 해석 姜木溪渾「臨風樓」詩一聯: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목계(木溪) 강혼(姜渾)의 「임풍루(臨風樓)」라는 시의 한 연은 다음과 같다. 紫燕交飛風拂柳 붉은 제비가 함께 날고 바람에 버들 날리고 靑蛙亂叫雨昏山 청개구리 와글대고 비에 산은 어둑해 金北渚瑬「客中」詩: ‘遙山帶雨池蛙亂, 高柳含風海燕斜.’ 북저(北渚) 김류(金瑬)의 「객중(客中)」의 한 연은 다음과 같다. 遙山帶雨池蛙亂 먼 산은 빗기운을 띠어 연못의 개구리는 울어댔고 高柳含風海燕斜 높은 버들개지는 바람을 품어 바다의 제비가 비꼈죠. 北渚詩, 蓋源於木溪, 而豪縱終讓一頭..
67. 정광필의 시 文翼公鄭相國, 余外六代祖也. 平生所著, 散逸無遺, 謫金海詩一首外, 世莫得見, 故余摭拾以記之. 其「歸田」詩曰: ‘金章已謝路漫漫, 垂白歸來舊業殘. 沿澗石田纔數畝, 打頭茅屋只三間. 一村黎老皆新面, 兩岸靑山是故顔. 隣隣不知蒙譴重, 猶將濁酒慰玆還.’ 「冬夜」詩曰: ‘收拾柴薪用力窮, 烟消榾柮火通紅. 昏鴉棲定風初下, 旅雁聲高夜正中. 北闕夢回天穆穆, 東山跡滯雨濛濛. 一生狂走叨名位, 竟與邯鄲呂枕同.’ 屬意高古, 辭興婉愜, 每詠其詩, 想見其德. 해석 文翼公鄭相國, 余外六代祖也. 문익공(文翼公) 정광필(鄭光弼)은 우리 외가의 육대조이다. 平生所著, 散逸無遺, 謫金海詩一首外, 世莫得見, 故余摭拾以記之. 평생에 지은 것들은 흩어져 남질 않았고 김해(金海)에 유배 갔을 때【『송계만록』에는 「김해에 귀양가 배소..
66. 정희량의 시 鄭虛庵希良, 燕山朝逃禍爲緇, 浮遊山水間, 老不知所終. 嘗到一寺, 題詩壁間曰: ‘朝天學士五更寒, 鐵馬將軍夜出關. 山寺日高僧未起, 世間名利不如閒.’ 居僧傳之, 識者知基爲其虛庵作也. 以余觀之, 不但人高, 詩亦高矣. 해석 鄭虛庵希良, 燕山朝逃禍爲緇, 浮遊山水間, 老不知所終.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은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스님이 되어 산수 사이에 마구 다니며 늙어 죽은 까닭을 알진 못한다. 嘗到一寺, 題詩壁間曰: ‘朝天學士五更寒, 鐵馬將軍夜出關. 山寺日高僧未起, 世間名利不如閒.’ 일찍이 한 사찰에 가서 벽 사이에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朝天學士五更寒 사신 가는 학사는 오경에 추워하고 鐵馬將軍夜出關 철마 탄 장군은 밤에 관문 나서네. 山寺日高僧未起 산사엔 해가 높이 떠도 스님은 일어..
홍유손의 한시가 최치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유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소화시평』 권상65번에 나온 홍유손의 「제강석(題江石)」은 어렵지 않았던 시다. 그리고 최치원의 작품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그대로 드니, 더더욱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3~4구에 이르면 완벽하게 최치원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판박이다. 분명히 홍유손은 이 시를 지으며 최치원의 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을 것이고, 그만큼 최치원의 풍도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화를 읽으면서 작자의 평..
65. 무아지경에 들었지만 시비의 소리가 들린다? 洪篠叢裕孫「題江石」詩曰: ‘濯足淸江臥白沙, 心神岑寂入無何. 天敎風浪長喧耳, 不聞人間萬事多.’ 此詩蓋出於崔孤雲‘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而語意雖佳, 終有不及. 해석 洪篠叢裕孫「題江石」詩曰: ‘濯足淸江臥白沙, 心神岑寂入無何. 天敎風浪長喧耳, 不聞人間萬事多.’ 조총 홍유손은 「강 바위에 쓰다[題江石]」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此詩蓋出於崔孤雲‘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이 시는 대개 최치원의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
64. 장난기 가득한 시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奇服齋詩曰: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世難同.” 又曰: “紅紅白白紅非白, 色色空空色豈空.” 豈兩公喜用此等句語, 頗近戱劇. 李白雲「閒居」詩曰: “莫問纍纍兼若若, 不曾是是况非非.” 始知此老始刱此體. 해석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김동봉이 시를 썼으니 다음과 같다.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걸 옳다고 하고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 이것은 옳은 게 아니고 非非是是是非非 그른 걸 그르다 하고 옳은 걸 옳다고 하는 것, 이것이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이네.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또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同異異同同異異 같은 것이 다르고 다른 것이 같으니, ..
도를 깨달은 사람이 쓴 시엔 깊은 뜻이 담긴다 김시습하면 우리에겐 『금오신화』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특이한 그의 이력으로 또 한 번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신동(神童)이라는 내용의 삼각산 이야기와 함께 홍만종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실었고, 위에 언급한 이수광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잘 실어놨다. 그만큼 김시습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에게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얘기였고 그만큼 많이 알려진 얘기였다는 것이리라. 終日芒鞋信脚行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 가는 대로 다녀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이 건너 다하면 다시 한 산 푸르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이란 상상조차 없으니, 어찌 형체의 부림을 당하랴. 道本無名豈假成 도란 본디 무명이니 어찌 빌려서 이루겠는가?(도를 얻은 척 할 수 없다) 宿露未晞山鳥語 묵은 이슬..
63. 도를 깨친 김시습의 이야기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後佯狂爲髡, 居山中,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止遣興而已, 未嘗留意推敲. 然所造超越, 有非凡人所可及. 其「無題」詩: ‘終日芒鞋信脚行, 一山行盡一山靑. 心非有想奚形役, 道本無名豈假成. 宿露未晞山鳥語, 春風不盡野花明. 短笻歸去千峯靜, 翠壁亂烟生晩晴.’ 非悟道者, 寧有此語. 해석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동봉 김시습은 5살 때 기동(奇童)으로 이름이 났고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세종【영묘(英廟): 세종의 능호인 ‘영릉(英陵)’에서 따온 이름】이 불러 「삼각산」시로 시험하여, 크게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後佯狂爲髡, 居山中, 훗날 거짓 미친 척하여 터벅머리(스님)가 되어 산속에서 살며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시를 짓기..
과거 사람들의 평가도 눈여겨 볼 떄 한시는 훨씬 재밌다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나머지 두 시도 전문(全文)으로 공개했고 그것으로 공부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프린터를 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그래서 다음부턴 전문을 함께 보고 싶을 땐 내가 프린터를 해서 나눠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다 함께 보면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홍만종이 인용해둔 구절을 중심으로 살짝 봤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이 신흠이 『청창연담』에 나오는 내용을 프린터해서 주셔서 함께 볼 수 있었고 내용이 꽤 흥미진진했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에 버벅였고, 때론 보는 순간 이게 무슨 글자지 하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
김종직과 두보의 그림 같은 시 籬外紅桃竹數科 울타리 밖 붉은 복숭아꽃과 대나무 몇 그루 𩁺𩁺雨脚閒飛花 부슬부슬 빗발에 이따금 꽃이 날리네. 老翁荷耒兒騎犢 노인은 보습을 메고, 아이는 송아지 타니, 子美詩中西崦家 두자미의 시 중에 「적곡 서쪽 산의 인가[赤谷西崦人家]」라는 시에서 얘기한 풍경이로다.『東文選』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장현촌가(長峴村家)」라는 시는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평한 정도전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느낌이 「도중(途中)」의 시와 매우 흡사하다. 마치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4구에선 아예 두보..
한유와는 달리 고향 선산으로 의기양양하게 태수로 가는 김종직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나루의 아전은 농리는 아니고 관인인 나는 곧 이 고을 사람이네.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세 차례 상소문은 성주께 사직했지만 태수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네.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흰 새는 마치 노를 맞이하는 듯하고 푸른 산은 익숙히 손님을 보내는 듯.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티 하나 없이 맑은 강을 지님으로 이 몸을 규율(단속) 하리라. 『소화시평』 권상62번엔 김종직의 시가 나열되어 있다. 「관수루제영시(觀水樓 題詠詩)」라는 시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긴 나름의 스토리가 달려 있고 한유가 농리(瀧吏)와 나눴던 얘기라는 고사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김종직이 왜 중앙관직을 마다하고 선산으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뒷받..
소화시평 스터디가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주다 이 스터디는 4월 중순에 들어와 지금까지 6번의 스터디와 한 번의 맥주파티, 그리고 한 번의 교수님과의 내소사 탐방이 있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3개월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소화시평을 공부한 시간보다 안 한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기간 이상으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스터디에 갈 때만 해도 머리는 완전히 백지상태였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도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그새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정리하는 기쁨도 알게 됐으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어가는 행복도 알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소화시평을 준비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예전엔 그냥 가서 따라가기에 바쁘기만 했다면 이젠 어느 ..
62. 김종직의 파란만장을 담은 시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詞極典雅. 「長峴村家」詩曰: ‘籬外紅桃竹數科, 零零雨脚閒飛花. 老翁荷耒兒騎犢, 子美詩中西崦家.’ 可謂詩中有畵. 且如 ‘霜後梧桐猶窣窣, 月明鳷鵲自飜飜.’ 其寒淡如此, ‘鳩鳴穀穀棣棠葉, 蝶飛款款蕪菁花.’ 則雅麗如此, 所謂冠冕國朝者, 豈虛言哉! 해석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점필재 김종직은 선산 사람이다.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일찍이 선산에 수령이 되어 가다가 「관수루에 제목을 붙여 지은 시[觀水樓 題詠詩] / 낙동역에서[洛..
61. 서거정의 표절 徐四佳久典文衡, 聲名最盛, 而不爲評家所重, 蓋以才止於華瞻而已. 其對皇華天使祁順也, 先唱‘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而卒困於‘五臺泉脈自天來’之句. 先輩只以先交脚後仆地爲譏, 而殊不覺剽窃古人全句也. 余見『東文選』, 前朝蔡中庵洪哲「月影臺」詩一聯, 與徐作無異同, 而只改相逐二字. 『東文選』卽四佳受命所撰者也, 其眼目宜慣, 豈欲竪天使降幡, 故用此句耶! 해석 徐四佳久典文衡, 聲名最盛, 而不爲評家所重, 蓋以才止於華瞻而已. 사가정 서거정은 오래도록 문형 담당하여 성명이 최고로 성대했지만 시평 하는 이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니 대체로 재주가 화려하고 넉넉한 데에 그쳤을 따름이다. 其對皇華天使祁順也, 先唱‘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중국 사신인 기순(祁..
60. 서거정의 동몽시 徐居正號四佳亭, 權陽村外孫也. 六歲屬句, 人稱神童. 八歲時陪陽村坐, 四佳曰: “古人七步成詩, 尙似遲也, 請五步成詩.” 陽村大奇, 遂指天爲題, 因呼名行傾三字. 四佳應聲曰: ‘形圓至大蕩難名, 包地回旋自健行. 覆燾中間容萬物, 如何杞國恐頹傾.’ 陽村歎賞不已. 해석 徐居正號四佳亭, 權陽村外孫也. 서거정의 호는 사가정(四佳亭)으로 권양촌의 외손이다. 六歲屬句, 人稱神童, 6살에 시구를 이으니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찬했고 八歲時陪陽村坐, 四佳曰: “古人七步成詩, 尙似遲也, 請五步成詩.” 8살에 양촌을 모시고 앉아선 서거정이 “옛 사람은 일곱 걸음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딘 듯하니, 다섯 걸음에 시를 지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陽村大奇, 遂指天爲題, 因呼名行傾三字. 양촌이 크게 기이하..
신종호의 시와 김영랑의 시에 담긴 상춘(傷春) 茶甌飮罷睡初驚 차 마시길 다하고 깜빡 졸다가 막 깨니, 隔屋聞吹紫玉笙 집 너머에서 자주빛 옥피리소리 들려. 燕子不來鶯又去 제비 오지 않고 꾀꼬리 가버린 채, 滿庭紅雨落無聲 뜰 가득 붉은 비가 뚝뚝 떨어지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네 번째 인용된 신종호의 「상춘(傷春)」이라는 시도 재밌는 시였다. 우선 1구부터 문제가 됐다, 잠이 깼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차 마시니, 잠이 깼다는 내용이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달리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사람이 잠을 깨게 된 이유는 차와는 상관없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즉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생황소리에 잠이 깬 거라는 거다. 그렇다..
시의 제목을 통해 시를 봐야 한다 江湖當日亦憂君 강호에서 있던 당시에 임금이 근심스럽고 白首無眠夜向分 하얀 머리인데도 잠 못 이루고 자정을 넘겼는데, 華省寂寥疎雨過 궁궐은 적막한데 가랑비 지나가자, 隔窓梧葉最先聞 창 너머 오동잎이 가장 먼저 빗소리를 들려주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세 번째 인용된 「독직내조문야우(獨直內曺聞夜雨)」라는 시를 볼 땐 제목과 1구에 나오는 ‘강호(江湖)’에 집중하며 봐야 한다. 지금껏 시를 볼 땐 제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우연히 읊다[偶吟]’이나 ‘그 자리의 일을 읊다[卽事]’와 같은 전혀 시의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아예 시 제목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최근에 다시 공부하면서는 시 제목을 해석하긴 하지만, 여전..
지나가는 가을의 강과 산을 싣고 돌아오는 경지 水國秋高木葉飛 물나라 가을 깊어 나뭇잎 흩날리고, 沙寒鷗鷺淨毛衣 모래 추워 기러기와 해오라기는 깃털을 고르는데, 西風日落吹遊艇 해가 지니 가을바람이 놀잇배를 불어줘서 醉後江山滿載歸 취한 뒤라 강산을 한 가득 싣고 돌아오는구나.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두 번째 인용된 이요정의 시는 너무도 익숙히 알고 있는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 당시의 양화나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한강의 직선화 공사 이전엔 자연하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잠실 같은 곳은 섬까지 있을 정도로 비좁은데 반해 양화나루쯤엔 하구로 좀 더 거대한 물줄기가 흘렀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직선화 공사 이전의 한강엔 모래톱도 자연스럽게 있고 해수욕장도 있어 사람들이 더욱 친근..
태평의 기상을 노래한 신숙주의 시 6월 27일에 마지막 소화시평 스터디를 했으니, 근 한 달 만에 다시 스터디를 하는 셈이다. 소화시평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다가 막상 한다니까 부담이 되긴 한다. 특히 이번엔 한 달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터라 미리 내가 할 분량을 올려놓긴 했는데, 다른 것들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서당에 들어간 아이도 있고 각자 방학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요일엔 갑자기 교수님에게 전화가 오기에 이르렀다. “잘 지내죠?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라고 시작한 통화는, 하나 더 준비해달라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루 전날에 온 전화이기에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마인드는 ‘내가 해갈 수 있는 만큼만 해가고, 나머지..
59. 신숙주와 손자 3인의 서정적인 시 保閒齋申叔舟·二樂堂用漑·企齋光漢祖孫三人, 皆以文章典文衡, 偉哉! 保閒嘗北遊, 「寄中書諸君」詩曰: ‘豆滿春江繞塞山, 客來歸夢五雲間. 中書醉後應無事, 明月梨花不怕寒.’ 二樂堂「楊花渡」詩曰: ‘水國秋高木葉飛, 沙寒鷗鷺淨毛衣. 西風日落吹遊艇, 醉後江山滿載歸.’ 企齋「獨直內曺聞夜雨」詩: ‘江湖當日亦憂君, 白首無眠夜向分. 華省寂寥疎雨過, 隔窓梧葉最先聞.’ 三魁堂從護, 亦保閒之孫, 能文章. 其「傷春」詩: ‘茶甌飮罷睡初驚, 隔屋聞吹紫玉笙. 燕子不來鶯又去, 滿庭紅雨落無聲.’ 諸詩何讓唐人. 해석 保閒齋申叔舟·二樂亭用漑·企齋光漢祖孫三人, 보한재 신숙주(1417)【보한재와 같은 경우는 말도 잘했고 행동도 잘했다고 할 만하다. 널리 섭렵한 재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문장을..
58. 사육신의 충절 朴彭年ㆍ成三問ㆍ李塏ㆍ河緯之ㆍ柳誠源, 世宗朝皆選入集賢殿, 最承恩遇. 乙亥光廟受禪, 魯山爲上王, 彭年等與武人兪應孚密謀欲復上王, 事發皆死. 其詩若文, 不能刊行於世, 今取傳誦者各一首, 錄之. 噫! 六先生精忠義烈, 炳炳烺烺, 片言隻字, 猶可與日月爭曜, 固不必多也. 蓋觀者卽此而求之, 亦足以得其人之大略矣. 朴彭年詩曰: ‘十年身在禁中天, 只有丹心魏闕懸. 西望白雲生眼底, 不堪歸興繞林泉.’ 時公雙親在全義故云. 成三問「夷齊廟」詩: ‘當年叩馬敢言非, 大義堂堂白日輝. 草木亦沾周雨露, 愧君猶食首陽薇.’ 李塏「善竹橋」詩: ‘繁華往事已成空, 舞館歌臺野草中. 惟有斷橋名善竹, 半千王業一文忠.’ 河緯之「答朴彭年借簑衣」詩: ‘男兒得失古猶今, 頭上分明白日臨. 持贈蓑衣應有意, 五湖烟雨好相尋.’ 柳誠源「送別」詩: ‘白山拱海..
악부시의 묘미와 시경 해석의 문제점 『소화시평』 권상57번엔 악부시에 대한 소개까지 하고 있다. 소개된 악부시는 민간에서 떠돌던 노래들을 한시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행가, 특히나 소속사에서 만든 노래보다 인디밴드의 노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노래들이 꼭 그런 꼴이다. 그래서 ‘관풍찰속(觀風察俗)’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마인드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에선 왜 이런 노래들을 담으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좋은..
신비로운 시를 쓴 성간 籬落依依半掩扃 마을 뵐 듯 말 듯 사립문을 닫혔는데 夕陽立馬問前程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 물어야 해. 翛然細雨蒼烟外 갑자기 가랑비 내리고 푸른 안개 피어오르는 저 편에 時有田翁叱犢行 때마침 늙은이 ‘이랴!’ 소를 끌고 가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도중(途中)」라는 시는 머리로 상상하며 시를 그려야 한다. 말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선비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날씨가 약간 흐린지 멀리 있을 땐 마을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기만 하다. 말이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드디어 사립문이 보였지만 반쯤 닫혀 있다. 저물기 전에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길을 묻고 싶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그치니..
호쾌한 시를 쓴 성간 鉛槧年來病不堪 글 짓느라 근래에 병을 견디지 못했는데 春風引興到城南 봄바람이 흥 이끌어 성남에 도착했네. 陽坡草軟細如織 볕든 언덕의 풀은 연하고 가늘기가 실을 짠 듯 正是靑春三月三 바로 이때가 푸른 봄 3월 3일이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여옥당학사 유성남(與玉堂學士, 遊城南)」는 매끄럽게 해석되진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문제없이 전해진다. 공무에 시달리다 봄바람 따라 친구들이 이끌어서 야외에 나왔더니, 언덕 위에 연하고 가는 풀들이 보여 그제야 ‘아 맞다! 오늘이 3월 삼짇날이지’라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이런 시들에서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류의 시를 통해 뭘 말하려 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를 지었..
57. 호방한 시와 청우(靑牛), 민가의 생기발랄한 악부시 眞逸齋成侃, 嘗在集賢殿, 與同僚遊城南, 分韻賦詩. 侃詩先成, 詩曰: ‘鉛槧年來病不堪, 春風引興到城南. 陽坡草軟細如織, 正是靑春三月三.’ 諸公皆閣筆. 且如「途中」詩: ‘籬落依依半掩扃, 夕陽立馬問前程. 翛然細雨蒼烟外, 時有田翁叱犢行.’ 說景如畵. 許筠云: “東詩無效古者. 獨成和中侃擬顔陶鮑三詩, 深得其法, 諸小絶句得唐樂府體, 賴得此君, 殊免寥寂云. 「囉嗊」詩曰: ‘爲報郞君道, 今年歸不歸. 江頭春草綠, 是妾斷腸時.’ ‘郞如車下轂, 妾似路中塵. 相近仍相遠, 看看不得親.’ ‘綠竹條條勁, 浮萍箇箇輕. 願郞如綠竹, 不願似浮萍.’ 其此詩之謂乎! 해석 眞逸齋成侃, 嘗在集賢殿, 진일재 성간이 일찍이 집현전에 있을 적에 與同僚遊城南, 分韻賦詩. 동료와 함께 성남에 놀..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소화시평』 권상56번의 주제인 나태함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이와 관련된 시 두 번도 함께 소개해줬다. 김형술 교수님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3만 수의 시를 썼으며 이덕무가 영조 때의 제일 시는 사천을 꼽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 『직중기하동(直中寄巷東)』을 보면 다음과 같다. 官寺淸閒聽禁鍾 관청이 맑고 한가로워 통행금지 종소리 들으니, 此中那得一從容 이 가운데 한결같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친구 불러 시를 짓겠네라는 뜻) 故人不起知非病 고인이 일어나질 않으니 병 때문이 아님을 아니, 兒女傍邊好得慵 지금 처자식 옆에서 실컷 늘어졌겠지. 이 시를 잘못 읽으면 불러도 오지 않고, 그저 아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
나태함을 칭송하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리어 작년의 게으름보다 더하여 身世全敎付黑甛 몸 신세 온통 꿀잠에 부치네. 『소화시평』 권상56번에 소개된 「즉사(卽事)」를 읽으면서 지금과 확실히 다른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빨리 빨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와 같은 완벽한 경쟁주의 사회 속에 치열한 삶의 방식이 좋은 것처럼 회자되고, 티비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림의 미학』,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
56. 게으름, 낮잠에 대한 칭송 柳泰齋方善, 嘗被謫, 後廢科隱居. 有詩曰: ‘晝靜溪風自捲簾, 吟餘傍架檢書籤. 今年却勝前年懶, 身世全敎付黑甛.’ 懶睡比撿書更閑, 語自好. 해석 柳泰齋方善, 嘗被謫, 태재 유방선(柳方善)은 일찍이 귀양을 가게 되었고【1409년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관련됨으로 연좌되어 유배됨. 1415년에 해배되었으나 모함에 걸려들어 19년 동안 귀양살이함】 後廢科隱居, 후에 과거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은둔하여 살았다. 有詩曰: ‘晝靜溪風自捲簾, 吟餘傍架檢書籤. 今年却勝前年懶, 身世全敎付黑甛.’ 「보이는 대로 읊다[卽事]」 시는 다음과 같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
자연이 약동하는 걸 시로 표현하다 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집 뒤 뽕나무 가지 새싹 뾱 돋고, 서쪽 밭의 부추잎이 쑥 자라네.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언덕엔 봄물 가득하여 어린 자식 메어놓은 배를 저을 줄 아네. 『소화시평』 권상55번에 두 번째로 인용된 「자적(自適)」이란 시는 봄의 정경을 읊고 있는 평범한 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눈(嫩)→추(抽)→만(滿)’으로 행위 자체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嫩)은 여린 새싹 뾱 돋아나는 모습이라면, 추(抽)는 쏙 하고 약간 더 큰 모양새로 돋아나는 모습이고, 만(滿)은 이미 단어만으로도 가득 차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점층법(漸層法)이라 할 수 있고, 해석을 할 때에도 그걸 반영하여 점차 거대해지는 모습으로 알맞게 해석하면..
이첨, 급암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쉽게 총애를 얻는다는 것을 君看大將與平津 그대는 대장인 위청과 평진후인 공손후에게서 볼 수 있네. 高才久屈淮陽郡 높은 재주임에도 회양군에서 오래도록 구부렸으니, 孰謂當時社稷臣 누가 당시 사직의 신하라 하였던가? 『소화시평』 권상55번에 첫 번째로 인용된 「영급암(詠汲黯)」이라는 시는 명재상인 급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회풍자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재밌는 점은 아양을 떠는 신하들만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신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임금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구를 통해 임금에 대한 비판이 가열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면, 급암을 ‘사직의 신하[社稷臣]’라 띄워준 게 바로..
55. 임금까지 비판한 시와 생명력 가득한 시 李雙梅詹「詠汲黯」詩曰: ‘諂諛從來易得親, 君看大將與平津. 高才久屈淮陽郡, 孰謂當時社稷臣.’ 痛惜之意, 令人悲慨. 且如‘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自適」’ 何減唐人? 해석 李雙梅詹「詠汲黯」詩曰: ‘諂諛從來易得親, 君看大將與平津. 高才久屈淮陽郡, 孰謂當時社稷臣.’ 쌍매 이첨은 「급암【급암(汲黯): 진(漢) 나라 태수. 무제 때 동해군 태수로서 큰 치적을 쌓아 무제의 부름을 받았다. 무제의 면전에서 거리낌 없이 간언하는 그를 무제가 겉으로는 존경하였으나 속으로는 싫어하였다. 회양태수를 했기에, 급회양(汲淮陽)으로 불리며, ‘정치 잘하는 사또’의 대명사임.】을 읊다[詠汲黯]」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
54. 강회백 삼대 姜通亭淮伯, 玩易齋碩德, 仁齋希顏, 祖子孫三人, 皆以文章大鳴. 噫! 歷觀往古, 讀書能文章者爲難, 雖能文章而成一家傳後世爲難, 雖傳後世, 能奕世趾美, 不堕其業爲尤難. 求之於古, 僅得蘇ㆍ杜二家, 而我東方獨有通亭一家, 繼世箕裘, 豈不偉哉! 通亭「寄燈明師」詩: ‘人情蟬翼隨時變, 世事牛毛逐日新. 想得吾師禪榻上, 坐看東海碧粼粼.’ 玩易齋「題秀庵上人軸」詩曰: ‘占斷烟霞心自閒, 茅茨高架碧孱顔. 飢飱倦睡無餘事, 春鳥一聲花滿山.’ 仁齋「詠松」詩曰: ‘階前偃盖一孤松, 枝幹多年老作龍. 歲暮風高揩病目, 擬看千丈上靑空.’ 格調最高. 해석 姜通亭淮伯, 玩易齋碩德, 仁齋希顏, 祖子孫三人, 皆以文章大鳴.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과 완역재(玩易齋) 강석덕(姜碩德)과 인재(仁齋) 강희안(姜)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
53. 권우의 가을날 權遇, 號梅軒, 陽村之弟也. 少遊圃隱門, 精於性理之學, 陽村每曰: “吾不如弟.” 其「秋日」詩曰: ‘竹分翠影侵書榻, 菊送淸香滿客矣. 落葉亦能生氣勢, 一庭風雨自飛飛.’ 末句極有音韻. 해석 權遇, 號梅軒, 陽村之弟也. 권우(權遇)의 호(號)는 매헌(梅軒)으로 양촌의 아우이다. 少遊圃隱門, 精於性理之學, 陽村每曰: “吾不如弟.” 젊었을 적에 포은의 문하에서 유학할 때 성리학에 정밀했지만 양촌은 매번 “내 아우만 못해.”라고 말하곤 했다. 其「秋日」詩曰: ‘竹分翠影侵書榻, 菊送淸香滿客矣. 落葉亦能生氣勢, 一庭風雨自飛飛.’ 「가을날」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竹分翠影侵書榻 대나무가 비취빛 그림자를 나누어 책상에 파고들고 菊送淸香滿客衣 국화가 맑은 향기 보내 나그네 옷에 가득해. 落葉亦能生氣勢 ..
52. 권근의 금강산 시 權陽村近, 嘗奉使朝天, 太祖問朝鮮形勝, 仍命賦詩. 陽村卽應製, 太祖稱以老實秀才. 其「詠金剛山」詩曰: ‘雪立亭亭千萬峰, 海雲開出玉芙蓉. 神光蕩漾滄溟近, 淑氣蜿蜒造化鍾. 突兀岡巒臨鳥道, 淸幽洞壑秘仙蹤. 東遊便欲凌高頂, 俯視鴻蒙一盪胸.’ 鄭之升謂此詩起頭, 寫出金剛眞面目. 해석 權陽村近, 嘗奉使朝天, 太祖問朝鮮形勝, 仍命賦詩. 양촌 권근이 일찍이 사신의 명을 받아 천자를 뵐 적에 명 태조는 조선의 명승지를 물었고 따라서 시를 지으라 명했다. 陽村卽應製, 太祖稱以老實秀才. 양촌이 곧바로 지으니 명 태조는 노련하고 성실한 수재라 칭찬했다. 其「詠金剛山」詩曰: ‘雪立亭亭千萬峰, 海雲開出玉芙蓉. 神光蕩漾滄溟近, 淑氣蜿蜒造化鍾. 突兀岡巒臨鳥道, 淸幽洞壑秘仙蹤. 東遊便欲凌高頂, 俯視鴻蒙一盪胸.’ ..
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立馬橋頭問歸路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소화시평』 권상51번의 두 번째로 나온 「방김거사(訪金居士)」는 너무도 익숙히 읽어왔던 시다. 더욱이 마지막 구에 ‘그림 속에 있었다’라는 구절 때문에 나 자신이 외물과 융합된 경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과 하나로 섞였다는 표현을 하려 할 때 편안히 쓰게 된다. 여기선 ‘공(空)’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어둠이 깔렸기에 인적이 드물다라는 표현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져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만..
태평의 기상을 한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51번에서도 그렇듯이 시를 보고 나선 ‘작자는 이런 시를 왜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 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 金吾不問醉歸人 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봉천문(奉天門)」에서라는 시는 얼핏 보면 그저 궁궐의 풍경을 읊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리들과 임금에 대한 이야기인 것만 같다. 더욱이 4구에 이르고 보면 자기 업무도 소홀히 하는 게 느껴지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를 노출시키고 게으르며, 때론 자기의 일도 제..
51. 태평성대와 그림이 있는 시 三峯「奉天門」詩云: ‘春隨細雨渡天津, 太液池邊柳色新. 滿帽宮花霑錫宴, 金吾不問醉歸人.’ 豪逸不羈. 「訪金居士」詩曰: ‘秋陰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橋頭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 詩中有畵. 해석 三峯「奉天門」詩云: ‘春隨細雨渡天津, 太液池邊柳色新. 滿帽宮花霑錫宴, 金吾不問醉歸人.’ 삼봉의 「계유년 정조에 봉천전에서 읊조리며[癸酉正朝奉天殿口號] / 봉천문에서[奉天門【봉천문(奉天門): 『삼봉집(三峰集)』에는 「계유정조 봉천전구호(癸酉正朝, 奉天殿口號)」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해(1393. 태조 2년)에 삼봉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郎贊成事)의 직함을 가지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삼봉집(三峰集)』에는 결구(結句)에 대하여 “이 사행에는 황제가 특례로 대우하고 ..
50. 정도전의 오호도시 三峯鄭道傳「鳴呼島」詩曰: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手髮竪如竹, 凜凜吹英風.’ 蓋欲壓倒陶隱, 而憤其不逮, 卒以此害之. 此與‘汝復作空梁落燕泥?’何異? 吁亦險矣! 해석 三峯鄭道傳「鳴呼島」詩曰: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手髮竪如竹, 凜凜吹英風.’ 삼봉 정도전의 「오호도」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曉日出海赤 直照孤島中 새벽 해 바다에서 나와 붉어졌고, 곧바로 외로운 섬을 비춘다. 夫子一片心 正如此日同 부자의 일편단심은 바로 이 해와 같구나. 相去曠千載 嗚呼感余衷 서로의 거리가 천 년이지만 아! 나의 마음을 느껍게 하네. 毛髮竪如竹 凛凛吹英風 머리가 대처럼 쭈뼛 서고 서늘하게 영풍이 휙 ..
홍만종, 고려시보다 조선시를 높게 평가하다 幽居野興老彌淸 숨어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恰得新詩眼底生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風定餘花猶自落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雲移小雨未全晴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墻頭粉蝶別枝去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屋角錦鳩深樹鳴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齊物逍遙非我事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鏡中形色甚分明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소화시평』 권상49번의 이색의 시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엔 『장자』의 편명인 「제물」과 「소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은 ‘절대 평등’이라 풀어냈고, 소유는 ‘초월의..
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49. 고려와 조선 시 중 어느 게 좋나요? 金頤叟嘗語徐四佳曰: “高麗諸子詞麗氣富, 而體格生疎; 我朝著述辭纖氣弱, 而義理精到, 孰優?” 四佳曰: “豪將悍卒, 抽戈擁盾, 談說仁義, 腐儒俗士, 冠冕章甫, 從容禮法, 君將何取?” 申玄翁云: “我朝文章非不蔚然輩出, 而比之麗朝, 則小遜, 李文順之宏肆, 李文靖之浩汗, 我朝未見.” 以四佳之論見之, 我朝似優, 而玄翁之言論之, 麗朝似優. 文順卽李白雲奎報, 文靖卽李牧隱穡, 今錄其七言近體各一首. 李文順「扶寧浦口」詩曰: ‘流水聲中暮復朝, 海村籬落苦蕭條. 湖淸巧印當心月, 浦闊貪呑入口潮. 古石浪舂平作礪, 壞船苔沒臥成橋. 江山萬景吟難狀, 須倩丹靑畵筆模.’ 李文靖「卽事」詩曰: ‘幽居野興老彌淸, 恰得新詩眼底生. 風定餘花猶自落, 雲移小雨未全晴. 墻頭粉蝶別枝去, 屋角錦鳩深樹鳴. 齊物逍遙非..
48. 고려의 뛰어난 연구 시들 麗朝之詩, 五字聯佳者, 如‘鶴添新歲子, 松老去年枝.’ 吳學麟「興福寺」詩也, ‘喚雨鳩飛屋, 啣泥燕入樑.’ 金克己「田家」詩也, ‘點雲欺落日, 狠石捍狂瀾.’ 李奎報「狗灘」詩也, ‘海空三萬里, 山屹二千峯.’ 陳澕「杆城途中」詩也, ‘蜃氣窓間日, 鷗聲砌下潮.’ 李齊賢「記行」詩也, ‘魚擲時驚夢, 鷗來或上欄.’ 韓宗愈「猪子島」詩也, ‘行雲猶雨意, 臥樹亦花心.’ 李牆「卽事」詩也, ‘草連千里綠, 月共兩鄕明.’ 鄭夢周「奉使日本」詩也. 七字聯佳者, 如‘門前客掉滄波急, 竹下僧棋白日閒.’ 朴寅亮「龜山寺」詩也, ‘少而寡合多疎放, 老不求名可退藏.’ 任奎「歸庄」詩, ‘西子眉嚬如有恨, 小蠻腰細不勝嬌.’ 崔均「詠柳」詩也, ‘花接蜂鬚紅半吐, 柳藏鸚翼綠初深.’ 鄭知常「分行驛」詩也, ‘魚跳落照銀猶閃, 鴉點平林墨..
삼봉도 전횡을 노래했지만 스승에게 비판을 듣다 嗚呼島在東溟中 오호도는 동쪽의 바다 한 가운데 있어 滄波渺然一點碧 푸른 물결에 아득히 하나의 점으로 푸르다. 夫何使我雙涕零 그런데 어찌 나의 두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나? 祇爲哀此田橫客 다만 전횡의 식객들이 애처롭게 하는구나. 田橫氣槩橫素秋 전횡의 씩씩한 기상과 절개가 가을을 가로질렀으니 壯士歸心實五百 씩씩한 선비로 죽으리라 마음을 먹은 이가 실로 500명이나 되었다. 咸陽隆準眞天人 함양에서 콧날이 우뚝한 유방은 참으로 천상의 사람으로, 手注天潢洗秦虐 손으로 은하수를 부어 진나라의 학정을 씻어냈었는데 橫何爲哉不歸來 전횡은 어찌하여 귀의하려 하지 않고 寃血自汚蓮花鍔 원망의 피가 스스로 연꽃이 새겨진 칼날을 더럽혔던가? 客雖聞之爭柰何 식객이 비록 그 사실을 들은..
한문공부의 방향잡기 『소화시평』 권상39번엔 한신이 빨래터 아낙에게 밥을 빌어먹은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권상47번에선 우연하게 유방과 전횡에 대한 이야기를 맡게 됐다. 초한쟁패 시기의 이야기로 우연하게 두 번이나 맡게 된 셈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겐 축복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내 공부 패턴은 무언가를 진득하게 잡고 가는 방법이기보다 이것 하다가 저게 보고 싶으면, 저걸 보고, 그러다 또 다른 게 보고 싶으면 그것으로 건너 뛰어가는 이름하야 ‘메뚜기식 공부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 공부법은 4월 11일에 첫 스터디를 했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면서 고민 끝에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4월 11일만 해도 머릿속은 새하얀 상황이었고 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