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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석우로 昔于老 奈解尼師今之子(或云角于水老之子也) 助賁王二年七月 以伊湌爲大將軍 出討甘文國破之 以其地爲郡縣 四年七月 倭人來侵 于老逆戰於沙道 乘風縱火 焚賊戰艦 賊溺死且盡 十五年正月 進爲舒弗耶〔耶 當作邯〕 兼知兵馬事 十六年 高句麗侵北邊 出擊之不克 退保馬頭柵 至夜士卒寒苦 于老躬行勞問 手燒薪櫵暖熱之 羣心感喜如夾纊 沾解王在位 沙梁伐國舊屬我 忽背而歸百濟 于老將兵往討滅之 七年癸酉 倭國使臣葛那古在館 于老主之 與客戱言 早晩以汝王爲鹽奴 王妃爲爨婦 倭王聞之怒 遣將軍于道朱君討我 大王出居于柚村 于老曰 今玆之患 由吾言之不愼 我其當之 遂抵倭軍 謂曰 前日之言戱之耳 豈意興師至於此耶 倭人不答 執之積柴置其上 燒殺之乃去 于老子幼弱不能步 人抱以騎而歸 後爲訖解尼師今 味鄒王時 倭國大臣來聘 于老妻請於國王 私饗倭使臣 及其泥醉 使壯士曳下庭焚之 以報前怨 ..
밀우 密友ㆍ紐由者 並高句麗人也 東川王二十年 魏幽州刺史毋丘儉 將兵來侵 陷丸都城 王出奔 將軍王頎追之 王欲奔南沃沮 至于竹嶺 軍士奔散殆盡 唯東部密友獨在側 謂王曰 今追兵甚迫 勢不可脫 臣請決死而禦之 王可遁矣 遂募死士 與之赴敵力戰 王僅得脫而去 依山谷 聚散卒自衛 謂曰 若有能取密友者 厚賞之 下部劉屋句前對曰 臣試往焉 遂於戰地 見密友伏地 乃負而至 王枕之以股 久而乃蘇 王間行轉輾 至南沃沮 魏軍追不止 王計窮勢屈 不知所爲 東部人紐由進曰 勢甚危迫 不可徒死 臣有愚計 請以飮食往犒魏軍 因伺隙刺殺彼將 若臣計得成 則王可舊擊決勝 王曰諾 紐由入魏軍詐降 曰 寡君獲罪於大國 逃至海濱 措躬無地矣 將以請降於陳前 歸死司寇 先遣小臣 致不腆之物 爲從者羞 魏將聞之 將受其降 紐由隱刀食器 進前拔刀 刺魏將胸 與之俱死 魏軍遂亂 王分軍爲三道急擊之 魏軍擾亂不能陳 遂自樂浪..
녹진 祿眞 姓與字未詳 乂秀奉一吉湌 祿眞二十三歲始仕 屢經內外官 至憲德大王十年戊戌 爲執事侍郞 十四年 國王無嗣子 以母弟秀宗爲儲貳 入月池宮 時忠恭角干爲上大等 坐政事堂 注擬內外官 退公感疾 召國醫診脈 曰病在心臟 須服龍齒湯 遂告暇三七日 杜門不見賓客 於是祿眞造而請見 門者拒焉 祿眞曰 下官非不知相公移疾謝客 須獻一言於左右 以開鬱悒之慮 故此來耳 若不見則不敢退也 門者再三復之 於是引見 祿眞進曰 伏聞寶體不調 得非早朝晩罷ㆍ蒙犯風露ㆍ 以傷榮衛之和ㆍ失支體之安乎 曰未至是也 但昏昏嘿嘿 精神不快耳 祿眞曰 然則公之病 不須藥石 不須針砭 可以至言高論 一攻而破之也 公將聞之乎 曰吾子不我遐遺 惠然光臨 願聽玉音 洗我胸(이병도본에는 月이 밑에 있음)臆 祿眞曰 彼梓人之爲室也 材大者爲梁柱 小者爲椽榱 偃者ㆍ植者 各安所施 然後大厦成焉 古者賢宰相之爲政也 又何異焉 ..
김후직 金后稷 智證王之曾孫 事眞平大王爲伊湌 轉兵部令 大王頗好田獵 后稷諫曰 古之王者 必一日萬機 深思遠慮 在右正士 容受直諫 孶孶矻矻 不敢逸豫 然後德政醇美 國家可保 今殿下日與狂夫獵士 放鷹犬逐雉兎 奔馳山野 不能自止 老子曰 馳騁田獵 令人心狂 書曰 內作色荒 外作禽荒 有一于此 未或不亡 由是觀之 內則蕩心 外則亡國 不可不省也 殿下其念之 王不從 又切諫 不見聽 後后稷疾病將死 謂其三子曰 吾爲人臣 不能匡救君惡 恐大王遊娛不已 以至於亡敗 是吾所憂也 雖死 必思有以悟君 須瘱吾骨於大王遊畋之路側 子等皆從之 他日王出行 半路有遠聲 若日莫去 王顧問聲何從來 從者告云 彼后稷伊湌之墓也 遂陳后稷臨死之言 大王산然流涕曰 夫子忠諫 死而不忘 其愛我也深矣 若終不改 其何顔於幽明之間耶 遂終身不復獵
묵도(黙道)와 진언(眞言)과 진시(眞詩)제묵와시권후(題默窩詩卷後) 이천보(李天輔) 어딜 가든 시를 써재끼는데 웬 침묵?海平尹汝精, 病世之人, 以言而取敗, 自號默窩. 或者有問於余曰: “詩者, 性情之發而爲言者也. 汝精好爲詩, 殆將廢百事而爲之. 凡其飮食夢寐, 無往而非詩也, 無往而非詩者, 卽無往而非言也. 然則天下之多言者, 無過於汝精, 而今乃自托於默, 其孰信之?” 침묵 같은 말, 침묵 같은 시余曰: “子不聞深谷之有聲乎? 其聲也不自爲聲, 而必待乎物. 故曰: ‘聲之出於谷’ 非也; 曰: ‘聲之不出於谷’ 又非也, 惟其無意於聲, 而聲自聞也. 古之至人, 何嘗無言乎哉. 言而無意於言, 是以其言高如升天, 而人不敢疑其高; 深如入地, 而人不敢疑其深, 是皆默之道, 而汝精之所願學者也. 竊觀汝精之爲詩, 緣境而生情, 緣情而成言, 亦惟曰: ..
지금의 율시란 교언영색하는 시이기에 싫어할 뿐원시 하(原詩 下) 홍석주(洪奭周) 지금의 근체시만 법칙을 따른다는 생각을 버려余之惡律詩也, 非惡夫律也. 苟以其律則三百篇之有律也, 必有過於今之律詩者矣. 古之君子, 溫恭而易直, 肅敬而齊一, 言語有則, 動作有矩, 周旋有度, 進退有法, 是以其威可畏, 其儀可象, 而其民則而效之. 今夫作三百篇者固多, 向所謂溫恭而易直, 肅敬而齊一者也. 君子之於道, 不可以須臾離也, 是豈獨於詩而棄夫律也? 夫以今之律詩而謂之律也, 則其他詩, 皆無律者也. 是齷齪粉澤, 曲謹小廉, 恒愈於平易紆餘豁達奇偉之士, 而繁音促節, 反加於韶頀之上 周公ㆍ召公ㆍ尹吉甫ㆍ衛武公之賢, 皆不若沈約ㆍ徐陵之徒也. 卽古人無論已, 至如郭景純陶淵明輩, 亦豈弊弊焉終身於無律之詩而不悟者哉? 남을 즐겁게 할 시 말고, 천진함이 저절로 담긴..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목차 서론 1장 프롤로그 인연 철학을 전공하다 광덕사로 가는 길 최초의 해후: 『반야심경』 밑씻개 첫 만남의 충격적 인상: 이것은 반불교다! 별당 용맹정진 소쩍새 울음의 신비 새색시의 인가 엄마의 공안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진짜 중과 가짜 중 이순신 장군과 서산대사 임진왜란: 멸사봉공의 자비 영규대사: 최초의 육지에서의 승전 비겁한 유생들의 작태 선조와 서산대사의 인연 선조의 애ㆍ증 콤플렉스 적서지별이 망국지본이 되다 말 탄 서산을 끌어내리는 유생들 이순신을 도운 승군의 활약상, 유정의 위대한 마무리 유정의 눈부신 활약상도 제대로 기록 안 됨 서산과 해남 대둔사 임진왜란과 승과 서산의 입적시 거시기와 예수, 거시기와 철학 서산과 삼가귀감 경허 송동욱 독경하고 싶..
참고문헌 내 서재에 꽂혀있는 책에 한하여, 그리고 내가 이 책 쓰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책에 한하여 리스트를 작성하였다. 내가 이 책을 쓰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가는 미즈노 코오겐(水野弘元), 히라야마 아키라(平山彰), 카지야마 유우이찌(梶山雄一) 이 세 분이다. 그리고 텍스트에 관해서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선생의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에는 다 살아 계셨는데 나카무라 선생님 외로는 찾아뵙지 못했다. 그리고 훌륭한 사전을 만들어주신 운허 스님, 지관 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나온, 고익진 선생의 제자 남호섭군의 꼼꼼한 지적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여기에 실린 모든 분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스바하. 사전류 1. 耘虛龍夏 著. 『佛..
5장 에필로그 20대 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경전, 더불어 살아온 지 어언 반세기, 그 50년의 통찰을 꼭 글로 써서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그 통찰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겐 처참한 투혼의 발로였다. 나의 발언의 형식으로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국민 모두에게 방영된 내용을 가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가 날 고소했다는 것이다. 고소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웃어넘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같이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내 평생 사적이든 공적이든 일체 ‘장’ 자리에 앉은 적이 없다)는 그 번거로운 프로세스가 한없는 모멸감과 배신감, 그리고 울분의 심사를 끓게 만든다. 마음 편하게 해탈된 경지에서 써야만 할 글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
나에게 보내는 헌사 우선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라는 주문은 단지 음역일 뿐이므로 한자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다양한 음역표기가 있으나, 나는 고려대장경의 현장(玄奘)본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발음은 우리 절깐에서 흔히 독송하는 발음을 썼습니다. 사계의 권위자인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우리 고려장경의 텍스트를 그대로 썼습니다. 보통 일본에서는 ‘羯諦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菩提薩婆詞’라는 음역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절깐에서는 보통 마지막 구절을 ‘보리사바하(菩提娑婆訶)’로 표기하지요. ‘승사하(僧莎詞)’도 고대의 발음은 ‘스바하’의 발음이 났던 모양이에요. 그 원래 발음은 매우 명료합니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gate g..
제9강 설반야에서 보리 사바하까지 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揭帝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莎詞.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인용 목차 반야심경
무등등주와 도일체고액과 능제일체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말합니다. ‘지(知)’는 전체에 걸리는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알지어다. 다음의 사실들을 …… ’하는 식의 구문이지요. 영어로 말하자면 ‘Therefore you should know that ……’과 같은 식이지요. 무엇을 알아야 하나요? 반야바라밀다야말로 위대하게 신령스러운 주문이며, 위대하게 밝은 주문이며, 그 이상이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것은 결코 반야바라밀다를 주문화하거나 주술적으로 만드는 밀교적 장치가 아닙니다. 주문(mantra)이라는 것은 인간의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시적인 암호로 표현하는 노래와 같은 것이며, 사실 리그베다와 같은 인도 고유의 경전 전체가 주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8강 고지반야바라밀다에서 진실불허고까지 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故.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 인용 목차 반야심경
구경열반과 무상정등각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전도된 몽상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구경열반(究竟涅槃)’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구(究)’는 ‘궁극적으로’라는 부사입니다. ‘경(竟)’은 ‘도달한다’는 동사입니다. 궁극적으로 열반에 도달케 된다는 것이지요.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를 말합니다. 욕망의 불길, 전쟁의 불길이 다 꺼진 상태, 우리에게 통일이야말로 ‘열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의 불길, 앞서 말한 4가지 공포에서 유래되는 욕심의 불길이 만드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무명(無明)의 인간들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히틀러 같은 사람은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반공을 열렬히 외치고..
전도망상에서 멀리멀리 벗어나라 내가 요즈음 내복을 하도 오래 입다 보니 고무줄이 다 삭아버려서 오랜만에 동네 내복상점에 갔어요. 내복을 좀 사려고요. 그런데 20여년 안면이 있는 주인청년이 날 붙잡고 호소를 해요. “선생님! 이거 나라가 잘못되는 거 아닙니까?” “왜?” “문 대통령이 너무 정치를 못하는 거 같아요.” “왜?” “김정은을 자꾸 만나서 나라를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장사도 안돼요.” “팔아넘긴다니 누가 그런 말 하던가?” “태극기집회 나가는 사람들이 점포에 많이 오는데 다 그렇게 말해요.”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 자네가 뭘 확인해본 것이 있나? 자네도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그 자식들이 분열과 전쟁에 시달리는 세월을 살기를 원하는가?” “물론 아니죠.” “우리가 전쟁의 공..
공포와 몽상 이 단락도 현장(玄奘)의 번역에 기준하여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주어가 ‘보리살타(bodhisattva, 깨달음을 지향하는 유정有情. 깨달음의 가능성을 지닌 보통사람, 즉 싯달타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로 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리살타의 약어가 곧 ‘보살’이며 그것은 대승운동의 주체입니다. 아라한을 뛰어넘는 새로운 불교의 주체입니다. 결국 반야경의 핵심인 심경」이 설파된 것은 보살에게 설파된 것이고, 그 설파된 내용의 최종적 수혜자는 비구가 아닌 보살입니다. 대승의 수혜자가 되려면 비구도 보살이 되어야만 합니다. 보살을 주어로 했을 때, 어떤 일이 최종적으로 벌어지는가? 보리살타, 즉 모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이해했고 그 원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로, 마음에 일..
제7강 보리살타에서 삼먁삼보리까지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인용 목차 반야심경
법정 스님의 무소유 여기 ‘무소득(無所得)’이라는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무소득’이라는 말은 이미 법정(法頂) 스님께서 ‘무소유’라는 말로 충분히 대중을 설득시키셨고 또 그것을 돌아가시기 전에 완전히 실천하셨기 때문에 우리 대중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법정스님은 본인의 저술조차도 족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모든 판권을 회수하셨습니다. 아마도 스님의 출판된 글로서는 제 『금강경강해』의 서문으로 남은 글이 유일할지도 모르겠네요. 공수귀향(空手歸鄕)을 실천하신 참 드문 분이지요. 법정 스님은 제가 생전에 많이 만나뵈었지만 참 깊은 인격을 갖춘 분이지요. 글을 보면 매우 여성적이지만 만나뵈면 임제와도 같은 단호함과 강인함이 있는 분이었어요. 보조지눌의 맥을 잇기에 부끄..
우주론적 명제를 윤리적 명제로 이런 구절은 해석이 좀 어렵습니다. 물론 산스크리트 대응구가 있기는 하지만 현장(玄奘)의 번역이 매우 압축된 것이래서 주석가들은 자기 생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러한 구절은 현장의 한역을 그대로 존중하여, 그 한자의 의미맥락대로 뜻을 새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는 여태까지 전개되어온, ‘오온개공(五蘊皆空)’ 이래의 모든 기존 불교의 이론을 부정해버리는 ‘무(無)의 철학’을 완성하는 마지막 구문입니다. 그리고나서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는 대승의 주체가 주어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대승의 탄생,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이전의 어떠한 종교와도 획을 긋는 새로..
제6강 무지에서 무소득고까지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 문이다!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인용 목차 반야심경
12지연기와 4성제의 부정 뿐만이겠습니까? 이 우주가 다 사라졌는데, 인식의 뿌리도 대상도 그 사이에서 성립하는 의식의 필드도 다 사라졌는데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 단의 내용이야말로 진실로 소승의 아라한이라면 너무도 공포스러운 보살가나의 혁명적 외침이지요. 싯달타는 싯달타가 아니다. 그는 부처도 아니었다. 그가 생전에 깨닫고 설했다 하는 법문이 다 헛거다. 다 공이다! 보리수 밑에서 12지연기를 깨우쳤다고? 그것도 다 공이다! 다 헛거다! 보살반야의 세계에는 무명(無明)도 없고, 대단한 깨달음을 통하여 무명이 사라진다는 개구라도 없다! 이렇게 해서 12지연기의 모든 항목(지支)이 없다. 그리고 그 항목이 환멸연기에 의하여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늙어 뒈진다는 것도 없고, 늙어 뒈진다..
제5강 무무명에서 무고집멸도까지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무무명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ㆍ집ㆍ멸ㆍ도 또한 없는 것이다.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인용 목차 반야심경
18계의 이해 이제 공 속에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모두 다 없다라는 말은 쉽게 이해하시겠지요. 이제 ‘18계(十八界)’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18계이론은 싯달타 본인이 설한 법문으로서 아함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싯달타의 12연기 속에도 육입(六入)의 항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싯달타는 이러한 논의를 인식론적 체계로서 설법한 것 같지는 않아요. 부파불교시대 때부터 인식론적 다르마의 논의가 강화되면서 체계화되었고, 후대의 유식론에서 그것이 매우 심오하게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나식이나 아라야식과 같은 문제는 다루고 있질 않으므로 유식론과 정면으로 대결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불교 인식론의 기본개념으로서 18계이론을 제너럴하게 이해하시면 족할 것 같습니다. 우선 서양근대 인식..
제4강 시고공중무색에서 무의식계까지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도 없고,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도 없다.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인용 목차 반야심경
『심경』의 육불을 바르게 이해하는 법 여기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모든 다르마(dharma)’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여기 법이라 하는 것은 무슨 거대한 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사건, 이벤트, 사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Event)이 공상(空相, 공의 모습)인 세계에서는 생멸(生滅)이 없으며, 구정(垢淨)이 없으며, 증감(增減)도 없다. 이 공상의 세계, 반야바라밀다를 깨달아 조견한 코스모스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여기에 세 종류의 아니 불(不) 대구가 나열되어 있는데, 상대되는 개념에 아니 불을 붙여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은 인도인에게 고유한 것입니다. 우파니샤..
제3강 사리자에서 부증불감까지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련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구부정 부증불감 인용 목차 반야심경
오온의 가합일 뿐인 나는 좆도 아니다 나(我, Ego)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다섯 가지 오온(五蘊, 다섯 가지 집적태)의 가합(假合, 일시적 조합)입니다. 그런데 가합의 요소인 색ㆍ수ㆍ상ㆍ행ㆍ식 하나하나가 또다시 공입니다. 리얼하지 않은 것이지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라미(RAMI)만년필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영속할 수 없는 가합입니다. 튜브에 들어있는 잉크만 말라도 만년필은 제 기능을 못합니다. 펜촉은 순간순간 닳아 없어지고 있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200자 원고용지도 몇 년이면 바스러집니다. 이 만년필을 쓰고 있는 내 손도 1ㆍ20년 후면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나의 팔이 아닌 나의 식(識)도 곧 고혼(孤魂)이 되어 태허(..
관자재보살이 오온개공을 상설한다 심반야바라밀다를 행한 관자재보살은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이라는 우주적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고액(고액에 관하여서도 팔고八苦니, 사액四厄이니 썰說을 펴나 다 부질없는 구라일 뿐. ‘괴로움’ ‘무명 속의 유전’으로 족하다)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성문 중에서도 ‘지혜제일’이라는 사리자(=사리불Śāriputra. ‘뿌뜨라’는 ‘아들’의 뜻, 엄마 이름이 샤리이고 그 아들이라는 뜻이다)를 골라, 사리자에게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이치를 설파합니다. 사리자를 특칭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현장에는 사리자 혼자 듣는 것이 아니지요. 그 뒤에는 장대한 사부대중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리자’를 선택하여 골라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인즉 바..
제2강 사리자에서 역부여시까지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에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나머지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受想行識, 亦復如是. 수상행식 역부여시 인용 목차 반야심경
조견, 도, 일체고액, 오온 다음 ‘조견(照見)’이라는 말도 ‘비추어 안다’ ‘총체적인 우주의 통찰, 즉 전관(全觀)에 도달한다’는 뜻이지요. 무엇을 조견하는가? 조견의 내용 역시 우주론적 통찰입니다.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다는 것을 통찰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되면 일체의 고액(苦厄, 고와 액, 고통과 재액)을 극복하게 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는 문구는 어느 산스크리트어 원본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장(玄奘)의 역문에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이 한어의 문맥에 따라 첨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도(度)”’ 일체고액을 넘어간다, 그러니까 극복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거꾸로 현장이 본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이 구절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산스크리트본이 모두 ..
관자재, 관세음의 뜻과 기자 이상호 원래의 이름은 ‘Avalokiteśvara’인데 이것은 ‘보는 것, 관찰하는 것(avalokita)이 자유자재롭다(iśvara)’는 뜻이니까, 사실 ‘관자재보살’ 이라는 현장(玄奘)의 번역이 원의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라집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번역을 선호했습니다. 『묘법연화경』을번역할 때도 라집은 ‘관세음’과 더불어 ‘관음(觀音)’이라는 역어를 썼습니다.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은 완전히 같은 말입니다. 관자재보살은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우리 민중은 라집의 ‘관세음보살’이라는 표현을 사랑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소리를 본다’가 되어 좀 이상하지만 인도인에게 ‘본다’는 것은 ‘심안’의 감지, 통찰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주석가들에 의하면 ..
관세음보살이 지혜의 완성을 이야기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로써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반야심경(般若心經)』 전체의 주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설법의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더군다나 관세음보살이 법을 설한 대상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사리불이죠! 사리자가 누구입니까? 사리자는 바라문 계급의 출신으로서 왕사성 부근의 우파텃사(Upatiss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목건련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얘기는 유명하지요. 하여튼 그는 지혜가 뛰어나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죠...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제1강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인용 목차 반야심경
결론: 벼락경과 아상 버리기 여기서 아예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 좋겠군요. 여러분들께서 제 『금강경강해』를 읽으셨다는 전제하에서 아예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겠어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般若心經)』이나 동일한 주제를 전달하는 대승경전인데, 『금강경』의 주제는 초장에 이미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있습니다. 3-3.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내 멸도한다 하였으나, 실로 열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어라.’ 如是滅度無量无數無邊衆生, 實无衆生得滅度者.’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득멸도자 3-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계율과 지혜의 길항성 자아! 이제 앞에서 말한 ‘6바라밀’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에 다 바라밀이 붙지만(보시바라밀, 지계바 라밀…… 이런 식으로) 실제로 ‘완성’을 의미하는 ‘바라밀’이라는 것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5덕목에는 붙을 수가 없습니다. 앞의 5덕목은 오직 ‘지혜의 완성’을 통해서만 바라밀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니까 ‘6바라밀’이라고 하지만 지혜바라밀은 여타 덕목과 차원이 다른 것이죠. 여기에 나는 여러분께 “계율과 지혜의 길항성” 이라는 인간 보편의 테마를 제시하려 합니다. 대승은 비구ㆍ비구니집단이 아닙니다. 오늘날 해인사ㆍ송광사 등의 절간에 출가하는 자들에게는 대승을 운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소승집단이 되어버린 것이죠. 소승이라고 꼭 나쁠 게 없어..
바라밀의 해석 다음, 우리는 제목이 되는 ‘반야바라밀다’라는 말을 해설해야 하겠습니다. ‘반야사상은 대승불교의 출발이다’라는 말은 누누이 반복되었습니다. 반야사상은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에서 새롭게 정의된 사상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대승불교는, 우리가 소승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지만, 그냥 방편상 그렇게 부르고 있는 초기불교의 승가집단과는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조직과 이론으로부터 발생한 새로운 불교운동입니다. 여러분! 대형버스와 고급자가용세단과 뭐가 다를까요? 버스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서 세단은 안면이 있거나 신분이 있거나 특수관계에 있는 소수만이 탈 수 있습니다. 버스는 싼 버스표만 있으면 탈 수 있지요. 작은 수레(소승)와 큰 수레(대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
구마라집 『심경』, 번역본의 문제점 자아! 그렇다면 구마라집의 번역은 소품일까요, 대품일까요? 우리가 보통 소품이라 하면 현장(玄奘)의 『심경』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라집의 번역을 대품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라집의 번역은 현장의 것과 같은 소품계열입니다. 상기의 8개 중에서 소품계는 1ㆍ2ㆍ7뿐이고 나머지 5개는 다 대품계입니다. 그런데 제7의 『심경』」은 번역이 아니고 산스크리트어본을 발음대로 한자로 써놓은 것이죠. 그러니까 한자발음기호지요. 얼마나 부정확한 발음표기이겠습니까마는 이러한 음역본이 남아있기 때문에 한자의 음가를 재구(再構)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사실 불경 때문에 중국의 성운학(聲韻學)이 발전했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소품계 한역은 라집 것과 ..
『심경』 8종, 그리고 대본과 소본 우선 우리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고 하는 경전은 AD 649년에 현장(玄奘)이 역출(譯出)했다고 하는 텍스트를 기준으로 삼고 있고, 그 가장 정종이 되는 판본은 우리 고려제국의 대장경 속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현장이 인도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후 4년 만에 이 『심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장 이전에, 일례를 들면 구마라집(350~c.409)이 번역한 『심경』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대정대장경에 수록된 『반야심경』만 해도 다음의 8종류가 있습니다. 학구적인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8종을 우선 써보겠습니다. 1.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 1권,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 No.250 2. 『반야바라밀다..
종교의 대승화 의의 세부적인 면에서 얘기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단 대승불교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고, 『반야심경』 본문에 즉하여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여 보기로 하죠! 대승불교의 혁명적 성격을 우리는 너무도 진부한 상식적 언어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예를 들자면, AD 1세기에 일으킨 예수운동(Jesus Movement) 그 자체는 오히려 매우 혁명적이고 구약(소승)에 대하여 대승적인(신약: 새로운 약속)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서화 되면서 정경화 되었고 권위화 되었습니다. 또다시 그 권위를 뒤엎는 새로운 대승의 개방의 과정을 겪지 못했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도 ..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와 전혀 다른 성격 다섯 가지 자아!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간결하게 대승불교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대승불교는 싯달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기불교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싯달타의 종교가 아니라 보살의 종교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불경스럽다고 말할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자각의 종교이지 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리리타(自利利他)’, ‘자각각타(自覺覺他, 스스로 깨우침으로써 타인을 깨우침)’의 염원을 제1의 목표로 삼습니다. 자기의 구제만에 전심하여 타인의 구제를 등한시하는 소승의 종교가 아닙니다. 철..
타부시되던 불상이 만들어지다 마우리야왕조는 아쇼카 이후 쇠퇴의 일로를 걷습니다. 그리고 AD 30년경에는 쿠줄라 카드피세스(Kujula Kadphises)가 월지종족을 통일하고 박트리아의 문화를 계승한 쿠샨왕조를 세웁니다. 쿠샨왕조의 4대 왕인 카니슈카대왕(Kanishka I, AD 127~140 재위)이 불교를 크게 진흥시켰다는 사실은 이미 앞서 논의한 바와 같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보살운동은 불상문화와 결합되면서 놀라운 힘과 체제와 하부구조를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초기불교에는 계율이 심했고 타부가 많았습니다. 제일 큰 타부 중의 하나가 입멸한 석존은 절대 형상화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형상의 윤회를 초월하여 무형의 세계로 들어간 불타를 또..
구라꾼과 보살과 보살가나의 등장 그런데 이 대중에게 한 가지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싯달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각자(覺者)인 붓다가 되었는가? 그의 인생스토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석가족의 성자)의 라이프 스토리는, 리얼 스토리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탑돌이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야기꾼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양식화 되어간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윤회를 전제로 하는 인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무궁무진한 전생담(싯달타 전생의 이야기들. 본생담本生이라고도 한다)의 구라가 끝없이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탑돌이를 하는 귀부인들은 먼 길을 고생해서 왔는데 몇 시간 있다가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몇..
새로운 스투파문화와 개방된 성역의 형성 그러나 불교사적으로 아쇼카왕 시대에 일어난 가장 거대한 변화는 스투파신앙의 대중화라는 현상입니다. 스투파(stūpa)는 졸탑파(卒塔婆,) 솔탑파(率塔婆), 솔도파(率都婆)라고 음역되는데 약하여 탑파(塔婆), 그냥 탑(塔)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우리말의 ‘탑’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의 음역이 변화하고 축약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탑은 기와집처마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린 석조조형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면서 양식적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목조건물모양이 석조화 된 것이죠. 그러나 인도인들의 스투파는, 우리의 탑의 개념과는 다른, 진짜 무덤인데, 벽돌을 엄청 크게 산처럼 쌓아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
아쇼카 시대의 결집 다시 말해서 자리(自利, 자기를 이롭게 한다, 자기 개인의 구원을 추구한다. svārtha, ātma-hita)만을 추구했지 이타(利他,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 parārtha, para-hita)의 결과를 초래하지 못했습니다. 불교의 원래적 의도는 자리(自利)를 통하여 이타(利他)가 도모되는, 다시 말해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합일이 되는 경지에 있을 것입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위로는 깨달음을 구함)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하는 삶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권위화되어가고 소수집단화되어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체적 방향성에 새로운 계기가 생겨납니다. 그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불리우는 마우리아왕조의 아쇼..
초기 수행자들의 엄격한 계율과 한계 나는 싯달타를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업(業, karman)이라든가, 윤회(輪廻, saṃsāra)라든가, 열반(涅槃, nirvaṇa, 니원泥洹이라고도 음사한다) 같은 것은 한국사람들에게 김치와도 같이 인도사람들의 생활 속에 배어있는 아주 기본적인 사유의 틀이고 감정의 원천이지요. 이러한 기본적인 틀에 대하여 싯달타는 조금 혁명적인 생각을 한 것뿐이죠. 그러나 싯달타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초기 경전들이 결집되었다는 것이고, 또 그 경전의 내용들이 계속 발전적으로 부정되고 확대되어 나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죠. 싯달타 대각자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초기승단의 사람들..
싯달타의 자기파멸과 자기 완성의 길 여러분은 정말 고타마 싯달타라는 청년이 정말 샤카족 카필라성의 왕자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4성문에서 충격 받는 일들을 목격하고 출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런 말이 맞을 수도 있겠죠. 살아있는 동안 무지막지하게 비상식적인 기적을 많이 행하고 또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예수의 생애와는 달리 아무런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싯달타의 실존성에 관해서는 예수만큼이나 구체성이 없습니다. 그에 관한 얘기들은 결국 알고 보면 양식화된 후대의 기술이니까요. 그의 생존연대도 BC 6세기부터 4세기까지 왔다갔다 하니깐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만 해도 최근에는, 사도 바울이라는 유대인 사상가가 신화적인 죽음과 부활의 테마를 통하여 에클레시아(교회조..
성문승, 독각승, 보살승: 보살의 의미 그 첫째가 성문승(聲聞乘), 그 둘째가 독각승(獨覺乘, 혹은 연각승緣覺乘), 그 셋째가 보살승(菩薩乘)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3승은 실제로 기나긴 초기불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문승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싯달타가 말하는 소리[聲]를 실제로 들은[聞] 사람들이니까 가섭, 수보리, 가전연, 목건련 같은 불제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싯달타의 자가용에 자연스럽게 올라탈 수 있는 선택된 소수들이겠지요. 그 다음에 독각승이라는 것은 홀로[獨] 깨닫는[覺] 사람, 즉 선생이 없이 홀로 토굴에서 수행하여 깨닫는 사람들, 12인연을 관하여 깨닫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연각승이라고도 합니다. 분명 이 독각ㆍ연각이야말로 성문 다음 단계에 오는 수행..
대승이란 무엇이냐 자아! 이제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텍스트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해설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반야심경』을 펼치면, 제일 첫머리에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를 해설하려면 ‘관자재’가 무엇인지, ‘보살’이 무엇인지,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개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대승불교’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뻐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야경이 대승불교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대승불교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문제부터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무엇이냐? 이 한 주제만 전문적으로 설하려고 하면 또다시 거대한 단행본을 ..
선불교의 뿌리와 우리 민중의 선택 우리는 계(戒, sīla), 정(定, samādhi), 혜(慧, paññā)라는 삼학(三學)을 얘기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보조국사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성적등지(惺寂等持)의 논의를 통해 우리나라 불교의 정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선종을 정(定)의 측면을 발전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선정이라는 것은 ‘정신수양’의 생활이요 방법론이지 그것 자체로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定)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은 혜(慧)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혜(慧)라는 것은 우리의 상식언어로 ‘지혜(Wisdom)’라고 생각하면 확연히 그 의미가 잡히지 않는 막연한 개념입니다. 부파불교시대까지만 해도 ‘혜’는 그냥 지혜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선정(禪定)’이라고 하는..
반야경과 대승불교와 선불교 『금강경』과 『심경』은 어느 쪽이 더 먼저 성립했을까요? 『금강경』은 구라의 질감이 매우 평이하고 비개념적이며 시적이며 반복의 묘미가 매우 리드믹한 느낌을 형성하고 있지요.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반해,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260개의 문자 속에는 이미 ‘공(空)’이라는 철학용어가 나오고, 오온(五蘊), 18계(十八界), 사성제(四聖諦),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와 같은 기초이론이 깔려있는가 하면, 용수(龍樹, Nāgārjuna, c.150~c.250)의 중론(中論)의 논리도 이미 반영되어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
반야경과 도마복음서 『반야심경』의 ‘심(心)’이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야를 성취하는 우리의 마음을 설하는 경처럼 오해하는데, 여기 ‘심’은 ‘흐리다야(hṛdaya, 음역은 흘리다야紇利陀耶)’의 뜻으로 그러한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물리적인(의학적인) 용어로서 신체의 중추를 형성하는 심장(Heart)을 의미합니다. 육단심(肉團心이라고도 번역하지요. 그리고 밀교에서 만다라(曼茶羅)를 그릴 때 그 전체구도에서 핵심이 되는 것을 심인(心印, hṛdaya-mantra)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의 ‘핵심(核心)’이라는 말이 그 원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야심경(般若心經)』이란 600권의 방대한 『대반야경』의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라는 뜻..
확대와 축약 자아! 간단히 생각해보죠!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반야경전은 대강 AD 2세기 지루가참의 『도행반야경』으로부터 AD 7세기 현장(玄奘)의 대전집 『대반야경』에 이르는 소품계, 대품계, 밀교계의 다양한 경전들이 열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핵심경전의 성립을 AD 1세기로 본다면 약 600년간의 끊임없는 확대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반야사상은 인기가 있었고 대중의 호응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문헌은 ‘확대’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번잡하게 교설이 확대되어 나가는 중에 혹자는 이렇게 뇌까릴 수도 있습니다. “에이 씨발 뭐가 그렇게 복잡해! 번뇌를 버리고 잘 살면 되는 거 아냐? 한마디로 하자구! 한마디로!” 이러한 확대과정에 역행하여 극도의 축약화..
현장의 『대반야경』이라는 거질 현장(玄奘)이라는 정력적인 역경대가가 AD 663년 10월 20일에 『대반야경』이라는 책을 번역ㆍ완성합니다. 그리고 넉 달 후에 그만 이 세상을 하직합니다(664년 2월 5일 야밤중. 향년 63세). 요즈음으로 보면 너무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요즈음 사람들이 공연히 오래 사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대반야경』이라는 책이 언제 번역과 편집을 시작한 것인지 아세요? AD 660년 원단(元旦)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과 3년 11개월 만에 그 대작을 완성한 것이죠. 그런데 미치고 똥 쌀 일이 하나 있어요. 이 『대반야경』의 분량이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아세요? 8만대장경판 중에서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인데,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편집된 대정대장경의..
쿠샨왕조의 성격: 포용적 문화, 불상의 탄생, 대승의 기반 쿠샨왕조는 매우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개화된 상업인들의 마인드가 이 문화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쿠샨왕조는 금화를 많이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금화를 보면, 희랍, 로마, 이란, 힌두의 신들, 그리고 불상을 자유롭게 주조해 넣었는데, 희랍어문자로 친절한 설명까지 첨가해놓고 있습니다. 어느 한 종교에 아이덴티티를 고집하지 않았던 것이죠. 바로 이러한 종교적 관용과 포용의 자세가 동서문명의 가교역할을 했고, 불교를 동방에 전래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루가참이 중국에 왔을 때 그 ‘지(支)’는 쿠샨왕조였으며, 매우 개명한 고등문명의 사람으로서 그는 한자문명권에 발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쿠샨왕조는 이란에서 ..
월지국에서 쿠샨제국으로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에, 딱 한 가지, 지루가참의 ‘지(支)’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월지(월씨)는 본시 흉노족이 크게 세력을 떨치기 이전에 돈황과 기련산(祁連山) 사이의 영역, 그러니까 감숙성의 서쪽에 살던 상당히 강인하고 영리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영역을 ‘하서주랑(河西走廊, Hexi Corridor)’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내지(內地)의 서역통로로서 가장 중요한 요도(要道)였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고조선 제국의 일부 종족이 서진하여 정착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월지는 흉노족의 중흥조인 라오상츠안위(老上單于, Lao Shang, BC 174~161 재위)의 공격에 대패하고 그들의 왕이 살해당하자, 월지의 주간세력이 서진하여 소그디아나(Sogdiana)와 ..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과 대승불교의 출발 『도행반야경』은 현존하는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도행반야경』을 번역한 지참(支讖, 지루가참의 약칭)은 월씨국에 『8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 원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원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8천송반야경』의 원형의 모습을 우리는 『도행반야경』에 의해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존하는 한역본 『도행반야경』을 거꾸로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8천송반야경』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지루가참이 산스크리트 원본을 문자 그대로 직역했을 것인가? 사계의 대학자인 카지야마 유우이찌(梶山雄一, 1925~2004)【경도대학 철학과 출신의 불교학자. 경도대학 문학부 교수로서 경도학파를..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월지국 루가참의 기적 같은 번역 그럼 진짜 『8천송반야경』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현존하는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속에 반야라는 말이 들어간 아주 희한한 경전이 하나 있습니다.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이라는 문헌이지요. 인도사람들은 진리의식만 강하고, 역사의식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술하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도역사기술방식에서 정확한 연대를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런데 「도행반야경」이라는 문헌은 지루가참度이라는 번역자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고, 그 번역자가 중국에 와서 이 경을 한역(漢譯)한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인도측 역사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기에 진실로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8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어 원전 ‘8천송(八千頌)’이라는 것은 분량을 말하는 것인데 대부분 옛날 인도경전이 노래로서 암송되었기 때문에 ‘송(gāthā, 偈陀, 伽陀)이라 하는 것이고, 이 노래는 여러 형식이 있지만 불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슐로카(śloka)라는 것입니다. 슐로카는 1구가 8음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2구 연결된 것이 또다시 2행을 이루어 하나의 그룹(스탄자stanza 같은 것)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8음절 4구 32음절(8×4=32)의 산스크리트 시형(詩形)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32음절의 슐로카가 8천 개가 모인 반야를 설하는 노래가 바로 『8천송반야경』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8천송반야경』은 25만 6천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경전입니다. 우..
반야란 무엇인가? 반야경의 이해 이제 우리는 3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혜(慧)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혜는 의역이고(선진경전에서 ‘慧’는 특별한 의미가 없던 글자였다), 그 음역이 바로 ‘반야(般若)’라는 것이죠. 반야란 무엇인가 바로 이 주제가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자아!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반야경’이라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반야사상을 표방한 경전들을 총칭하여 일반적으로 ‘반야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계의 권위자인 히카타 류우쇼오(干潟龍祥, 1892~1991, 동경제대 철학과 졸업. 구주제대九州帝大교수. 일본의 인도철학자)는 의미 있는 중요한 반야경으로서 27경을 꼽고, 독일계 영국인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반야경연구 전문가, 에드워드 콘체(Ed..
삼학과 삼장, 성묵과 법담 계ㆍ정ㆍ혜는 싯달타의 삶의 과정을 요약한 것일 수도 있지요. 달타가 출가하여 보리수 밑에 앉기까지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계(戒)였습니다. 그리고 보리수(핍팔라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갔지요. 그것이 바로 정입니다. 그리고 정을 통하여 아다라삼막삼보리를 증득합니다. 그러니까 싯달타의 계를 담은 것이 율장이고, 싯달타의 정(定)을 담은 것이 경장이고, 싯달타의 혜를 담아놓은 것이 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약간의 디테일한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지만 대략적인 의미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초기경전에는 율장과 경장만이 있었다. 논장은 후대에 성립한 것이다). 삼학 三學 계(戒) 율장(律藏) 대장경 大藏經 tri-piṭaka 정(定) 경장(經藏) 혜(慧) 논장(論藏) 싯달타는 어려서..
득도와 화두 생각해보세요! 여기 스님이 한 분 있다고 합시다. 왜 이 사람을 스님이라고 우리가 존경을 할까요? 우선 스님이 됐다고 하는 것은 ‘수계(受戒)’를 의미합니다. 즉 계를 받아야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스님이 된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섹스를 좋아하고 올가즘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을 양보할 수 없는 인생의 도락으로 엔죠이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참기 어려운 쾌락의 향유를 근원적으로 포기한다, 왜 그럴까요? 득도를 위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여튼 보통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매우 근원적인 금욕을 실천하는 사람, 그 고통을 감내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님이나 신부를, 비구니나 수녀를 존경하게 되는 것이죠. 스님이 색이나 밝히고 돌아다닌다고 한다면 우리가 왜 그들을 존경해야 할까요? 계..
지눌의 정혜쌍수 보조(普照) 지눌(知訥, 1158~1210)도 무신정권이 발흥하여 대고려제국의 정치체제와 결탁된, 축적된 교학불교가 쇠퇴하고, 선불교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격외성(格外性, 교외별전敎外別傳)이 고려불교 그 자체를 뒤흔들고 있던 시대에, 선(禪)과 교(敎)는 본질적으로 대립되어야 할 양대세력이나 이론체계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융합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통불교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해나갔던 탁월한 사상가였습니다. 그에게는 도통을 전수받을 만한 스승도 없었습니다. 당시는 선이라는 것이 깊게 이해된 상태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독자적인 문학(問學)의 수련을 통해 새로운 결사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결사운동의 핵이 ‘정혜결사(定慧結社)’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계ㆍ정ㆍ혜 삼학의 본래정..
팔정도와 삼학 그런데 4번째의 도제는 초기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엄청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수행자들의 생활규칙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팔정도(八正道)라고 부릅니다.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는 뜻일 텐데, 이 팔정도야말로 원시불교의 실천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죠(우리나라에서는 ‘원시’가 ‘원시인’처럼 ‘primitive’하다는 뉘앙스가 있어 싫어한다. 그리고 초기 불교라고 한다. 나는 불타가 살아있을 시대의 불교를 ‘근본불교’라 부르고, 적멸 후 한 150년간, 부파불교가 시작되기 이전의 시대를 원초적이라는 의미에서 ‘원시불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양자를 합쳐서 ‘초기불교’라 불러도 무방하다).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바른 소견),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정어(正語, 바른 말), 정업..
삼학, 유전연기와 환멸연기 자아! 이제 ‘삼법인’과 함께 ‘삼학(三學)’이라는 것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삼학이라는 것은 근본불교시대(역사적 싯달타가 활약하던 가장 근원적인 시기)에 싯달타를 따르는 자들이 선생님이 제시하는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정진하는 데 필연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세 측면의 수행덕목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계(戒, sīla), 정(定, samādhi), 혜(慧, paññā)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 그 깨달음을 쉽게 일반대중에게 전하기 위해서 설파했다고 하는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성제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catur-ārya-satya)라는 뜻이죠. 싯달..
심리학과 무신론, 그리고 무아의 종교 여기 이 4명제에 관해 정리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어요. 내가 하바드대학에서 강의할 때였습니다. 미국학생이 나에게 묻더군요? “그럼 불교는 일종의 심리학입니까?” 나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어요. “아~ 그렇죠. 그렇구말구요.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서양의 심리학이 불교를 제대로 못 배우는 것만이 제 한이죠.” 제가 신학대학에서 강의할 때였어요. 목사후보생인 대학원 학생이 묻더군요. “그럼 불교는 무신론입니까? 4법인에 신에 관한 얘기가 하나도 없군요.” 나는 학생의 질문에 감동했습니다. 제 강의의 핵심포인트를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추측컨대 ‘무신론(atheism)’이라는 말을 매우 ..
열반적정과 삶의 종교 다음의 제4명제를 분석해보죠. 열반적정(涅槃寂靜, śāntaṃ nirvāṇam) 열반적정이라는 명제는 제법무아(제법에는 기실 아我가 없는 것이다)라는 명제와 또다시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한 측면과도 같은 것이죠. 제행무상과 일체개고가 한 쌍이라면, 제법무아와 열반적정은 또다시 한 쌍이 되지요. 제법이 무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열반에 들게 되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이 말이지요. ‘열반(涅槃)’이라는 말은 ‘니르바나(nirvāṇam)’라는 말의 음역입니다. 아~ 참, 제가 가사를 쓰고 제 친구 박범훈이 곡을 만들고 박애리가 노래 부른 ‘니르바나’라는 작품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데 그것을 보셨나요?(2018년 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 BTN 제작, 29분 ..
제법무아의 아트만과 실체 자아! 이제 제3의 명제를 분석해봅시다! 제법무아(諸法無我 sarvadharma anātmānaḥ 여기 ‘제법’이라는 말 속에, ‘모든’의 뜻을 가지는 ‘제’ 이외로 ‘법(法)’이라는 말이 주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다르마(dharma)’라는 말처럼 불교세계에서 넓게 쓰이는 말도 없습니다. 다르마는 법칙, 정의, 규범의 뜻도 있고, 불타의 가르침을 총칭해서 쓸 때도 있고, 덕, 속성, 원인의 뜻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번역가들이 중국고전 중에서 법가에서 쓰이는 ‘법’이라는 개념을 선택했지만 기실 다르마는 법(法)보다는 도(道)라고 했어야 옳을 것 같아요. 그런데 4법인 제3명제에서 쓰인 ‘법’은 매우 단순한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그냥 사물, 물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매..
중동 사막문명의 테마: 죄 중동으로 가면 상황이 아주 달라져요. 고조선-고구려문명의 테마가 ‘생(生, Creative Advance)’이고, 인도문명의 테마가 ‘고(苦)’라고 한다면 중동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는 역시 ‘죄(罪, Sin)’입니다. 사막에서의 삶은 공동체의 영역이 매우 좁으며,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생생지도(生生之道)에서 단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지를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은 수직적 관계 속에서 초월적 ‘존재’로서만 인식되고, 우주의 순환이라는 시공범주를 벗어나 버리죠. 그런데 사막의 사람들이 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자에 대하여 갖는 의식은 ‘죄’라고 하는 한계 상황을 통해 매개됩니다. 여러분들께서 구약의 레위기 18장을 ..
일체개고와 쇼펜하우어, 문명사적 맥락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것은 ‘일체(一切)’가 다 ‘고(苦)’라는 뜻입니다. ‘고(苦)’ 즉 ‘두흐카(duḥkha)’라는 것은 아비달마 문헌에서는 ‘핍뇌(逼惱)’라고 번역했는데 ‘핍박하여 고뇌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하여튼 ‘괴롭다’는 뜻이지요. ‘일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고(苦)라는 것은 ‘존재함’ 그 자체가 고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일체라고 한다면 우주 전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데 아마도 삼법인에 미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아~ 우주가 팽창하느라고 고통스러워하고 있구나!’ 뿐만 아니지요. 우..
행(行)과 연기(緣起)의 의미 기실 일체개고와 제행무상은 한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제행이 무상하면 모든 것이 ‘고(苦)’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제행의 ‘행(行)’은 우리말로는 ‘간다’는 뜻이지만, 그 원어인 ‘삼스카라 (samskāra)’는 ‘드러난 것’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제행(諸行)’은 나의 인식 세계에 드러나는 모든 현상(phenomena)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 사건, 그 모든 것은 항상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찰나찰나 변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제일 먼저 깨달은 진리는 ‘연기’라는 것인데 ‘연(緣)’이라는 것은 원인의 뜻이고, ‘기(起)’라는 것은 연으로 해서 ‘일어나는’ 결과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물도 그것..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삼법인(사법인)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선(禪)을 얘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불교의 근본교리, 그 근원적 지향성을 우선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의 교리에 관한 천만 가지 법설이 난무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내가 불교학개론 첫 시간에 배운 누구나 쉽게 접하는 세 마디를 우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특징 지우는 세 개의 인장과도 같은 것,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사실 이 삼법인이라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불교에 관한 모든 논의는 종료됩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이해체계에 이 세 개의 도장만 확실히 찍히면 확고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에는 이런 식의 확고한 기준이 되는 법인(..
임제 법문의 궁극적 의미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성상태현(性相台賢, 성은 법성法性을 말하며 삼론종三論宗을 의미, 상은 법상法相을 말하며 유식종을 의미, 태는 천태종天台宗, 현은 현수종賢首宗, 즉 화엄종華嚴宗을 의미한다)의 불교경전을 골고루 섭렵하였으며, 그 이전에 이미 유교의 기본경전과 도가의 경전들을 통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책을 읽고 사색한다는 것 자체가 좌선의 용맹정진과 똑같은 삼매(三昧)입니다. 어떻게 지식을 배제하고 높은 선경(禪境)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아예 이렇게 생각해보죠. 선종의 마지막 대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은 이렇게 말했어요 야 이놈들아! 불법이란 본시 힘쓸 일이 없나니라 단지 평상심으로 무사히 지내면 되나니라 너희들이 옷 입고 밥처먹고 똥 싸고 오..
교와 선, 이와 사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불교를 선종이니 교종이니 운운하고, 이판(理判, 좌선수행을 주로 하는 선승)이니 사판(事判, 조직운영을 책임지는 살림꾼들)이니 하여, 분별적으로 이해하는 모든 이분법적 논리를 거부합니다. 불교사를 다루는 데 있어 방편적으로 쓰지 않을 수 없는 개념들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교(敎)’와 ‘선(禪)’이 양대산맥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넌센스 중의 넌센스입니다. 우리는 교종ㆍ선종을 운운하기 전에 불교 그 자체를 고구(考究) 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많이 하는 학승은 선경이 높질 못하고, 좌선만 하다가 득도했다 하는 스님들은 무식하기 그지없다고 스님들이 서로서로 비난하는 소리가 잘 들려와요. 선과 교를 분별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이런 ..
법상종과 댜나의 음역 속에 겹친 속뜻 그리고 이 학파는 법의 본질(性, 성)을 다루지 않고 법이 드러나는 의식의 현상(相, 상)을 다루기 때문에 ‘법상종(法相宗)’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제 말이 다시 너무 학술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겉으로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요가행파’ ‘유식종’ ‘법상종’은 거의 같은 말이라고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법상종(유식종)에 의하여 아주 복잡한 불교 인식론이 만들어졌고, 선의 궁극적 의미도 이러한 인식론적 바탕을 이해해야만 확연하게 풀린다는 것만을 얘기해놓고 넘어가겠습니다. 단순히 선사들의 공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선(댜나), 삼매, 요가 등등은 본시 인도사람들의 생활습관 속에 배어 있는 수행방식일 뿐, 그것이 그러한 생활습관과 분리되어 있는 어..
선불교와 선, 삼매, 요가의 뜻 선불교는 물론 인도불교에 없는 개념이고, 인도불교사에는 선종이라는 종파가 성립한 적이 없습니다. 기실 선불교라는 것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점점 중국적인 풍토와 언어와 심성, 그리고 사회적 여건에 적응하여 간 종국에, 다시 말해서 인도불교의 중국화과정 (Sinicization process)의 정점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불교의 모습일 뿐이죠. 불교의 변화상(變化相)일 뿐이죠. 산문적인 불교가 운문적인 불교로, 논리적인 불교가 초논리적 불교로, 논술적인 불교가 시적인 불교로, 다시 말해서 산스크리트어의 틀 속의 사고체계가 고전중국어의 틀 속의 사고체계로 변해가는 과정의 극단적 사례가 선불교의 제반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禪)’이라는 말은 본래 그 자체로 ..
한국의 불교는 선불교가 아니라 통불교이다 내가 한국불교계의 문제점에 관해서 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지만 이제 함구불언(緘口不言)하려 합니다. 내가 얘기하려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문벌싸움, 일종의 불교종파주의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계에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소개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의 불교전통이야말로 당ㆍ송의 불학을 뛰어넘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독자적인 삶과 가치와 느낌의 결정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죠.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신사적 활로라는 것을 이 조선땅의 미래세대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방편으로 내가 택한 불교의 진리체계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본서의 서론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인 『반야심경(般..
성철 스님의 입장 성철은 불교정화운동의 한복판에서 계율적인 엄격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경허 - 만공계열의 선풍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막행막식이 새로 태어나는 순결한 비구종단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1947년 봉암사결사를 묘사한 글을 보면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방침을 세웠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이것이 원(願)이었습니다. 즉 근본목표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성찰의 근본주의적 입장은 매우 고귀한 측면이 분명 있고, 정화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줄기 순결한 빛줄기로서 큰 효용이 있었습니다. 그러..
해인사 반살림 그런데 이 90일간의 싸움기간 동안의 한 중간이 되는 45일을 ‘반살림’ 또는 ‘반결제’ 라고도 부릅니다. 그때에는 시작이 반인데 이미 반을 잘 채웠으니 나머지 기간도 아무런 마장(魔障)이 없이 공부 잘 하라는 뜻으로 큰 행사를 합니다. 성찬을 준비하여 대중공양을 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방장스님께서 설법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대의 해인사 총림 방장스님은 성철(性徹, 1912~1993, 경허 스님 돌아가신 해에 태어남)이라는 분이었는데, 해방 후 정화운동과정을 통하여 한국불교, 특히 비구승단의 중심점이 되신 분으로 엄청난 권위를 축적해온 거목이었습니다. 학인들은 감히 궐내에서 고개 들고 쳐다보지도 못하는 서슬퍼런 존재였습니다. 법문이 이루어지는 곳은 대웅전 앞마당 삼중석탑(三重石塔)이 있..
안거 ‘안거(安居)’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문자 그대로 ‘편안히 거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낸다는 뜻입니다. 사실 초기 인도불교승단에서는 6월 초부터 9월까지 약 3ㆍ4개월 동안 몬순기(monsoon期, 남서 계절풍이 부는 인도의 우기)가 지속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바깥출입을 금하고 한 곳에 정주(定住)하여 수행에 전념토록 한 승단의 법규를 의미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저지대에 있는 개미, 파충류들이 모두 고지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유행(遊行)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거는 본래 우안거(雨安居)였고, 이 우안거는 여름 한 철의 하안거(夏安居)밖에는 없었습니다. 동안거(冬安居)가 ..
마조와 은봉 지앙시(江西)의 어느 절, 비탈길, 어느 젊은 스님이 손수레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 비좁은 비탈길 아래 켠에 거대한 체구의 노장 조실스님이 다리를 뻗고 오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젊은 스님은 수레를 몰고가면서 황망히 외쳤습니다. “스님! 스님! 수레가 내려갑니다. 비키세요! 뻗은 다리를 오므리시라구요[청사수족請師收足]!” 조실스님이 눈을 번뜩 뜨면서 말했습니다. “야 이놈이! 한번 뻗은 다리는 안 오무려[이전불축已展不縮].” 그러자 젊은 스님이 외칩니다. “한번 구른 수레는 빠꾸가 없습니다[이진불퇴己進不退].” 아뿔싸!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조실스님의 발목을 깔아뭉개고 말았습니다. 딱 부러진 발목을 질질 끌고 법당에 들어간 조실스님, 거대한 황소 같은 체구에 호랑이 같은 눈을 부라리며 씩씩 대..
명진의 이야기 기실 나는 명진의 삶의 일대기에 관해 자세한 정보가 없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구요. 성인으로 만나 생각이 통하고, 인품의 질감을 통해 교제하는 것뿐이지요. 명진에게는 당대의 여타 스님과는 달리 강렬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중이라 하면 쉽게 ‘도 닦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나 역사의 가치로부터 자신을 은폐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아는데, 명진은 근원적으로 ‘도를 닦는다[修道]’하는 것을 공동체적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공동의 사회적 선(Common Good)을 위하여 자기를 내던지는 일상적 가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요. 명진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핏 경상도 액센트가 강한 것처럼 들리는데, 기실 그는 충청남도 당진(唐津) 신평면(新平面)..
정화운동(1954~62)의 한계 사실, 해방 후에 이승만정권이 종교를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저질스러운 짓들을 많이 하면서 오히려 기독교, 불교가 다 같이 망가져갔습니다. 청담이나 성철 스님으로 대변되는 불교정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그 내면에 ‘봉암사결사’와 같은 훌륭한 정신도 있었지만 결국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불교계의 자생적 자정 노력이 펼쳐지지 못한 채, 공권력의 폭력에 의존케 됨으로써 결국 파행적인 해결책만 도모되었고, 불교정신 자체의 타락만 초래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총무원장이라는 권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저열한 스님들의 행태에까지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 내가 ‘진짜 중’이라는 말 한마디의 의미를 풀려고 했다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데 이제 그 의미를 말해보도록 하죠...
경허의 선풍이 20세기 조선불교를 지켰다 경허라는 존재의 역사적 의의는 바로 조선왕조가 하나의 문명체로서 그 유기체적 수명을 다해가는 그 처참한 쇠락의 폐허에서 피어난 화엄(꽃)이라는 데 있습니다. 1910년 조선왕조는 멸망하였고, 1911년 6월 3일, 일제는 제령 7호(총독부령 83호)로서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반포하였습니다. 경허는 1912년 4월 25일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시적(示寂)하였습니다. 그 뒤로 한국불교는 30개의 본ㆍ말사체계로 개편되면서 조선총독부의 행정체계 하에 소속되었고 대처가 장려되었습니다. 한국불교를 근원적으로 왜색화시키려는 다양한 조처가 취해졌지만 크게 생각해보면 겉모양상의 변화와는 달리 그 내면의 불교정신은 일제강점시대를 통해서도 변함없이 유지되었..
만공과 동학사 야간법회 경허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구설 속에서 시비ㆍ포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허는 이 시점에서 한국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결코 포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경허는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죠.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경허라는 한 인간의 개별적 이야기를 말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대표하는 시대정신(Zeitgeist), 한국불교의 새로운 분위기, 그 심오한 선풍(禪風)의 클라이막스를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만공이 동학사에서 진암 스님을 모시고 행자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이때 경하는 동학사를 떠나 천장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경허는 진암 노스님에게 문안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어린 만공은 9척 거구의..
묘령의 여인과 경허 이제 마지막으로 한 소식만 더 하고, 나도 이 버거운 깨달음의 이야기들을 벗어날까 합니다. 동학혁명의 열기도 가라앉고, 해월이 교수형을 당한 무술년(1898) 겨울 어느 날, 찬바람이 무섭게 불어제치고 희끗희끗한 눈발이 날리는 저녁 무렵 천장사를 찾아든 젊은 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자기로 감싼 이 묘령의 여인은 두 눈만 보일 듯 말 듯 내놓은 채, 그 초라한 행색이 걸인에 다름없었습니다. 경내를 몇 번 살피다가 두리번거리더니 경허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 밖에 누가 왔느냐?”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경허가 방문을 여니 여자는 온몸을 떨며 서있었습니다. “스님 제발 저를 방안으로 좀 들어가게 해주세요. 추워서 얼어 죽을 것만 같아요. 스..
법문과 곡차 그의 제자 만공이 전하는 얘기가 이런 맥락에서 참 재미있습니다. 천장사에 어떤 사람이든 스님을 찾아와서 간곡히 불법(佛法)의 도리를 물으면 종일 그대로 앉아 있고 일체 입을 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곡차를 가져와서 올리면 곡차를 자시고 난 후에는 종일이라도 법문을 하시었다고 합니다. 만공이 손님들이 간 후에 스님께 항의했습니다. “스님은 항상 만인평등을 가르치시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편벽하십니까?” 경허 스님의 대답은 천하의 명언이었습니다. 만공의 생애를 지배하는 일언이었지요. “아이 이 사람아! 법문이라는 것은 술김에나 할 짓이지, 맨 정신으로는 할 게 못 돼!” 만공은 이 말씀에서 불법의 깊이를 득파하였다고 합니다. 인용 목차 반야심경
49재: 윤회사상과 적선지가, 향아설위 경허의 말에 강 부자는 감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허의 말은 진정성이 배어있어 타인을 설득하고 굴복시키는 힘이 있었지요. 빈 제사 상에 울려퍼지는 독경소리는 더욱 그윽하고 성스러웠습니다. 49재를 기쁜 마음으로 올리고 난 강 부자는 경허에게 시주를 위해 돈보따리를 내어놓았습니다. “대사님 법문 덕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극락왕생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 보답으로 시주를 더 내놓고 가겠습니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외다. 이 돈으로 인근 30리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시는 것이, 훗날 강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시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님, 저도 이 천장사 부처님께 시주를 해서 복을 좀 지어야..
49재 고사 1883년 5월경이었습니다. 5월은 ‘보릿고개’라 하여 일년중 밥을 먹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나의 부인의 친할머니가 의주사람이었는데 당시 실제로 보릿고개를 초근목피를 삶아먹고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 정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초근목피 먹고 대변보는 것이 애기 낳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는 소리를 내가 직접 들었습니다. 당시 민중들은 산나물로 죽을 쑤어 연명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절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것이었습니다. 경허는 사미승을 불러 그 연유를 물었지요. “뭔 일이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꼬여드는고?” “모르고 계셨습니까? 오늘 법당에서 큰 제사가 있습니다. 읍내에서 제일가는 갑부 강 부자댁 아버지 49재가 있는 날이지요.” “49재를 올리는데 사람들..
경허의 보임과 1880년대 조선민중의 처참한 생활 자아! 다음의 보다 사회적인 맥락이 있는 고사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경허가 천장사에 간 것은 일차적으로 보임(保任, 보림이라고도 말함)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임 혹은 보림이라는 것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인데, 대오를 한 후에 그 경지를 보호하고 지속시키기 위하여 당분간(보통 1년 동안) 특별한 수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하는 연암산 지장암이라는 토굴로 들어가 손수 솜을 놓아 두툼한 누더기옷 한 벌을 지어 입고, 한번 앉은 자리에서 꼬박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1년을 지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물론 오줌, 똥, 밥 먹는 것, 자는 것, 세부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원칙이 있었을 것이지만 경허 스님이 신체를 컨트롤 하는 능력은 현..
방하착의 의미와 조주의 방하저 이 고사는 제가 고려대학교 철학과 3학년 때 중국철학사를 듣다가 ‘방하착(放下着)’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고승의 실례로서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나의 평생을 지배하게 된 위대한 일화였죠. 여기 이 설화의 핵심은 ‘내려놓았다’라는 한마디입니다. 경허는 여인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여인을 ‘내려놓았다[放下].’ 경허에게 이 사건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사미는 이 여인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계속 낑낑대면서 등에 업고 가는 것이죠. 선종에서 잘 쓰는 말로서 이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실상 ‘방하저’로 읽어야 합니다. 마지막의 ‘착(着)’은 본동사가 아니고 조사이며, 진행을 나타내거나 명령, 권고를 나타내는 조사(助詞..
천장사와 개울을 건넌 이야기 백제시대에 창건된 천장사(天藏寺)라는 곳은 경허보다 먼저 출가한 친형 태하(여러 문헌에 ‘太虛’로도 ‘泰虛’로도 기술되고 있다) 스님이 주지로 있었고 친어머니가 바로 그곳에서 공양주보살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는 정말 무궁무진하지만 이제 경허 스님 이야길랑 끊어야 할 것 같네요. 사실 경허의 삶의 모든 굽이굽이가 더할 나위없는 위대한 공안이며 우리에게는 『벽암록(碧巖錄)』보다 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나의 도반 명진이 ‘진짜 중’이라는 말 한 마디를 하고파서 얘기가 여기까지 만연케 되었는데, 경허의 삶의 이야기를 마감 짓기 전에 몇 가지 일화만 소개할까 합니다. 경허가 천장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 무덥던 여름, 하루는 어린 사미..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허의 오도송의 중략된 부분 속의 언어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를 즐기지만, 나는 경허의 오도송의 핵심을 ‘춘산화소조가(春山花笑鳥歌), 추야월백풍청(秋夜月白風淸)’ 운운하는 데 있지 않고 처음과 끝의 탄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이것은 진정 성우 경허의 대오의 경지를 나타내는 확철한 고독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경..
고삐와 고삐 없는 소 ‘무비공(無鼻孔)’이 아니라 ‘무천비공(無穿鼻孔)’이라는 말이죠(경허의 오도송에 ‘무비공’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무천비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콧구멍을 뚫는 ‘코뚜레’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죠. 소는 원래 힘이 세고, 거대한 동물이라서 인간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소가 맹수라면 호랑이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소라는 거대한 동물이 그토록 유순하게 인간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동물이 된 것은 바로 고삐(코뚜레와 당기는 줄을 합한 개념)의 발명으로 인한 것입니다. ‘비공을 뚫는다’는 것은 두 콧구멍 사이의 ‘비중격(鼻中隔)’을 뚫는 것인데 그곳은 너무 깊어도 아니 되고 너무 얕아도 아니 됩니다. 비중격막은 얇아서 뚫기에 적합한 곳이지만..
성우(惺牛)로 다시 태어나다 경허의 웃음은 이제 범부의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순간 경허는 자신의 새로운 법명을 ‘깨달은 소’ 즉 ‘성우(惺牛)’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맑디맑은 빈 거울’이라는 뜻으로 법호를 ‘경허(鏡虛)’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법명, 법호가 모두 스스로 새로 지은 것이죠. 이것은 실로 조선불교의 새출발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자~ 여기 명료하게 풀어야만 할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의 병폐가 한문을 명료하게 따져 읽고 해석치 못하고 두리뭉실 적당히 자기류의 해석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보통 경허의 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보면 ‘콧구멍이 없는 소’ 운운해버리는데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것은 SF영화에나 가능한 가상일 뿐, 실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 절깐에 돌아온 사미는 이 진사의 설화(說話)를 스님들께 여쭈어 보았 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주 화상께서 아무리 선공부에 열심, 망식(忘食)중이라 해도, 발분(發憤)하여 진리를 고구(考究)하고 계신 중이니 스님께 가서 직접 여쭈어보는 것이 가(可)하다.” 사미 원규는 경허가 폐침망찬(廢寢忘餐) 용맹정진 하고 있는 방 앞에 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용감하게 묻습니다(원규는 훗날 동은화상東隱和尙이라는 큰 스님이 된다). “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가 된다, 도대체 이 말이 뭔 뜻이오니이까?” 이 말을 방안에서 듣고 있던 경허! 그 순간이 경허의 진정한 득도의 찰나였습니다. 가장 정통적인 경허행장을 쓴 한암은 이와 같이 이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 부처들이 태어..
경허의 용맹정진과 이 진사의 문안 그리고 강원의 강백으로서의 자기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전국 각지에서 스님에게 경전을 배우겠다고 몰려든 학인들에게 강원의 폐쇄를 선포합니다. 만화 스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강원을 폐쇄하고 학인들을 다 흩어지게 하였으니, 만화 스님으로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더니 내가 왔는데도 나오지 않겠는가?” “죄송하옵니다. 스님.” “강원을 폐쇄하고 학인들을 다 흩어지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죄송한 일이오나 그렇게 했습니다. 스님.” “네 이놈! 감히 누구 맘대로 강을 폐하고 학인들을 내보낸단 말이냐?” “죽은 문자에만 매달리고 경구에만 눈이 멀어 더 이상 허튼소리를 지껄일 수 없습니다. 스님!” 확철하게 깨닫기 전에는 일체 세간에 나오지 ..
말로 설파한 생사일여, 정말 생사일여냐? 공포와 오한에 떨며 느티나무 등걸에 기대어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찬란한 아침 햇살이 동욱의 적삼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동욱 은 갑자기 산다는 게 무엇이냐, 죽는다는 게 무엇이냐, 내가 『금강경』을 운운하며 생사일여(生死一如)를 자신있게 강론했건만 지금 죽음의 귀신이 그토록 무서워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니, 도대체 내가 20년 넘도록 쌓아온 지식의 공덕이 뭔 소용이냐, 온갖 상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강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했고 뜬구름처럼 보였습니다. 『법화경』의 오묘한 비유들을 그토록 재미있게 설파하고,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모험을 그토록 환상적으로 그려나갔건만 지금 이 내 꼬라지가 무엇이냐? 정말 내가 무주(無住, 집착..
동학 전도의 비결: 콜레라 여기에 핵심적인 ‘물이나 음식을 반드시 끓여 먹으라’라는 명제가 빠져있는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미생물학의 성과가 전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태였습니다. 그러나 ‘연병윤감’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괴질은 전염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전염루트를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서운 통찰력이라 아니 말할 수 없습니다. 음식물이나 물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놀라운 형안이 있었던 것이죠.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는 1864년 대구 남문밖 관덕당 뜰에서 처형당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죠. 그 당시 동학교도는 전체 3천 명 정도였고 교조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져 세력은 쇠미했습니다.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
해월과 경허, 그리고 윤질 콜레라 지금 동욱이가 자기 옛 스승을 찾아나선 이 시기는 바로 동학의 제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이 포접제도를 활용해가면서 가열차게 동학사상을 민중의 삶 속으로 침투시키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1880년에는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우리민족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동경대전(東經大全)』 최초의 목판본이 간행됩니다. 탄압 속에서 간행된 이 경전이야말로 우리민족 근대정신의 정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해월(海月, 1827년생)과 경허(鏡虛, 1849년생)! 나이는 해월이 한 세대 위이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같은 민중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허는 철저히 개인적이며 내면적 수양을 통해 새로운 정신사적 혁명을 수립하려고 했고, 해월은 철저히 공동체적이며 사..
콜레라균의 19세기 역사와 소독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불행 기실 ‘호열자(虎列刺)’라는 이름을 썼다면, 그것은 이미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내가 경허의 대화내용에서 “호열자” 라는 말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실상 1879년 당시에는 조선에 호열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의학계에는 ‘사기(邪氣)’라는 막연한 개념만 있었지 ‘미생물(microorganism)’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콜레라균은 현미경을 통해보면 그냥 육안으로 쳐다볼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곽란(霍亂)을 일으킬 정도로 감염되려면 최소한 1억 개, 많으면 100억 개의 콜레라균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맨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콜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