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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석별가 송오광문(以惜別歌 送吳廣文) 誰勉於高而天若高 誰勉於厚而地若厚 誰勉於善而人性若善焉 是知天地人三才之所以爲三才者 皆出於自然 不待其有所作爲 則夫自然也者 庸非萬物與萬事之本體乎 草木之榮枯 誰使榮枯 昆蟲之動蟄 誰使動蟄 以至人飢食而渴飮 愛親而敬長 誰使之飮食而愛敬哉 我小也而人強之大 我卑也而人強之尊 夫強之皆非自然也 乃人所作爲者也 則且不欲強之於人也 况我本小也而我強欲大 我本卑也而我強欲尊者乎 我苟大也而人強之小 我苟尊也而人強之卑 人雖欲恣胷臆於好惡 抑何害於我之自然乎 天其肯與之乎 其在人者 且有所不快於我也 况大我焉尊我焉而我有所喜 卑我焉小我焉而我有所恨 則是我亦與於作爲之間也 得不爲自然者之大罪乎 試取宦道上言之 仕止久速 皆以其可者 孔夫子之行藏也 之行藏也 非出於自然者乎 先民有言曰 自然之外更無天 斯言也豈欺我哉 廣文吳公 性溫而雅 操靜而篤..
여유박사 병서(與柳博士 並序) 百藝皆有宗 堯舜禹湯 治天下之宗也 臯夔稷契周召之徒 輔相之宗也 孔子仁義之宗也 孫吳之屬 用兵之宗也 黃老 道家之宗也 凡欲爲其事者 舍其宗而從事於枝流者 不亦疏乎 虞有典謨 夏有誓誥 以至岐周之世 始有風雅之作 其名曰詩本性情 而可以感發人 可以懲創人 可以考政治之得失風俗之美惡焉 則曰風雅者 非詩之宗乎 降而後也 風雅之體 變而爲五七言 然其冲澹朴雅之美 或相近焉 以至唐,宋之時 作者競以淸虛工麗爲尙 夫淸者絶塵 虛者遺實 工者主偶 麗者上華 夫絶塵而一於淨 遺實而專於影 主偶而求靑黃 上華而摹錦繡 傳之以此 學之以此 將此反爲宗而止歟 嗚呼 詩本性情 可以感發人 可以懲創人 可以考政治之得失風俗之美惡焉 則夫人之性情 奚獨在淨影之中靑黃錦繡之間哉 此可以感發人 此可以懲創人 此可以考政治得失與夫風俗美惡乎 以今觀之 關關雎鳩 在河之洲 吾未見其..
식미가 병서(食薇歌 並序) 嗚呼 食者人之所賴以生 世未有不食而能延其生者 於此有人焉 不幸遇疾甚怪 其中年也 食則必噎 噎必殆絶 乃專廢穀食 替以草木之實 以爲生者 于今十數年 人見其如此也 其憂之者屬也 危之者舊也 譏之者不親疎也 疑之者乃其生平不見信也 人未有不食而生者 此人獨不食焉 亦自憂也 亦自危也 亦自疑也 奚惑乎人之疑之也 然而此人雖不食b029_299a異於人也 而乃其心則亦未嘗不同人 見人或不悅於食而一不食者 必據理而言其不可不食 勸以食之 或譏之曰 若且勸人之食耶 必復之曰 噫 吾之噎廢食 乃千萬世倘有焉 夫稀有者異也 人可自處以異 可處人以異耶 一不食 半日之吾也 二不食 一日之吾也 以至三不食四不食 亦皆一兩日之吾也 吾直恐人或疑於吾所愛也 吾何爲不勸之哉 夫食有當食不當食 苟不當食者 雖死不可食 若夫當食也 此乃天之賜也 吾其肯不食耶 嗚呼 彼不食者 乃其生..
자정송도 병서(慈庭頌禱 並序) 人子享親之誠 曷嘗有竆已哉 謀所以奉其親者 宜無所不至 欲其安也 則盤石危矣 欲其富也 則大海貧矣 欲其尊也 則五岳卑矣 欲其榮也 則時英色謝矣 欲其壽也 則天地且須臾矣 是雖在常日 且未或不然 矧於其初度耶 是雖在親年未甚高 且未或不然 矧今親年七十有七歲乎 矧今七十有七歲之初度乎 試量我今日頌禱之情 東海之水 不足以喩其深 大地之載 不足以喩其重 品物之殷 不足以喩其多 鬼神之智 不足以細悉 日月之明 不足以燭盡 兄若弟矣 齊稱壽觴 跪奉我慈天 自不堪切切之情 子興浡起浡等 遂拜手稽首 爲頌禱之詞曰 千年享矣 千年享矣 千千年享矣 又千年享矣 曰我斑衣之主矣 維旨味之相矣 萬年永矣 萬年永矣 萬萬年永矣 又萬年永矣 曰我斑衣之主矣 維溫凊之省矣 如山之久矣 如山之久矣 如山山之久矣 又如山之久矣 曰我斑衣之主矣 維歌舞之奏矣 白日之照矣 蒼天之臨矣..
은거사(隱居詞) 有松百株 有竹千竿 乃如之人兮 伊處其間 不營不求 其心則閒 有竹千竿 有松百株 乃如之人兮 伊宅其幽 何思何慮 有樂有憂 采之漁之 于山于水 維兄維弟 爲甘爲旨 不罹之貽 天只則喜 或耕於野 或耘於峽 維兄維弟 是事是業 樂我天只 靡思不及 西歸遺藁卷之一
서귀유고서(西歸遺藁序) 朴珪壽 西歸李公詩文共若干篇 後孫節度承淵 裒輯校正 附以公伯氏雲巖遺稿 求序於余曰 先祖兄弟 富有著述 中世燬於火 今玆斷爛殘編 不忍遂付蠹鼠 爰謀鋟梓 庶幾君子之藉以尙論 而來裔之有所承守也 余旣讀而歎曰 公兄弟大義高節 固不待文字之傳不傳耳 然寂廖一卷書 使人激昻悲憤 不能自已 是豈徒以文章而然哉 余少讀黃文景公皇明陪臣傳 敍述司諫李公興浡上疏斥和 與其弟有慷慨語 然不爲其弟立傳 及得陶菴李文正公所著錄 始知其弟執義諱起浡 而兄弟秉義棄官 相携入山 終老靡悔 雲巖,西歸 人稱所居而爲號 黃公之不爲弟立傳 殊恨其有遺也 嗟乎 歷代興亡之際 忠臣烈士之成仁全節 磊落可記 而未有盛於宋元之交 自夫故家世族 以至伶人賤工 以姓名傳者 殆千百計 其隱蹤晦跡 又不知幾何其人也 然從未聞藩服侯邦 最多死節之陪臣 自靖之遺民 如東國之當崇禎季年也 此其故何哉 亦皇朝眷顧..
서귀유고서(西歸遺藁序) 김상현(金尙鉉) 陪臣者 天下之蕃國之臣也 其接見於天子者 服天子繐衰七月而已矣 天子故在 而戎裔梗躪 藩國力弱 爲城下之盟 則陪臣不仕於本國可乎 曰可 可之者義之也 天子旣亡 戎裔踞中夏 則陪臣不仕於本國 亦可乎 曰亦可 亦可之者 亦義之也 此其義 蓋本於夫子之言 夫子曰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使周鼎淪 而秦楚主天下 魯猶受其封 則夫子如之何 吾知其必不被髮左袵 不惟不被髮左袵 吾知其必不仕於魯 而乘桴浮海 不待道之不行矣 崇禎季年 我國有不仕者 淸陰金文正,桐溪鄭文簡諸公是已 淸陰以有不事汚君之譖 爲相一出 章三十上而歸山 以明其心 其時有執義李公諱起浡 與其兄司諫諱興浡 始以布衣上疏請斬建州通和之使 函送天朝 及南漢之圍 帥湖南義勇 手劒斬虜九級 聞媾成 隱西歸山中 屢除官不拜 通判黃州 文狀不書淸年號 赴任九日而罷 盖公故以此見其志 此在崇禎告終之前..
서귀집서(西歸集序) 金炳學 微子去之 箕子爲奴 比干諫而死 三人者所處不同 而夫子槪稱之曰 殷有三仁 以其同出於至誠惻怛 而全其心之德也 我朝丙丁之難 三學士爲明天子 捐軀殉節 西歸李公兄弟 棄官入山 沒身自靖 此豈可以死生差殊觀哉 有夫子作 則亦曰仁而已矣 然殷之三仁 皆王室懿親 國存與存 國亡與亡 固其分義 而西歸諸公 外服之陪臣耳 夫以陪臣而爲天子立慬者 此所以有辭於天下萬世也 嗚呼 大節旣如彼 則文章特餘事 而俊偉磊落 亦自可誦 至若請斬虜使之疏 倡義之檄 黃山之詩 激昻慷慨 有足以聳動人 尤不可不傳也 其曰得於大學 可以入德 得於論語 可以知人 得於孟子 可以存理 得於中庸 可以明道體 得之於詩 可以理性情 得之於禮 可以謹節文 患不得之 苟得之 學如是正 道如是足矣 非深於經術而能若是立言乎 不侫淸陰後也 夙慕公節義 而今讀遺集 益知文章學術 又有過人者 感歎而爲之序 崇..
4. 결론 이상과 같이, 17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활동한 한 악사의 생애를 추적해 보았다. 73년간 지속된 송경운의 삶은 대략 158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파 연주에 오롯이 바쳐진 그의 시간은 1627년 정묘호란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그가 속한 공간이 달라진 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송경운은 50세 무렵까지는 서울의 화려한 잔치마다 불려 다니며 최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렇게 분주하고 몸값 높은 연예인으로 살아가던 송경운이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근거지를 전주로 바꾼 이후 그의 삶에서 충일하게 배어나는 고요한 기쁨과 대비했을 때 비교적 선명해진다. 이런 질적 변화를 대비하는 이기발의 서술방식에는, 송경운이 전주로 내려온 것이 이 악사..
(3) 퍽 이상한 두 사람의 만남 이상과 같이 이기발이 시조를 즐겨 듣고 사대부의 내면을 담은 그 메시지에 공감하는 적극적인 향유자이자 그 노랫말을 한문으로 정확하게 옮길 역량을 지닌 번역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송경운의 본격적 등장에 앞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기발은 「송경운전」의 서사 모두(冒頭)에서 송경운과 전주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재현하며, 자신의 존재감 역시 강하게 스며들도록 공을 들였다. 내가 탄 말 바로 앞에 다가와 그제야 자세히 보았더니, 바로 장안의 옛 악사 송경운이었다. 무심자는 예전에 그와 인연이 있었기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지팡이를 짚은 건 늙어서일 테고, 짤막한 베옷을 걸친 건 가난해서일 테고, 그냥 걸어가는 건 말이 없어서일 텐데, 그렇게 마음껏 노래하는 건 어째서인가?” 경운..
(2) 시조와 이기발 이기발은 전주 사람이다. 전주부의 서쪽 외곽지역인 황방산 기슭에서 나고 자란 그는 24세가 되던 1625년에 상경하여 그로부터 대략 10년간 서울에서 학업과 벼슬살이를 해나갔다. 그러다 병자호란(1636) 이후로는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접고 돌아와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에서 남은 생을 오롯이 보냈다. 몰락한 모습으로 고향의 북적이는 도성에 다가가는 중년 남성 이기발의 내면은 썩 유쾌하기 어려울 듯하며 그의 초라한 행색은 이런 마음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여기서는 처사의 삶을 선택한 뒤 황방산의 집과 전주 도성 사이를 오가는 이기발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귀유고』 권2에 수록된 해당 작품의 제목은 「저녁에 돌아오다」[暮歸]이다: “朝傍東城行 아침에 ..
4. 결론 이상과 같이, 17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활동한 한 악사의 생애를 추적해 보았다. 73년간 지속된 송경운의 삶은 대략 158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파 연주에 오롯이 바쳐진 그의 시간은 1627년 정묘호란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그가 속한 공간이 달라진 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송경운은 50세 무렵까지는 서울의 화려한 잔치마다 불려 다니며 최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렇게 분주하고 몸값 높은 연예인으로 살아가던 송경운이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근거지를 전주로 바꾼 이후 그의 삶에서 충일하게 배어나는 고요한 기쁨과 대비했을 때 비교적 선명해진다. 이런 질적 변화를 대비하는 이기발의 서술방식에는, 송경운이 전주로 내려온 것이 이 악사..
3. 전주에서 다시 만난 송경운과 이기발(李起浡) 자기 묘사 이 장에서는 「송경운전」에서 가장 정채를 띠는 한 단락을 검토하며 작가 이기발의 내면을 따라가 보고, 그에게 송경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해당 단락은 본디 「송경운전」의 서사에서 가장 앞 부분에 배치된 것으로, 10년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시점의 작가가, 만년의 송경운과 마주치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기발은 「송경운전」의 본격적 시작이 되는 해당 장면의 도 입부를 다음과 같은 ‘자기’ 묘사로 출발한다. 무심자(無心子)는 말한다. 나는 해진 베옷을 입고 여윈 말을 타고 노복(奴僕)도 없이 혼자 전주성 서쪽을 따라 얼음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無心子曰: 余嘗以弊布衣, 乘羸馬, 無蒼頭而獨傍..
(2) 정묘호란을 계기로 달라진 삶의 공간: 서울과 전주 앞서 송경운의 생애를 개략하며 밝힌 것처럼, 송경운의 삶은 정묘호란을 계기로 변화했다. 그 이전의 삶이 부유한 상류층에게 각광 받는 비파 연주자로서 화려한 명성을 누리는 것이었다면, 그 이후의 삶은 음악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곁에 언제나 머물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악사 송경운의 후반생은 음악의 본질 깊숙한 곳에 나아간바, 한층 높고 빛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음악가로서의 성숙은 정묘호란 이후 송경운의 거주 공간이 달라진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본절에서는 악사 송경운을 성장하게 한 공간의 면모를 그의 생애와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1) 서울에서 흘러간 반생 ① ..
2. 악사(樂師) 송경운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 (1) 임진왜란(1592)과 정묘호란(1627)을 통과하며 이기발은 송경운을 ‘악사’(樂師)라 불렀다. 「송경운전」을 다룬 최초의 업적인 「조선후기 예술가의 문학적 초상」에서 박희병 교수는 이 호칭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악사’의 의미를 악인(樂人)에 대한 범칭이 아니라 장악원에 속한 체아직(遞兒職, 조선시대에 설치된 특수관직)으로서 송경운의 직함에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 이 점은 서울에서 활동하던 송경운이 정묘년(丁卯年, 1627) 이후 전주로 이주하여 정착한 사실 과 맞물리며 그가 장악원의 신역(身役)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가로서의 삶을 구가하게 됐다는 의미부여로 이어졌다【박희병, 「조선후기 예술가의 문학적 초상」, 『한국고전인물전연구』, 한길사,..
이기발(李起浡)의 송경운전(宋慶雲傳)과 17세기 전주 재현 역사지리를 접목한 한문수업의 모색 김하라(전주대) 국문초록 「송경운전」(宋慶雲傳)은 17세기의 비파 연주자 송경운(宋慶雲)을 입전한 한문 산문으로, 한국의 문학사와 음악사에서 공히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그 작가인 이기발(李起浡, 1602~1662)은 송경운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이 빼어난 음악가의 생애를 재현했다. 이기발은 전주에서 나고 자란 사대부 문인으로, 20대 중반이던 1625년부터 10년 남짓 서울에 거주하며 공부와 벼슬살이를 했고 1636년 병자호란 이후로는 모든 관력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 인물이다. 한편 송경운은 1580년대 중, 후반의 서울에서 이담(李憺, 1567~1644)으로 추정되는 종친..
국문초록 「송경운전」(宋慶雲傳)은 17세기의 비파 연주자 송경운(宋慶雲)을 입전한 한문 산문으로, 한국의 문학사와 음악사에서 공히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그 작가인 이기발(李起浡, 1602~1662)은 송경운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이 빼어난 음악가의 생애를 재현했다. 이기발은 전주에서 나고 자란 사대부 문인으로, 20대 중반이던 1625년부터 10년 남짓 서울에 거주하며 공부와 벼슬살이를 했고 1636년 병자호란 이후로는 모든 관력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 인물이다. 한편 송경운은 1580년대 중, 후반의 서울에서 이담(李憺, 1567~1644)으로 추정되는 종친(宗親)의 노비로 태어났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면천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50대 중반까지 악사로 활동하..
1. 성당 / 2. 폐허가 된 마을 / 3. 마법 협회 / 4. 카타콤 / 5. 지하 감옥 6. 쌍둥이 성채 / 7. 폐허가 된 왕성 / 8. 지하 연구소 / 9. 오염된 심부( B, C 엔딩 ) / 10. 끝자락의 땅( A 엔딩) 성당(Cathedral, White Parish) 폐허가 된 마을 & 폐허가 된 왕성 초입(Cliffside Hamlet) 마법 협회(Witch's Thicket) 카타콤(Catacombs) 지하 감옥(Stockade) 쌍둥이 성채 & 끝자락의 땅(Twin Spires & Hinterlands) 폐허가 된 왕성(Ruined Castle) 지하 연구소 & 오염된 심부(Verboten Domain & The Abyss) 인용 목차
3. 예물은 검소한데 욕망은 사치스럽다 威王八年, 楚大發兵加齊. 齊王使淳於髡之趙請救兵, 齎金百斤, 車馬十駟. 淳於髡仰天大笑, 冠纓索絶. 王曰: “先生少之乎?” 髡曰: “何敢!” 王曰: “笑豈有說乎?” 髡曰: “今者臣從東方來, 見道傍有禳田者, 操一豚蹄, 酒一盂, 祝曰: ‘甌窶滿篝, 汚邪滿車, 五穀蕃熟, 穰穰滿家.’ 臣見其所持者狹而所欲者奢, 故笑之.” 於是齊威王乃益齎黃金千溢, 白璧十雙, 車馬百駟. 髡辭而行, 至趙. 趙王與之精兵十萬, 革車千乘. 楚聞之, 夜引兵而去. 해석 威王八年, 楚大發兵加齊. 위왕 8년에 초나라가 크게 병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했다. 齊王使淳於髡之趙請救兵, 제나라 왕은 순우곤에게 조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러 齎金百斤, 車馬十駟. 금 100근과 사두마차 10대를 가지고 가게 했다. 淳於髡..
성스런 조정을 하례하는 말하성조사(賀聖朝詞) 선종(宣宗) 露冷風高秋夜淸 月華明披香殿裏 欲三更沸歌聲 擾擾人生都似幻 莫貪榮好將美醁 滿金觥暢歡情 『東史綱目』 第7下 해석露冷風高秋夜淸로랭풍고추야청이슬은 차갑고 바람은 높고 가을 밤 맑아서月華明披香殿裏월화명피향전리달빛 밝고도 분명해 향기로운 정전 속으로 퍼지니 欲三更沸歌聲삼경인데도 노랫소리 들끓네.擾擾人生都似幻요요인생도사환어지러운 인생은 모두 환상 같은 것莫貪榮好將美醁막탐영호장미록영화로운 호사를 탐낼 것 없으니 좋은 술 가져와滿金觥暢歡情만금굉창환정금 술잔에 가득 채워 정을 즐기세. 『東史綱目』 第7下 해설고려 전기의 만당풍(晩唐風)은 그 자체가 지닌 형식 위주에 과학풍(科學風)이 지닌 유희적(遊戱的) 성격이 결합되면서 더욱더 부화무실(浮華無實)한 방향으로 흘렀다...
자연 속에서절구(絶句) 최충(崔沖) 滿庭月色無煙燭 入座山光不速賓更有松絃彈譜外 只堪珍重未傳人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滿庭月色無煙燭만정월색무연촉뜰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이고入座山光不速賓입좌산광불속빈자리에 들어온 산 빛은 초청하지 않은 손님이네.更有松絃彈譜外갱유송현탄보외다시 소나무가 거문고 되어 악보 바깥을 연주하니只堪珍重未傳人지감진중미전인다만 진중한 것일 뿐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네.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정계의 원로요, 학계의 태두요, 교육계의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추앙되는 작자는, 부귀 영화에 풍류마저 아울러 갖춘, 실로 희대의 유복인이었다. 이 시는 그가 어느 달 밝고, 바람 맑은 밤, 송죽(松竹) 소리 절로 음악인 양 그윽한 가운데, 문득 읊은 한 수의 즉흥이었다고, 최자(崔滋)는 말하고..
궁궐【금중(禁中): 금령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제왕의 기거하는 궁궐 안을 가리킴[禁令所及範圍之內, 指帝王所居宮內]】 동쪽 연못에서 새로 자란 대나무금중동지신죽(禁中東池新竹) 최승로(崔承老) 錦籜初開粉節明 低臨輦路綠陰成금탁초개분절명 저림련로록음성宸遊何必將天樂 自有金風撼玉聲 신유하필장천악 자유금풍감옥성 『小華詩評』 해석錦籜初開粉節明대껍질이 막 벌어져서 마디【분절(粉節): 띠에 흰 가루가 있는 대나무 마디[帶有白粉的竹節].】가 분명하다가低臨輦路綠陰成임금 가는 길에 낮게 임해서 녹음을 이루었네.宸遊何必將天樂임금님 거둥에 하필 천악을 거느리겠는가?自有金風撼玉聲절로 가을바람 불 땐 옥소리가 울릴 텐데. 『小華詩評』 해설이 시는 궁궐 동쪽 못가에 새로 자라는 대순을 읊은 노래이다. 궁궐 못가에 죽순껍질에 생기는 흰..
남을 대신하여 원정대에 부치다대인기원(代人寄遠) 최승로(崔承老) 一別征車隔歲來 幾勞登覩倚樓臺 雖然有此相思苦 不願無功便早迴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一別征車隔歲來일별정거격세래한 번 원정 가는 수레에 이별하고서 한 해 지났으니幾勞登覩倚樓臺 기로등도의루대 몇 번 애쓰며 올라서 보며 누대에 기댔던고?雖然有此相思苦 수연유차상사고 비록 이렇게 이런 상사의 괴로움이 있더라도不願無功便早迴 불원무공변조회 전공(戰功) 없이 다시 일찍 돌아오는 건 원치 않아요.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이 시는 출정 나간 남편에게 바치는 여인의 심정을 대신해 지어, 멀리 있는 남편에게 보낸 시이다. 출정 나간 남편과 이별한 지 1년이 지나가니, 보고 싶어 누대에 기대어 바라보고자 다락에 오른 것이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서로..
오자서묘에서오자서묘(伍子胥廟) 박인량(朴寅亮) 掛眼東門憤未消 碧江千古起波濤今人不識前賢志 但問潮頭幾尺高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掛眼東門憤未消괘안동문분미소동문에 눈을 빼어 걸어놔도 분은 삭혀지지 않아서碧江千古起波濤벽강천고기파도천 년간 벽강에 파도만 일어나네.今人不識前賢志금인불식전현지지금 사람들은 예전 현인의 뜻은 모르고, 但問潮頭幾尺高단문조두기척고다만 파도의 높이 몇 척이냐고만 묻누나.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이 시는 오자서(伍子胥)의 사당(祠堂)에서 지은 영사시(詠史詩)이다. 오자서가 백비(伯嚭)의 모함을 받아 죽으면서 했던 분노가 천고가 지난 지금에도 파도가 되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옛 어진 이(오자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맹렬한 조수(潮水)를 보고 파고(波高)가 몇 자나 높은..
송에 사신으로 와서 사주의 귀산사를 지나며 사송과사주귀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 박인량(朴寅亮) 巉巖怪石疊成山 上有蓮坊水四環 塔影倒江翻浪底 磬聲搖月落雲間 門前客棹洪濤疾 竹下僧碁白日閑 一奉皇華堪惜別 更留詩句約重攀 『東文選』 卷之十二 해석 巉巖怪石疊成山 참암괴석첩성산 가파른 암석 괴이한 바위 첩첩히 산을 이루고 上有蓮坊水四環 상유연방수사환 위에는 절이 있어 물이 네 방향으로 둘렀다. 塔影倒江翻浪底 탑영도강번랑저 탑 그림자 강에 거꾸러져 물결 밑에 흔들리고 磬聲搖月落雲間 경성요월락운간 경쇠 소리 달에 흔들려 구름 사이에 떨어진다. 門前客棹洪濤疾 문전객도홍도질 문 앞에 나그네의 노에는 큰 파도가 빨리 몰아오고 竹下僧碁白日閑 죽하승기백일한 대나무 아래 스님의 바둑판에는 환한 햇살이 한가하게 가네. 一奉皇華堪惜別 일봉..
경주 용삭사 누각에서 운서상인에게 부치다경주용삭사각 겸간운서상인(涇州龍朔寺閣 兼柬雲栖上人) 박인범(朴仁範) 翬飛仙閣在靑冥 月殿笙歌歷歷聽燈撼螢光明鳥道 梯回虹影到岩扃人隨流水何時盡 竹帶寒山萬古靑試問是非空色理 百年愁醉坐來醒 『東文選』 卷之十二 해석翬飛仙閣在靑冥휘비선각재청명날개 치는 신선의 누각 푸른 하늘에 있고月殿笙歌歷歷聽월전생가력력청월전【월전(月殿): 전설에 달 속에 있다는 궁궐, 왕비가 사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름.】의 생황 소리 역력히 들리는 듯해.燈撼螢光明鳥道등감형광명조도등불 반디불이 흔들 듯 새 길【조도(鳥道): 산길이 험하여 나는 새나 넘을 수 있는 곳을 말한다.】을 비추고梯回虹影到岩扃제회홍영도암경사다리 무지개 그림자 휘돌 듯 암자의 빗장에 이르네.人隨流水何時盡인수류수하시진사람은 흐르는 물 따라 언젠들..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최치원(崔致遠)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孤雲集』 卷一 해석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孤雲集』 卷一 해설이 시는 최치원(崔致遠)이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 이후 독서당에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세상의 온갖 시비(是非)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우의적(寓意的)으로 읊은 시이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는 자신이 거처하는 가야산 독서당 주변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물의 기세를..
밤에 당나라 성에서 놀면서 선왕의 악관에게 주며야유당성 증선왕악관(夜遊唐城 贈先王樂官) 최치원(崔致遠) 人事盛還衰 浮生實可悲인사성환쇠 부생실가비誰知天上曲 來向海邊吹수지천상곡 래향해변취水殿看花處 風囹對月時수전간화처 풍령대월시攀髥今已矣 與爾淚雙垂반염금이의 여이루쌍수 해석人事盛還衰 浮生實可悲사람 삶이란 융성했다가 다시 쇠퇴하니 뜬 삶이란 참으로 슬프구나. 誰知天上曲 來向海邊吹누가 알았겠는가? 천상의 곡조를 해변으로 향해 와서야 부르게 될 줄을. 水殿看花處 風囹對月時물의 궁전에서 꽃을 보던 곳에서, 바람 부는 감옥에서 달을 마주할 때에 불렀는데 攀髥今已矣 與爾淚雙垂선왕【반염(攀髥): 황제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애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을 주조하였..
금천사 주지에게 주며증금천사주인(贈金川寺主人) 최치원(崔致遠) 白雲溪畔刱仁祠 三十年來此住持笑指門前一條路 纔離山下有千歧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白雲溪畔刱仁祠백운계반창인사흰 구름이 있는 시냇가에 사찰【인사(仁祠): 불교 사원의 별칭이다. 범어(梵語) Śākya의 음역(音譯)인 석가(釋迦)의 뜻이 능인(能仁)인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을 창건하고三十年來此住持삼십년래차주지30년 이래 이곳의 주지스님이었지.笑指門前一條路 소지문전일조로 웃으며 가리키며 말하네. “문 앞엔 한 갈래 길이 있을 뿐이지만纔離山下有千歧재리산하유천기조금이라도 산 아래로 벗어나면 천 갈래 길이 있어서이지요”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이 시는 미상(未詳)인 금천사 주지의 삶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에서는 번뇌가 없는 절대적 참됨의 세계인 ..
황산강의 임경대에서황산강임경대(黃山江臨鏡臺) 최치원(崔致遠) 烟巒簇簇水溶溶 鏡裏人家對碧峰何處孤帆飽風去 瞥然飛鳥杳無蹤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이내 낀 봉우리는 빽빽하고 물은 넘실넘실 거려鏡裏人家對碧峰경리인가대벽봉임경대 속 사람의 집들이 푸른 봉우리를 마주했네. 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어느 곳의 외로운 돛단배 바람 안고 가는가?瞥然飛鳥杳無蹤별연비조묘무종별안간 날던 새처럼 아득해지더니 사라졌네.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이 시는 황산강에 있는 임경대에서 바라본 풍경을 노래한 시이다. 멀리 안개 속에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강물은 넘실대며 흘러가고 있다. 마침 황산강 위로 돛단배 한 척이 바람을 가득 안은 채 가고 있는데,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날아가는 새처럼 시야에서 사..
윤주의 자화사에 올라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 최치원(崔致遠)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登臨暫隔路岐塵 등림잠격로기진 높이 올라 잠시나마 속세 먼지 떠났지만 吟想興亡恨益新 음상흥망한익신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더치네. 畫角聲中朝暮浪 화각성중조모낭 뿔 나팔【화각(畫角): 채색 그림을 넣은 고대 악기로 軍中의 시각을 알리거나 사기 진작에 씀. 윤주에 전쟁이 많았음을 암시.】 소리 속에 아침저녁 물결 치고 靑山影裏古今人 청산영리고금인 청산【청산(靑山): 묘지를 가리킬 때가 많음. 자화사 인근의 공동묘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면 인생의 허무함이 강조됨.】 그림자 속에서 고금의 인간 무상해라...
길을 가던 도중에 짓다 도중작(途中作) 최치원(崔致遠) 東飄西轉路歧塵 獨策羸驂幾苦辛 不是不知歸去好 只緣歸去又家貧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東飄西轉路歧塵 동표서전로기진 동쪽으로 번쩍 서쪽으로 번쩍 갈림길에서 먼지 날리며 獨策羸驂幾苦辛 독책리참기고신 홀로 야윈 참마 채찍질 했으니 얼마나 괴로웠던가? 不是不知歸去好 불시부지귀거호 고향으로 돌아감이 좋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나 只緣歸去又家貧 지연귀거우가빈 다만 버리고 돌아가더라도 또한 집이 가난한 걸.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 이 시도 빈공과(賓貢科) 합격 후 율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 사이에 길을 가던 도중에 지은 것이다. 이국(異國)에서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향은 소중하다 하겠지만, 돌아갈 고향은 고운..
우강역의 정자에서 짓다제우강역정(題芋江驛亭) 최치원(崔致遠) 沙汀立馬待回舟 一帶烟波萬古愁直得山平兼水渴 人間離別始應休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沙汀立馬待回舟사정립마대회주모래 있는 물가에 말 세우고 돌아오는 배 기다리니一帶烟波萬古愁일대연파만고수한 줄기의 안개 낀 파도는 만고의 근심이구나. 直得山平兼水渴직득산평겸수갈다만 산이 평지가 되고 맞물려 물이 고갈될 수 있다면人間離別始應休인간이별시응휴인간의 이별이란 비로소 응당 사라질 텐데.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이 시는 빈공과(賓貢科) 합격 후 율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 사이에 우강역 정자(亭子)에 올라서 지은 것으로, 이별을 소재로 하여 그 슬픔을 시로 노래한 것이다. 작가는 우강역 정자(亭子)가 있는 나루터 모래섬에 자신이 타고 왔던 말을 세..
강남의 계집아이강남녀(江南女) 최치원(崔致遠) 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강남탕풍속 양녀교차련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성야치침선 장성조급현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소학비아음 다피춘심견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자위방화색 장점염양천却笑隣舍女 終朝弄機杼각소린사녀 종조롱기저機杼終老身 羅衣不到汝기저종로신 라의부도여 해석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강남땅은 풍속이 방탕하여 딸 기를 때 예뻐하고 귀여워만 해.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심성은 되바라져[冶] 바느질을 부끄러워하고 화장하고 빠른 음악 연주하지만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배운 것은 우아한 음악이 아니고 대부분 춘심(春心)에 이끌려진 것이라네.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스스로 “이 고운 미색 청춘【염양천(艷陽天): 아름다운 청춘의 때. 염양(艷陽)은 봄날의 아름다운 풍광. 천(天)은 운명. 천(天)은 문집에 ‘..
여관의 밤비 우정야우(郵亭夜雨) 최치원(崔致遠) 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여관궁추우 한창정야등 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 자련수리좌 진개정중승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여관에 늦가을 비 내리고 차가운 창에는 고요한 밤의 등불이 켜져 있네. 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 가련쿠나, 근심 속에 앉은 모습 진정 선정에 든 스님 같구나.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 이 시는 역(驛) 마을의 객사(客舍)에서 가을비를 보고 읊은 것으로, 세속적 이상향(理想鄕)을 추구한 시이다. 나그네는 비 내리는 깊은 가을밤에 시름에 겨워 앉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과 애상(哀傷)은 하나의 시련일 뿐이어서, 그 자체가 선승(禪僧)의 고행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고행의 끝에 이르는 경지는 세로(世路)에서 얻는 이상향일 것이..
가을밤 비 내리고 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崔致遠) 秋風唯苦吟 擧世少知音 추풍유고음 거세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 秋風唯苦吟 擧世少知音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니, 온 세상에 절친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밖에 한밤 중 비 오니, 등 앞엔 만 리를 달리는 마음【위의 시는 당에서 썼다고 알려졌으나, 『계원필경』(당에서 지은 시만 모아놓음)에 실려 있지 않기에, 신라에서 지은 걸 알 수 있음. 그렇기에 萬里心은 ‘향수’가 아닌, ‘불우한 삶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임.】.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선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천황을 깨치는 큰 공이 있었으므로 우리나라 학자들이 모두 종장으로 삼았다[崔致遠孤..
당나라에 바친 태평 기리는 찬가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 진덕여왕(眞德女王) 大唐開鴻業 巍嵬皇䣭昌 대당개홍업 외외황태창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지과융의정 수문계백왕 統天崇雨施 物理體含章 통천숭우시 물리체함장 深仁諧日月 撫運邁時康 심인해일월 무운매시강 幡旗旣赫赫 鉦鼓何煌煌 번기기혁혁 정고하황황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외이위명자 전복피천앙 淳風凝幽顯 遐邇競呈祥 순풍응유현 하이경정상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 사시화옥촉 칠요순만방 維獄降帝輔 維帝任忠良 유옥강제보 유제임충량 五三含一德 昭我皇家唐오삼함일덕 소아황가당 해석大唐開鴻業 巍嵬皇䣭昌큰 당나라 위대한 업을 여시니 깎아지를 듯 높은 황제의 교화가 창성하네.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전투복 입고서 전쟁을 그치게 함으로 평정하였고 문을 닦아 모든 왕을 계승하셨네.統天崇雨施 物理體含..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다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 을지문덕(乙支文德)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신묘한 꾀는 천문을 꿰뚫었고 묘한 헤아림은 지리에 통달했네.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면 멈추시라. 『東文選』 卷之十九 해설이 시는 수(隋)나라 장수인 우중문(于仲文)에게 준 시로, 수(隋) 양제(煬帝)는 3차례에 걸쳐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였으나,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영양왕의 밀지(密旨)를 받들고 번번이 후퇴 작전을 벌여 압록강에서 평양성 30리 밖 살수(薩水)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하자, 을지문덕은 적장 우중문에게 위의 시를 보내고 반격하여 대승(大勝)을 거..
군대 수양록(修養錄) 목차2001년 2월 27일(火) ~ 2003년 4월 26일(土) 26개월의 군생활 소속: 6XX 2R 1BN 3CO 2P 1S군번: 01-73010754 신병교육01.02.27~04.13(7주) 나는 누구인가03.08 군생활의 비감(悲感)03.09 행복(幸福)이란 것03.11 종교와 초코파이03.13 작은 감사03.15 건강의 소중함03.16 어이없는 벌에 대해03.19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03.20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03.23 유격과 참호전투03.23 봄 경치(화창한 날에)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03.25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03.26 날씨변화와 군대적응03.27 밥 정량만 먹기와 주님의 개입03.28 땅바닥과 친해지다03.29 설사는 괴로워03.29 기록 사격에 ..
청춘! 신고합니다 관람기 03년 4월 16일(수) 맑음 어제 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KBS ‘청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그것 때문에 저번 주에 덜덜 썰어가며 진달래를 심은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게 어디냐? 군 생활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니 전역 선물이려니 생각하고 냅다 받아야지. 사실 처음에 가지 말아야겠거니 했다. 사단까지 가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마음이 바꾸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걸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밖에 나가선 큰 맘 먹지 않으면 절대 이런 대형 무대를 볼 수 없잖으니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개복을 입고서 60에 몸을 실었어. ..
괜한 걱정에 대해 03년 4월 14일(월) 오늘 MS 장대용, 유준희가 전역하기에 상남이와 내가 중대의 왕고가 되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저번처럼 2월초 군번 애들이 나갈 때와는 달리 별 부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무래도 군 생활이 이제 12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이번 주엔 인터넷 교육을 받고 다음 주엔 말년휴가까지 있어 그 시간은 더 적기에 그런 거겠지. 그러다 복귀해봐야 하루 정도만 지나면 되기에 군 생활이 끝난 거나 진배없다 할 것이다. 저번에 쓴 ‘한숨 쉴 틈이 없는 빡빡한 군대일정’라는 글을 보니 겪어보지도 않고 그냥 작계 시행 훈련에, 자상합동훈련까지 내 군 생활은 전역하는 그 날까지 되게 빡셀거라 생각하며 모든 걱정을 혼자서 다 하고 있더라. 근데 막상 지금에 이르러보니까 그런 모든 걱..
사단작업에 투입되다 03.04.12(토) 구름 낌 D-14 글쎄 10일(목) 오전 사격을 끝내고 오후 사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명철이가 들어오더니, 오후에 사단에 다 들어가야 한다고 사격을 안 할 수도 있다지 뭔가. 자초지종도 모르고서 사격을 안 한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근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선 하도 어이가 없어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어. 이유인 즉은, 다음 주 월요일에 사단사령부에서 촬영을 하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연병장 외곽에 진달래를 심는다는 거다. 그래서 연대별로 책임량을 주었고 그건 곧 그 연대, 그걸 맡게 된 대대, 그걸 직접하게 되는 중대를 평가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일과를 취소하면서까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요일엔 사격도 하지 않고 감자고지로 진달래를 채취..
『Tuesdays With Morrie』를 읽고 (죽는다는 건?) 03년 4월 10일(목) 구름낌 D-16 이번 주말에 갑자기 현일이가 책 하나를 주더니 읽으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 책이 오늘 또 한바탕 글잔치를 펼치게 할 장본인인 것이다. 요즘 전역할 때가 가까와선지 독서에 시들했었는데 이 책은 권해주자마자 아무 부담 없이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한 단락별로 짤막짤막한 글줄기가 읽기 편했고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해가며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이다. 미치 앨범이 쓴 책으로, 대학 스승인 모리 슈워츠의 마지막 강의 내용을 써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강의는 보통 강의와는 달리 전혀 필기 시험도 없고 오로지 구술시험만이 있으며 그 강의에 참여한 사람은 단 한명 미치 앨범 ..
종교의 본질Ⅱ 03년 4월 7일(월) 구름 낌 대대장이 바뀐 후로 우리 기드온 교회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첫째 인원이 눈에 띄게 불었다는 것. 예전엔 적게 나오면 40명 정도이고 많이 나와봐야 60명 정도였는데 이제 적어봐야 90명이고 많으면 120명 가량이 오니, 엄청난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이렇게 인원이 채워지기까진 대대장의 뒷입김이 엄청났다. ‘종교행사 별로 인원이 별로 안 왔던데 얘들 많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해’라고 지휘통제실에서 한마디 던지면, 이 말이 와전되고 와전되어 간부들은 금세 보일 수 있는 교회 안의 인원 경쟁을 통해 그나마 충성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과도한 인원 경쟁은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바로 어제 일이 그렇다. 일ㆍ이등병은 종교 여하를 불문..
견장을 결국 떼다 03년 4월 5일(토) 맑음 오늘 13시부로 견장을 떼었다. 얼마나 견장 떼기를 갈구하며 하루 하루를 살았던가~ 이제부터 진짜 말년이다. 벌써부터 어떻게 3주를 보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더더욱이 운이 좋아 내가 갈 때까지 훈련이란 게 없다. 바로 전역을 한 다음 주에야 지상협동 훈련을 뛰고 사단 작계 시행 훈련을 뛰기 때문이다. 더더욱이 원래의 희망대로 내가 가는 주엔 군대에서 그나마 월이라 생각하는 정신교육을 하게 됐다. 비록 그때 말년 휴가를 가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리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절로 좋기만 하다. 정말 운이 좋고 이렇게 편히 생활하다가 나갈 수 있으니 그저 행복하다. 2주 동안 잘 지내보드라고~ 견장을 뗀 기쁨에 기드온 교회와 3중대 막사를 배경으로 한 컷...
이지선씨가 알려준 깨달음 03년 4월 4일(금) 전역 D-22 요즘 KBS ‘인간 극장’에 이지선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에 목사님 설교 시간에 주바라기 이지선 씨 얘기를 어렴풋이 해줘 들은 적이 있기에 자연히 이 프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지선씨는 현재 나이 26살로,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이며 하나님을 절실히 믿는 기독교 신자인데다가 의모는 보통 이상의 참한 아가씨이다. 그 당시, 그러니까 사고가 나지 2년 전인 24살 때에 그만한 배경에 그만한 아가씨였기에 한 콧대 했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 했었단다. 하지마 그런 그녀에게 불운의 재앙이 닥쳤다. 그녀의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달려오던 음주운전하는 차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사고로 오빠는 차에서 튕겨나가 불행..
흔들린 마음 다잡기 03년 3월 27일(목) 구름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아무리 자기의 현실 기반 하에서 자기의 명확하게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동하거나, 뭔가에 이끌리게 되면 그것에 따라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여러 환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최대한 되도록 늦게 견장을 떼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많이 해왔지만(솔직히 견장 달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없을 뿐더러, 일직을 서지 않는 날에 푹 잘 수도 있고 일직부관 서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까) 동기들도 이미 저번 금요일에 다 견장을 떼었고 훈련 기간 중에 부소대장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견강을 떼어준다는 말을 들으니깐 그럴 바에야 오래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깐...
사단통제 작계시행훈련 03년 3월 24일(월)~26일(수) 맑음 오늘부터 모레(26일, 수)까지 사단통제 작계시행훈련을 뛴다. 사단장이 바뀐 후로 어이 없이 생긴 훈련으로 12월부터 시작해서 한달에 꼭 한번씩은 뛰며 한 달에 꼭 30km 이상의 행군을 한다. 이번 훈련은 연대RCT 때를 방불케할 만큼 복귀행군도 장난이 아니었고, 거기다 2박 3일의 훈련이기에 텐트까지 친단다. 연대RCT 이후 영영 텐트를 안 칠 줄 알았는데ㅠㅠ 지금은 상황이 걸리기 30분 것이다. 지금까진 6시에 꼬박 상황이 걸렸기에 그 조바심에 기상하자마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엔 7시에 걸린다고 하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훈련을 뛴다는 사실이 무지 짜증난다. 그것도 지금까지 했던 어떠한 작계시행훈련보다도 ..
한숨 쉴 틈이 없는 빡빡한 군대일정 03년 3월 20일(목) 드디어 그 길고도 지리하던 3월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지나고 나면 꿈의 4월이 펼쳐지겠지. 솔직히 어제저녁 때 만해도 중대 분위기는 별로 시끌법적하진 않았다. 공용화기 집체 교육이란 일과를 진행 중이었기에, 다들 힘들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4월에 특별히 정해진 훈련이 없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4월 21일(그러니까 바로 전역주간)부터 26일까지 지상합동훈련을 한다’라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고 역시 여기 6XX이구나 한다. 그렇다면 14일에 올렸던 말년 휴가를 뒤로 연장해야 하겠지만, 갔다가 오면 바로 전역하넹. 휴가 갔다가 복귀하면 바로 전역 상담하고 그 다음 날 한숨 ..
기타를 배우다 03년 3월 16일(일) 비 오다가 밤엔 눈으로 바뀜 고등학교 시절 소망교회에서 찬양의 밤을 기획하면서 최초로 합창이란 그 정열에 직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대해온 그런 게 아닌, 회원들이 모여 웅장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거 말 그대로 나에게 온 충격이었다. 그런 충격 속에 옹기장이ㆍ주찬양의 천상의 화음을 들으며 감탄을 마지 않았고, 속으로 나도 저들과 같이 되어야 겠거니 하면서 그때 이후로 맹연습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노래를 들으며 삘(feel)에 따라 베이스 음을 부를 수 있을 뿐아니라, 악보를 보며 노래 속에서 베이스음을 부르는 게 가능해졌다. 장족의 발전이란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이러한 내가 으레 당연히 느껴지니, 좀 배불렀다고나 할까? 이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
대구지하철참사에 대해 03년 2월 20일(목) 화창 엊그제 그러니깐 2월 18일에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했다. 내용인 즉은 장애를 비관한 2급 지체 장애인이 물고 늘어지기 심보로 병에 챙겨간 휘발유를 지하철 객실에 뿌리고서 중앙로역의 도착하자마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던 중 실수로 그 용의자 온 몸에 불이 붙어 역으로 하차한 것이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붙은 불을 끄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객실에 피어오른 불꽃은 활활 타올라 객실 전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때 상행선 쪽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는 지하철이 있었으니, 그건 이 참사가 더 재앙이 될 증조였다. 그 차가 중앙로에 진입했는데도 전력 공급이 차단되므로 불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했고 문까지 차단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문 앞에 뒤..
정임이와의 설렘 가득한 데이트 2003년 2월 4일(火) 복귀하기 전날, 짜증이 물밀듯이~ 죽겠다. 이런 뭐 같은 기분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엔 다른 때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얼마 남지 않음을 알지만 군의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돌아가는 건 꼭 지옥길을 제 발로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다른 정기휴가와는 다른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마지막 날에 홀로 방황하다 들어간 여느 휴가와는 달리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거. 바로 정임이다. 내가 군에 가기 전에 좋아했던 아이. 하지만 지금은 정임이가 더 나에게 열심이다. 편지도 자주 보내주고 휴가 나왔다고 하니깐 만날 기회를 혼자서 제공해주기도 하고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아이니깐. 이번에 휴가 나와서도 전화를 했더니, “내일보자!”라고 당당하게..
의복이와 영웅을 보다 2003년 1월 30일(木) 의복이도 나보다 한 주 정도 늦게 휴가를 나온 터라 오늘 만났다. 저번에 하도 재밌게 놀아서 이번에도 그 그리움에 만났다. 5시에 만나 곧바로 시내까지 걸어가서 뭐 볼까 하다가 ‘영웅’을 보기로 했다. ‘영웅’을 보고 나서, 정말 보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영웅은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칭호일 것이다. 가장 멋진 언사 ‘황제(皇帝) : 여러 소국으로 나눠져 혼란스러울 바엔 한 명이 통일하여 안정됨이 낫다’라는 말을 쓰고서 죽일 수 있는 순간에도 진시황을 죽이지 않은 양조위나 이연걸, 결국은 자기의 희생까지 각오하면서 그를 도왔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의 의견이 틀렸음을 아는 순간, 자기를 바꿀 수도 있어야 하며, 대의를 위해선 사사로움을 버릴..
행군과 도보의 차이 03년 1월 19일(일) 맑음 지난 17일 저녁 7시에 시작한 행군이 18일 새벽 4시 30분이 되어서야 끝을 맺고 말았다. ‘작계시행훈련’과 ‘매달 30km 행군’이라는 사단장 지시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 훈련이 없는 달임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뛰게 된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점심이 되어선 아예 함박눈으로 변해서 펄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군에서의 눈이라 하면 치를 떨며 짜증이 나야 맞는데 이번 눈은 왠지 나를 기쁘게 있다. 그 이유인 즉은 폭설로 인해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고 30km 행군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훈련이 급해도 실질적으로 중요하 건 제설작업이었기에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불행으로 조기철수 행군을 하게 되었다. ..
군에 대한 사색과 고찰 03년 1월 11일(토) 맑음 군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23개월째다. 26개월의 군 생활 중 겨우 3개월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이 시기에 이르렀다. 이쯤 군 생활을 하고 보니, 군대란 어떤 곳인지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건 머리로 늘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된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겪으면서 몸소 체득하게 된 실제인 것이다. 군에 대한 특징은 여러 개 있겠지만 난 크게 두가지를 논의하고 싶다. 이 두 가지로 ‘토요 난상토론(土曜 爛商討論)’을 펼쳐보도록 하자. 첫째, 결과성이다. 군에선 여러 검열과 사열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한 부대를 평가하게 되는 거고, 얼마나 상급부대의 지침에 잘 순응 하는가를 판단하는 거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
융통성 있는 삶에 대하여 03년 1월 4일(토) 눈 온 후 한파 지금까지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살아왔다. 내 성격 탓에 그랬던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선함(착한사람 컴플렉스)이란 가치에 눌려 살아온 나의 무능함 때문이다. 과연 착하다 또는 선하다 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본다. 예전부터 착하다는 건, 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는 것, 그렇기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것, 덩달아 싫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유아적인 방식의 개념이지만 그걸 착함의 본질인 양 개념화한 체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개념을 늘 머릿속에 주입하고 실천해왔기에 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좀 어이없는 처사를 당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하나 손해봐서 ..
격동의 2002년 정리 03년 1월 1일(수) 매우 맑음 2003년을 분대장으로 시작한다. 입대할 때만 해도 2003년이 올까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고참들한테 “내후년 제댑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너지는 암울함을 느꼈었는데, 어느덧 ‘올해!’라고 벅찬 감격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행복한가? 정말 행복하다! 군에서 제대로 보낸 02년이 이렇게 갔다. 솔직히 아쉬움 없는 한 해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까지 하다. 2002년은 정말이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1월엔 있었던 사진기와 수하문제 인해 소대의 미운 오리 새끼로 찍혀 최악의 군 생활을 경험하며 지냈다. 2월엔 철수 준비로 인해 소대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월엔 철수를..
분대장 잡던 날이 다짐 02년 12월 30일(월) 매우 밝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1일로 계획되어 있던 견장수여식이 연기된 이후, 아무 기약도 없었는데, 결국은 오늘 하고야 말았다. 이렇게라도 잡게 되니 포부가 대단하다. 혹, 과대가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정말 잘할 자신도 있고, 여느 분대에 안 꿀리는 분대를 만들 자신도 있고 이등병 못지 않게 정말 빡시게 군 생활할 자신도 있다. 물론 이런 자신감은 이제 막 시작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늘 처음처럼’이란 말만 떠올릴 수만 있다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을 것 같다. 혹, 아이들이 “병장님은 성격이 몰려 터져서 문제입니다”라고 말한다. 내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기에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을 것이..
지겹도록 눈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02.12.23(월)~25(수) 폭설 후 흐림 안 올 것만 같던 2002년의 크리스마스, 솔직히 하루하루가 힘들었기에 기다릴 겨를도 없었지만, 8일에 교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를 느끼던 터였다. 과연 ‘크리스마스는 뭐지?’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아기 예수 나신 날이라 대답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회적 통념상 축제화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축제와 즐김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답의 전부라 할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해도 그렇게 은연 중에 의식은 이 시기에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기다리게 한 요인이겠지. 그리고 더더욱이 이번 크리스마스를 지내야만 집에 가는 거니깐 더욱 의미가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도 우리에게 실망을 ..
두 번의 일요일 02년 12월 8일(일) 15일(일) 폭설 / 맑고 따스함 어제부터 날씨가 흐려지고 추워지더니 오늘 하루종일 많은 눈이 왔다. 하지만 난 성탄 장식을 교회에서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나 보다. 15(일) 주일임에도 화요일에 있을 사열 때문에 하루종일 총검술 및 집총 16개 동작을 했다. 연무 17개 동작을 저녁 늦게까지 연습했다. 죽는 줄 알았다. 12월 8일 성탄장식을 마치고 나왔더니 눈이 내린다. 군종들의 유쾌한 놀이 인용 목차 사진
감기를 앓고 나서 깨달은 것 02년 12월 4일(수) 따뜻함 집중 정신 교육 기간이다. 월 때리는 시간이기에 아무 부담 없이 맞이 했던 월요일에 목이 컬컬해짐을 느꼈다. 그게 감기 기운이었다. 그래서 어젠 더 심해질 것을 대비해서 의무대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그렇게 먹었더니 괜찮아지는 듯해서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몸은 추위를 느끼고 있었고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끈뜨끈하기만 했다. 작년 5월 말에 그랬듯 편도선염과 같은 증상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 수요일엔 입맛이 없어 빵 하나도 먹지 못했고 바로 의무대로 달려갔더니, 글쎄 체온이 39.7도나 되더라. 그래서 군의관님이 링거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쾌재를 외치며 바로 의무대에 누웠다. 그래서 링거를 맞으며 가픈 숨을 쉬며 오후 ..
사단장 교체가 부른 악영향 02년 12월 01일(일) 몹시 추움 사단장이 바뀐 지 어언 한 달 정도가 된 것 같다. 저번 포천 사건이 결국 6사단 간부의 소행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사단장 교체로 마무리 됐다. 그렇게 바뀐 사단장은 군기강 해이를 그 이유로 들었고 그건 곧 우리들을 옭아매는 여러 지시 강조사항으로 이어졌다. 첫째, 점호의 규정 준수이다. 형식적 점호로 편했던 우리들에게 규정에 의거한 점호(알통구보, 스트레칭, 명상)는 짜증 그 자체였다. 둘째, 더욱 엽기적인 것은 제식 교육 강조로 지금 내 운명에 없었던 도수제식, 총검제식 등을 신교대처럼 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할까나? 셋째, 더더욱이 한 달에 한번씩 30km 행군을 하라며 군기불량으로 걸릴 경우, 부대는 완전 군장 50km 행군을 실시..
3일간의 포대 경계지원근무 02년 11월 27일(수) 눈 내리고 추움 25일(월)에서 오늘까지 27FA HQ α포대에 경계 지원을 나갔다. 경계 지원 자체는 환영할 만하지만 1분대만 따로 떨어져 포반과 함께 가기에 덩달아 중대장과 같이 가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달까. 난 재현이와 함께 B2조로 위병소에선 사수를 서야 했고 탄약고에선 가만히 있어도 되었기에 위병소 근무는 짜증 그 자체였다. 역시 경험이 적다 보니 빵구도 참 많이 내서 중대장에게 갈굼 좀 당했다. B2조는 새벽에 말대기였기에 빛이 났다. 6시간씩 그렇게 꼬박꼬박 자다 보니 나중에는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나는 사태까지 날 정도였다. 나름대로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2박 3일의 RCT인 것이 아쉬웠다고나 할까. 한 일..
첫 눈에 그린 꿈 02년 11월 14일(목) 눈 내리고 추움 오늘 드디어 철원 땅에 첫눈이 왔다. 첫눈이 왔다는 게 밖이었다면 대단한 일인 양 기술되었을 것이고 서로 축하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테지만, 여긴 군대이기에 그렇게 원하지 않은 일이 터진 것에 대해 담담한 심정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내리는 듯, 말듯 눈이 내렸었는데 이번엔 대지를 살짝 덮을 정도의 눈이 쌓였기에 이걸 첫 눈으로 보는 것이다. 새벽에 눈이 왔기에 근무자들이 주둔지 주변만 눈을 치워놨다. 그래서 우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몸구보도 하지 않고 바로 도피안사로 싸리비를 들고 이동했다. 그렇게 도피안사부터 연대장 관사를 거쳐 수색 중대까지 눈을 치우면 되었다. 눈이 별도 오지 않았기에 대충 쓸어도 깨끗하게 보였다. 그렇게 눈을 ..
‘내 탓이오’와 ‘참기’의 문제점 02년 11월 10일(일) 매우 흐림 11월 1일, CO ATT를 뛰면서 참고 참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바로 꼬바에게 개긴 일이다. 그건 예전 이등병 시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이 그때 드디어 터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닌데,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느낀 게 있어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내 탓으로 돌린다.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일에서 뿐 아니다. 단체의 일에서도 그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탓이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되게 괜찮은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적절히만 할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일일 테지만 그걸 벗어났기에 심각한 문제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그 운동 도중..
대대ATT 중 일어난 일 02년 11월 6일(수) 비가 내리는 스산한 겨울 날씨 대종(대대 종합전술훈련)이 오늘부터 시작이다. 6시 30분에 가상하자마자 일제히 상황이 발령되었고 우린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였다. 그렇게 여느 때와 똑같이 소산지를 점령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대 이동을 하지 않더라. 지뢰도 치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았기에 군장을 지키는 인원 2명 외에는 내무실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훈련이란 이름으로 받았던 어떤 훈련 중, 이번 훈련은 월 중의 월이었다. 부대 이동도 한 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으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탄피회수작전 때문에, 수요일과 목요일은 방어만 하면 끝난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었는데 거기다 실질적으로 CⅢ를 넘지도 않고, 바로 대위리에서 지연전을 잠시 ..
중대ATT의 시작일에 02년 10월 31일(목)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이 겨울의 날카로운 칼바람을 뚫고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훈련이라곤 혹한기 밖에 없다고 들었기에 별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10월 31일(목)~11월 2일(토) 중대 ATT, 그리고 11월 4일부터 11월 7일까지 대대ATT가 계획되어 있지 않은가ㅠㅠ 정말 싫었다. 군장을 메고 이동할 땐 더울 것이고 가만히 있을 땐 추울 것인데, 그 온도차에 의한 짜증을 어떻게 감당할까? 뭐 이런 걱정이 맴돌았지. 오늘 새벽 6시에 기상하자마자 상황이 걸렸다. 잠이 덜 깬 우리는 정신 없이 군장을 꾸리고 준비태세를 했다. 6월 25일에 6ㆍ25 상기 준비태세를 가상과 함께 한 이후, 처음..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02년 10월 25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사병 최고의 계급인 병장을 단 지도 어느덧 25일이 지났다. 이제 6일 후면 물병장을 떼고 진짜 병장으로 거듭난다. 오늘 새벽 2시 30분 근무였는데, 글쎄 포반장에게 근무자 신고할 때 “상병 이종환 외 2명 근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물병장이라 나도 아직은 내 계급에 적용이 덜 된 모양이다. 선임의 위치에 놓이게 된 지는 벌써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중간 밑 선에서부터 중간을 달고, 그러다 중간 선임이 된 후, 중간을 놓고 지금에 이른 거다. 분대장을 잡기 전까진 말 그대로 말년이다. 선임이 되고 보니, 예전의 선임들과 다를 게 없다. 선임의 입장이 이해가 되어서라기보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군기를 잡기 위해 악역을 자..
태권도에 살고 태권도에 죽고 10월 25일(금) 요새 태권도 절정의 시간이다. 유단자가 적은 소대는 경고까지 먹는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소대장들의 신경전이 하늘을 찌른다. 오늘은 사단 심사가 있었다. 난 이미 대대심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쉽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도 중대장이 떨어진 인원들도 다 나와서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노발대발한 덕에 나도 아침부터 나가 연습을 하게 되었다. 활동화까지 벗고 맹연습을 펼쳤는데, 아직도 실력이 미흡한 터라 앞차기, 옆차기, 뒷차기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했다. 오후엔 김진민 중사(5소대 소대장, 신교)가 와서 승급 심사를 보게 되었는데 대대 심사에서 떨어진 우리는 옆에서 정심사원들이 심사를 마칠 때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몸을..
태권도 단증 따기 광풍이 불다 02년 10월 24일(목) 여전한 영하권 날씨에 엄청 춥다 나중이 되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겠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도 더 긴박감을 주고 짜증을 유발케 하는 사건이 요즘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태권도가 바로 그것인데, 이번에 적은 사람이 단증을 딴다면 바로 경고장을 먹일 것이고 그건 우리 소대 안에 태풍이 불게 될 것이란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돌아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며 태권도, 태권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나도 이번 단증에 참여했으나 여지없이 대대 심사관한테 떨어지고 말았다.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정말 맘만 먹고 한다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맘처럼 안 될까. 과연 사단 심사를..
성큼 다가온 철원의 겨울 02년 10월 22일(화) 올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짐 드디어 찾아오는가 철원의 겨울이여! 그 매섭고 날카로운 칼바람의 전운을 온몸 가득 맞서며 이겨내야 하는 겨울이 어느덧 성큼 다가왔다. 점오를 받으러 나갔을 때 쌩하니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까지 느껴오는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이번이 철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이란 사실이 좀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왠지 걱정스럽고 암담한 것도 사실이다. 여긴 왜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그걸 인지하는 순간에 바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나 따뜻한 남쪽으로 돌아갈래! 10월 10일 1중대 대항군 출발 전 인용 목차 사진
진규 면회를 가다 10월 3일(목) 3시에 날카로운 기계음을 듣고서 일어났다. 일어나기 너무 싫어서 잠시 뒤척였다. 하지만 어느덧 일어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바람을 가르며 진규네 집까지 뛰어갔다. 오늘 진규 면회를 간다기에 나까지 끼여서 가는 건데, 걸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뛰어가고 있었다. 30분 만에 주파한 그 거리~ 새벽바람 너무 상쾌해서 좋았다. 새벽에 그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가? 그렇게 4시 30분에 진규네 집에 도착해서 들어갔으나 좀 늦게 간다며 쉬라고 했다. 그래서 진규방에서 컴퓨터 좀 하다가 6시 정도 되어서 외삼촌, 엄니, 압지, 할머니 이렇게 다섯하고 같이 머나먼 여정의 길에 올랐다. 잠이 모자랐던 차에 좀 불편했지만 편히 갈 수 있..
문을 부순 사연 02년 9월 24일(화) 요샌 아침저녁으로 스산함이 느껴진다. 낮에 엄청 높은 새파란 하늘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있어 가만히 있어도 가을임이 느껴진다. 그래서 기분은 무지 좋아진다. 더더욱이 내일 모레면 상병휴가를 간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런 거겠지. 만약 휴가 기분 없이 그런 더 없는 가을 정취를 대했다면 기분은 씁쓸했을 것이다. 밖에서 이런 날씨를 즐기며 흥겨운 정취에 취해볼 수 있지만, 여기선 취하긴커녕 그런 정취를 원망하며 다른 작업에 몰두해야하는 나 자신의 현실을 짜증스러워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정말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런 날씨 가운데 있다는 게 행복하기까지 하다. 이번 주는 너무 빡시다. 공용화기 집체 교육 기간임에도 다음 주..
진을 빼놓을 대로 빼놓던 유격을 마치다 02년 9월 19일(목) 목요일 오전에는 화생방이 있었다. 솔직히 끔찍했다. 저번 주 분반에서의 그 악몽이 어렴풋이 떠올랐기에 정말이지 너무 하기 싫었다. 하지만 교육 자체는 월이었다. 방독면 쓰기, KD-1 제독 방법, 보호의 작용, 가스실 이렇게 순서로 진행했는데 PT도 하지 않고 이 과정만을 하면 되니 지난 삼일 동안의 시간에 비하면 수월했다. 하지만 공포는 가스실에서 였다. 방독면을 쓰고 들어가 정화통만 바꾸고 나온다는 걸 익히 들었기에 좀 안심하고 있던 터에 조교에게 소리를 내지 않은 게 걸려서 맨 몸으로 가스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주하고 3P장을 따라 들어갔는데 가스실에 하얀 연기가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구석에 보니 C/S 캡슐이 ..
도무지 알 수 없는 조교의 감정 02년 9월 17일(화) 새벽에 지긋지긋한 무기고 근무를 서고서 침낭 안에 파묻혀 행복하게 잠에 들었다. 그런 은밀한 행복감에 날카로운 “기상!”이란 비명소리를 들으며 기상하고 있으니 비극적인 현실을 새삼 되새기게 되더라. 일어나기 정말 싫었지만, 이러한 현실을 맞이하기 싫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걸 어쩌랴? 아침 점오와 식사를 마치고서 또 다시 연병장에 모였다. 어제와 똑같이 교관의 지휘 아래 맹렬히 PT를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게 정말 힘들게 지탱하며 몸을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 코스를 이동하며 코스를 탄다. 하지만 코스만을 탈 리는 없다. 코스로 이동하면 5분간 휴식을 하도록 한 다음에 코스 설명을 듣고 몸풀기 PT에 들..
첫날 유격 체험기 02년 9월 16일(월) 원래 15일(日) 점심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바뀌어서 16일(月) 7시에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예정대로 갔다면 분반 복귀 후 조금의 휴식도 없이 바로 가는 강행군을 했을 터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했다. 출발 전 심정은 좀 착잡하기 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만 유격을 뛴다는 것과 복귀 행군이 없기에 좀 가벼운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군 생활 가운데 유적을 한 번 정도는 뛰어봐야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리라!’라고 맘을 먹고 정신없이 유격 채비를 갖춘 다음에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바로 독서당리를 거쳐서 유격장으로 향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뻘짓을 좋아하는 ..
낯설지만 설레는 자대의 분위기 02년 9월 15일(일) 구름 낌 분반 퇴소식을 어제 마치고 자대에 왔다. 8월 24일(토)부터 시작된 분대장 교육은 3주간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9월 14일(토)에 끝난 것이다. 올 때 황당하게도 K-2 가스마개가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잘 찾았고 전투화도 어떻게든 잘 처리되어 지금은 걱정이 별로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자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풀린 군번에 상병 말호봉이 되고 보니 밑의 아이들이 많아져 엄청 편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선 오래도록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 해도 3주란 시간은 역시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려니깐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감을 잃어버렸다. ..
분반에서 느낀 나의 한계 02년 9월 12일(목) 비옴 드디어 분반 끝을 향해 다가간다. 오늘은 짜증 나서 죽을 뻔했다. 오전은 특별한 일정이 없이 정비시간이기에 삭발할 시간과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을 준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시험을 보질 않나 퇴소식 예행 연습을 하지 않나. 정말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뭘 시켰으면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분반에 와서 오랜만에 머리를 써가며 공부를 했더니 사회에 있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여기 올 때, 그리고 일주차 때 일등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긴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갔을 때도 이와 비슷했다. 1등을 목표로 갔지만 1등은커녕 3~4등에 그칠 뿐이었으..
분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다 02년 9월 10일(화) 따스함 분반에 오면 소대의 빡센 일정 한 두개 정도는 열외되도록 있는 게 기정 사실이다. 3주간의 교육 일정이다 보니 그 기간 중에 훈련이든 뭐든 끼어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박상호 병장 때는 그 힘겹던 전투지휘검열 준비기간을 다 하지 않았으며 은석이 때는 대대ATT와 그 준비기간을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또한 그런 희망에 부풀어 있게 되었다. 원랜 우리 분반 기간동안 유격이 있었고 중대 ATT도 있었으니까 그걸 알게 됐을 때 엄청 좋아하기도 했다. 근데 그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갔다. 유격이 한 주 뒤로 밀리므로 우리가 분반에서 복귀하면 바로 뛰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더욱이 어제 최악의 소식을 들었는데 일요일부터 유격을 뛰어야..
독도법 교육과 싸늘한 날씨 02년 9월 5일(목) 서늘함 평이한 날이다. 오늘은 독도법(讀圖法) 실습이 있던 날이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늘은 아침부터 매우 흐렸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오후엔 실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산에 올라 보물 찾기하듯 찾고 있는데 온몸을 타고 쌀쌀함이 감도는 것이다. 그렇게 네 개를 다 찾고 부대에 복귀해서 샤위를 했는데, 그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평가가 있다기에 밖에 잠시 나왔더니, 글쎄 부는 바람도 장난이 아니라서 그 추위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9월로 달이 바뀐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 모양이 걸 보면, 여름에서 가을로의 계절 변화는 이렇게 뚜렷한 변화를 안겨주나 보다. ‘앞으로 이렇듯 온 몸..
교수법 실기를 죽 쓰다 02년 9월 2일(월) 맑음 요즘 들어 이렇게 기분이 최악인 상황은 처음이다. 오늘 운명과도 같은 공포를 느끼며 ‘교수법’ 실기를 보게 되었다. 난 장차 선생님이 될 꿈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과목은 내 미래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어제부터 만전을 다해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실전을 기다리는 시간은 흡사 수능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았기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도 우린 목소리 높여 가며 연습을 했던 것이다. 오전엔 기다리다 못 보고 오후에 보게 되었는데 먼저 들어간 병환이가 나올 때 물어보니, ‘졸고 있어’라고 하는 거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도 조교는 졸고 있었다. 그래서 난 맘 편히 내가 연습한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고 나서 흡족한 표정으로 교..
분대장교육대에서 맞이한 태풍 루사 02년 8월 31일(토)~9월 1일(일) 태풍의 간접 영향권 ‘루사’라는 15호 대풍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비가 서서히 내리며 바람이 마구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조금씩 올 거라 생각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어서 뉴스를 보게 되니 이미 전역이 태풍의 피해권에 있으며, 앞으로 많은 피해가 있을 거란다. 많이 온 곳은 이미 350mm의 강우량을 넘어선 데도 있었다. 저녁이 되니 이곳도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서인지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산들이 엄청나게 요동을 치고 있다. 벼들이 흔들흔들 거리듯 나무들이 그렇게 흔들흔들 거리듯 분다. 바람이 상상을 뛰어넘어 불고 있다. 과연 오늘 밤 엄청난 짜증의 역사는 이뤄질 것인가?..
위문 찬양 예배 참석기 02년 8월 21일(수) 구름 많음 페바에서의 첫 위문 찬양 예배가 있는 날이며, 내 자대 생활 가운데 첫 찬양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 날이다. 원래 작년 GOP에서도 딱 한번의 위문 예배가 있었지만, 그날 우리 소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까닭에 가지 못한 비운의 사건이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일과를 하지 않고 각 중대 군종병들은 BN장 지시로 교회로 모여야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맘가짐으로 교회에 갔지만 절대 만만한 준비 작업은 아니었다. ‘신광 파이팅’, ‘신광 교회 위문 예배’를 잘라 놓는 것을 비롯해서 좌석 재배치, 예배당 대청소 그 모든 것을 두서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던 찰나 목사님의 정신 교육까지 교회에서 있었기에 잠시 준비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컨셉은 ..
폐타이어 수송계획 02년 8월 14일(수) 어둠 ‘폐타이어 수송 계획’에 의해 나와 8명은 착출되어 아침 일찍부터 모든 일과에서 열외되었고 60을 올라타게 되었다. 오늘은 의정부까지 간단다. 왠지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10대의 60이 이어지는 긴 행렬은 장관 중 장관이었고, 10개월 만에 들어서는 철원 외 지방들은 나의 가슴을 심하게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충격이었고 대단히 벅찬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때도 전주까지만 갈 수 있길 바라게 되더라ㅠㅠ. 쾌쾌한 매연을 코로 감지하며 들어선 곳은 인간 사는 맛이 물씬 넘실거리는 서울로 바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팍팍한 삶의 여정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일지라도 난 그곳을 너무나 동경하고 사랑한다.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의..
중대단결의 날 행사를 하다 02년 8월 12일(월) 맑음 중대단결의 날 행사가 있던 날인데, 딴 중대는 저번 주에 모두 끝냈지만 우린 전차대대 합동 훈련이 있어서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하게 되었다(비로 인해 훈련이 연기 되었으니까 행복하다고나 할까). 축구ㆍ족구ㆍ계주에서 우리 소대는 모두 다 참패하고야 말았다. 전후반 교체 투입만 아니었으면 이겼을 수도 있을 텐데,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체육대회가 모두 끝나고 회식을 하게 되었다. 어제 재현이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가져온 과자들을 시켜놓은 족발과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한 회식이었고 처음으로 한 캠프파이어였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무래도 양만 있고 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모든 걸 치워야 하는 건 우리 몫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
부분대장이 되며 변한 것 두 가지 02년 8월 7일(수) 연일 비 내림 드디어 말복이 끼어 있는 8월이 다가왔다. 그렇게 무더웠지만 그래도 GOP가 아닌 FEBA에 있는 게 그나마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짜증의 계절이 벌써 끝자락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끝이라는 건 매우 기쁜 일이며 기대되는 일임에 틀림 없지만 또 다른 시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에 여전히 답답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낸 올해 8월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일이 많이 있다. 첫째 8월 5일(월), 박형국 병장이 분대장이 되므로 당연히 난 부분대장을 달게 되었고 1년이 넘도록 매고 다녀 정이 들대로 들었던 K-3를 떼었다. K-2를 잡은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K-3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내 것으로만 느껴진다.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
ATT의 나날과 군에서 배운 것 02년 7월 18일(목)~19일(금) 덥다가 소나기 내림 드디어 하루의 휴식 끝에 오늘 또 훈련이다. 오늘부터 공격 훈련이 시작된다. 원랜 4시간 거리가 되는 동막리까지 단독군장으로 걸어가기도 했으나 갑자기 예정이 바뀌는 바람에 완전군장을 메고 가야 했다. 바뀐 일정에 절로 짜증이 난 데다가 물집까지 생기니 아무래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행군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동막리에 도착해선 최초로 텐트를 치고서 전투 휴식에 들어갔다. 그렇게 푹 쉬고서 야간 공격을 가려던 찰나에 우리 소대가 우리 중대 대항군 임무를 수행하는 바람에 방어를 하게 되었다. 진지에 투입해서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며 잠을 청했지만 역시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건 고초였다. 역시 안에서 자는 게 제일 좋은..
대대 ATT의 본격적인 시작 02년 7월 15일(월)~16일(화) 오전 8시에 상황이 걸려 12시까지 국지도발을 했다. 그리고 1시부터 준비(회학전 하) 태세를 실시하여 저번 금요일에 했던 것처럼 지뢰를 설치했다. 그 후에 대위리로 이동하여 후방 통제소 방벽에서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방어를 했다. 재현이와 난 추진 매복조가 되어 26M 다리 밑에서 매복을 서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철수 명령과 함께 돌아왔다. 그 후엔 1s원들이 동송고지에 올라갔는데 하필 지연전을 한단다. 그래서 잠이 옴에도 불구하고 걷고 또 걸어 77포대까지 갔고 CⅢ 넘으려던 찰나, 상황이 종료되어 독서당으로 해서 대대에 복귀했다. 더럽게 짜증나고 힘들었다. 인용 목차 사진
대대 ATT 전 예행연습 02년 7월 12일(금) 오전 준비 태세가 있었다.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고 2중대 축구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지뢰를 설치하여 차단 진지를 형성했다. 오후엔 완전 군장을 메고서 대위리까지 가서 후방 통제소 방벽에 투입했다. 투입한 지 20분이 지나 철수를 시작하여 걷고 또 걸어 대대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쉼 없이 이동해야했기에 정말 힘이 들었다. 인용 목차 사진
더위를 벗삼아 02년 7월 9일(화) 오늘 지뢰 설치 훈련이 있기에 난 경계를 서면서 월을 때렸지만 예전과 같은 완전한 월은 아니었다. 가만히 그렇게 땅바닥을 벗삼아 엎드려 있어도 맹렬히 내리쬐는 햇볕에 즉사로 노출된 나의 몸둥이엔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땀들이 쏟아내렸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미치도록 짜증 나는 날에 우린 자연스럽게 그러한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으니 정말로 너무도 대단한 지경이다. 더위가 정말 싫지만 이번 여름만은 이렇듯 더위를 벗삼아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다. 더위가 한껏 내린 철원들판에서 어느덧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인용 목차 사진
현일씨의 대대군종으로서의 고민을 듣다 02년 7월 8일(월) 오늘도 어김 없이 차방문이 있는 날이기에 근무가 끝나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서 교회로 향했다. 현일씨는 군종방에 있었다. 퍼붓는 빗줄기를 보며 좀 가늘어지면 그때 가자고 입을 맞추며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와중에 현일씬 이제 교회에 일과 끝나고 오게 생겼다는 푸념으로 우리들의 얘기는 시작되었다. 군종이 되고부터 달라진 건 뭘까? 대대 군종과 중대 군종의 차이는 뭘까? 군종이 우선 되기 전보다 기도도 줄었고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도 줄었다. 멀리 있을 땐 오히려 더욱 열정적으로 그걸 갈망하게 되는데, 막상 가까이 있으면 그 애틋함이 떨어지기에, 언제라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감정들이 무뎌져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렇게 ..
아쉽게 4위로 남은 터키전 02년 6월 29일(토) 저녁 8시에 대구에서 터키와의 3ㆍ4위전이 있다. 이 경기가 있기 전에 인터뷰에서 충분히 즐기며 볼 수 있는 경기를 만든다고 해서 이 경기에 대해 편안한 마음으로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전반 26초만에 수비 불안으로 한 골을 먹었으며 8분엔 이을용이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음으로 따라 잡긴 했었다. 그런데 전반전 내내 2골을 더 먹으므로 구렁덩이에 빠졌다. 수비 불안이 원인이었다. 몇 년전 일본에게 5:0으로 졌던 때가 절로 생각날 정도였다. 과연 이렇게 무너지는가? 무너졌다. 수십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볼운이 없었다. 이로써 대망의 월드컵 정말로 끝났다. 아깝다 3위가 눈앞이었는데 이렇게 물러서야 하니 말이다. 이번 월드컵은 눈..
2박 3일의 구국기도회 참가기 02년 6월 27일(목)~29일(토) 맑음 2박 3일간의 625 회상 구국 기도회가 오산리 최자실 금식 기도원에서 있었다. 예전부터 현일씨가 중대 군종들까지 참여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회의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기도도 하지 않은 채,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 있었다. 더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기간은 총기사열도 있었고 병공통 검열과 체력 측정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빠지지 못할 거라는 게 일반론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도록 허락하셨다. 저번 주 토요일에 탈영 사건을 비롯해 구타자를 신고하는 등 중대 전체가 사고 예방 차원에서 들썩들썩 거리고 있었기에 중대장님은 나의 그런 얘길 듣자마자 선뜻 승낙해 주시며 군종으로서 내가 할 일이 많다며 앞으론 그렇게 활동해..
그대들로 행복했던 이 순간 02년 6월 25일(화) 맑음 오늘 대망의 4강 경기가 전차군단인 ‘독일’과 있다. 오늘은 축복이나 받은 날처럼 장마임에도 쾌창하고 맑고도 선선한 날씨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아 기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과연 우린 요코하마로 향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기대가 오늘은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기대는 꺾이고 말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아쉽고 덩달아 울적하며 분하다. 너무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큰 것이며 결승 문턱에서 떨어져서 좀 찝찝하기만 한다. 초반엔 한국팀이 밀어 붙였기에 헤딩슛에 강한 독일이 헤딩슛의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한국팀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생각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그렇게 아쉬운..
승부차기까지 간 격전의 스페인전 02년 6월 22일(토) 역사적인 BIG 게임이 있던 토요일이다. 오후 3시 반에 8강전이 진행되기에 벌써부터 기대 반 두려움 반인 상황이다. 4강 진출을 위한 한국과 스페인의 숙명적인 경기가 무등벌 빛고을에서 열리는 것이다. 벌써부터 붉은 물결들은 여기저기 일렁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5천만의 힘! 그건 절대적인 우위였으며 절대적인 승리의 열쇠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혼자라는 고독감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자기에게 천만금이 있고 그에 따른 엄청난 힘이 있을지라도 자기 혼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삶은 무의미로 치닫게 된다. 그런 현실에선 결국 자기의 장점은 덮어두고 결점만을 확대시켜 자기 비하로 나가게 된..
ATT 대항군 중 두 가지 어려움 02년 6월 20일(목) 3BN ATT에 대항군을 우리 중대가 맡게 되었는데 분대장님의 휴가와 부분대장님은 분반 때문에 내가 분대장 입장으로 훈련을 뛰어야 한단다. 처음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부담이 되기만 한다. 그런데 ATT는 별로 힘들지 않았고 그만큼 후딱 지나갔다. 단지 화나는 게 있다면, 월요일 저녁에 밤을 새며 방어를 하고서 오는 도중에 공포탄 탄피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찾았는데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 따위는 상관도 없이 더 가혹한 명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진 것이다. 그건 바로 동막리 사격장에 서부터 중대까지 3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짜증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왔고 비몽사몽인 상태..
대역전극을 연출한 이탈리아전 02년 6월 18일(화) 맑음 대망의 역사가 대전에서 이루어진 날이다.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터키에게 져서 탈락했고 이제 한국 경기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그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3BN ATT 때문에 우리 BN에 와서 축구 경기를 보느라 우리 BN원들은 취사장에 모여 축구 관전을 하라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통배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덜투덜대며 통배식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다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행보관님이 불러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주는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리걸음으로 두 바퀴를 돌아야 했다. 이유인즉은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온갖 짜증을 느끼며 경기 관람..
포루투갈과의 치열한 싸움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을 잘 마무리 하고 우린 분대별로 자연스럽게 침상에 모여 앉았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만큼 우리 또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드디어 16강이 되기 위한 중요한 경기로 포루투갈 전이 있는 날이다. 인천경기장엔 이미 붉은 악마들이 엄청나게 운집해 있었다. 초반전 우리가 전략적으로 불리한 걸 알지만, 그래도 지금껏 잘했으니 더욱 잘하리라 보는 것이다. 전반적 우리가 너무 유리했다. 먼저 폴란드가 예상외의 결과로 미국을 2:0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조금 더 경기하다가 포루투갈의 선수 한 명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하므로 완전히 한국팀의 페이스가 되었다. 그래서 월등한 경기 주도율로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긴 했지만 포루투갈의 ..
청성의 자부심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 D-1일의 날이다. 오늘 오후엔 ‘청성의 자부심’이란 이름 아래 역사스페셜 ‘북한군은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걸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 6사단이 얼마나 한국전쟁 당시에 밀물처럼 내려오던 북한군의 다리를 묶으며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북한군이 3일간 지체하므로 결국 한국전쟁의 양상이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진격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서울만 공격하려 했다는 것과 둘째 한강대교의 파괴로 그들의 도하(渡河)는 지연됐다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 서울만 장악하면 이남에 있던 빨치산 세력들이 서로 봉기하여 자연히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빨치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 이면에 두는 것이다..
미국전에서 아쉽게 비기다 02년 6월 10일(월) 비옴 오랫동안 기다렸던 미국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첫 경기에서 1승의 그 진지하고도 열광적인 기쁨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이번 주 내내 정신집체교육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남았고 당연히 3시에 하는 월드컵 시청까지 일과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못 볼 걸 걱정하지 않고 오후를 기다렸다. 교육 훈련이 끝나자마자 내무실에 다 함께 앉아 축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저번 축구 경기는 근무 때문에 제대로 못 봤기에 이번 경기에 더 많은 기대가 쏠리던 차였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게 되니 왜 이리 행복하던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축구 경기를 펼쳐 갔지만, 초반에 황선홍 선수가 눈밑 부상을 입어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