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3 (636)
건빵이랑 놀자
부록 2. 소승과 대승의 대반열반경 이상의 대화는 팔리어삼장 중 장부(長部, Dighanikāya)의 제16번째에 속하는 경전인 『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Suttanta)의 내용 중에서 발췌하여 그 순서를 바꾸어 윤색한 것이다. 독자들이 받는 느낌의 강화를 위하여 원전의 의미맥락이 손상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드라마타이즈시킨 것이다. 이 팔리 니까야의 『대반열반경』에 해당되는 한역장경으로는 『장아함경(長阿含經)』 卷二~四에 수록되어 있는 『유행경(遊行經)』을 들 수 있다(『大正』1-11~30). 후주(後奏)의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측불염(竺佛念)이 함께 번역했다. 『열반경』은 소승계열과 대승계열의 전승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계열의 편집 의도는 매우 다르다. 남방 상좌부의 전승인 이 팔리..
색신과 법신 우리말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속담이 하나 있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붓다는 죽기 전에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내가 평생 설하고 가르친 법(法)과 율(律)이 있으니, 이것이 내가 죽은 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되리라.” 그리고 또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서품」(序品)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스승 석가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세월은 극히 짧은 것이었다. 육체(肉體)는 비록 갔지만 그 법신(法身)은 살아 있다. 마땅히 그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하리…… 여래의 법신(法身)은 썩는 법이 없으니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 끊어지지 않으리.釋師出世壽極短, 肉體雖逝法身在, 當令法本不斷絕…… 如來法身不敗壞, 永存於世不斷絕. 『增壹阿..
붓다의 세가지 의미 우리가 보통 ‘소’(cow)라고 하면 그 소는 대강 대별하여 다음의 세 가지 뜻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는 첫째 갑돌이네 집에 있는 그 소, 즉 특정한 역사적 시공에 살아 움직이는 개체로서의 소를 특칭하여 일컫는 말일 것이다(a particular cow).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소,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모든 소를 전칭하여 부르는 말일 것이다(all Cow). 그리고 셋째로는 모든 소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소됨, 그러니까 소의 모든 속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cowness). a particular cow 특정한 역사적 시공에 살아 움직이는 개체로서의 소를 특칭하여 일컫는 말 all Cow 모든 소를 전칭하여 부르는 말 c..
길상과의 대화 자아! 이제 싯달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른편에서 풀을 베고 있던 아동은 싯달타에게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서있었다. 그가 들고 있었던 풀은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초록색에, 공작새의 꼬리와도 같이 부드럽고 연하여 그 사랑스럽기가 마치 카칠린다까(迦尸迦衣)새의 깃털로 만든 아름다운 비단결과도 같았다. 그 풍겨 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감돌면서 자오록하였다. 그 미묘한 풀을 들고 있는 아동에게 싯달타는 다가갔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뇨?” “저의 이름은 길상(吉祥)이외다.” “그것 참 신묘롭구나! 나 자신 길상함을 얻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 길상함을 여기 그대로부터 얻는 것 같구나, 이름이 길상인 그대가 내 앞에 섰으니 이제 나는 틀림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
인도신화와 단군신화 이윽고 싯달타는 핍팔라나무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때 싯달타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과거의 보살들은 어떤 자리에 어떻게 앉아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하였을꼬? 이때 우연찮게 옆에서 어느 아동이 싯달타의 우편에서 풀을 베고 있었다. 신화적 기술에 의하면 이 아동은 바로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변신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석제환인의 원어는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Ṡakra-devānāṃ Indra, 釋迦提婆因陀羅)인데, 이때 샤크라(釋)는 ‘釋迦羅’라고도 음사하는데 ‘위용이 있다.’ ‘힘이 있다.’ ‘강하다’는 뜻으로 신에 대한 존칭의 접두어로 쓰이고 있다. 여기 ‘뎨환’(帝桓)은 ‘deva’에서 온 것으로 하늘을 말하는 것이요. 신을 말하는 것이다. 인 (因)은 인드라(In..
싯달타와 수자타 이때, 허기의 극도에 달한 고독한 싯달타에게 우루벨라(Uruvelā, 優留毘羅)【‘Uruvila-grama’로 불리기도 하고, ‘優婁頻螺’로 한역되기도 한다. 다양한 표기법이 있다】 마을로부터의 한 아리따운 처녀가 등장한다. 그 처녀가 우연히 강가나 강 주변의 수풀로 오게 되었는지, 싯달타가 우루벨라마을로 들어가 공양을 청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부분의 기술도 경에 따라 복잡다단한 전승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처녀의 이름은 불교도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수자타(Sujata, 須闍多)! 싯달타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의 대각을 이룰 수 있는 최초의 에너지를 제공한 유미(乳糜, madhupayasa) 죽을 공양할 수 있는..
고행 단념한 뒤 싯달타의 행동 고행을 중단하고 그는 우선 체력을 회복하기로 결심하였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물을 좀 마시고 잠을 청하였다. 깊은 잠을 좀 자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약간의 힘이 생겼다. 그래서 싯달타는 생각하였다. ‘나의 육신은 너무도 피폐해 있다. 이 육신으로는 도저히 도를 성취할 수 없다. 비록 신통력으로 몸을 회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일체 중생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니 부처가 도를 구하는 법이 아니다. 이제 나는 육신의 힘을 얻기에 좋은 음식을 받아 체력을 회복하여 다시 무상의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리라!’ 이때 허공의 제신들이 싯달타가 마음 속으로 이와 같이 작정한 것을 알고 그에게 속삭였다. “존자이시여! 굳이 음식을 구하실 필요가 없습..
싯달타의 고독 그것은 고독이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한 평범한 사나이의 서글픈 고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러한 고독이 아니었다. 자신의 중도의 깨달음의 계기가 도저히 그 친구들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소외된 느낌이 그 고독감의 출발이었겠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모든 고(苦)로부터의 해탈이 궁극적으로 타인과 더불어 이루어질 수 없는 나 홀로만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던져주는 황량한 고존(孤存)의 고독이었던 것이다. 후대의 전기작가들은 이 대목에서 다섯 친구들이 싯달타를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몄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싯달타 자신이 중도의 깨달음을 득한 후에 주체적으로 그들을 멀리 했을 것이다. 최소한 떠나가는 그들을 붙잡을 이..
고행의 단념과 안아트만 그런데 내가 여기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모든 미스티시즘의 갖가지 형태들이 표방하는 ‘합일’(合一)이라는 말의 무의미성, 신화성, 기만성에 관한 싯달타의 통찰이다. 도대체 ‘합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흔히 도를 통했다 하는 사람들이 ‘나는 우주와 합일이 되었다.’ ‘나는 신비경 속에 주ㆍ객이 통합되는 합일의 경지를 체득했다’고 지껄이는 얘기들을 수없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합일이라는 말처럼 기만적인 말도 없다. 나는 우주와 합일되었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어쨌다는 거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주적 인간으로서, 신적 인간으로서, 전지전능한 인간으로서 경배해야할 것인가? 나는 우주와 합일이 되었다. 나는 신과 합일이 되었다. 그래 정말 합일이 되..
신비주의적 합일 최근, 프린스턴 수학자 죤 내쉬(John Nash)의 생애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라는 영화가 말해주듯이, 수학적 환각과 노벨상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와도 같을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적법적 후계자이다. 플라톤 자신이 여기저기서 파르메니데스나 피타고라스에게 진 빚을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고백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희랍인들의 우주론적 구상을 추상적 사유의 길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추상적 사유(abstract thought)는 외부의 사실에 관계없이 작동하는 마음의 원리 같은 것이다. 이렇게 감관적 세계를 무시하고 사유적 세계만을 리얼한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철학의 측면이 피타고라스의 수학에 의하여 더욱 체계화되었고, 플라톤의..
합일과 피타고라스 우리는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위대한 철학이 이미 인도에 성숙되어 있었다면 도대체 싯달타라는 청년이 새롭게 얘기할 건덕지가 무엇이 있겠는가? 윤회와 해탈과 업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이미 완성되어 있지 아니 한가? 과연 싯달타가 말하는 중도란 무엇이며, 새로운 인간이란 무엇인가?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말을 잘 살펴보면, 여기에는 깊은 함정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브라흐만(Brahman)과 아트만(ātman)이 하나라는 이 명제 자체로도 기독교와 같이 신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복속이나 복종, 그리고 일방적인 관계로만 설정된 의미맥락에서는 매우 이단적일 뿐 아니라, 이미 충분히 서구의 유일신관과는 다른 동방적 신비주의의 원융(圓融)한 냄새를 풍긴다. 삼위일체를 ..
브라흐만 브라흐만(Brahman)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현재 과학적 세계관에서 살고 있다. 신ㆍ불신을 막론하고, 즉 믿거나 말거나, 현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과학의 법칙 같은 것을 믿는다. 과학의 법칙이란 우주의 나타난 모습들의 배후에서 그것을 작동시키고 있는 어떤 규칙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들은 막연하지만 어떤 전체적 통일성 속에서 연관되어 작동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것을 믿는 동시에 우리는 예외 없이 과학이라는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도 이 우주가 우리의 감관(感官)에 나타난 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관에 나타난 현상(phenomena, appearance)의 배후에 어떤 궁극적 실재(ultimale reality)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궁..
아트만 아트만(ātman)이란 뭐 그렇게 대단한 말이 아니고, 산스크리트어로 그냥 ‘나’라는 말이다. 그것을 한역하여 ‘아’(我)라고 했는데 범아일여론의 ‘아’가 곧 이 아트만이다. 아트만은 본시 ‘숨’(息)을 의미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숨쉰다는 뜻이다. 그 숨, 그 기의 주체를 아리안계 고대인도인들은 아트만이라 불렀던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자신의 서재에 있을 법한 아무런 『독한사전』을 하나 펼쳐서 ‘atmen’이라는 동사를 찾아보면, ‘숨쉬다, 호흡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독일어의 ‘아트멘’과 산스크리트어의 ‘아트만’은 완전히 동근이다.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같은 계열의 단어이다. 히틀러가 자기네 게르만족만이 아리안의 적통을 이어받은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신..
신비주의 여기에 또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 죽음도 결국 우리 삶의 문제이다.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죽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영원히 우리 삶 속에 있다. 죽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싯달타가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였다. 살아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위하여 그는 몸부림쳤던 것이다. 이러한 몸부림 속에서 싯달타라는 한 인도청년이 깨달았던 것은 중도(madhyamá pratipad)였다. 안락의 방법으로도, 선정의 방법으로도, 고행의 방법으로도 접근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길! 그 길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싯달타가 고행의 극한에서 고행을 부정했다는 사실은 그가 속했던 거대한 문명의 체계에 대한 일대 ..
고행이란 무엇인가? 그 다음에 고행이란 무엇인가? 여기 이 고행이라는 논의를 하기 전에,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남쪽으로 갈라지는 문화적 벨트의 대세를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의 황하를 중심으로 한 한자문명권의 사유 속에서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육체(body)와 영혼(soul)이라는 이원론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논의가 우선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그 신화적 세계로부터 심층구조를 논구해 들어간다면 물론 영과 육에 해당되는 어떤 분별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국적 사유의 대세는 애초로부터 영육의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고전한문 자체가 영육이라는 이원론을 중심으로 어휘형성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또 문법적으로도 영육이원론을 뒷받침할 어떤 구조를 제시하지 않는다. (주어 중심의..
선정지상주의 그러나 이 중도란 것은 매우 단순한 일상적 통찰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의 선정(禪定)에 빠져있는 불자들, 특히 좌선을 적통으로 삼는 선불교(Zen Buddhism) 전통 속에서는 중도를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보리수 밑에서 대각ㆍ성도를 했다는 싯달타의 모습을 생각할 때, 항상 가부좌 틀고 눈을 지긋이 감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는 요가수행자적인 선정의 성자의 모습만을 중도의 요체의 구현태로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후기 대승 불교의 아이코노그라피(iconography, 圖像學)가 만들어놓은 매우 불행한 오류 중의 하나이다. 즉 대각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가부좌 틀고 앉아있으면서 한(寒)ㆍ서(暑)를 인종(忍從)하고 버티어 내기만 하면 어느 결엔가 후딱 찾아오는 어떤 황..
중도와 뉴 웨이 중도란 무엇인가? 가운데 길인가? 가운데 길이란 무엇인가? 고통을 위한 고통은 결국 목샤(mokṣa, 解脫)라고 하는 자신의 출가의 본연의 목적을 망각한 어리석은 소치였다. 고행이 나를 벗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윤회의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의 기쁨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것인가?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들은 이를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이뇨? 하나는 모든 애욕에 탐착하는 것을 일삼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인 범부의 짓이다.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을 일삼아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니, 이..
부록 1.5. 중도에 관한 인용부분 여기 ‘중도’(中道)에 관하여 인용된 부분은 붓다가 사르나트에 와서 다섯 비구를 만나 설법한 초전법륜 중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중도의 자각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팔리어삼장은 근세에 불교남전지역에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손길이 뻗치면서 그들 유럽인학자들의 손에 의하여 새롭게 정리되고 그 유니크한 가치가 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1824년 클러프(B, Clough)에 의하여 최초의 팔리어문전이 출판되었고, 1826년 뷔르누프(E. Burnouf)와 랏센(Ch. Lassen)이 공동으로 『팔리어연구』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1855년 파우스뵐(V. Fausböll)이 학술적 가치가 있는 최초의 원전으로서 『법구경(法句經)』(Dhammapada)을 출판함으로써 세계 학술계에..
부록 1.4. 한역대장경과 티벹장경 팔리삼장, 한역대장경, 티벹장경은 제각기 특색이 있다. 팔리삼장의 오리지날 한 가치는 아무리 부언하여도 그 위대성을 다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이 팔리삼장의 간결성과 오리지날리티에 비한다면 중국의 한역대장경은 초기불교를 넘어서서 대승경, 대승률, 대승론 등 그 외로도 잡다한 형식을 다 포괄했을 뿐 아니라 인도인의 저작뿐이 아닌 중국인, 한국인의 저작까지 포함하여 매우 잡다하고 번쇄하고 방대하다. 전기, 목록, 여행기 등의 장르까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세기로부터 1천여 년에 걸친 번역이 중복되는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들어가 있으므로 그 역사적 전개를 파악하는 데는 매우 중요하다. 대장경의 편찬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삼장(三藏)의 체계를 ..
부록 1.3. 팔리어삼장에 대해 소승의 상좌부계열에서 성립한 결집장경으로 삼장(三藏)을 갖춘 유일한 경전이 소위 ‘팔리어삼장’인 것이다. 보통 우리가 대장경을 영어로 ‘트라이피타카’(Tripitaka)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 개의 바구니라는 팔리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세 개의 바구니란 무엇인가? 그것은 율(律)과 경(經)과 논(論)을 말하는 것이다. 율이란 승가를 유지하면서 생겨나는 여러 규칙이나 계율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경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설파한 내용들을 담아놓은 것이다. 논이란 부파불교시대로 들어가면서 이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후대의 제자들이 논구한 주석이나 독립논설이다. 물론 논은 경이나 율에 비해 그 권위가 떨어질 것이지만, 팔리경전의 특징은 삼장의 체제를 정확하게 유지했다는..
부록 1.2. 초기불교의 흐름 붓다의 사후 100년경 바이샬리(Vaiśalī)에서 소위 2차결집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불교교단 내의 사소한 규칙의 해석의 문제, 예를 들면 구걸해온 소금을 좀 축적해두어도 되느냐? 밥 먹는 시간을 좀 느슨하게 해도 되지 않느냐? 또는 깨달은 자라 해도 무지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보수적인 정통성을 그대로 고집하려는 상좌부(上座部)【그 회의에서 위에 앉은 원로들이었을 것이다. 팔리어로 Theravādins, 산스크리트어로 Sthaviravādins라고 한다】와 보다 대중적인 입장에서 느슨하게 해석하려는 승가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인 대중부(人衆部, Mahāsāṃghikas) 사이에서 의견의 차이가 생겨나, 교단이 분열하게 되는데, 이 분..
부록 1.1. 암송작업의 체계화 붓다의 생애에 붓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경전에서 추적하는 작업은 지극히 어렵다. 예수가 아람어(Aramaic language)라는 당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속말을 한 사람이라면, 붓다 또한 지금의 비하르 지역(간지스강 중류지역)의 통속어인 마가다어(Magadha language)를 말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아람어 이야기가 최초로 기록된 것은 코이네(κοινὴ)라는, 고전 희랍어가 대중화되고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공공언어였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은 산스크리트어나 서북인도의 팔리어, 그리고 다양한 쁘라끄리뜨어(Prākrit languages, 통속어)로 전승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도는 양피지나 종이와 같은 필기도구가 발달하지 않았을 뿐..
업의 새로운 이해 싯달타라는 청년의 사유의 혁명은 바로 이러한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까르마를 자유의지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까르마를 윤리적 주체로서의 나의 자각의 계기로서 심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의 전환은 최소한 윤리적 측면에서는 싯달타 뿐만 아니라, 챠르바카(Cārvāka 斫婆迦, 順世派) 쾌락주의자나 쟈이나교의 마하비라와 같은, 싯달타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현세에 있어서의 나의 업이 나의 미래의 생존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나는 주체적으로 윤리적 행위, 즉 선업을 통하여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나의 생존이 과거의 업의 결과라 해도, 그것은 체념이 아닌 끊임없는 자각과 반성의 계기..
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업의 사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서운 개인의 윤리를 요구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로써 새삼 새로운 각성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슬쩍 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런데 운좋게도 폐쇄회로 텔레비젼에 걸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본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들키지 않았다.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사실 하나의 무형의 이벤트이며, 들키지만 않는다면, 파도가 일었다가 잔잔해진 물처럼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분명한 나의 행위다. 즉 나의 까르마다. 그런데 이 까르마는 앞에서 말했지만 반드시 보(報)를 수반한다. 이미 저질러진 나의 까르마는 누가 보..
업에 대한 최대의 왜곡 그런데 『주역(周易)』이라는 중국경전의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선행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훗날에 경사가 있고 악행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훗날에 재앙이 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이 『주역』 「문언」의 말은 불교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성립한, 윤회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진 고대중국인의 역사의식을 나타내는 윤리적 명제이다. 그렇지만 이 유명한 『주역』의 말은 곧 불교의 업보론을 나타내는 중국적 명제로서 중국대승불교의 역사를 통하여 줄곧 인용되어 왔다. 선(善) → 必有 여경(餘慶) 불선(不善) → 必有 여앙(餘殃) 선-여경, 불선-여앙이 ‘반드시’(必)라는 부사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명제의 사실은 그것이 어떠한 시공에서 일어나..
윤회란 무엇인가? 그런데 윤회는 고대인의 우주관(cosmology)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논설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종교와 과학을, 철학과 종교를, 그리고 신앙과 이성을 적대적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하여 있다. 이것은 후대의 서구 계몽주의 정신에 의하여 파악된 왜곡된 희랍정신에 그 원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전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이 한 조류를 제외하면, 모든 사상에 있어서 종교, 과학, 철학, 이런 것들은 대립을 일으키지 않는다. 결국 모든 과학적 성취도 그 궁극적 배면이나 그 최초의 동기에는 반드시 종교적 통찰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인도인들이 인간의 삶을 윤회하는 것으로 파악한 이유는 대체적으로 윤리적인 동기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단순하게 그들이 우주의 과학적 실상을 추구..
생명의 원리로서의 불과 기와 숨 윤회의 주체로서의 생명의 상징을 불[火]로 볼 수도 있다. 한의학적 인체관에서 다루는 화(火)의 개념도 이러한 우주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싸늘한 것은 죽음이다. 우리 몸이 살아있다는 것, 즉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체온 즉 불[火]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이 어떤 상태로 인체내에서 배분되어 있느냐에 따라 건강과 불건강이 결정된다. 모든 생명의 불은 결국 태양과 관련된다. 생명의 원리로서의 불은 태양으로부터 광선ㆍ맥관을 거쳐 인체내로 들어 갔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역의 경로를 거쳐 태양으로 환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의 윤회사상도 인도인의 신체관이나 우주관에는 일찍 정착되었다. 이슬람 이전의 순수 페르시아 사상인 배화교(Zoroastrianism)의..
생명의 원리로서의 물 그런데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앞의 정원에 나는 조그만 채마밭을 하나 가꾸고 있다. 봄이면 글을 쓰다 나가서 무우씨나 깻잎씨를 뿌리고 가꾸어 먹는다. 그런데 이것들은 왕성하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라지만 가을이 되면 결실을 맺고 씨를 맺는다. 그래서 내년 봄이 되면 또 그 씨를 뿌리게 된다. 최소한 내가 올해 우리집 정원 채마밭에 뿌린 씨와 내년에 뿌리는 씨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이것을 같은 씨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씨를 보다 추상화시켜서 동일한 DNA구조의 지속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이 씨는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즉 씨는 같은 씨이지만 매년 다른 모습으로, 다른 환경의 기후 조건에서 다른 체험을 향유하면서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
고행과 해탈 신체적 고행이란 반드시 위대한 수행승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성철스님과 같은 위대한 수행자보다도 더 치열한 용맹정진 속에 신체적 고행을 감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태능선수촌에서 신체적 극기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청년들, 세계 챔피온의 꿈을 꾸며 시골 마찻길을 매일 질주하고 있는 권투선수, 월드컵의 함성에 보답하기 위해 사선을 뚫고 있는 축구선수들, 최소한 신체적 고행(physical penance)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용맹정진의 도수나 긴장감은 고승들의 고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퍼뜩 한 운동선수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
기나 긴 사색의 출발 니련선하에서 뽀이얀 먼지 속에 서산에 이글이글 지는 해가 대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대지를 엄습할 때, 내가 보드가야(Bodhgaya)에 도착한 것은 2002년 1월 8일의 일이었다. 우연히 나의 카메라에 잡힌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묵언의 멧세지를 전해줄 것이다. 광활한 대지,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 휘몰아치는 먼지 바람, 깡마른 다리를 휘감어대는 도포자락을 떨치며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나이, 터번 속에 가린 얼굴은 중생의 고뇌를 다 씹어 먹은 듯, 니련선하의 풍진에 자신의 풍운을 다 떠맡기고 있었다. 고타마 싯달타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까? 저 광막한 니련선하 건너로 희미하게 하늘을 가리운 산이 전정각..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목차 책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1. 창시자가 아닌 인간으로 2. 화려하게 되살아난 공자 3. 13명의 유학자들로 살펴본 가능성과 한계 공자(孔子): 인의 이념과 예의 실천 좌절한 정치가 유학사상의 창시자로 군자와 소인의 조화로운 정치질서 군자는 바람, 소인은 풀과 같다 인자(仁者)의 이상과 인자가 되는 방법: 극기복례(克己復禮) 인자(仁者)의 이상과 인자가 되는 방법: 서(恕) 공자에 이르러 바뀐 군자의 의미 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예(禮)와 인(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더 읽을 것들 맹자(孟子): 측은지심의 발견으로 유학의 수양론을 만들다 공자 사상을 지키려는 소명의식 자신의 본성을 확충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측은지심이 골고루 흘러가게 해주면 된다 성..
4. 동정심의 논리와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동정심의 논리’입니다. 근대 서양 윤리학은 칸트(I. Kant, 1724~1804)의 정언명령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도덕형이상학원론(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에서 칸트는 윤리적 명령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의지의 준칙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 입법자로서 간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해야만 한다.” 칸트의 이 말은, 자신이 타인에게 행하려고 생각한 행동이 누구나 수행해도 좋을 행동인지를 미리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려고 합니다. 칸트는 이럴 때 먼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
3. 가족의 논리 유학 사상은 사실 공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자가 창시했지만, 12인 아니 그 이상의 유학자들이 합류하여 풍성하게 만든 거대한 강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거대한 강물은 서양 문명이라는 둑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거대한 둑을 넘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중국 인민대학의 이나 KBS 방송에서 예언했던 것처럼 이 거대한 강이 앞으로 계속 흘러나가 인류의 비전이 될 수 있을까요? 서양 문명을 넘어서 유학 사상이 미래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장점을 유학 사상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하나는 가장 원형적인 공동체의 모델로 가족을 강조했던 유학 특유의 ‘가족의 논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중요성을 강조..
2. 예절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이 난다 유학 사상은 공자라는 수원지로부터 발원되어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로 뻗어나간 거대한 강과도 같습니다. 이 거대한 강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질적인 지류들이 합류하지만, 여전히 유학 사상은 공자의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로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의 사상은 어떤 힘이 있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도하게 흘러오고 있을까요? 나는 그것을 인간에 대한 공자의 긍정적인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인간에게서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수양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모..
에필로그 1. 작은 단점 때문에 포기해선 이해를 안 된다 공자에서 시작하여 정약용에 이르는 13인의 유학자들 이야기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과연 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대충 감을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실린 공자를 제외한 12인의 유학자들은 모두 자신만이 공자의 충실한 수제자라고 자부했던 사상가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결같이 이전의 유학자들은 진정으로 공자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학자들이 공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주희는 자신이 공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주희가 본 것은 공자의 진정한 면모가 아니라고 비판했지요. 뿐만 아니라 유학을 좋아하는 현대..
더 읽을 것들 1, 『다산 맹자요의』(정약용, 이지형 옮김, 현대실학사, 1994) 정약용의 저서는 너무도 많습니다. 그의 저술들이 실려 있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는 아직도 원문조차 모두 번역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나마 다행히 중요한 그의 저서들 몇 권이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도 정약용의 사상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동아시아 철학의 집대성자였던 정약용의 유학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으로 이지형이 번역한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번역서들 가운데 유독 이 책을 택한 이유는, 정약용의 『맹자요의(孟子要義)』가 유학자로서의 독창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데 가장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지형의 번역서는 번역 상태가 매우 훌륭해서 일반 독자들이 편하게 읽기에도 손색이 없습니..
유학의 마음 이론을 새롭게 체계화하다 고독한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주희, 마테오 리치, 이토 진사이 등 다양한 경향의 사상가들과 오랫동안 씨름했습니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약용이 어느 누구의 입장에도 쉽게 경도되지 않는 놀라운 균형 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주희의 이기론을 치열하게 공격했습니다. 이 점에서 정약용은 리치와 진사이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가 리치와 진사이의 사유를 맹목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리치와 진사이 등의 사상가에게서 합리적인 요소들을 수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공격했던 주희에게서도 많은 측면을 흡수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 정약용은 이들 사상가들의 다양한 관점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 자리에 서 있었음을 ..
자유의지의 도입 그런데 이 자유의지론에 누구보다도 정약용이 강한 호기심과 관심을 표명했지요. 기존의 전통적인 유학자들은 의지라는 말을 본성을 따르려는 수양 공부에 적용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리치의 경우처럼, 자유의지 작용이 없으면 어떤 행위를 선하다고 부를 수 없다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유학에서 측은지심이란 나의 의지나 선택과는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마음의 선천적 성향을 의미합니다. 리치의 관점에 따르면, 어떤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저절로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은 결코 선한 행위가 아닙니다. 주체의 의지적 선택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유학자들은 당연히 이 측은지심이야말로 선..
선을 결정하고 구성하는 자유의지를 천명한 리치 리치는 인간의 자유와 자유에 따른 선택 행위가 전제될 때에만 선과 악이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선악 개념이란 것 자체가 자유의지를 토대로 해야만 정립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나 동양의 유학 사상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선천적 본성이 천명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절대적인 선이 이미 천명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리치가 생각한 인간의 본성은 유학자들이 생각했던 본성과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리치는 이성적 추론 능력을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꼽았지만, 학자들은 선을 좋아하고 선을 하고픈 감성적 욕망을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았습니다. 리치는 인간이 가진 이성적 추론 능력을 통해 옳고 그름을 변별하고,..
유학자들의 본성론과 신부의 자유의지론 정약용 철학의 종합적이며 체계적인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천주실의(天主實義)』라는 책을 한문으로 지은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입니다. 예수회 소속 신부인 그가 처음 중국으로 들어간 것은 명나라 말기, 정확히 말해서 1583년의 일입니다. 사실 그가 중국으로 들어간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천주교를 중국인의 내면에 심기 위한 선교의 일환이었지요. 그런데 리치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당시 중국인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중국의 전통 철학, 특히 주희의 신유학적 사유와 먼저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희의 사유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천주교의 교리를 중국인들에게 그..
이토 진사이의 견해를 따르다 한편 정약용은 인의예지의 내용을 새롭게 이해함과 아울러 구체적인 공부 방법에서도 주희와는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주희는 네 가지 덕목이 모두 나의 본성 안에 들어 있으므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라고 권고합니다. 곧 미발의 함양 공부를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약용은 이런 공부는 공맹(孔孟) 같은 성인들의 자세가 결코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인의예지가 행사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해서 그 덕을 이루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의예지가 본심(本心)의 완전한 덕이라고 알면, 사람의 일은 다만 벽을 향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서 빛을 돌려 내면으로 비추도록 하여, 이 마음의 본체를 텅 빈 듯이 밝고 또렷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마치..
인의예지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이 네 가지 단서야말로 내가 처음 깨닫게 되는 윤리적 욕구라고 이해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네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삼아 조금씩 확충해가면, 마침내 언젠가는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덕목들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곧 그 순서가 사단에서부터 사덕으로 나아간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정약용은 이런 관점에 따라 인의예지 덕목들은 구체적인 행동, 즉 행사(行事) 이후에 성립될 수 있는 명칭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의예지의 명칭은 반드시 행사 이후에 성립된다. 어린애가 우물에 빠질 때 측은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가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근원을 살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없다. 若其仁義禮智之名 必成於行事之後 赤子入井 惻隱而不往救則不可原其心而曰仁也 약기인의예지..
형이상학적 유학을 넘어 실천적 유학으로 정약용은 주희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매우 좋아했지만, 주희가 말한 미발의 함양 공부나 내면에 깃든 인의예지 본성에 대한 설명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정약용이 공자와 맹자의 인의예지 개념을 다르게 해석했음을 말해주지요. 그는 공자가 말한 인(仁)을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풀이합니다. 왜냐하면 인이란 한자는 사람 인(人)과 두 이(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정약용은 바로 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옛 전서에 따르면 인(仁)이란 글자는 인(人)과 인(人)이 중첩된 문자였다. 아버지와 자식은 두 사람이고 형과 동생도 두 사람이며, 군주와 신하도 두 사람이고 목..
선을 알고 선을 실천하려는 윤리적 욕망 정약용은 타고난 본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마음 상태를 곧 도심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 행동이란 이 도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지요. 성(性)이 드러난 것을 도심이라고 한다. 도심은 항상 선을 하고자 하고, 또한 선을 선택할 수 있다. 한결같이 도심이 하고자 하는 바를 들으면 이것을 성을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불의(不義)한 음식이 앞에 있을 때 입과 배의 욕구가 넘쳐나겠지만 마음이 고하길 “먹지 마라! 이것은 불의한 음식이다”라고 하면, 나는 그 고함에 따라서 음식을 물리치고 먹지 않는다. 이것을 성을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중용자잠(中庸自箴)』 1:3 性之所發 謂..
본성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다 인심도심(人心道心)의 공부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정약용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무릇 하나의 생각이 발동하면 곧바로 두려워하고 맹렬히 반성하면서 말한다. “이 생각은 공적인 천리(天理)에서 나온 것인가, 사적인 인욕(人欲)에서 나온 것인가, 이것은 도심(道心)인가, 인심(人心)인가?” 세밀하고 절실하게 연구하여 이것이 과연 공적인 천리라면 배양하고 확충하며, 혹여 사사로운 인욕에서 나왔다면 막고 꺾어서 극복한다. 군자가 입술이 타고 혀가 닳도록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의 변론을 열심히 전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퇴계는 일생 동안 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기르는 공부에 힘썼다. 그러므로 이발과 기발을 나누어 말하면서 이 구분에 밝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학자가 이런 뜻을 ..
주희의 인심도심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다 그러나 정약용은 주희가 만년에 집필한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보자 마음이 달라집니다. 정적인 함양 공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태 속에서 드러난 인심과 도심의 싸움으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한 주희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요. 급기야 주자학을 비판해왔던 정약용은 주희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만은 유학의 도를 잇는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극찬합니다. 맹자가 죽은 뒤 도(道)의 흐름이 드디어 끊어졌다. 전적들은 전국시대에 소멸되고 경전들은 진시황과 항우에 의해 불태워졌다. (…) 한나라 유학자들이 경전을 설명할 때 모두 문자상에서 훈고했을 뿐,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구분, 소체(小體)와 대체(大體)의 구별에서는 어떤 것이 인성(人..
반주자학자, 탈주자학자 정약용은 주자학을 비판적으로 해체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조선시대는 고려의 불교적 관념을 비판하면서 주자학, 곧 성리학을 왕조의 정통 이념으로 채택했지요. 그런데 이 주자학이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매우 경색됩니다. 다시 말해, 현실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지식인들과 관료들의 사변적인 논쟁 수준에 머물고 만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사변적인 논쟁을 통해서 불가피한 현실의 변화와 개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억압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회 내부적으로 정통 이념인 주자학의 아성과 권위에 도전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으면서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이 매우 무력한 태도를 보여주었던 터라, 주자학의 유..
경학의 집대성자 정약용은 자신의 묘지명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바로 유명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입니다. 이 묘지명에서 정약용은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로 자신의 몸을 닦고, 일표(一表)와 이서(二書)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린다”고 역설했습니다. 정약용 본인의 포부를 들어보면, 그는 자기 수양을 위한 경학(經學)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경세학(經世學)을 모두 중시했음을 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정약용의 경세학은 근본으로서의 경학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경학과 경세학을 본말(本末)의 관계, 다시 말해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했으니까요. 여기서 경학이란 유학 경전들에 대한 주석학적 연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수많은 유학자들은 기존과 ..
경세학의 집대성자 정조(正祖)가 사망하고 노론(老論)이 다시 정국을 지배하게 된 1801년부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뜻하지 않은 유배자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유배 기간이 18년 넘게 지속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 고독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 망각되어 홀로 늙어갔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고독한 유배자였지요. 하지만 사상가로서 책을 통해 위대한 대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에서 그는 절대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18년이 넘게 지속된 그의 유배 기간은 오히려 학문적으로 행운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지요. 이때 정약용은 기존의 사유 전통들과 싸우면서 충분히 자신의 사유를 가다듬고 숙고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로써 우리..
정약용(丁若鏞) 새로운 유학 체계를 꿈꾼 마지막 대가 조선의 가장 남쪽에 강진이란 마을이 있다. 그곳에 어느 유배자가 18년 동안이나 머물게 된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이다. 표면적으로 그의 유배 생활은 무척 고독하고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고달픈 유배 시기는 정약용이라는 조선의 한 유학자를 19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탁월한 유학 사상가로 만드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곳 강진에 머물면서 정약용은 19세기 동아시아 사상계에 유행했던 여러 종류의 사유 경향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희의 신유학, 마테오 리치의 서학, 청나라의 고증학 그리고 일본의 고학 등 다양한 사유와 치열하게 논쟁한 끝에, 마침내 정약용은 자신만의 고유한 유학 체계를 집대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
더 읽을 것들 1. 『일본정치사상사연구』(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통나무, 1995) 불행히도 일본의 탁월한 유학자 오규 소라이의 저술이 번역된 것은 아직 국내에는 없습니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아직까지는 매우 얕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간접적으로라도 소라이 유학 사상의 윤곽을 알려주는 책이 하나 있어 다행입니다. 그 책은 바로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입니다. 물론 이 책은 저자가 일본의 근대성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만 소라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라이의 저술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까지 이 책은 소라이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할 것입니다. 2. 『도와 덕: 다산과 오규 소라이의 「중용」 「대학 해석』(..
정신적 스승 진사이를 비판하다 한편 성인이 만든 문명 제도를 따름으로써 덕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던 소라이는 이제 선배 고학자인 이토 진사이마저 공격합니다. 공자까지도 선왕의 아류라고 생각했던 그가 공자를 성인으로 생각했던 진사이를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토 진사이 선생의 경우도 자신이 덕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주희와 진사이 사이의) 차이점은 단지 본성과 덕이라는 개념의 명칭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진사이 선생은 『맹자』를 오독하여 사단을 확충하여 덕을 이룬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렇다면 진사이 선생과 주희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변명(弁名)』 「덕육칙(德六則)」 如仁齋先生知德自負, 乃爭性與德之名耳. 亦誤讀孟子而至謂擴充四端以成德, 則與朱子何別? 여인재선생지..
자신의 기질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소라이는 공자를 윤리적인 완성자라기보다 좌절한 정치가에 가까운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의 『논어』 독해가 다분히 정치철학적인 색채를 띤 것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소라이는 『논어』 「양화(陽貨)」 편에 등장하는 공자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물론 그의 정치철학적 구미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요. “본성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은 서로 멀다. 오직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옮길 수 없다[唯上知與下愚不移].”라는 구절에서 상지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그리고 하우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지요. 이에 대한 소라이의 입장을 들어보겠습니다. 공자는 또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옮길 수 없다”고 했으니, 이것은 상지와 하우를 제외한 다른 자들은 모두 선으로 옮길 수 ..
오규 소라이는 공자까지도 넘어섰을까 모든 유학자들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인물이며 동시에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은 바로 공자입니다. 이런 공자를 부정하는 순간, 그 누구도 더 이상 유학자라고 자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라이에 따르면, 공자는 자신이 내세우는 선왕(先王)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라이가 말한 선왕이란 공자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요임금과 순임금을 가리키지요. 소라이가 볼 때 공자는 문명 제도를 새롭게 창조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잘 살리려고 노력한 정도의 인물이지요. 더구나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문명 제도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군주의 자리나 대신의 자리에 오를 수 ..
각자의 덕이 있다 그런데 소라이의 선왕은 도를 제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도를 따르도록 강제할 수 있는 강제력, 다시 말해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선왕은 문명의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최고 통치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백성들이 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라이가 사용한 덕(道)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덕은 얻었다는 뜻이며, 사람마다 각각 도로부터 얻은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본성으로부터 얻고 어떤 사람은 배움으로부터 얻으니, 모두가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성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덕 또한 사람마다 다르게 된다. 도는 위대한 것이니, 성인이 아니라면 어찌 위대한 도와 자신이 합치될 수 있겠는가! 『변..
도(道)란 고대 선왕이 창안한 것 『태평책』에서 소라이는 성인(聖人)의 도는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소라이가 여타의 신유학자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여러분, 유학자 정이를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는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을 쓰면서 신유학 이념을 정초했던 유학자입니다. 그는 누구나 배우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맹자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기도 합니다. 맹자는 우리의 내면에 선한 본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본성을 확충하기만 하면 모두 성인이 된다고 보았지요. 그런데 만약 맹자나 정이의 이야기가 옳다면, 이론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성인들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달리, 소라이는 성인이라는 존재는 ..
내면에 갇히게 될 위험한 수양론 비판 소라이가 주희의 함양 공부만을 비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주희가 제안한 모든 종류의 수양론은 불교의 이론과 다를 바 없는 주관적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태평책(太平策)』이라는 소라이의 유명한 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구절씩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지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의만 번거롭게 되어버려, 마침내 성인의 도(道)가 세상에서 정치를 하는 도(道)와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 유학자 무리들은 성인의 도가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도라는 것을 제쳐두고, 천리, 인욕, 이기, 음양, 오행 등과 같은 신비한 주장들을 앞세웠으며, 지경, 주정, 격물, 치지, 성의, 성심 등과 같은 스님들에..
신유학의 수양론을 해체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는 주희가 제안한 성인이 되는 방법, 즉 그의 수양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요. 외부 사물들에 내재하는 이(理)를 계속 탐구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단지 하나의 초월적인 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통찰하게 됩니다. 주희는 이러한 과정을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 강물 속에 있는 달그림자를 보면, 강물이 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강물들을 계속 관찰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그러한 달그림자들이 결국은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희가 ‘활연관통(豁然貫通)’이라고 표현했던 정신 상태이지요. 그런데 주희를 포함한 신유학자들은 모두 인..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긍정 그러나 소라이는 주희가 제안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도식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는 단지 개체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기질만을 긍정할 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뒤에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지요. 기질이란 하늘의 성(性)이다. 인력으로 하늘을 이겨서 타고난 것을 바꾸려고 해도,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할 수 없는 일을 사람들에게 하도록 강요한다면, 마침내 그 사람들이 하늘과 부모를 원망하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다. 성인의 도는 결코 이렇지 않았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매 경우마다 그들의 재질에 따라서 완성시켜주었다. 『변도』 14 氣質者, 天之性也. 欲以人力勝天而反之, 必不能焉. 强人以人之所不能, 其究必至於怨天尤其父母矣. 聖人之道必不爾矣. 孔門之敎弟子, 各因其材以..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희의 주장 주희는 인간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모두 동일한 이(理), 즉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는 이런 주희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은유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한 개의 달, 천 개의 강물, 그리고 천 개의 강물 속에 비친 달그림자. 이것들은 각각 초월적인 하나의 이와 다양한 개체들, 그리고 개체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상징합니다. 또한 천 개의 강물에 비유되는 다양한 개체들을 기(氣)라는 개념으로 불렀음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주희는 이러한 초월적인 이를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부르고, 개체들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유학의 기원으로 올라간 유학자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5대 쇼군(將軍)은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였습니다. 쓰나요시의 총애하는 가신(家臣) 가운데 야나기자와 요시야스(柳澤吉保, 1658~1714)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신 요시야스가 관할하던 영지에 해결하기 난감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떤 농민이 생활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집과 전답, 게다가 아내마저 버리고 도망친 것입니다. 그나마 그 농민은 어머니만은 버리지 않고 함께 동행했다고 합니다. 물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구걸해야 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곧 병이 깊이 들었고, 농민은 어쩔 수 없이 길가에 어머니를 버리고 혼자 에도(江戶), 즉 지금의 도쿄(東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버려진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요시야스의 영지로..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측은지심의 발견으로 유학의 수양론을 만들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라는 유명한 현대 사상가는 일본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을 어느 유학자로부터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는 바로 이토 진사이를 비판했던 오규 소라이라는 또 다른 고학파의 한 인물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오규 소라이를 중시했던 이유는, 그가 정치와 윤리의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규 소라이는 유학 사상의 핵심을 윤리가 아닌 정치에서 찾았던 사상가이다. 그는 성인을 윤리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문명 제도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일본 근대성의 문제를 규명한 학자들이, 오규 소라이의 생각에서부터 메이지 유신이라는 제도 개혁을 단행했던 메이지 천황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
더 읽을 것들 1. 『이또오 진사이』(이기동, 성균관대출판부, 2000) 주희의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을 넘어서 고학(古學)이라는 새로운 기풍을 탄생시킨 일본의 유학자는 바로 이토 진사이입니다. 얼핏 보면 이 책은 이토 진사이에 대한 연구서나 평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책에는 이토 진사이의 사상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에 이토 진사이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어맹자의(語孟字義)』가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원문도 부록으로 함께 실려 있습니다. 2. 『주자학과 근세일본사회』(와타나베 히로시, 박홍규 옮김, 예문서원, 2007) 이토 진사이의 유학 사상이 출현하게 된 이유로 일본 특유..
이토 진사이의 선견지명 진사이가 타자에 대한 인식에 눈뜨게 된 계기를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이야기만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대대로 교토에서 상인으로 지내온 진사이의 집안에서는 그가 주자학을 공부하려는 것을 보고 상인이 되지 않으려면 차라리 실용적인 의사가 되라고 강권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사이는 끝까지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고,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를 사랑함이 더욱 깊은 사람은 나를 공격하는 것에 더욱 힘쓴다. 그 고초의 상황은 마치 죄인이 심문대에 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1권 「송편강종순환류천서(送片岡宗純還柳川序)」.” 마치 심문대에 올라 죄를 반성해야 하는 죄인처럼..
충서에서 타자의 논리를 찾아내다 그러나 진사이는 ‘서’의 공부가 결국 타인의 고유한 욕망과 판단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공부는 자기 수양으로서의 충 공부를 통해서는 확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만 ‘서’의 공부가 실현되는 것이지요. 진사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매우 분명하게 알지만, 남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연하여 살필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남과 나 사이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마치 북쪽의 호(胡)와 남쪽의 월(越) 사이와도 같다. (…) 진실로 남을 대할 때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어떠하고, 그가 대처하고 행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살펴서, 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그의..
공자의 충서를 새롭게 해석하다 진사이의 극찬에 따르면, 공자는 수많은 타자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 삶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최고의 성인이었습니다. 그것은 공자가 ‘충서(忠恕)’라는 실천 방법의 가치를 설파했기 때문이지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진사이는 주희의 경 공부에서 공자의 충서의 방법으로 돌아섰고, 젊었을 때의 호 ‘교사이(敬齋)’를 공자의 인(仁)을 따라 ‘진사이(仁齋)’로 바꾸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그가 중시했던 공자의 인은 충서의 방법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궁극적 가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충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恕)’이다. 『집주』는 정자를 인용하여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이다”라고 했는..
맹자의 성선설을 다시 숙고하다 이제 진사이는 주희의 미발ㆍ이발 개념의 구조를 넘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해명합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어 너라고 모욕하면서 주는 음식도 받을 수 있고 동쪽 집의 처자를 유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수오지심이 있어 그것을 막기 때문에 그런 탐심을 함부로 풀어놓을 수 없다. 본성이 선하지 않다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이것이 맹자가 성선(性善)을 논한 본래 취지이다. - 『어맹자의』 「성(性)」 人有嗜慾, 可以受嘑爾之食, 可以摟東家之處子. 然必有羞惡之心爲之阻隔, 不敢縱其貪心. 非性之善, 豈能然乎? 是孟子論性善之本也. 인유기욕, 가이수호이지식, 가이루동가지처자. 연필유수오지심위지조격, 불감종기탐심. 비성지선, 기능연호? 시맹자론성선지본야. 물의 본성은 아래로 흐..
맹자의 본성론을 다시 숙고하다 진사이는 주희의 경 공부와 그 공부를 통해 추구한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심리 상태를 비판했습니다. 그 비판은 주희가 인간의 마음을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이해한 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희는 마음의 감정이 발동하기 이전의 상태를 미발이라 하면서,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기 위한 경 공부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물론 주희는 마음의 감정이 이미 발동한 때를 의미하는 이발의 때에도 나름의 공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진사이는 애초에 공맹의 사유에는 미발과 이발의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더구나 미발의 상태로 마음을 분석하면, 이는 마치 물이 땅속에 있는 경우를 논..
주희의 명경지수(明鏡止水)를 비판하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주희의 내면적 경향의 공부법을 비판함과 동시에 진사이는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유학에서는 이 표현을 쓸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그는 불교와 노자(老子)의 사상을 언급하면서 그 공부법이 바로 명경지수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불교가 아무런 사유가 없는 맑디맑은 마음을 추구한다면, 노자는 무욕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모두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추구한 점에서 동일한 관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진사이가 말한 내용을 살펴보지요. 불교와 노자의 가르침은 맑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무욕을 방법으로 삼는다. 공부가 무르익게 되면, 그 마음이 맑은 거울이 빈 것과 같고 잠잠한 물이 맑은 것과도 같..
주희의 경(敬) 공부를 비판하다 일본 고학파 유학을 창시한 이토 진사이는 먼저 주희의 경 공부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전개합니다. 주희가 강조했던 유명한 수양법의 하나인 경 공부는, 구체적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자기 마음을 고요하게 응시하는 공부법이었습니다. 주희는 사적인 판단과 욕망을 가라앉히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면,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본성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지요. 그가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비유를 든 것도 이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맑은 거울과 고요하게 그친 물처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내면에 깃든 본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진사이는 주희의 이런 신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완전한 본성의 모습이 이미 내면..
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유학자가 된 소년 어느 집안에 총명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온 가족은 장남으로 태어난 그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물론 그 아들이 출세하여 집안을 빛내주고 경제적으로도 지켜주길 원했지요. 가족은 아이가 당시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던 의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가족의 바람을 충족시키는커녕 도리어 어린 시절부터 철학에 깊이 빠져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만 가까이합니다. 가족이 몹시 당황스러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까지도 아이를 불러 야단치고 훈계하면서 철학을 포기하고 의학으로 진로를 돌리라고 무던히도 타이릅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는 꿋꿋하게 자신이 원했던 철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바로 1..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타자의 발견을 통해 공자를 되살리다 일본의 어느 시장 풍경이다. 혼잡한 시장을 거닐면서도 우리는 홀로 있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사람들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는데도 왜 고독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시장이라는 장소에서 우리가 다양한 타자들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이곳에 온 것일까?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낯선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이 말을 걸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오직 그 경우에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일본 고학파 유학자인 이토 진사이는 바로 ‘타자’의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했던 보기 드문 유학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더 읽을 것들 1.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한국사상연구소 편집, 예문서원, 2001) 한국사상연구소가 편집한 이 책은 한국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문들을 선별하고 풀어내어 소개한 9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집입니다. 「한국의 성리학 사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의 4부에는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논쟁’, 이이의 유학 사상, 나아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 등에 대한 원문과 그 번역문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 각 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간략한 해제가 함께 실려 있어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됩니다. 2. 『한국철학 에세이』(김교빈, 동녘, 2003) 이 책은 한국 철학을 대표하는 9인 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제목 그대로 에세이 식..
이황과 이이의 후배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지 않다 그러나 이간의 낙론(洛論)과는 달리, 한원진을 대표로 하는 호론(湖論) 계열 학자들은 개별자의 문제에 대해서 경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론을 주장하는 유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다고 보는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원진이 왜 이간의 의견에 반대하는지, 그의 말을 경청해보도록 하지요.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은 오행 중 빼어난 기(氣)의 이(理)입니다. 반드시 빼어난 기를 얻은 뒤에야 그 이를 비로소 오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빼어난 기를 얻지 못하면, 비록 이가 있다 해도 오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를 모두 얻었으므로 오상의 덕을 모두 갖추었으나, 동물은 혹여 하나의 빼어난 기..
이황과 이이의 후배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다 앞에서 보았듯이, 젊은 유학자 기대승의 반발로 시작된 논쟁이 바로 ‘사단칠정논쟁’입니다. 이때 이황은 사단의 마음과 칠정의 마음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물론 사단의 마음이 다른 마음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이(理)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야만 하겠지요. 바로 이 점을 젊은 유학자 기대승이 집요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어떻게 기(氣)를 떠나서 이(理)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지요. 사실 주희에게 이는 작용하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것에 편재하는 순수한 이치였습니다. 이 점에서 기대승의 문제 제기는 범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비판이라고도..
기대승을 편들며 이황을 비판한 이이 이렇게 이이는 사단을 칠정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감정에 포함시키고, 두 가지 모두 기로서의 마음의 작용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단은 칠정을 포괄할 수 없지만 칠정은 사단을 포괄합니다. (…) 사단은 칠정이 완전한 것만 같지 않고, 칠정은 사단이 순수한 것만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저의 생각입니다. 『율곡전서』(10권) 「답성호원(答成浩原)」 四端不能兼七情 而七情則兼四端 (…) 四端不如七情之全 七情不如四端之粹 是則愚見也 사단불능겸칠정 이칠정즉겸사단 (…) 사단불여칠정지전 칠정불여사단지수 시즉우견야 사실 이이의 ‘사단칠정론’은 기대승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먼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칠정 중 가장 순수한 것이 바..
드러난 측은지심은 기에 속한다 앞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이이는 본성, 마음 그리고 감정이 이(理)에 속하는지, 아니면 기(氣)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성(性)은 형체도 없고 작용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속하지요. 반면 마음[心]과 감정[情]은 뚜렷한 형체는 없더라도 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구분한다면, 이이의 생각대로 마음과 감정의 작용은 모두 기에 속하게 되고, 본성 자체는 이에 속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이가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퇴계 선생은) ‘사단은 이(理)가 드러나서 기(氣)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드러나서 이(理)가 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기가 드러..
주희의 이기론을 그대로 따른 이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이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사단이 이(理)가 드러난 경우라면 칠정은 기(氣)가 드러난 경우라고 보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가 드러난다는 말은 우리 내면에 있는 이가 외부 사물을 만났을 때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라는 것이 마치 기처럼 그렇게 작동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던지는 이유는 주희에게서 이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를 다시 떠올려보도록 하지요. 강물은 요동치며 작용합니다. 그에 따라 강에 비친 달그림자도 요동치게 되겠지요. 이런 경우 달그림자 자체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신 왕래에도 애초의 입장을 유지하다 그러나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니까요. 논쟁이 심화되자 이황은 자신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개념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이황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이론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럼, 이황이 8년 동안 논쟁을 마무리하면서 정리한 ‘사단칠정론’의 핵심 부분을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사단이 외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진실로 칠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理)가 드러날 때 기(氣)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날 때 이가 타는 것입니다. (…) 대개 이가 드러날 때 기가 따른다는 것은 이를 주로 하여 말했을 뿐..
이황, 윤리적 감정과 현실적 감정의 차이를 사유하다 이황은 사단의 순수성을 확신했던 유학자입니다. 그 순수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사단은 이(理)가 드러난 것’이라고 역설했던 것이지요. 그런 이황에게 기대승의 편지는 도발적인 도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기대승은 자신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아래인 젊은 유학자이지 않습니까?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학의 정신으로 보면, 이황은 기대승을 선배 유학자를 가르치려드는 오만한 학자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황은 기대승이 젊다는 이유로 그의 반박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대승의 도전을 자신의 학문적 성숙을 가능하게 해준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황의 반론을 한번 들어볼 순서가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
절도에 맞게 드러난 감정이 사단이다 또 기대승은 사단이 그 자체로 보면 선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절도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사단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감정[情]에 대해 자세히 논한다면, 사단이 드러날 때에도 절도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진실로 다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을 살펴보면, 간혹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될 것에 대해 시비를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봉집(2권)』 「고봉상퇴계사단칠정설(高峯上退溪四端七情說)」 若泛就情上細論之, 則四端之發, 亦有不中節者, 固不可皆謂之善也. 有如尋常人, 或有羞惡其所不當羞惡者, 亦有是非其所不當是非者. 약범취정상세론지, 즉사단지발, 역유..
이황에게 날아든 한 통의 서신 어느 날 옆집에서 살고 있던 유학자 정지운(鄭之雲)이 이황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만든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이황에게 보여주고, 그림과 그림에 붙인 설명이 옳은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지요. 『천명도설』을 살펴보다가 이황은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드러난 것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에서 드러난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무심결에 이황은 이 구절을 ‘사단은 이가 드러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난 것이다’라고 고쳐주었습니다. 약간 어렵고 복잡한 논의이지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사단’과 ‘칠정’이란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단’은 이미 맹자의 유학 사상을 다룰 때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유학자로 살아가는 이이의 방법 조선시대 모든 사대부의 현실적인 꿈은 과거 급제에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겉으로는 안빈낙도(安貧樂道)했던 공자의 수제자 안연을 흠모한다며 읊조리고 다녔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위해서나 부모와 가문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대부의 의무였습니다. 이 점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통 사대부가 한번도 합격하기 힘들다는 과거시험에 자그마치 아홉 번이나 합격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합격이 아니라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렀습니다. ‘구도장원공’이란 ‘아홉 번이나 장원에 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으로 ..
유학자로 살아가는 이황의 방법 1392년, 조선왕조가 고려왕조를 붕괴시키고 이 땅에 새롭게 등장합니다. 조선 개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바로 고려 말에 들여온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 특히 주자학을 배웠던 사대부들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해두어야 할 유학자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라는 인물이지요.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이념적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것이었지요. 그는 우선 고려왕조의 이념적 토대였던 불교를 비판할 수 있는 신유학의 사상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394년 완성된 『심기리편(心氣理篇)』과 1398년 완성된 『불씨잡변(佛氏雜辨)』입니다. 『심기리편』에서 정도전은 불교를 마음[心], 도교를 ..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주자학을 심화시킨 철학적 논쟁들 조선은 주희를 따르던 유학자들이 세운 왕조였다. 따라서 이 땅의 유학자들에게 중국인 주희의 사상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필수적인 학문이었다. 복잡하고 방대한 주희의 사상을 정리하느라 그들은 자신의 평생을 바치기도 했다. 마침내 어느 정도 주희의 생각을 따라잡게 되자, 조선 유학자들은 도설(圖說)이라는 형식의 글을 만들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간단한 도식과 설명으로 주희의 가르침을 요약하려고 한 것이다. 이황과 이이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이황은 주희의 가르침을 열 장의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글을 지어 임금에게 바쳤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성학십도(聖學十圖)』라는 책이다. 아래의 사진은 그중 첫 번째 그림에 해당된다. 인용 목..
더 읽을 것들 1. 『전습록』 1·2(왕수인, 정인재 · 한정길 옮김, 청계, 2007) 왕수인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은 바로 『전습록』입니다. 『전습록』(1ㆍ2)은 국내 두 양명학(陽明學) 연구자들의 열정이 반영되어 있는 중요한 번역서입니다. 번역문과 함께 전체 원문이 실려 있어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습록』에 대한 기존 유학자들의 이해 방법을 주석으로 친절하게 달아놓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번역서가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부분이지요. 2.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 청년 왕양명』(뚜웨이밍, 권미숙 옮김, 통나무, 1994)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왕수인의 사상적 편력을 소개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전기는 절대 아닙니다. ..
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 사이에서 주희는 장재, 정호, 정이 등의 선배 유학자들의 뒤를 이어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는 학풍에 주춧돌을 놓았던 위대한 유학 사상가입니다.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으로 비유되는 거대한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했고, 이에 걸맞은 수양론도 체계화했습니다. 그의 수양론 가운데 한 축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왕수인은 주희가 권고한 격물치지 방법을 맹신했던 적이 있지요. 그의 일화에서 보았듯이,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려던 그의 계획은 7일 만에 좌절되고 맙니다. 성인이 되려는 왕수인의 이런 치열한 노력과 자기 검증 자세는 마침내 그를 주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학의 창시자로 우뚝 서게 해주었습니다. 왕수인의 새로운 ..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검열하다 사실 ‘사구교(四句敎)’의 핵심은 양지(良知)의 개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지라는 반성적 자각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조그마한 선도 제대로 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지 때문에 치지나 격물도 가능한 것이지요. 여기에서 잠시 왕수인이 양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좀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양지(良知)란, 맹자가 “시비지심(是非之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시비지심은 생각하지 않고도 알고 배우지 않고도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양지라고 하니, 이것은 천명지성(天命之性)인 내 마음의 본모습이 밝고 분명하게 자기를 자각하는 것이다. 무릇 하나의 생각이 발동할 때에 내 마음의 양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그것이 선한지에 대해 내 마음..
네 구절로 압축되는 왕수인의 가르침 왕수인에게 마음(心), 의(意), 지(知), 물(物)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네 가지 개념들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유학 사상을 포괄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마침내 왕수인의 시도는 하나의 정리된 형태로 확정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의 제자들이 ‘사구교(四句敎)’라고 일컫는 명제였습니다. 사구교란 글자 그대로 ‘네 구절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왕수인의 유학 사상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통찰, 그리고 이로부터 유래하는 ‘사구교’만을 기억해도 무방합니다. 그 정도로 ‘사구교’는 왕수인의 사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모습이고, ..
마음과 무관한 사물과 이(理)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수인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는 통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만 잊지 않으면 왕수인의 나머지 통찰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몸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고, 마음이 드러난 것이 바로 의(意)이며, 의의 본체가 바로 지(知)이고, 의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물(物)이다. 만약 의가 부모를 섬기는 데 있다면, 부모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만약 의가 군주를 섬기는 데 있다면, 군주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身之主宰便是心, 心之所發便是意, 意之本體便是知, 意之所在便是物. 如意在於事親, 卽事親便是一物, 意在於事..
구체적인 어떤 것을 향해가는 마음 왕수인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없다”는 독특한 생각이지요. 이것은 “마음이 가지 않으면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길을 걸을 때 우리의 마음이 크게 열려 있지 않은 경우, 다시 말해 어떤 일을 염려해서 그 일에 온통 마음이 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산길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산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꽃과 새들에게 마음이 간다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품을 정도로 넓게 확장될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가야만 외부 사물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수인의 근본적인 통찰이었지요. 그렇다면 사물의 이(理)는 어떻게 될까요? 주희는 외..
보지 않을 때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아마 여러분도 제자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고 또한 생각도 할 수 없지만, 무수히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나요? 결국 여러분도 그 제자처럼 내 마음과 관계없는 다양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해 왕수인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 꽃은 그대의 마음과 함께 고요한 상태에 있었네.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는 순간 꽃의 모습이 일시에 분명해졌지. 그러니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네.” 이 또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답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왕수인의 대답을 음미해보지요. 왕수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없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매우 당혹스런 질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의 마음은 머리 안의 뇌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슴속에 있다고 보아야 하나요? 사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이 보고 있는 책에 쏠려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대학』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보통 우리는 어떤 것을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 그것을 마음으로 생각한다고 이해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7일 동안 대나무를 탐구한 젊은 유학자 어떤 소년에게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러자 소년은 당돌하게도 스승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정신을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앞에서 정이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안연이 즐겨 그러했듯이 성인이 되고자 함이라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는 꿈을 가진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서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청년은 어느 유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유학자는 “성인이 되려면 격물..
왕수인(王守仁) 세계는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산길을 걷다 지쳐서 어느 작은 바위에 걸터앉는다.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름 모를 들꽃 하나를 발견한다.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당혹스러운 느낌이 스친다. 내가 만약 이 작은 바위에서 쉬지 않고 그대로 산길을 갔더라면, 이 꽃이 과연 나에게 발견되기나 했을까? 나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꽃이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꽃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내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곳에 없었다면, 꽃은 아무런 의미를 발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왕수인은 바로 이 점을 발견했던 독특한 유학자였다. 마음 바깥에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
더 읽을 것들 1. 『주서백선』(주자사상연구회 옮김, 혜안, 2000) 이 책은 1794년 조선의 국왕 정조가 편찬한 『어정주서백선(御定朱書百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군주가 직접 주희의 방대한 서신들 가운데 100통을 선별하여 편찬한 것입니다. 여기에 실려 있는 100통의 편지는 주희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사상연구회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간단한 해제와 함께 주희의 서신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많은 주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주희의 사유를 좀더 깊이 살펴보려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2. 『인간 주자』(미우라 쿠니오, 김영식 · 이승연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6) 공자와 더불어 유학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월인천강’의 비유가 가진 난점 그러나 주희의 이런 관점은 후세에 숱한 비판을 일으킵니다. 그 가운데 주희의 유학 사상에 대한 정약용(丁若鏞)의 비판을 살짝 음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후세의 학문은 형체가 없는 것, 형체가 있는 것, 영명한 것, 어리석은 것 등 모든 만물을 하나의 이(理)에 귀속시켜, 다시는 크고 작고 중심적이고 부수적인 차이를 없게 만들었다. 이른바 “하나의 이로부터 시작되어 만 가지로 흩어져 다르게 생성되지만 끝내는 다시 하나의 이로 합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말한 “모든 존재들은 하나로 귀속된다”는 불교 이론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맹자요의』 後世之學, 都把天地萬物無形者有形者靈明者頑蠢者, 竝歸之於一理, 無復大小主客. 所謂始於一理, 中散爲萬殊, 末復合於一理也...
내 마음이 외부 사물의 이치와 같다 정이는 주희가 평생 동안 가장 흠모했던 선배 신유학자였습니다. 정이는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불교 이론은 이치에 가깝기 때문에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보다 그 해가 더 심하다. 『하남정씨유서』 13:2.” 정이의 평가가 타당하다면 불교 이론 중 어느 부분이 유학 사상과 가장 근접했던 것일까요? 유학과 불교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밀한 이론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맹자의 성선설이 유학 사상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가 곧 유학 사상에 본성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지요. 불교는 모든 외부적인 사태를 마음으로, 나아가 불성(佛性)으로 수렴합니다. 이와 마찬가지..
인간의 마음은 전쟁터와 같다 주희는 성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인간이므로 누구나 육체와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성인도 육체적 욕망에서 기원하는 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성인이 아닌 일반인도 본성에서 유래하는 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희가 말하는 성인이란 도심을 인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며, 성인이 아닌 일반인은 거꾸로 인심을 도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삶의 모든 지평에서 출현하는 두 가지 마음의 양태, 즉 도심과 인심을 명확히 구별하고, 나아가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중용장구서」 후반부에서 주희는 ‘정일(精一)’ 공부의 중요성을 ..